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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제질서

[외교·안보]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채택 배경·함의와 대응

  • 입력 2022.11.10 16:16      조회 710
    • 김수현 정의정책연구소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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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외교·안보
 

-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채택 배경·함의와 대응
: ‘세계화’의 문제점과 대응을 중심으로

(주: 이 글은 시론적 성격의 글로 주장의 엄밀성, 객관적 입증 등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음. 대응 방향 중 세계화 정책에 대한 수정, 특히 세부 대안 정책 등은 아직 당론이라고 할 수 없으며, 문제 제기 차원의 것임. 여기서 ‘세계화’는 국경이라는 장벽을 쉽게 뛰어넘는 교통·통신의 발전, 인적·물적 교류의 증가라는 현상으로서의 세계화가 아니라, 그 현상을 빌미로 금융·제조업 등 기업에 국경을 초월한 자유로운 투자·이전을 보장하고 시장의 실패 교정자로서 국가의 능력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 정책으로서의 ‘세계화’를 의미함.)
 

-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와 과학법(CHIPS) 등을 채택한 것에 대해 한국에서는 현대·기아차 등 기업의 피해와 대응책 등이 주로 논의되고 있음. 그런데 미국 현지 공장을 서둘러 건설해야 한다든가, 적용 예외를 설득해야 한다든가 하는 주장과 움직임들은 국내기업(자본)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는 것에 그칠 뿐이고 그마저도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움.
- 미국의 IRA 등은 미·중 전략적 경쟁은 물론, 기후위기 대처, 일자리 등 국내정책과 외교정책의 결합 등의 배경에서 나온 법안임. 이를 일면적 동맹의 논리나 기존의 ‘자유무역’ 문법으로 대응할 수는 없음. 그리고 기업 중심의 수동적 대응에 그칠 때는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현재와 근미래의 핵심 산업에 있어 주요 공장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전하고 국내에 좋은 일자리가 공동화, 혹은 대폭 감축되는 위기를 낳을 것.
- 미국은 이미 세계화 정책에 대한 부작용을 절감하며 국내산업 보호·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우선하는 21세기형 ‘보호주의’ 정책을 취하고 있는 바, 한국도 ‘세계화’의 논리에 입각한 통상·외교·경제정책은 물론 국가안보전략 등을 전면 수정 혹은 재조정할 필요.


1.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와 과학법(CHIPS) 등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오류

- 미국에서 8월 9일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이하 CHIPS)’이 발효되고, 8월 16일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이하 IRA)’이 발효됨. 이미 몇 달이 지났지만, 한국 정부와 언론·주요 정당 등의 관심과 대응은 사태 발생 초기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전기차 보조금의 차별과 이에 따른 현대·기아차 등 자동차완성업체의 피해와 대응책 강구 등 기업 중심 인식과 대응에 머물고 있음. 
- 물론 IRA의 전기자동차에 대한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 지급 조항 중 북미(미국, 캐나다, 멕시코)에서 최종 조립되어야 한다는 요건의 경우, 법안 발효 후 즉시 시행되는 것이고, 이것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1위 테슬라와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2위까지 끌어올리고 있던 현대·기아차에 큰 타격이 되는 것은 분명함.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IRA 보조금 조항의 영향으로 연간 10만 대의 전기차 수출이 지장을 받을 것이라고도 함. 따라서 그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음. 그러나 사안의 내용과 배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그 대책마저 유효하지 못하거나 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
- 법안이 통과된 후 정부 합동대표단이 허둥지둥 미국으로 달려가고, 김성한 청와대 안보실장이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에게 해결을 요청하고, 이창양 산업통상부장관도 미국을 방문해 설득과 협조를 요청함. 하지만, 미국 측은 법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라거나(주: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런 말을 한 데에는 동 법이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중국의 기술력이 급격한 신장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이고, 이는 한국에도 손해만은 아니고 이익이 되는 점도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깔렸을 수 있다. IRA로 국내 자동차산업은 피해가 예상되지만, 국내 2차전지 기업들에는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산업연구원의 보고서도 비슷한 인식을 내보이고 있다. 황경인,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국내 산업 영향과 시사점-자동차와 이차전지산업을 중심으로”, (산업연구원, 2022.9.29.). IRA의 내용과 영향을 면밀하면서도 다각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충분히 동의할만하다. 그런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내 전기차 생산기반 구축을 최대한 앞당기는 등의 대책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 기업 중심적이고 국내 일자리 공동화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간과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 의회에서 결정한 법안을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성실하게 이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음. 한국의 우려를 이해한다는 말은 기껏해야 립서비스에 그치고 있음.
-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등은 전기차 수출 손해액이 현대차가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을 완공하는 2024년까지 12조 원에 달할 것이라며, 산업부 등 정부의 늑장 대처로 일본 등에 비해 한국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됐다고 비판을 가함. 
- 이창양 산업통상부장관 등 정부는 타국에 비해 늑장 대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함. 그러면서도 보조금 지급 관련 부적절성의 논리에 입각한 대미 설득과 지급 유예 등의 제안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어서인지, 보조금 지급 차별 조항 등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될 소지가 높다면서 “필요한 경우 WTO 제소 절차를 진행할 것(산업통산부 장관)”이라고 함. 한편, “미 재무부가 IRA 세부 규정 공식절차를 개시한 만큼 (중략) 의견수렴 과정에서 면밀히 대응해 나가겠다(산업통산부 차관보)”, “미국의 11월 중간선거 이후 상황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략) 중간선거 전까지 물밑작업을 잘 진행할 것(산업통산부 장관)” 등의 대응책을 밝힘. 이런 인식과 대응책은 과연 적절하고 유효할 것인가?
- 일각에서는 11월 중간선거까지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국내 정치를 의식해 자신들이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IRA 등을 개정하지 않겠지만, 11월 중간선거 이후에는 중국과 전략적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동맹 내 균열을 고려해 일정한 수정을 하지 않겠냐는 희망적 사고를 하기도 함. 
- 사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IRA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요건 중 북미 최종 조립 조건이 아직 완성된 전기차 조립공장을 미국에 가지고 있지 못한 현대·기아차 등 한국 기업은 물론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본, 유럽 국가 등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 그리고 한국 등 동맹국의 강한 반발이 “미국이 돌아왔다”라며 동맹과의 공조를 외치던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에 일정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을 것. 
- 그러나 IRA 등의 핵심 조항이 중간선거 이후에 수정되리라고 희망하거나, WTO 제소 등을 운운하는 것은 너무 한국 중심적이거나 미국의 IRA 등 제정 배경과 정책 변화에 무지하고, 효과를 거둘 수 없거나 역효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을 대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이하고 무책임하다고 할 수밖에 없음. WTO는 미국이 민주당, 공화당 모두의 적극적·암묵적 동의에 입각, 신임 위원을 선임하지 않음에 따라 그 대법원격인 상소기구가 수년째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음. 제소해봤자 최종 결심이 열리지 않거나 최소 수년이 걸릴 것. 
- 무엇보다 IRA, CHIPS 등의 제정으로 주요 재벌기업들이 이미 미국에 대폭 투자를 하기로 한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현재와 근미래 한국의 주요 먹거리 산업의 공장의 미국 건설과 이전이 강화되면, 국내산업 및 일자리가 공동화되거나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음. 그런데도 한국의 주류 언론과 정당들은 동 법들의 제정 전 기업의 대미 투자(공장 건설) 확대에 동맹의 심화·발전이라며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IRA 등 법안의 제정·발효 이후에도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주 일부만이 그 가능성을 지적할 뿐, 구체적 문제점에 관한 지적과 연구, 진지한 대책은 거의 부재한 현 상황은 개탄을 금할 수 없음. (주: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10월 말의 칼럼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이런 행보에 비판이 없지 않다. 알맹이 있는 자본과 기술이 미국으로 다 빠져나가고 한국의 첨단산업은 공동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염려에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미국에 사실상 ‘올인’하고 있다.”라며 우려 혹은 비판을 소개하고 있다. 주요 인사로서는 드문 지적으로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과연 어느 정도의 유출과 공동화가 발생할 것인지 그 피해를 생생히 적시하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올인에도 불구하고 IRA와 CHIPS 등으로 인한 국내기업의 피해, 그 저변에 미국이 보호주의로 치닫고 있는 상황, 그런 미국과 개방형 통상국가 한국 사이의 경제안보동맹이 서로에게 유리한 호혜동맹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지적에 그칠 뿐, 대안적인 정책을 제시하지는 않거나 못하고 있다. 문정인, “‘경제안보동맹’이 흔드는 한국의 이익”, 한겨레, 2022.10.31.일 자.  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1064930.html#cb)


2. 미국의 IRA,CHIPS 제정의 배경과 함의 : ‘세계화’의 부작용, 수정의 필요성을 중심으로

- IRA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이후 추진하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법이 과다한 예산 규모 등으로 의회의 반대에 부딪히자, 인플레이션 대응을 명분으로 에너지 안보 및 기후위기, 헬스케어 등의 부문으로 범위와 예산을 축소한 것임. 4,370억 달러에 달하는 총지출 중 에너지 안보 및 기후 변화 대응 항목이 3,690억 달러로 84.4%에 달하는데, 청정 전력부문 세액공제, 친환경 제조업·차량·연료 관련 세액공제, 개인 대상 청정에너지 인센티브 제공 등의 세부항목으로 구성됨. 
- 기후위기에 대한 적극 대응 및 제조업 등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한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 등 바이든 정부를 비롯해 미국 민주당이 강조하는 외교 노선에 기반을 두고 있음. 그리고 CHIPS에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반도체 제조 기업은 중국 등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국가’에서 생산시설을 확장하거나 신축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드레일(안전장치)’ 조항이 포함된 것과 비슷하게, IRA에도 전기차 세액공제 적용조건 중 배터리 핵심 광물에서 ‘해외우려집단에서 추출, 처리, 재활용된 경우’ 및 배터리 부품 조건에서 ‘해외우려집단에서 조달된 경우’에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되어 있음. 중국이 주도하고 있거나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2차 배터리를 견제, 절연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 이는 이미 전략적 경쟁 상태에 접어든 미·중 관계 혹은 미국의 대중 정책의 연장 선상이라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등 현재 미국의 대부분 정치세력과 미국민의 지지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음.
- IRA 등의 제정 배경에 기후위기 대응이 있고, 이는 미·중 협조가 요구되는 사안인데 왜 중국을 일방적으로 배제하려고 하는지, IRA의 조항을 충족시키는 게 현재 가능한지 등의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음. 현재 미국은 중국과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한 기술패권경쟁을 벌이고 있음. 그런데 AI, 5G·6G, 반도체, 우주 등은 물론 전기차와 2차 배터리 등에서 중국의 경쟁력이 크게 신장되어 있음. 2차 배터리는 CATL 등 중국 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등 대부분 국가의 기업들도 그 핵심원료에서는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 미국으로서는 자국의 세금을 들여 자칫 중국 기업에 좋은 일 시켜주거나 공급망 관련 중국의 영향력을 오히려 강화시켜주는 것을 차단하고, 미국 중심의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음.
- 그런데 한국에서는 IRA나 CHIPS의 배경으로 미·중 전략적 경쟁 등이 주로 거론됨. 그래서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위해서는 많은 국가의 동참, 특히 동맹의 협조가 필요할 텐데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와 CHIP 4 가입 및 나토정상회의 참석 등을 통한 한미동맹 강화-중국과의 불편한 관계 감수 등의 정책을 펴온 한국의 윤석열 정부와 미국에 대대적 투자를 약속한 한국 대기업을 배신한 행위가 아니냐는 거센 비판과 납득 불가라는 반응이 터져 나옴. 물론 이런 점도 있으므로 그에 입각한 국익 보호와 최대화의 노력을 아예 부정할 수는 없음. 그러나 IRA 등이 제정된 데는 ‘세계화’가 초래한 문제점에 대한 미국 외교안보정책·국가안보전략 차원의 조정이 있는 만큼 그에 대한 이해를 제고할 필요.
- IRA의 제정 배경으로 또 하나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이 미국 국내 일자리의 창출 및 유입, 제조업의 육성 등 보호주의의 대세화, 노골화임. (주: 문정인은 앞의 칼럼에서 “경제 부문에서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제일주의)는 단순한 트럼프의 유물이 아니며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 향후 미국 대외경제정책 기조로 자리 잡고 있다”며 “최근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가 발표한 미국 외교정책 우선순위 여론조사 결과에서 미 본토 물리적 방어(30%)가 여전히 최우선 과제라지만, 국제무역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 확보(20%)가 민주적 가치의 확산(15%)이나 잠재적 침략국 봉쇄(9%)보다 더 중요한 사안으로 손꼽혔다.”며 “현재 미국의 대세가 보호주의로 돌아섰음을 시사한다”라고 함.) 미국은 2차대전 이후 GATT 체제는 물론, WTO 등 자유무역 체제와 질서를 발전시켜 옴. 물론 1980년대 미국의 상대적 침체와 일본의 부상 시기 301조 발동, 플라자합의 등을 강요하기도 함. 하지만, 탈냉전 이후 전 세계에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불리는 ‘무역과 투자를 포함한 개방, 시장의 확대, 거시경제의 안정’ 등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주도적으로 구축하거나 강요한 바 있음. 그것이 미국의 국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음. 
- 그런데 신자유주의와 결합한 세계화는 각국에서 최상위 계층의 소득은 급격하게 증가하는 반면, 중간계층의 소득은 정체하는 경제적 양극화 현상을 낳음. 특히 세계적 공급망 구축과 함께 상당수의 제조업체가 외국으로 빠져나가거나 제조는 외주화해 국내 제조업의 기반이 약화됨. 러스트 벨트처럼 이른바 사양 산업이 주로 존재했던 지역의 경우 공동화되고 낙후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 전개됨. 미국의 경우 실리콘벨리를 중심으로 한 첨단 제조업의 경쟁력 등으로 제조업 전체 실질 생산은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증가하지만, 제조업 고용은 1987년 월별 1,750만 명이었으나 2000년대 이후 1,500만 명 이하로 떨어지고 세계 금융위기 때인 2010년 1,150만 명으로 최저를 기록하고 2017년 6월 기준 1,240만 명에 불과한 상황. (주: Desilver, Drew, 2017, “Most Americans unaware that U.S. manufacturing jobs have disappeared, outputs has grown,” Pew Research Center, July 25. 이승주, “탈냉전 이후 세계화: 심층 통합, 보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 『한국과 국제정치』제36권 제1호 2020년(봄) 통권 108호, p.95 본문과 <그림 2>에서 재인용.)
 
- 세계화에 따른 소득 양극화의 확대 등은 단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었음. 1995년에서 2015년의 기간 동안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를 보면 OECD 회원국 가운데 인도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고숙련 노동자와 저숙련 노동자의 비중이 증가한 반면, 중숙련 노동자의 비중이 8% 포인트에 가까운 감소폭을 보임. 중산층의 붕괴 등 소득의 양극화와 불평등의 확대, 직업 불안정성 등은 정치적 불만으로 표출되었고, 그 영향으로 2010년대 중반 이후 상대국의 무역과 투자를 제한하는 등의 보호주의적 조치가 크게 증가함. 미국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큰 책임이 있는 월스트리트의 금융업자 등이 보호를 받는 반면, 일반 국민들이 해고를 당하며 대출받고 장만한 집에서 쫓겨나는 등의 사태가 벌어졌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큰 조직적 저항이 발생함. 그러나 미국 민주당 등 주류 정치인들은 이런 불평등 문제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정책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없었음. 피해 집단에 대한 ‘보상의 실패’와 기존 정당과 정치인들의 적절한 대처의 부재라는 ‘대표성의 실패’는 대중들의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음. 결국, 전통 제조업이 집중된 러스트 벨트 등에서 기존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백인 노동자층 등에서 자유무역 정책에 대한 반발이 직접적으로 표출되었고, 트럼프는 물론 샌더스 등 기존 주류 정치의 외곽에 있던 정치인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며 돌풍을 일으킴. (주: 이 단락은 이승주, 각주 5의 글 등을 크게 참조함.)
 
- 그것이 2016년 트럼프의 집권 및 ‘미국 우선주의’ 등으로 이어지고, 2020년에는 의사당 점거 등 미국 민주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적 징후가 나타남.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당시 민주당 후보 진영이 ‘(미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라는 인식과 정책에 도달하고 그것을 집권 이후에도 강력히 시행하는 것은 국내정치적 이해를 반영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전체 국가정책 차원에서도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음. 
- 그리고 이런 인식과 기조는 IRA, CHIPS 등의 법안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에서도 명확히 표현되어 나타남. 10월 발표 바이든 행정부의 NSS에서는 미국의 목표로 자유롭고 개방되며, 번영하고 안전한 국제질서 구축 등을 내세우고 있어 얼핏 기존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임. (주: 국내 언론에서는 ‘현존하는 전략경쟁은 민주주의와 전제주의 경쟁’, ‘중국을 가장 중대한 지정학적 도전으로 인식’, ‘중국은 국제질서를 재편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유일한 경쟁자’라는 언급이 주로 소개됨.) 그런데, 그 주요 목표 중 하나로 ▲국력과 영향력 증대를 위한 국내적 자원과 수단에 투자가 적시되고, 6대 정책 방향에서는 1) 외교정책과 국내정책 간의 경계를 없앤다, 5) 글로벌 불평등 문제, 가장 중요한 경쟁국이자 무역 파트너인 중국의 부상, 기존 규범이 다루지 않는 신기술 등 글로벌 차원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세계화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음. (주: 김현욱,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서(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 분석”, (외보안보연구원, 2022.10.17.) 등 참조 바람.)


3. 미국 등과 비교되는 한국의 미약한 반(反)세계화 운동과 인식, 그 문제점

- 한국은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가 시대적 대세라며 이에 부응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함. 특히 외환위기 이후에는 IMF와 미국 등이 요구하는 (자유로운 해고보다는 비정규직 양산으로 귀결된) 노동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고, 그 결과 양극화와 (사회적이지만 개인적 차원으로 치부되고 발현된) 불안이 심화함. 재벌 대기업들은 세계화의 구호 속에 중국, 베트남 등 외국에 대거 직접 투자한 반면, 국내 투자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함. 그 때문에 한국 경제와 기업들의 꾸준한 성장, 제조업의 경쟁력 유지 등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 제조공정의 급속한 로봇화 추진 등의 영향까지 겹쳐 국내에는 이른바 괜찮은 제조업 일자리가 크게 줄어듦. 그것이 전체 노동자의 임금 양극화, 특히 고졸 이하 학력-중간 및 비숙련 노동자들의 상대적 임금 하락 등 소득 양극화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됨. (주: 필자가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최근의 구체적 수치 등을 추적하지는 못했지만, 2008년 한국은행의 “세계화와 기술발전이 제조업 노동수요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1991년 이후 우리나라 제조업의 일자리가 100만 개 이상 줄어들며 일자리 부족이 심화된 것도 선진국 경험과 유사하게 세계화와 기술발전에 따른 노동수요구조 변화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생산직 근로자의 임금 비중이 61.0%에서 48.6%로 하락한 것에도 나타났다. 또한, 대졸 이상 근로자와 고졸 근로자의 임금 격차가 1995년 38%에서 2005년에 51%로 확대되고, 저학력 근로자의 임금이 총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3년 82.7%에서 2005년에는 69.7%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제조업의 비숙련 노동에 대한 상대적 수요감소(임금 비중 하락)의 20% 정도가 세계화와 기술발전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고 있다.)
- 한국에서도 WTO 우루과이라운드 발족이나 한미 FTA 체결 당시 농민들을 중심으로 세계화에 대한 일정한 저항이 있었음. 노동자들도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 결합하기도 했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국가기간산업 등 공기업 민영화를 낳는다고 보아 세계화 반대 운동을 전개하기도 함. 그런데 IMF 이후의 비정규직 양산의 충격이 커서인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컸지만, 세계화 자체에 대한 반대와 저항 운동이 다른 나라에 비해 거셌다고 보기는 어려움. 특히 한미 FTA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미국 등의 노동자들처럼 자유무역 자체에 반대하고 보호주의를 촉구하는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고 할 수 있음. 
- 분명 세계화 이후 국내 제조업 일자리가 크게 줄고 전반적 노동조건이 악화되었음에도 노동 차원의 반세계화-반 자유무역의 움직임이 거세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민주노총의 근간을 이루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있는 공장이 폐쇄되고 외국으로 이전하는 등의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음. 둘째, 노동자 소득 양극화는 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된 피해자였는데, 이들은 노조를 구성하기도 힘들어 조직적 저항이나 대안을 강력히 촉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으로 보임. 
- 특히 최근 10여 년 한국의 세계화 반대 운동에 대한 연구도 거의 없을 정도로 한미 FTA 반대 운동 이후에는 반세계화-반자유무역의 운동이나 사회적 인식이 크게 쇠함. 전 사회적으로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과 수출 대기업 주도 정책의 한계와 대안적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높아졌지만, 세계화-신자유주의적 통상과 경제정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인식과 대안 촉구의 목소리는 아주 미미했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대선 등에서 회자되고 국가정책으로 의제화된 것은 복지정책의 확대였으며, ‘소득주도성장’의 경우에도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도에 머물렀음.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유치의 필요성은 국가적 차원의 과제가 아니라 ‘광주형 일자리’ 등 일부 지역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 정도로 인식되고 맒.
-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자유무역 질서가 곧 국익을 보장한다는 신념체계가 강화됨. 심지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고 특히 기술 패권경쟁이 두드러지자, 세계적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국가의 위상은 물론 심지어 국가안보까지 보장, 강화시킨다는 단편적 인식과 논리가 횡행하게 됨. 
- 기업들의 이익이 곧 국익이라는 왜곡되고 단편적인 논리는 IRA에 대해서도 기업들의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에 국한된 인식과 대책 강구에서도 나타나고 있음. 이런 퇴행성은 기업들의 이익이 곧 국익인 것처럼 포장하고, 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추진했던 세계화 정책이 국가 공동체 내 구성원들의 양극화와 이에 따른 갈등을 심화시키고 그 문제점에 대한 ‘보상의 실패’, ‘대표의 실패’가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를 낳고 전략적 경쟁력을 약화시킨 데 대한 반성과 재조정이 세계화의 주도국 미국에서 이미 전개되고 있는 것과도 괴리됨.


☞  대응 방향


1. 한국 주류의 인식과 대응의 한계,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대응 필요

- 앞서 IRA 등 관련 현재 상황과 걸맞지 않은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WTO 제소 운운은 물론 법안 개정, 한국만의 규정 예외 적용 촉구 등 실효성 없는 대응책도 모두 현재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 및 그 배경이 되는 국제질서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부재에서 비롯됨. 
- 현재 국내 주요 정치세력 및 대부분의 언론 등은 ‘세계화’ 혹은 자유무역 질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며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거나, 현 국제질서와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서 주로 중국의 부상 혹은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와 이에 대한 대응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강함. 학계 등 전문가들도 자유주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으며 미국 등에서 보호주의가 이미 대두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미·중 전략적 경쟁에 주로 착목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간과하는 경향. 대표적 통상문제 전문가로 자타공인하는 김양희 교수 같은 경우에는 미국의 상대적 힘의 쇠퇴-미·중 경쟁이라는 시각 속에 미국이 뜻 맞는 동맹과 우방을 규합한 반중 공동전선을 편다며, ‘보호주의의 진영화’와 글로벌 가치사슬(GVC)을 대체하는 ‘신뢰가치사슬(TVC)’이라는 시각 속에 이해하고자 함. (주: 김양희, 「21세기 보호주의의 변용, ‘진영화’와 ‘신뢰가치사슬(TVC)’」(외교안보연구원, 2022년 1월). 
- 물론, 김양희는 우방국 간 신뢰구축 지반이 취약하고, 바이든 행정부도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유지하는 등 단기간 내에 TVC가 착근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과 GVC, RVC(지역~), DVC(국내~), TVC가 병존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는 있음. 그러나 그는 “TVC 구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면, 첫째, 미·중 경쟁이 새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현실 인식, 둘째, 세계가 두 진영으로 양분되고 있는 지금 한국의 대외 전략은 일관되고 원칙 있는 대응으로 고립을 면할 수 있다”라고 함. 그가 비록,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조망과 대응 전략, TVC 내 미국의 솔선수범에 대한 한국의 강조, 미국과 중국의 소프트 파워 제고를 위한 경쟁 촉구” 등을 주장하고 있기는 함. 하지만, IRA 등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일방주의 등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며 결국 미·중 전략적 경쟁 시대에 미국을 선택·편승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을 강화하고 “경제안보의 시대, 중국 견제 혜택 최대화 전략” (주: 주간경향 1498호 (2022.10.17.) 김양희 교수 인터뷰 기사. 그는 인터뷰에서 통상문제 전문가다운 현 상황 및 대안 관련 풍부한 식견과 답변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른바 기사의 야마(제목)가 이렇게 뽑히는 것은 그것이 핵심적 주장(혹은 그의 인터뷰에서 특기할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등 그에 기반을 둔 전략을 주장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됨.
- 앞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NSS에 대한 소개 및 분석에서도 살펴봤듯이 현재 미국은 중국을 유일한 경쟁자이자 도전으로 인식하고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지만, 세계화에 대한 조정-국내정책과 외교정책의 경계를 없애고 국내적 자원과 수단에 투자해 국내적 능력을 제고하는 것을 국가안보의 주요 목표이자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음. 세계화에 따른 국내 제조능력의 쇠퇴와 불평등의 확대를 더이상 방치했다가는 중국과 기술 패권경쟁에서도,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간 경쟁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는 상황 인식에 기반을 두고, 미국의 첨단 제조업을 적극 육성하고 나아가 외국 기업까지 끌어들이겠다는 것임. 
- 그런데 중국과 세계 각국의 경제적 연계-의존을 약화시키겠다면서도 다분히 미국 중심적인 이런 정책은 IRA에서 보듯 한국 등 다른 국가의 이익과 충돌하는 것일 수밖에 없음. 따라서 현 국제질서에 대해 미·중 경쟁을 중심으로 한 일면적 이해와 미국 일변도 정책은 국익을 저해하거나, 국익이라는 미명 하 각국 국가공동체 다수의 이해에 반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의 여러 국가들은 신중하면서도 다면적 접근 중. 예를 들어 EU와 내부 각국은 현재 중국의 반인권, 권위주의 강화, 자국 중심적 행태에 비판적이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는 것에는 미국과 일정한 교감과 공동의 행보를 보임. 그러나 자국산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이를 바탕으로 괜찮은 일자리까지 흡수하려는 정책은 제조업 강국이자 통상국가인 독일 등 EU 국가들의 이해와 충돌할 수밖에 없음. 그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므로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노골적 국가 이기주의-보호주의에 반대하는 국가 등과 적극적 연대 필요. 


2. 중산층·서민을 위한 외교-국가안보전략으로 전환 필요

- 미국의 IRA 등 법안 채택은 자국 중산층을 위한 외교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음. 앞에서도 서술했듯이 그 배경은 기술 변화와 결합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부작용에 따른 불평등의 확대, 자국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중산층 일자리의 축소와 소득 저하이고, 이런 세계화에 대한 재조정의 필요성을 NSS를 통해서도 공식 표명하고 있음. 
- 한국이 미국의 이런 변화에 무감한 채 기존의 ‘세계화’ 혹은 한미동맹의 논리에 입각한 인식과 대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당장 전기차에서 시작해 배터리, 바이오, 반도체 등 현재와 근미래 한국의 주요 먹거리이자 괜찮은 일자리가 미국의 보호주의적 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대거 미국으로 유출되는 것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것. 그 경우 그것은 일차적으로 노동자와 청년에게 큰 타격을 주고, 나아가 한국 경제의 지속성, 국가안보에도 막대한 피해를 안겨줄 가능성이 다분함. 
- 한국도 민주공화국으로서 국가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통상·외교 정책을 추진하고,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경제·산업 정책 등 국내정책과 외교정책의 조화, 경계 허물기를 추진할 필요. 그것이 한반도 평화의 공고화와 함께 한국 국가안보전략의 주요 목표이자 정책이 되어야 함. 
- 물론,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2021년 기준 총 GDP의 70.1%(한국무역협회 통계 근거)에 달해 미국 등에 비해 훨씬 높은 통상국가라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 등을 택하기는 어려움. 하지만, 국내 일자리 및 산업과 관련 세계화의 논리에 입각한 기업 위주 방임 정책에서 적극적 정책으로 전환 필요.
- 정의당 등 한국의 진보적 정치세력과 시민단체들은 지난 십여 년 동안 신자유주의에는 반대하면서도 그 동전의 이면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화에 대해서는 반대 운동을 제대로 전개하지 않았고, 특히 대안적 통상-경제-일자리 정책은 제시하지 못함. 이제 재벌 대기업의 미국 등 국외유출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추진하는 자국 기업의 귀환(리쇼어링)이나 일자리 유치, 그를 위해 필요하다면 사회적 대타협 정책에 대해서도 입장을 정립할 필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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