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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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응시] 절제의 욕망학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먼저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린 뒤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 1970~1980년대 군사독재라는 우리의 상황과 관련, 나는 <대학>에 나오는 이 문장이 국민들에게 “나 자신과 가정도 제대로 관리 못하면서 무슨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하고 국가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느냐”는 소시민의식에 묶어두려는 지배이데올로기라고 생각했다.
요즈음 생각이 변했다. 연이은 공직자들의 이탈, 특히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며 그동안 ‘정의’를 외쳐온 문재인 정부라는 ‘자유주의적 개혁진영’과 정의당이라는 ‘진보진영’의 일탈을 보면서 ‘역시 고전은 옳다’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나 역시 <논어>에 나오듯이 “나물 먹고 물 마시며” 살지는 않았고 ‘수신제가’에 성공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욕망’을 절제하려고 노력해왔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기에 공직을 멀리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정의당을 보면, 주요 공직자들이 욕망을 절제하려고 노력하고 스스로를 부단히 돌아다보는 자기성찰을 하는 데 실패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부는 아예 자기성찰을 포기한 것 같다. 누구나 강남에 빌딩을 갖고 싶고,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고, 성적 욕망과 권력욕, 명예욕을 가진다. 그러나 최소한 진보를 자처하려면, 특히 공직에 나가려면 이에 대한 절제와 성찰을 통해 수신제가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한다.
수신제가에 실패한 현 정부 인사들의 예는 너무 많아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조국 서울대 교수는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난 두 자녀의 ‘입시부정’과 관련해 최종적인 법적 판결과 상관없이 자신과 부인이 근무하는 대학에서 스펙을 만들어 대학을 보낸 것 그 자체에 대해 자기성찰이 절실하다. 조국 부부를 보고 있으면, 이들처럼 대학에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딸의 입학을 위해 다른 방식으로 불법을 저질러야 했던 최순실이 차라리 불쌍하게 느껴진다.
진짜 충격적인 것은 사실상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 지도부에서 생겨난 일탈이다. 노회찬, 심상정을 이을 ‘진보의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던 김종철 전 대표는 동료의원을 성추행해 당에서 제명됐다. 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20대 여성해고노동자’ 의원으로 눈부신 의정활동을 펴 관심을 끌어온 류호정 의원이 수행비서를 ‘부당해고’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정의당이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주장해온 두 가지의 핵심 가치, 즉 성평등과 노동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특히 류 의원은 기대가 큰 만큼 너무 실망스럽다. 류 의원이 나이도 어리고 정치 신인인 만큼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문제는 김종철처럼 잘못에 대해 솔직히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상대방, 즉 노동자에 대한 공감능력을 갖지 못하고 상식이 아니라 근로기준법 등에 문제가 되지 않으면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등에서 고소·고발로 맞대응하고 있는 점이다. 해고가 누구의 잘못이냐는 논쟁을 떠나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에게 다른 일도 아니고 수행비서를 맡긴 것 자체가 문제이며, 원죄다. 따라서 이 결정에 대해 겸허하게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법이 아니라 상식이다. 단호한 대응으로 칭찬을 받았던 김종철 때와는 달리 당도 문제수습을 못한 채 끌려다니고 있다. 중앙당이 통제력을 가졌던 진보정당의 전통과 달리 의원실이 ‘독립된 국가기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심상정 의원 등 당의 ‘어른’이 나서서 문제를 지혜롭게 풀지 못하고 어렵게 만든 당이 망가지도록 왜 구경만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 대중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오만과 독선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빨리 자기성찰을 통해 류 의원도, 당도 거듭나야 한다. 설사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죽는 것이 사는 것’이며, 자신이 살려고 당을 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조국 교수의 책 중에 <절제의 형법학>이 있다. 검찰 권력은 무섭기 때문에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다들 ‘우리 편’에게는 검찰권이 절제되고, ‘상대편’에는 추상같이 엄중하기를 바라는 것이 문제지만,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필요한 것, 특히 공직을 바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 스스로 욕망을 절제할 줄 아는 ‘절제의 욕망학’이다. 헤게모니론의 창시자인 그람시의 지적대로 ‘도덕·윤리적 헤게모니’, 쉽게 말해 도덕적 주도권을 갖지 못한 진보, 자기성찰을 하지 못하는 진보세력은 외면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