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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인권

10/11 합본호 5. No Gender Equality, No Democracy (젠더평등 없이 민주주의 없다)

  • 입력 2024.01.25 13:49      조회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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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평등#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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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No Gender Equality, No Democracy-권수현.pdf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조교수 

-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에서 2016년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2023년 3월부터는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젠더정치가 주전공이고, 관련 연구와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운동과 거버넌스, 페미니스트 정체성, 여성정당, 청년의 정치참여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1. 위기의 대한민국 

    1)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대통령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떤’ 대통령인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구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성별을 떠나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라는 말을 할 수 없다. 발언 이후 “구조적 성차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많은 증거와 사례가 언론과 온/오프라인을 통해 계속 이야기되고 있지만, 이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윤석열 정부의 측근들과 여당 국민의힘 정치인들에게 전혀 가닿고 있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조’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구조’를 모르기 때문에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구조적 성차별이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의 수준이다. 

   현 대통령의 무지는 젠더문제에서만 나타나지 않았다. 2022년 20대 대선 토론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상대 후보가 RE100(재생에너지 100%)과 유럽연합(EU) ‘택소노미’(청정에너지에 대해 금융투자 지원을 하는 녹색 분류체계)에 대해 질문하자 “RE100이 뭐죠?”, “EU 뭔지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가르쳐 달라”라고 답했다. 그리고 다음 날 “대통령이 될 사람이 RE100이나 이런 것을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닌가”라고 항변했다(이라영 2022).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하고, 다 알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이다. 특히 젠더나 기후위기와 같이 기존 정치에서 다뤄지지 않거나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은 (하지만 앞으로 더 또는 가장 중요해질) 의제들에 대해 대통령을 포함해 많은 정치인이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하다.(주 : 현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표적이다. 2017년 자유한국당에서 마련한 한 토론회에서 당시 홍준표 대표는 “젠더폭력이라고 하는 게 선뜻 이해가 안 가는데, 예를 들어 말해 달라”고 했다. 설명을 들은 뒤에도 그는 “처음 듣는 말”이라며 “젠더가 뭔가”라고 재차 물었다. 누군가에게는 삶에 직결된 문제이기에 이 언어가 들리지만, 누군가의 귀에는 삶의 주파수가 맞지 않아서 들리지 않는 것이다(이라영 2022).) 더 악질적인 것은 그 무지를 이용해 (젠더나 기후위기) 의제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그 의제를 제기한 집단에 대한 비난과 낙인, 억압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이라영 2022).(주 :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한 데 대해 ‘출근 방해하는 사회적 테러’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출근길 대중교통을 막는 행위는 타인의 생존권을 부정하는 ‘사회적 테러’나 다름없다. … 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다른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전장연은 사실상 ‘비뚤어진 강자’에 가깝다”며 전장연을 ‘테러’ 집단,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집단’으로 낙인찍었다. 장애인 집단을 테러 집단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 바로 권력이며, 권력자의 비장애인 중심성과 우위성을 드러낸다.)

   윤석열 대통령이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발언을 당당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사회에 여전히 견고하게 뿌리 내리고 있는 남성 중심적인 구조와 남성 우위의 위계질서를 방증한다. 또한 이러한 발언의 확산은 성별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온 페미니스트와 여성들, 장애인·이주민·성소수자와 같은 정치적·사회적 소수집단의 입을 막고, 이들에게 막말과 위협과 폭력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결과적으로 남성 중심의 구조와 남성 우위의 위계를 고착하는 악순환을 지속 가능하게 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며 수많은 정책의 최종 정책결정권자인 대통령이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대하는 나라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한 더 나은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대통령뿐 아니라 여당과 야당, 다수 정치인이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을수록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는 명약관화하다. 

    2)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대통령과 정부
 
   “횟집 나선 대통령 앞 ‘도열’ … 여권 인사들 한밤의 총출동.” 2023년 4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해운대구의 한 횟집에서 나오는 장면이 촬영된 사진들이 각종 소셜미디어에 올라와 화제가 되자 MBC가 붙인 제목이다. MBC만이 아닌, 많은 언론이 비슷한 단어를 선택했다. 횟집 앞에 죽 늘어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조폭을 떠올린 사람은 나뿐일까. 검사와 조폭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럴까. 

 [그림 1] “횟집 나선 대통령 앞 ‘도열’… 여권 인사들 한밤의 총출동.” (곽동건 2023)


   드라마 <원 더 우먼>에서 주인공인 검사는 조폭에게 검사와 조폭의 공통점 세 가지를 말하는데(주 : “첫째, 나와바리가 있다. 둘째, 우리가 무기 쓰듯 쟤들(검사)도 뻑하면 쓰는 무기(기소)가 있다. 셋째, 따지고 보면 개뿔 별거 아닌데 그러니까 쟤들(검사)은 합법적 조직폭력배고 우리(조폭)는 불법적 조직폭력배일 뿐이다.” (네이버TV)) 그중 하나가 ‘나와바리’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나와바리는 “영향력이나 세력이 미치는 공간이나 영역을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한밤의 횟집 사진 속에서 여권 인사들이 대통령 앞에 도열해 있는 모습은 대통령의 나와바리가 조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대통령이 그러한 형식이나 문화에 상당히 친숙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검사와 조폭은 상상 이상의 큰 차이를 갖고 있다. 드라마 <원 더 우먼> 주인공은 검사와 조폭의 세 번째 공통점으로 검사는 ‘합법적’ 조직폭력배고, 조폭은 ‘불법적’ 조직폭력배라며 두 조직 모두 ‘조직폭력배’라는 점에서 같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합법’과 ‘불법’은 두 집단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이자 실질적 차이이다. 근대국가에서 폭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집단은 오직 정부뿐이다. 그리고 검찰은 폭력을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정부 조직 중 하나이다. 여기서 말하는 폭력은 신체에 해를 가하는 물리적 폭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신적·심리적 통제 또한 폭력이다. 한국 헌법은 누군가를 체포·구속·압수·수색할 것을 판단하는 권한을 검사에게 부여하고 있는데 이 권한으로 검사와 검찰은 시민에 대한 막강한 통제력을 가지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뒤늦은 민주화에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된 검찰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횟집 앞 도열 장면을 ‘조폭이네’하며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들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의 시나리오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설은 그가 민주주의 제도를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합법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레비츠키·지블랫 2018)”라고 강조했다. 검찰 출신이 대통령인 윤석열 정부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려 하고 있는데 여성가족부 폐지는 여성가족부만의 폐지로 그치지 않는다. 정부 조직 내에서 차별과 불평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 여성가족부의 폐지는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을 다루는 정책이나 조직의 폐기로 이어지게 되며, 차별과 불평등이 정당화되는 반민주적·비민주적 사회로의 회귀를 가속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젠더갈등이나 페미니즘 대 반페미니즘과 같은 프레임으로 봐서도 안 되며, 여성만의 문제로만 봐서도 안 되는 이유이다. 

 [그림 2] 드라마 <원 더 우먼> 중 한 장면(네이버TV)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당시 인종차별에 분노하던 흑인들의 저항에 대해 백인들이 갖는 두려움을 활용해 미국 남부 백인의 표를 얻었는데 그 전략이 바로 ‘법과 질서’이다. 인종과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라는 부정의(injustice)의 해소를 요구했던 흑인들의 저항을 백인 중심의 법과 질서를 어기는 행위로 간주하고 이들을 합법적으로 억압하면서 인종차별 구조를 유지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법치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법에 따라 (개인의) 젠더폭력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하나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옹호하고 있는 법체계와 내용, 그리고 이에 동의하는 판사들이 계속 존재하는 사회에서 법에 따른 해결은 젠더폭력의 성별화된 구조 유지에 복무할 수밖에 없다. 젠더폭력의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이 되는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3) 효과적인 정치적 동원 수단이 된 반페미니즘 정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세대와 성별 차원에서는 20~30대 남성의 절반을 넘는 지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주 : KBS·MBC·SBS 방송3사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대선에서 20대 남성의 58.7%, 30대 남성의 52.8%가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다. 20~30대 남성의 지지율은 60대 이상 남성의 지지율(67.4%) 다음으로 높고, 40~50대 남성 지지율(35.2%와 41.8%)보다 높다(김영은 2022).) 이러한 지지가 가능했던 건 보수 진영의 후보가 단일후보였기 때문이었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보수의 깃발을 들고나온 후보는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총 세 명이었고, 이에 따라 60대 이상 남성을 제외한 남성 세대 집단에서 표가 분산되었다.(주 : 2017년 5월 7~8일에 진행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14%는 홍준표 후보, 19%는 안철수 후보, 19%는 유승민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후보가 얻은 득표율을 합하면 52%로 절반을 넘는다(한국갤럽 20017).) 반면, 2022년 20대 대선에서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로 단일화되면서 표의 분산이 사라질 수 있었고, 결국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30대 남성이 윤석열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데는 보수 진영의 반페미니즘(anti-feminism) 동원 전략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보수 진영의 반페미니즘 동원 전략은 ‘페미니즘 리부트(feminism reboot)’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바른미래당 소속) 이준석 최고위원과 하태경 의원의 주도로 시작됐다.(주 : 2018년 12월 21일,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에서 하태경 의원은 “워마드는 여자 일베 사이트, 남혐(남성혐오)주의자”라며 워마드 폐쇄를 주장했고, 이준석 최고위원도 "워마드, 폐쇄해야… 고쳐 쓸 수도 없는 지경의 집단"(2019.01.07.)이라며 워마드 공격에 가세했다(유성애 2019). 이후 하태경 의원과 이준석 최고위원은 ‘워마드를 해부한다’(2019년 1월 23일 개최)와 ‘워마드의 언어폭력, 그 잔인함을 고발하다’(2019년 3월 16일)와 같은 토론회를 통해 ‘워마드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했고, 반페미니즘의 투사가 되어 온라인에서 활동하던 청년 남성의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효과는 2021년 4월 7일에 치러진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오세훈과 박형준)의 당선과 동년 6월 이준석의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을 통해 확인되었다. 앞뒤 설명 없이 등장한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이준석(과 하태경)에 의해 주도된 보수의 반페미니즘 동원 전략이 성공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윤석열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대해 20~30대 남성들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오래전부터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들의 주요한 요구사항 중 하나였고, 윤석열 후보는 이 요구를 대선 공약으로까지 격상시켰다. 집게손가락에 대한 문제제기를 정당한 것으로 수용했던 기업과 공공기관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또한 맥락이 소거된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을 정치적으로 정당한 요구로 수용했다. 이는 그동안 한국 정치와 사회에서 주변부적인 존재이자 부정적인 존재로 취급되었던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들에게 쾌감과 승리감, (정치적) 효능감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청년 남성의 반(反)민주당이 친(親)보수당으로 향하게 된 기저에 반페미니즘 정서가 존재하고 그것이 후보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페미니즘 정서가 있다는 것과 그것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다르다. 반페미니즘 정서나 태도에 정당성을 부여한 책임은 정치(인)에 있고, 따라서 이의 해결 또한 정치(인)에 있다. 적대와 혐오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의 존재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2. 축소되는 젠더정책, 껍데기만 남은 여성가족부 

    1) 여성가족부 장관의 무능은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

   여성가족부는 만들어질 때부터 위태로운 부처였다. 부처의 위상과 권력이 기본적으로 예산과 인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모든 부처 중에서 예산과 인력이 가장 작은 부처라는 사실은 여성가족부의 취약성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예산과 인력만이 여성가족부의 위상을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은 아니다. 여성가족부의 위기를 불러오는 데는 여성가족부 장관의 책임 또한 크다. 여성가족부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목적, 여전히 성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여성가족부에 적합한 인사가 여성가족부 장관이 된 경우는 많지 않다. 현 윤석열 정부의 김현숙 장관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시절의 이정옥 장관을 비롯해(주 : 이정옥 전 장관은 여성가족부가 추천한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의 성평등 교육 도서인 ‘나다움 어린이책’이 선정적이라는 보수 단체들의 문제제기에 어떤 반박도 하지 않고 책 회수를 결정했고(박다해 2020),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으로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 대해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집단학습을 할 기회”(이왕구 2022)라고 답변하면서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적지 않은 장관들이 여성가족부의 위기를 불러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여성가족부에 적합하지 않은 인사가 여성가족부 장관이 되는 이유는 여성가족부 장관 자체의 문제 이전에 그러한 인사를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대통령의 문제이자 책임이다. 어떤 사람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하느냐는 대통령의 성평등 인식 수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여성가족부 장관의 무능은 대통령의 무능이며, 정부의 무능이고, 책임 또한 대통령과 정부가 져야 한다. 

    2) 무능과 무쓸모의 끝장을 보여준 여성가족부 장관
 
   윤석열 정부의 첫 여성가족부 장관인 김현숙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표방한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임무를 제한된 상황 속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제한된 상황이란 여성가족부 폐지를 정부조직법 개편안으로 제시했지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한 상황을 의미한다. 이 상황만 아니라면, 김현숙 장관은 여성가족부를 쓸모없는, 폐지해야 할 부서로 만드는 데 있어 장관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여성가족부가 책임을 맡았던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파행이다. 잼버리 개최 약 1년 전, 김현숙 장관은 국회의원들의 잼버리 관련 문제제기에 “거의 완료됐다”, (“잘 진행될 것 같냐?) “물론이다”, “태풍·폭염에 대한 대책도 다 세워 놓았다”며(진상명·최희진 2023)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대회가 개최된 후 책임부처인 여성가족부, 특히 김현숙 장관이 보인 모습은 전 국민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잼버리 조기 철수가 결정된 것에 대해 김현숙 장관은 “(이번 사태는) 오히려 대한민국이 가진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보여줄 수 있다”고 답했다(김진방 2023). 국무총리가 김현숙 장관에게 대회가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며 안전을 확보할 것을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김현숙 장관은 대회 장소에서 차량으로 20분 떨어진 쾌적한 숙소에서 지냈다. 비슷한 시기에 공동조직위원장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집행위원장인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잼버리 영지에서 숙영했는데 김현숙 장관은 숙영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텐트 확보가 여의치 않았다”고 답했다(이가영 2023). 잼버리 파행과 관련한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허위 보고에 가까운 부실 보고를 조직위원회와 잼버리 사무국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한다”며 행사 파행의 책임을 실무자들에게 떠넘겼다(채윤태 2023).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고 책임져야 하는지를 모르는 김현숙 장관의 모습은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대통령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3) 여성/젠더 지우기와 예산 삭감
 
   현재 여성가족부가 맡고 있는 업무 중 상당수는 다른 부처에서 해왔던 일들이다. 다른 부서의 장과 공무원들이 젠더감수성(gender sensitivity)을 갖고 있다는 전제가 충족된다면, 다른 부서에서 수행해도 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또는 앞으로 상당 기간 다른 부서들이 젠더관점(gender perspective)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없으며, 그것을 업무 추진에 있어 중요한 접근법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여성가족부 폐지는 시기상조이다. 무엇보다 현재 여성가족부가 젠더관점을 갖고 있느냐와 상관없이 여성가족부이기 때문에, 여성가족부가 다루는 업무에 대해 젠더관점을 요구할 수 있고, 젠더관점에서 정책을 변경할 수 있으므로 여성가족부가 필요하다. 특히 젠더폭력(gender-based violence)은 피해자 중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젠더관점이 더욱 요구되며, 젠더관점을 가진 여성가족부 장관의 존재가 중요하다. 

   그러나 김현숙 장관은 여성가족부가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 업무인 여성폭력을 젠더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여성가족부의 여성폭력 정책에서마저 ‘여성’을 삭제했다. 2022년 7월 15일 인하대학교 성폭력 사망 사건에 대해 “여성에 대한 폭력이 아니”고 “(남녀 문제가 아닌) 학생 안전의 문제”라며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남성 피해자 비율이 20%가 넘는다”고 발언했다(김혜리 2022).(주 : 이후 김현숙 장관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 출석해 인하대 성폭력 사건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정정하겠다”고 말했다(김은빈 2022).) 2022년 9월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일어난 여성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사건을) 여성과 남성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또한 잼버리 영내에서 발생한 성범죄 의혹에 대해 “경미한 것으로 보고 받았다”라며(김진방 2023) 젠더폭력에 무감각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김현숙 장관의 발언은 그가 윤석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성범죄 사건의 성별화된(gendered)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별화된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는 여성폭력에서 ‘여성’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관련 예산 또한 삭감하는 등 여성폭력 정책의 기반을 계속 축소하고 있다. 2022년 9월 6일, 25년 동안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해 오던 것을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으로 바꿔 공표했고, 제3차 양성평등기본계획에서는 ‘여성폭력’과 ‘젠더폭력’을 ‘폭력’으로 변경하는 등 여성가족부 정책에서마저 여성을 삭제했다. 

   또한 김현숙 장관은 2022년 6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찾아 “디지털 성범죄가 중대한 범죄라는 경각심을 높여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인식 개선과 예방교육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언급했으나 2023년 예산안에서 ‘디지털성범죄 인식 개선 홍보 예산’(2022년 배정액 1억 600만 원)을 전액 삭감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예결위원들이 전년만큼이라도 예산을 잡으라고 제안해서 복구되기는 했으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인력 충원, 대통령 공약인 지방자치단체 산하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설치 예산 추가 권고는 거절했다(김혜정 2023). 

   여성가족부의 예산 삭감은 2024년 예산안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가정폭력 상담소 예산을 27.5%(2023년 116억 3,700만 원 → 2024년 84억 4,000만 원) 삭감했고, 성매매 피해자 구조지원 예산은 절반가량 삭감했으며, 성폭력 피해자 의료비 지원 예산은 2023년 43억 4,100만 원에서 8억 500만 원 줄여 편성했다(오세진 2023). 또한 초·중·고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 인권 교육사업(2023년 예산 5억 5,600만 원)과 디지털성범죄 예방 교육 콘텐츠 제작(2023년 예산 9억 9,600만 원), 이주여성 인식 개선 및 폭력 피해 예방 홍보 사업(2023년 예산 7,600만 원) 예산은 2024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했다(오세진 2023). 

   여성가족부의 예산은 다양한 이유로 삭감되는 반면, 윤석열 정부의 예산은 다양한 이유로 증액되었다. 특히 2023년 한 해 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외교 명목으로 원래 배정받은 예산(249억 원)보다 많은 예비비(329억 원)를 신청해 총 578억 원을 사용했다(이상원 2023). 그리고 2024년 정부 예산 중 예비비를 4,000억 원 증액한 5조 원을 신청했다(이동우 2023). 윤석열 정부의 예비비는 여성가족부 2024년 예산인 1조 7,234억 원보다 2.9배 많다. 

   젠더폭력과 성 인권 교육, 성폭력 예방교육과 같은 예산을 삭감하는 여성가족부의 행태는 ‘권력형 성범죄, 디지털 성범죄,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범죄’를 5대 폭력으로 규정하고 국가의 피해자 보호?지원 시스템을 확립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와 배치되며, 사실상 윤석열 정부가 이 과제 실현에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무엇보다 ‘여성’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는 것은 여성의 존재와 경험을 삭제하는 것으로 성인 비장애인 이성애 남성을 인간의 기준이자 보편으로 설정하고 만들어진 성별화된 정책과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젠더폭력 외면하고 젠더갈등에만 집착
  
   젠더폭력에 대한 이해 부족에도 불구하고 김현숙 장관은 자신이 젠더갈등을 해결하겠다고 계속 주장해 왔다. 후보자 검증 당시에 “여가부는 새로운 환경에 맞게 대전환을 시도할 시점”이라며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젠더갈등을 풀어나가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부처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박윤수 2022). 2023년 3월 6일,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에 참석해서는 “젠더갈등을 푸는 것이 저출산 문제 해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김흥록 2023). 하지만 이후 젠더갈등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젠더갈등과 관련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여성가족부와 한국은행이 공동으로 수행한 ‘청년층 젠더갈등의 경제적 요인 분석’ 연구보고서(김종숙 외 2022) 정도로 보인다. 이 연구의 결과를 살펴보면(계승현 2023), 남성(0.39)보다는 여성(0.82), 30대(0.50)보다는 20대(0.68), 기혼자(0.46)보다는 미혼자(0.64), 유자녀자(0.46)보다는 무자녀자(0.62)의 젠더갈등 인식 수준이 높고, 여성 표본 중에서는 대학생 등 학업 상태(0.97)인 경우 그리고 남성 표본 중에서는 군 입대 대기 상태(0.55)인 경우에 젠더갈등 인식 수준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젠더갈등 인식과 자녀 출산 의향 간에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살핀 결과, 여성 집단에서만 젠더갈등 인식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 출산 의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여성의 젠더갈등 인식 수준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을 먼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계승현 2023). 

   그렇다면, “여성의 젠더갈등 인식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은 무엇일까? 연구보고서는 젠더갈등의 요인으로 경제적 자원의 희소성, 여성과 남성 간 경쟁구도, 경쟁압력과 같은 경제적 요인(경제적 불평등, 경쟁압력)이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 경제적 차원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즉 청년의 사회안전망 확충, 양질의 일자리 확대, 고용의 질 개선,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노동시장의 공정성 강화, 청년 집단 내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 지원과 청년의 경제적 역량 강화, 청년의 양성평등 역량 강화, 양성평등한 사회 기반 조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김종숙 외 2022). 

   이러한 분석과 정책 제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젠더갈등이라고 불리는 것은 현상이고 결과이지 본질이고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젠더갈등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를 말해주는 현상일 뿐이다. 젠더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은 경제적 차원의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에 있으며, 이의 해결을 연구보고서는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보고서가 발행된 이후 여성가족부에서는 연구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김현숙 장관에게 젠더갈등 해결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현숙 장관이 젠더갈등을 강조했던 것은 오히려 장관이 젠더갈등 프레임을 활용해 ‘우리(반페미니즘 세력 또는 남성)’와 ‘그들(페미니즘 세력 또는 여성)’을 나누며 서로에 대한 적대와 분노를 키우는 포퓰리즘 정치를 수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젠더갈등이라는 단어에만 집중한 결과, 윤석열 정부 시기 동안 한국 여성들은 숏컷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당하고, 교제폭력과 혐오범죄로 죽임을 당하고,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나는 위협과 위험 등을 당해도(유선희 2023) 정부에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윤석열 정부에서 한국 여성, 특히 페미니스트 지향을 가진 여성은 정부와 정치에 의해 버려진 시민이 되었다. 


3. 다음 단계는 페미니스트 정부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이후 정의당 내에서는 페미니즘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주 : 정의당 내 의견그룹인 ‘새로운 진보’는 “‘노동자와 시민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비호감 지적질 페미 정당’이라는 인식이 정의당의 현주소”라며 비례대표 총사퇴와 청년·여성 할당제 폐지 등 7대 혁신을 요구했다. 이들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과감한 사회경제적 개혁안을 만들어내는 데” 소홀한 채 “페미니즘과 생태주의”에만 집중했다고 비판했다(고한솔 2022).) 전혀 새롭지 않은 주장인 동시에 게으른 주장이기도 하다. 노동해방이 이뤄지면 성차별을 포함한 모든 차별과 불평등이 해소될 것이라는 낡은 마르크스주의에 갇혀 있거나 권리를 서로 뺏고 빼앗기는 파이(이익)로 보는 신자유주의자들과 같은 논리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정의당은 과연 페미니스트 정당일까. 2010년대 중·후반 시기 정의당에서 페미니스트들이 활동하던 때가 있었다. 이들은 젠더문제를 노동문제보다 더 우선시하거나 젠더문제와 노동문제를 대립하는 의제로 바라보지 않았다. 노동문제를 젠더관점에서 접근해 그동안 노동문제에서 배제됐던 노동자들, 여성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성소수자 등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들이 겪는 문제를 노동의제에 통합시키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정의당의 노동 정체성을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또는 젠더갈등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계속 주변화되었고, 결국 페미니스트들은 정의당을 떠났다.

   젠더문제가 해결된다고 노동문제나 장애인문제, 성소수자문제 등이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반대로 노동문제가 해결된다고 젠더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교차성 이론(intersectionality theory)과 같은 것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많은 학자와 활동가들이 차별과 불평등의 작용은 복합적이고 따라서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해왔다. 누구도 계급이나 계층, 성별, 연령, 종교, 인종·민족,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중 하나에 의해서만 차별과 불평등을 경험하지 않으며, 구조 또한 어느 하나의 축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성별을 중요한 분석 축으로 현상을 분석하는 페미니즘은 정의당의 현재와 미래에 도움을 줄지언정 이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없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정의당에 필요한 것은 페미니즘의 폐기가 아니라 더 많은 페미니즘이다. 

   한국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도 경험했고, ‘페미니스트’ 대통령도 경험했다. 이들이 ‘여성’이나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가졌는지와 상관 없이 이들이 확인해 준 사실은 대통령 한 명만으로 또는 상징적 구호만으로는 성차별적인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를 이끌어가는 모든 구성원이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과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존재하며, 이것이 민주주의로의 진전을 막는 중요한 요인인 것을 인식해야만 한국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과 불평등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수 있으며, 지금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 사회로 진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한 명의 여성 대통령이나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정부’이다. 

   정의당이 이대남과 이대녀 또는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구도로 설정된 젠더갈등 프레임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리고 2024년 총선만이 아니라 2026년 지선과 2027년 대선을 바라보면서 페미니스트 정부를 실현하기 위한 정의당의 로드맵을 구체화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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