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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정책과 서평31] 기후위기 대처를 하려면 어떤 경제 관점이 필요할까?

  • 입력 2021.09.26 22:59      조회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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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하던 대로 계속하자. 다만 더 효율적으로"
아마 기후위기를 인류가 닥친 현실로 인정하는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이 대체로 자신들의 경제학적 논리의 연장에서 그 대처방안을 제시한다면 위와 같은 패턴이 아닐까 싶다. 기술혁신이나 프로세스 혁신 등으로 자원과 에너지를 더 적게 쓰면서 똑같은 성능을 내도록 하자는 것 말이다. 

이 대목에서 가장 큰 쟁점은 바로 '지금까지 하던대로 하면서'라는 문구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이 있다.  “Business as Usual = Death” 위 문장은 “지금껏 하던대로 하면 죽음뿐이다”라고 해석될 텐데,  2년전 영국에서 멸종저항운동 멤버들이 기차위에 올라가 기차 운행을 막는캠페인하면서 내걸었던 캐치 프레이즈란다.  

독일의 정치경제학자 마야 괴펠(Maja Gopel)은 이렇게 짚는다. “우리는 지금껏 해오던대로 계속 해오는 것이 오래가지 않아 무너지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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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 접하는 학자지만, 책소개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상당히 이름이 있는 정치경제학자 마야 괴펠이 2020년에 지은 대중서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이 번역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 대처하는 거의 모든 경제학적 이슈들 - 인구와 지구, 자연과 경제, 인간의 이기심, 성장, 기술진보의 의미, 소비, 시장과 국가, 공정한 분배 - 에 대해서, 논리전개라기 보다는 시민들을 설득하는 에세이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의 학문적 기반은 생태경제학이다. 이 책만을 봐서는 특정 경향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 듯 하고, 팀잭슨/케이트 레이워스/허먼 데일리/제이슨 히켈같은 이들의 견해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는  허먼 데일리가 제안했던 개념, 세상이 과거의 '텅빈 세상'에서,  '꽉찬 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경제와 세상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모든 관점과 정책을 다 바꾸어야 한다는 원칙아래에서 이 책을 서술해나간다(나도 강연을 하면 이 대목을 꼭 넣는데 공감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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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많은 얘기를 짧게짧게 하기 때문에 다 소개할 수는 없고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단편들을 소개해보면, 우선 경제학자 알프레드 칸(Alfred Kahn)이 1966년에 쓴  논문 "소소한 결정들의 폭거(The Tyranny of Small Decisions)"을 소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논문 원문을 찾기가 어려워 포기했다 ㅠ)

대략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미국 뉴욕주 안의 작은 도시 이타가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철도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했다. 하지만 이후 점점 자가용 이용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사람들은 폭설이 내리거나 도로 사정이 나쁠때만 열차를 이용했다. 결국 열차는 점점 운행하기에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 되고 그래도 1950년대 말에 운행이 중단 되었다.

여기에서 알프레드 칸이 유도한 결론은 이랬다. 철도 대신에 승용차나 버스, 혹은 비행기를 이용했던 시민들은 각자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행동했다. 그러나 이들의 그런 행동이 전체로 모아지면서 누구도 적극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던 '철도운행 중단'이라는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논문 제목이  '소소한 결정들이 낳은 폭거'가 된 배경일 것이다.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이 전체로서도 (의도치 않게)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신화를 반박한  존 내쉬의 이야기와 닿아있다. 그래서 보기에 따라서는 아주 참신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사람들의 행동과 환경에 대해 적용된 생생한 사례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제는 거꾸로 해야 할 차례가 아닐까? 소소한 결정들이 모여서 서로 시너지를 만들어내고(즉 협력하고) 그래서 결국 그런 결정들이 폭거나 아니라 '전환'을 만들어내는 것 말이다. 물론 저자는 이런 얘기를 해주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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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기후위기를 막기위해 시장과 국가의 역할을 얘기하면서, 매우 단호한 어조로 '시장은 규제를 받아야 하는 공간'이라고 못박는다.

"시장은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장은 규제를 받아야 하는 공간입니다" "법이 없었다면 노예제도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개인의 이득과 편리만 중시한다면 노예제도만큼 호사스런  사치가 또 있을까요?  법이 있기에 우리는 하루 여덟시간 근무를 하고, 일하지 않고 쉴 수 있는 주말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당연할 것이다. 기후위기나 생태문제를 일으킨 원인중의 하나는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한 기업들이 주 무대로 활용하는 시장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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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한 "정의에 충실할 때에만 우리는 생태문제가 사회문제와 충돌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두 문제는 사실 하나의 문제이며, 서로 맞물릴 때에만 풀립니다"고 말하면서, 이제 정말로 성장보다 분배문제가 경제의 중심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왜 생태주의자가 강한 분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더 이상 무한 팽창하지 못하는 파이를,  어떻게 모두에게 한정된 자원과 생산물을 공정하게 잘  나눌것인지를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가장 과감한 기후운동가는 가장 과감한 분배주의자이어야 한다는 암시를 준다.

매우 동의한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상하게도, 물질적으로 무한 팽창할 수 없으니, 예전만큼 소비를 안된다고 퉁쳐서 말하기만 하지, 한정된 자원으로 모두 행복하게 살기위해 어떻게 파격적으로 분배를 개선해서 충분히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살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 경우를 본다.

자칫하면, 한정된 자원에서 지금까지 유족하게 살던 이들은 조금 검소하게 살고, 지금까지 하루 벌어 하루먹던 이들도 환경 생각해서 참으며 살라는 말로 오해할 수도 있다. 불평등을 눈감고 기후운동 얘기만 하면 말이다. 위험한 사고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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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저자는 탈성장론자들의 의견을 포괄적으로 수용함에도 불구하고, 탄소세를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잡이로 배출하는 불공정한 행위를 제한하며, 중장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가격에 '탄소세'를 충분히 반영하는 일은 국가가 맡아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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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길지도 않으면서 궁금해 하는 많은 이슈들을 꽤 선명한 방식으로 정리해 나간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법을 알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꼭 읽기를 권한다. 아울러 저자 본인도 뒷부분에  팀잭슨의 <성장없는 번영>과,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학>을 읽어보라고 권하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최근 간간히 나오는 독일어 번역 단행본들 중 좋은 글들이 꽤 된다. 앞으로도 영어권뿐만 아니라 독일,프랑스, 스페인어권, 그리고 중국어 책들도 많이 번역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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