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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정의로운 경제] 미국의 아마존 제2본사 유치전쟁

대기업 선택 받으려는 지방도시들의 무한유치 경쟁과 굴종
  • 입력 2021.12.22 10:38      조회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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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업 유치 무한경쟁이 지방정부의 살 길인가?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균형발전’이 중요한 정책 화두가 될 조짐이다. 지난 2019년부터 전국 면적의 고작 12퍼센트도 미치지 않는 수도권에서 처음으로 인구의 절반이 사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모이는 현상은 더욱 심해서 이미 55퍼센트 이상의 청년들이 수도권을 생활거점으로 살고 있는 중이다.

반대로 비수도권의 곳곳에서는 ‘지방소멸’이라는 위협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있다. 그나마 적은 인구가 더 빠져나가고 있는 중소도시는 물론이고, 부산이나 대구, 광주와 같은 지역의 대도시들마저 인구와 산업 유출 대책에 고심하고 있는 중이다. 비수도권 지역의 활성화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무엇보다 ‘일자리 문제’다. 지역에서 괜찮은 일자리가 있어야 청년들이 모이고 경제권과 생활 문화권이 형성될 수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 탓이다.

지역에서 일자리 창출 대책을 찾다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기업 유치 전쟁’은 각 지역이 균형발전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의례처럼 보인다. 세제 혜택은 물론 노동권조차 유보하더라도 유망하고 규모 있는 사기업을 자신들의 지역에 유치하려는 노력들이 해외는 물론 많은 한국 지방정부와 도시들에서 치열하다. 정치인들도 선거 때마다 다양한 특혜를 유인책으로 내걸면서 기업유치 공약들을 선보인다.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치열했던 기업유치 경쟁은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였다. 경북 구미시 등이 사활을 걸고 유치경쟁을 했지만, 결국 수도권인 용인으로 결정이 나면서 수도권 집중화를 가속화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도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지방정부들이 기업유치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온갖 세금을 깎아주고 파격적인 부지 제공을 해주는 등 이른바 ‘바닥을 향한 경쟁’에 출혈적으로 매달린다는 점이다. 그 결과 기업을 유치한 지역이나 그렇지 않은 지역이나 모두 실제로 기대한 고용효과는 대단치 않은 반면, 유치경쟁의 후유증으로 각종 새로운 문제들이 드러나곤 한다.

미국 지방도시들의 아마존 제2본사 유치 경쟁

글로벌 차원에서 지방정부들이 출혈적으로 사기업 유치경쟁을 해서 심각하게 물의를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마존이다. 지난 2017년부터 시작된 아마존 제2본사 유치경쟁은 당초 뉴욕 롱아일랜드와 버지니아 두 곳 사이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뉴욕주는 중간에 무산되었고, “일자리를 하나 만들 때마다 아마존에 2만2,000달러의 현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버지니아에서만 현재 아마존의 제2본사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이 과정을 비교적 생생하게 기록한 저널리스트 브래드 스톤의 저서 <아마존 언바운드>를 통해서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자. 2017년경 시애틀에 본사를 둔 아마존은 급격히 팽창하는 아마존의 인원을 수용하는 데 도시가 한계에 봉착하자 제2본사 조성계획을 추진했었다. 보통 지방정부들이 자기 지역에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은 베일에 가려진 치열한 사전협상등의 방식으로 진행한다.

테슬라가 ‘기가팩토리’라는 배터리 공장을 네바다주에 건설하는 조건으로 지방정부로부터 13억 달러 상당의 세금혜택을 받은 것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였다. 아마존도 당연히 부지 선정에서 중요한 조건의 하나는 지방정부로부터 따내는 세제혜택이었다. 아마존은 “테슬라나 보잉, 대만의 전자기기 제조업체인 폭스콘이 주정부 및 지방정부에서 얻어낸 막대한 세제 혜택을 연구”했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지방정부를 경쟁시킨 아마존

그런데 아마존은 각 지방정부와 비공개 협상을 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한다. 즉 제2본사를 조성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표를 한 후, 모든 지방도시들에게 공개경쟁을 시킨 것이다. 흔히 공공기관이 공공프로젝트를 위해 제안요청서를 사기업들에게 발송하면, 이를 수주하기 위해 사기업들이 줄을 서서 온갖 화려한 아이디어를 담은 제안서를 제출한다.

그런데 이 경우는 정반대였다. 아마존이라는 사기업이 제안요청서를 발송하고, 미국 전역의 수백 개 공공기관인 도시들이 정성 들여 제안서를 작성해서 아마존에 제출하는 희한한 광경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몇 년 전 아마존 제2본사를 두고 미국 도시들이 경쟁을 했다는 외신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심지어 아마존은 제안요청서를 발송하면서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대도시 권역을 선호하며, 강력한 인재풀이 존재하고 교통 접근성이 좋아 비즈니스를 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춘 곳”이어야 한다고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아주 대놓고 말했다. 또한 아마존은 도시들이 자신에게 세금을 얼마나 감면해줄지를 중요하게 고려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특별조례라도 만들어서 자신들을 위해 조건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단다.

이렇게 해서 미국 전역에서 수백 개의 공적인 지방정부가 일개 사기업의 환심을 사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들어간다. 2017년 10월에 제안서를 마감한다고 했을 때 무려 238개의 제안서가 아마존으로 제출되었다. “도시의 관계자들은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어색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향해 쭈뼛거리며 다가와서는 아마존을 향해 고분고분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그 이후에 더 가관인 장면들이 펼쳐졌다. 아틀랜타 외곽의 한 도시는 제안서에서 아예 마을 이름을 아마존으로 바꾸겠다고 제안했다. 뉴욕주는 아마존을 유혹하기 위해 세액공제와 세금 환급으로 무려 25억 달러를 제안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이 모습을 본 로스엔젤레스타임즈 컬럼니스트는 이 과정이 “오만하고 철없으며 상당히 이기적”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스콧 갤러웨이 뉴욕대 교수는 제2본사 선정과정이 “제프 베조스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땅을 두고 벌이는 헝거게임이자, 이미 운명이 결정된 미인대회”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노조 설립의 위험성이 있는 지역에는 가지 않는 기업

결국 2018년 11월 아마존은 제2본사 소재지로 뉴욕주와 버지니아 두 곳을 최종적으로 선정한다. 수백 개의 지방도시들을 경쟁에 끌어들였지만 결국 우리나라 수도권과 비견되는 거대 중심권인 뉴욕과 워싱턴 DC인근 버지니아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의 기대대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다. 마침 뉴욕시에서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오카시오 코르테스와 풀뿌리 시민단체들은 세액공제와 젠트리피케이션 우려 등을 배경으로 아마존 제2본사 반대운동을 거세게 벌였다.

아마존이 수만개의 일자리를 뉴욕 주민에게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홍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주택과 교통망이 이미 폭발하기 직전이라고 생각했으며, 그것은 점점 더 커지는 빈부 격차에 몹시 화가 난 서민들이 멀리 떨어진 독점기업과 세계 최고 부자의 망령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이 되었다.

결국 아마존은 뉴욕주의 롱아일랜드에서 추진하려던 제2부지를 취소해야 했다. 여기에는 뉴욕이 노동조합의 전통이 강해서 노조 설립을 막기 어렵다는 요인도 감안되었다고 한다. 저널리스트 브래드 스톤은 아마존이 “노조 결정이나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언제나 해당 지역에서의 발전계획을 철회하거나 시설을 일시적으로 폐쇄하거나, 사업예정부지에서 완전히 발길을 끊어버렸다”고 확인한다.

아마존 유치경쟁에서 배울 교훈은 무엇일까?

지방정부나 도시들이 각자 세금 특혜와 노동조건 완화 등의 조건을 내걸고 진행되는 무한 유치경쟁은 큰 그림으로 볼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정부의 적절한 균형발전 정책과 이를 위한 규제가 바탕이 되는 가운데, 각 지역의 교육과 산업생태계 상황이 좋아지고 촘촘해져서, 개별 기업들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기업은 들어오거나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내년 대선에서 속속 공개될 지역균형발전 공약이나 지방선거에서 각 지역 단체장과 의원들이 선보일 지역공약에서는 아마존 사례와 같은 모습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레디앙'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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