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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이슈와 서평2] 주민참여, 어쩌면 포퓰리즘에 대항할 유일한 항생제

  • 입력 2022.01.23 09:24      조회 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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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여의도 정치와 기후운동에 꼭 필요하지만 잘 나타나지 않는 주제가 있다. '지역주민참여'다.
 
여의도 정치가 민주주의 확장을 말할 땐 주로  주민발안, 주민소환, 국민투표같은 전형적인 직접민주주의 도입을 말하거나, 아니면 다당제 정당정치 활성화로 더 다양한 목소리의 대변을 말한다.  지역에서의 주민참여는 그저 지방정부 일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정당의 발전을 말할때에도 노동조합이나 기업집단 등 이해관계 집단과의 관계만을 주로 말하지 지역에서 주민참여를 조직해냄으로서 정당의 지역적 뿌리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고민과 실천이 매우 부족하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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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각도로 기후운동에서도 필수적인데 잘 다뤄지지 않는 주제가 '지역주민 참여'다.  물론 정의로운 전환 얘기는 이제 정부문서에서도 필수적일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그 주제는 산업전환으로 피해를 볼 수있는 노동자와 지역주민 얘기다. 충분한 보상과 일자리 전환, 사회안전망 같은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지역에서 태양광 사업이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좌초되는 이유를 보면, 거의 다 '주민 인식부족'이라고 매도당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주민참여부족'이다. 주민들에게 '보상이 적어서'가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해서 본인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의로운 전환이 주로 '이미 조직된 노동조합'에서 발원해서 그런지, '참여'에 대한 풍부한 스토리들이 없다.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 키워드는 '보상'이 아니라 '참여'라고 나는 생각한다. 

해상 풍력을 설치할 계획을 정부가 세우면, '어민피해 보상'을 얼마를 해줄것인가가 아니라, '어민과 지역주민들이 참여해서 어디에 어떻게 해상풍력을 설치하는 것이 적정하며, 그 운영과 소유, 이익은 어떻게 하는 것이 타당하며, 피해를 입을 경우 어떻게 보상하는 것이 적정한가"를 그들이 결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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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와 독일의 세명 저자가 함께 썼지만, 대단히 짧은 책 <민주주의 재건>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소통하지 않는 메아리방'에 갇혀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여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는다.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석탄광산 지대나 러스트 밸트 등 지역 산업의 위기돌파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 두가지는 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러스트 밸트가 우익 포퓰리즘의 거점이 되고 이것이 폐쇄된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니 말이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민주주의 퇴보가 지역공동체의 점진적 붕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래 개인화가 지역공동체를 붕괴시켜왔고, 다른 한편으로 기성정당이 유권자로부터 멀어져가면서 "유권자가 자기 요구사항과 관심사"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효과적으로 정치에 반영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분노로 조직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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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요지는 지역에서 산업전환과 같은 이슈를 주민참여를 통해 해결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을 지방의회나 국회같은 더 큰 대의기관과 연결시켜내는 것이 지금 민주주의 확장이고, 한나 아렌트가 말한 '정치영역의 확장'이라는 것이다.  이같은 방식의 확장이 없으면 우리의 대의민주주의는 중대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사람들이 선거때마다 정치적 결정권자들에게 지배권을 이양하는 것은 더 이상 만족할 만한 것이 못된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대화에 합류하는 것이지 단순히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 입장에서 새로운 형태의 참여란 대안을 가지고 토론하고 정치적 행동을 할 영역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그 어느때보다 시민들은 준 자치도시, 지역공동체, 지역과 관련된 것이든 공공의 영역을 위한 여러 계획과 관련된 것이든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데 관여하고자 한다. 시민들은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참여방식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 성공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직접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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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참여와 토론 하니까 추상적으로 여기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이미 상당히 세련된 공론장 조직방식이 무수히 나와 있다. 시민의회, 타운홀 미팅, 시민위원회, 프래닝 셀, 합의회의 등등.  이 책은 아일랜드 시민의회가 어떻게 2015년 동성결혼이라는 대단히 복잡한 갈등이 내재된 주제를 합법화로 이끄는데 기여했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이 책은 '미래위원회'를 제안하는데 흥미있다. 우리는 연금이나 기후위기 등을 주요하게 다루는 '미래세대위원회'같은 것을 설치하면 좋겠다. 

한가지 덧붙이면, 지역공동체 주민참여 사업을 조직한 한 재단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집약하는데, 주민참여를 실제 조직해본 사람들이 늘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머릿속에 넣고 있던 생각을 몽땅 버렸다. 그러고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떤 변화를 보고 싶은지. 어떻게 변화를 시작할 건지. ... 우리가 알게 된 것은 공동체 재활성화가 지속되려면 주민들이 '그들 자신의 변화를 소유'해야 하고, 그 변화 계획과 수행, 궁극적으로는 그 자산도 주민들이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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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는 민심을 알아보려는 행위가 정말 기껏해야 여론조사 읽기다. 여의도 정치에서 그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가장 끔찍하게 내가 목격했던 장면이다. 조금 더 해봐야 포커스그룹 인터뷰다. 그러나 주민과 호흡하는 것은 이런 '기법'들이 아니다. 일상의 현장에서 조직하는 것이다. 

이 책은 너무 짧고, 기대보다 덜 생생하고, 초점이 분명하지 않은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가 워낙 중요하니,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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