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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불평등 해소를 위한 진보적 대안 모색과 사회화 과제
- 입력 2022.09.14 15:17 조회 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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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한 정의정책연구소 책임연구위원
- #불평등#경제정책#거시경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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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한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게임이론과 행위자 기반 모형을 통해 노사관계의 변동을 분석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경제민주주의와 대안적 기업지배 모델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1. 서문
2012년 ‘노동자, 농민, 일하는 서민의 삶을 책임지는 진보정당’을 표방하며 창당한 정의당이 이제 10년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플랫폼이 상식 용어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사회 곳곳이 얼마나 변했는지 체감할 수 있다. 정의당에 대한 사회의 요구 역시 변했을 것이다.
개인은 PC와 스마트폰을 통해 거대한 네트워크 플랫폼 속에서 정보를 소비하고 또 정보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복잡해진 네트워크 체계 속에서 노동의 형태, 보다 직접적으로는 고용계약의 형태와 기업의 형태 역시 변하고 있다.
기업의 독점과 집중은 심해지고 소수의 지분으로 다수의 기업을 지배하는 재벌체제는 공고해졌다. 현대 기업의 일반적 형태인 주식회사의 발전과정에서 기업의 형태는 한 개인의 사적소유(Private)가 아니라 다수에 의한 공공소유(Public)로 바뀌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소수의 총수 일가가 지배하고 있다.
플랫폼 기업의 등장은 가일층의 변화를 가져왔다. 플랫폼 경제에서 기업의 공적 측면과 책임성이 더욱 커지면서 주주 자본주의는 점점 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변화를 요구받고 있지만, 플랫폼 기업은 노동자를 포함해 정보를 생산하는 다수의 시민들을 오히려 감시하고 통제하면서 독점력을 확대하고 있다.
기업은 인수와 합병, 계열 분리를 통해 사회적 부를 집중시키고, 비용을 절감했다. 4차산업이라는 허울 속에 변종 형태의 불안정한 노동자를 양산하면서 노동비용을 줄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했다. 플랫폼 기업은 여전히 노동자를 통제하고 독립계약자(노동자)와의 분배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며, 소유와 지배권의 분리를 매개로 부의 축적을 가속화하고 있으므로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이다.
코로나19로 우리사회의 불평등한 민낯이 드러났고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되었다. 은행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카카오, 네이버 등 플랫폼 기업은 재벌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의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의 고통 속에서도 석유화학을 비롯한 대기업들은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
봉쇄조치로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사라졌으니, 최소 경제활동 영위를 위해 정부는 충분한 재정지출을 해야 했다. 하지만 재정건전성 논리에 밀려 정부가 사실상 부채의 책임을 외면하자, 가계가 대신 부채를 떠안아야 했다. 그 규모는 2019년 말 1,601조 원에서 2022년 1분기 1,859조 원으로 최근 2년 새 258조 원 증가했다. 올해 9월에 금융지원조치가 종료되면 서민 가계와 저소득 자영업자에게 미치는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납세, 교육, 노동 등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해 국민들은 충실히 의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임금 소득, 자산 소득, 고용 신분 격차의 확대였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속에 국민들은 절망과 분노를 느끼며, 불안정한 고용 속에서 노동자들은 복합적인 불안을 느끼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는 지금껏 모든 위기와 재난이 그래왔듯이 부와 권력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이 글은 먼저, 그러한 불평등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간략하게 구분해서 소개한다. 그중에서 최근 경제의 변화가 정의당에 요구하는 정책은 무엇인지, 불평등을 해결할 근본적 정책은 무엇인지 모색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 단원에서 다양한 불평등 해소 정책들을 소개한다.
2. 불평등 해소 정책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저임금의 불안정 노동자가 증가하고, 임금 불평등과 젠더 불평등이 심화되었으며, 청년 노동시장에서 그 정도는 더욱 심했다.
(2) 기업의 확대와 독점화 과정에서 노조조직률은 감소했고, 경제의 플랫폼화 속에서 고용관계는 은폐되어 노동권이 사라졌다. 노동자의 힘의 감소는 임금 소득의 감소와 유효소비력의 감소로 이어졌고, 저성장의 요인이 되었다.
(3) 경제적 약자의 기본적 사회안정망이 취약하고, 조세체계가 자산·소득의 불평등 해결에 무기력한 상태에서 부는 세습되고, 주거와 교육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졌으며, 노동소득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세습사회가 고착화되었다.
(4) 부와 자원의 사용에 대한 의사결정권이 노동자를 배제한 채 기업 특히 재벌기업에 집중되었고, 이러한 경제력 집중은 정치권력의 집중으로 이어져 민주주의가 훼손되었다.
(5) 경제적 부와 권력의 불평등은 경제적 성장을 가로막는 제한이 되었고, 기후위기를 방관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삶과 생존의 불평등으로 이어졌다.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경제의 성장을 제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더 이상 진보적 지식인들만의 주장이 아니다. 최근에 미국의 주류경제학들조차 불평등 해소 정책이 경제학이 다뤄야 할 제1과제여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개입을 제거하거나 경제 성장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는 생각에 거의 모두가 동의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생각이 불과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한 것이다(Blanchard and Rodrik, 2021).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정책들이 제시되었다. 이를 몇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면 다소간 체계적으로 정책을 분류할 수 있다. 정책들은 두 가지 기준을 통해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경제의 어느 단계에 개입하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해결하려고 하는 “소득분배의 대상”이다.
먼저, “경제의 어느 단계에 개입하느냐”에 따라 구분하면, 그 정책들은 세 가지 차원에 따라 달라진다. <표-1>과 같이 생산 이전, 생산 단계, 생산 이후라는 열의 제목으로 표시되어 있다.
<표-1> 불평등 해소 정책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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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단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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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이전 |
생산 단계 |
생산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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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적용 계층↓상위 |
노동자 |
(하층) |
• 일하는 시민을 위한 교육훈련 |
• 최저임금 |
• 근로장려금(EITC) |
(중산층) |
• 공교육 공공지출 |
• "좋은 일자리" 정책 |
• 사회안전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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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 사용자 |
(상층) |
• 상속세 |
• 금융규제 |
• 부유세 |
출처: Blanchard & Rodrik (2021)의 표와 정의당 대선 공약자료를 토대로 필자가 재구성
일부 정책은 생산 이전 단계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 해당하는 정책들은 교육, 보건, 금융 접근성과 같이 사람들의 노동력 형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생산 이후 단계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도 있다. 누진적 소득세, 부유세, 마이너스 소득세(근로장려금, 전국민소득보장), 근로장려금 등의 소득지원 정책도 이 범주에 속한다.
어떤 정책은 생산 단계에서 직접 개입한다. 노사관계와 기업지배구조에 영향을 줌으로써 말이다. 이러한 정책은 생산물의 분배에 대한 이견을 가진 사람들(노동자, 주주, 관리자, 공급자)의 협상력에 영향을 미친다. 그 정책의 예로는 최저임금, 일자리보장제, 비정규직과 특수고용·플랫폼 종사자 등에게 적용되는 ‘일하는 시민의 법’, 노동자기업소유제도, 사용자와 재벌기업에 적용되는 기업규제 혹은 독점규제 방안 등이 있다.
불평등 해소 정책을 구분하는 또 다른 틀은 그들이 해결하려고 하는 “소득분배 정책의 대상”이다. 여기에서 선택할 사항은 “어떤 계층의 불평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나?” 혹은 “하층과 상층을 줄이는 방안은 무엇인가?”이다.
하층에 있는 실업자, 비정규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이들을 줄이기 위한 빈곤 감소 정책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 예로는 최저임금, 일자리 보장제, 시민평생소득이 있다. 시민평생소득은 정의당이 지난 대선에서 제안한 공약으로 범주형 기본소득, 시민최저소득(마이너스 소득세), 전국민소득보장을 포괄하는 정책이다.(주: http://www.justice-platform.org/home/post_view.php?nd=272) 상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에는 법인세, 부유세, 사회보장세 등의 과세나 독점 규제 등이 해당한다.
다음으로는 중간계층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이 있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성과 공유가 실현되는 “좋은 일자리” 정책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노동자의 교섭력과 발언권을 높이기 위한 노동법 개정,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기업을 소유함으로써 상법상의 발언권을 취득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방안이 있다.
두 차원을 결합하면 <표-1>과 같은 ‘불평등 해소 정책 분류표’가 생성된다. 불평등을 보다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면 위 표에서 어느 칸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 경제학은 여기서 약간의 지침을 제공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택에 있어서 가치, 규범적 판단, 철학, 이념이 결합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와 정치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견해와도 결합하여야 한다. 다른 정당과 차별화되는 정의당의 시그니처 불평등 해소 방안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책 수단에 대한 평가, 불평등 심화의 내용과 경제 구조상의 원인, 불평등 해소의 목표 수준, 그리고 정의당이 그리는 사회의 모습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정책은 우선, 경제적 취약층을 대상으로 신속하고 과감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중산층의 붕괴와 저소득층의 확대로 인해 사회안전망, 최저임금, 일자리보장제, 일하는 모든 시민을 위한 노동법 등 경제적 하층을 지원하는 정책을 우선적으로 채택해야 한다. 부유층에 대한 누진적 조세와 확장적 재정정책을 사용할 수 있다. 복지국가 모델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와 함께 궁극적으로는 취약층이 발생하지 않고 대다수가 중산층이 될 수 있는 경제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가장 바람직한 정책은 행위 주체의 자발적 의지가 생산 과정에 작용함으로써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해소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사회의 부가 생산되는 곳이면서, 경제적 불평등이 1차적으로 발생하는 곳인 생산관계에서도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른바 노동중심성에 기반한 불평등 해소정책이라고 한다면, 기업 내 생산관계 및 플랫폼 계약관계를 변화시켜 불평등이 해소되는 방식으로 생산조직이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 미국 버니 샌더스와 오카시오 코르테스는 노동자소유기업과 노동자협동조합을 확대하기 위한 공약을 제시했는데, 이는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정책이라고 평가된다.(주: https://newsocialist.org.uk/labours-alternative-models-of-ownership-report/)
3. 경제정책의 한계와 거시경제학계의 주목할만한 내용 : 노동자 권력의 약화
불평등과 저성장 문제 해결에 있어 주류경제학이 그동안 제시해 온 정책 수단들은 이제 그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인식된 시기는 2007~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였다. 경기 침체와 싸우기 위해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인하하고, 국채 매입을 통해 시장에 화폐를 공급하는 이른바 양적완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엄청난 규모의 특별한 통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위기로부터의 회복은 느리고 길었다. GDP 성장은 약했다. 인플레와 실업률은 이번에는 놀라울 정도로 낮았다. 중앙은행들은 저금리와 양적완화가 주택가격과 주식가격을 인상함으로써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새로운 진단과 처방이 필요해졌다.
최근 경제성장의 약세가 경제활동 성과의 불평등한 분배와 구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진단이 등장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처방으로 저소득층의 임금이 오를 수 있도록 실업률을 충분히 떨어뜨린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경기 부양책은 분명히 이롭게 작용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제로 금리 시대에 맞이한 코로나19 상황에서 통화는 공급하되 기존의 양적완화와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이른바 ‘질적완화’라고 하는데, 시장이라는 불특정 영역이 아니라 경제 주체의 수요와 요구에 맞춰 통화를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이에따라 확대재정 정책을 뒤받쳐주는 경제이론이 필요했고 이론의 정합성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대증적 요법으로써 현대통화이론은 주목을 받았다.
기나긴 코로나19 터널을 막 벗어나려는 지금 우리는 3고(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고통을 겪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플레이션 시기의 임금인상은 경제 파탄의 원흉이라는 일종의 매카시즘을 불러온다. 물론 임금 몫과 인플레이션은 주요한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최근 리베이로(Rafael Ribeiro) 등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임금 몫이 더 크게 늘어나도 인플레이션이 낮아질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정부나 기업 측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결과다. 이론적 설명 외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133개국을 대상으로 한 계량분석을 통해서도 이러한 결과를 입증하고 있다. 임금 몫이 1% 증가하면 1년의 시차를 두고 인플레이션율은 1.28% 하락한다는 것이다. 임금 몫의 증가가 기업으로 하여금 생산성을 높이도록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Ribeiro et. al., 2021).
코로나19라는 경제외적 변수가 발생하기 전,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는 오랜 기간 노동소득점유율이 하락하고 임금상승이 둔화하는 반면 기업의 가치와 이윤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임금상승이 둔화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재무부장관을 지낸 경제학자인 로렌스 서머스와 스탠스베리는 대규모 양적완화에도 임금과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은, 노조조직률의 감소에 따른 노동자의 힘의 감소가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노동자 힘의 약화 가설'이라고 부르는 이 설명이 최근 거시경제 논쟁에서 지나치게 저평가되었다고 말한다(Stansbury & Summers 2020).
경제의 주요한 구조적 변화로서 노동자 힘의 약화에 초점을 둔 것은 진보적 제도주의자들의 오랜 연구 역사와도 맥을 같이한다(Freeman and Medoff 1984, Levy and Temin 2007, Rosenfeld 2014).
노동자 힘이 약화한 원인으로는 직접적으로 노동법과 그 집행력의 약화와 같은 제도적 요인과 노동 수요의 탄력성을 증가시킨 수입 경쟁과 규제 완화와 같은 경제적 요인들이 있다.
한편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주회사를 통한 기업집중과 플랫폼 기업에서 나타나는 기업지배구조 상의 문제도 있다. 노동권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의 확대, 노동자 통제, 비핵심 부문의 아웃소싱 등에 따른 노동시장의 다중화, 그리고 사업장의 분열이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무자비한 기업 경영 전술에 대한 실질적인 대항력을 기업과 산업에서 노동자들이 가지지 못 한 때문이다.
기업지배구조의 개혁을 통해 노동자 힘을 약화시키는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업구조 상의 변화가 무엇인지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4. 노동자 힘을 약화시키는 재벌기업 확대와 플랫폼 기업의 출현
기업 간 경쟁이 증가하면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기 시작하자 기업이 집중되고 규모가 커졌다. 더이상 한 개인이 기업을 전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게 되었다. 주식회사는 규모를 대규모로 확대할 수 있는 기업형태였다. 주식을 통해 기업을 분할하여 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다수가 공동으로 기업을 지배(혹은 점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소유(ownership)와 지배(control right)의 분리라는 주식회사의 주요한 특징을 편법적으로 이용하면 소수가 다수를 대신해 기업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주식회사는 이 특징을 기반으로 두 가치 측면에서 변화해 왔다.
하나는, 자본가가 개별 기업의 소유지분은 줄이면서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여러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예컨대 상호출자나 지주회사 체계를 통해 여러 회사의 지배권을 갖는 방식으로 재벌기업이 형성되었다. 2018년 공시대상 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을 보면 총수가 있는 52개 기업집단 중 총수 일가의 지분율은 4%에 불과했지만, 계열회사 출자지분(50.9%)을 중심으로 비영리법인, 임원, 자기주식 등으로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재벌 그룹 내 핵심 비핵심 부문 간 수익성에 격차가 생겼고, 임금 분화가 이뤄졌으며, 인수합병 및 분할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확대되고, 노동자의 힘은 더욱 약화되었다.
다른 하나는, 플랫폼 기업의 등장이다. 고용계약은 연간 혹은 수년간의 노동에 대한 장기계약이다. 장기계약에 드는 비용은 같은 기간 동안 매번 체결되는 계약 비용의 합보다 저렴하므로 전통적으로 고용계약은 장기계약의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 운영과 개발을 제외한 사업 부문에서] 노동자 사이의 장기적 고용계약을 매 시점의 계약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 효과는 엄청났다. 플랫폼 기업의 계약에서 기존의 노동자는 독립자영업자로 취급되고 고용관계는 은폐된다. 과거에는 기업이 거래비용을 감소시키기 위해 노동자와의 거래를 장기계약으로 맺었지만(Coase 1937), 이제는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통해 매 순간 계약이 이뤄지도록 전환함으로써 기업의 사이즈를 줄이면서도 거래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게 되었다(Moazed & Johnson 2016). 플랫폼 기업은 독립자영업자(노동자)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플랫폼을 발전시켜 여전히 이들이 창출한 가치를 상시적으로 취득하며(주보프 2014), 거래비용 감소 효과를 배타적으로 취득한다.
독립된 계약자들로 단절화된 플랫폼 노동자들의 단체 교섭력은 붕괴되어 임금의 저하로 이어졌고, 이는 사회의 유효수요 감소로 나타났으며 그 결과 성장이 정체되었다. 임금과 복지에 대한 책임을 기업이 회피하자 정부가 그 부족을 대신 채워야 했는데, 정부가 이를 주저하면서 가계가 그 부족분을 부채의 확대로 메웠다. 가계부채의 급증과 사회적 안전망의 취약성은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근본적인 배경이다.
최근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이 두 가지 변화를 동시에 달성했다. 플랫폼을 통한 거래비용 감소 효과를 독차지하고, 사회 구성원이 생산하고 있는 수많은 데이터에 대한 배타적 소유를 기반으로 독점기업으로 발전했으며, 문어발식 인수합병을 통해 재벌기업으로 성장했다. 그것은 지주회사라는 제도로 인해 가능했다. 지주회사는, 작은 소유 지분으로 다수의 기업을 지배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용인하는 제도라는 측면에서, 불법 행위로 취급된 상호출자나 순환출자와 다름이 없다. 재벌기업의 비대화는 독점을 낳고, 원-하청 기업 간 불공정 거래를 양산해 시장의 생명인 경쟁이 훼손되었다.
플랫폼 기업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적 변화는 ‘노동의 변화’가 아니라 ‘고용계약의 변화’다. 생산성이 증가하고 소비하는 상품이 변하면, 그에 따라 노동의 구체적 내용과 기술적 형태도 달라지게 된다. 그 자체로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독립계약자들의 수익과 임금을 낮추는 식의 불공정 계약이 만연해졌다는 점에 있다.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의 거래는 형태는 변했지만, 그 내용은 본질적으로 여전히 자본주의적이다. 상시적인 노동을 수행하는 독립계약자들을 알고리즘을 통해 낮은 비용으로 통제하고 그들과의 분배 몫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5. 노동중심성을 위한 제언
노동자 힘이 약화된 것은 이러한 기업의 변화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노동자의 힘을 강화시킬 법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노동자의 힘을 증가시킬 수 있는 정책으로 다음 네 가지가 제시되고 있다.
(1) 실직 시 정상적인 생활의 유지가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보장법의 강화
(2) 노동권 보장, 산별교섭을 법제화, 직장협의회 등의 노동법 개선
(3) 노동자의 이사회 참여와 노동자 소유의 확대 등 상법 개선
(4) 플랫폼 노동자 협동조합과 같은 대안적 생산 모델로의 전환
전통적으로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정부가 취한 정책은 실업자와 저소득층에게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직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고소득층에게 세금을 부과했다. 복지국가 모델이 취했던 방식이다. 사회보장이 강화되면 어느 정도 노동자의 협상력은 증가하지만, 이는 ‘간접적’ 효과다.
직장과 산업에서 노동자의 힘을 ‘직접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 첫째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조직하고 사용자와 바람직한 방향으로 단체교섭을 하도록 하는 노동법 개혁 방향이다. 두 번째는 [자신을 고용하는 자본의 일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자 기업소유를 지원하는 세법 개혁과 노동자의 이사제 참여를 보장하는 상법 개혁이 필요하다. 기업의 일정 지분을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보유하면 상법 상의 권리에 기반을 두고 기업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주도적으로 다가오는 인공지능(AI)과 로봇 시대에 부합하도록 경제 제도들을 현대화할 수 있다(Freeman 2021).
1) 노동법 개혁(주: Madland(2016)의 노동자 발언권 강화 방안 내용 요약)
노동법을 현대화하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핵심적 요소가 필요하다. ① 기업별 임금 교섭을 산업이나 지역 단위의 통일교섭(역자주-산업별 또는 직업별로 조직된 노동조합과 산업별 또는 직업별 사용자단체 사이에서 행해지는 교섭.)으로 전환, ② 직장협의회 같은 제도를 도입해 직장 내 노동자 발언권을 확대, ③ 노동자 조직 가입 촉진, ④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 보호(일하는 시민의 노동법)
<표-2> 노동법 현대화를 위한 4가지 요소
|
산별교섭 |
직장협의회 |
노동자 조직 가입에 대한 인센티브 |
모든 노동자에게 실질적 권리 부여 |
내용 |
임금 및 복지 기준에 관한 노사 간 협상을 현행 기업 혹은 사업장 별로 하지 않고 산업 혹은 지역 전체 차원에서 하는 방법 |
작업 과정을 개선하고 업무상 발생하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발언권을 노동자에게 부여하는 직장 조직 |
노동자 훈련과 같은 사회적 차원의 재화를 제공할 때 노동자 조직이 공식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조합원 가입을 촉진하는 플랫폼. |
현재의 불완전한 적용 범위, 불충분한 안전망, 취약한 집행력을 극복하고 모든 노동자가 함께 참여하고 단체 교섭할 권리 부여 |
작동 방식 |
[노조원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근로기준을 강화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적용과 직장 내 노사갈등 해소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 협력적 노사관계를 위한 발판을 마련. |
작업 환경과 기업 생산성 개선 논의를 노사가 진행할 수 있는 비갈등적 환경을 제공. 이를 통해 산별교섭과 노조를 보완. |
[자신은 아무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노조가 쟁취한 복지 혜택을 받게 되는] 소위 무임승차자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 제공. 이는 조합 참여를 증대시켜 기업의 산별교섭과 사업장 협상 참여를 유도. 또한, 공공서비스의 제공을 향상시킴. |
모든 노동자가 사용자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발언권을 행사하며 자신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도록 함. |
출처: Madland 2016
비정규·저임금의 불안정 노동자가 증가하고, 임금 불평등, 젠더 불평등이 심화되었는데, 플랫폼 경제와 함께 그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모든 노동자가 사용자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발언권을 행사하며 자신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도록 하는 ‘일하는 시민을 위한 노동법’이 시급히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노동자 조직은 기업별 교섭이 아니라, 산업 또는 지역 전체에 걸쳐 임금 및 복리후생 기준을 협상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내부 근로규칙에 대한 개별 기업의 불만은 상대적으로 적어지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노동자와 기업 경영자는 회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적으로 일할 가능성이 크고 유사한 작업을 통해 비슷한 임금을 받게 되어 노동자와 기업이 자원 활용에 대한 보다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으므로 산별교섭 하에서는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다(Madland 2016).
이러한 노동법 개혁을 통해 노동자들은 현재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지게 되지만, 그들의 권한은 생산적인 방식으로 전환될 것이고, 노동자들과 관리자들의 인센티브는 더 잘 조정될 것이다.
2) 상법과 세법 개혁: 노동이사제와 노동자주식소유제도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면, 기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3%를 소유하면 주총 소집, 이사와 감사의 해임, 회계장부 열람을 요구할 수 있다. 더불어 배당 소득으로 인한 소득증대 효과도 얻게 된다. 우리나라 재벌 총수가 수십 개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소유지분은 고작 4%에 불과하다. 그러나 노동자의 주식 지분이 크게 증가하면 기업의 성과를 충분히 공유할 수 있으므로 경영진과의 갈등 구조는 극적으로 바뀐다.
크루즈와 블라시(Kruse & Blasi 1999)는 회사 지분을 노동자가 소유하게 되면 회사에 애착과 혁신의 동기를 갖게 되어 좀 더 생산적이고 성취감을 갖는 계기가 된다고 말한다. 노동자가 소유한 기업은 생산성이 높아지고, 더 많은 임금을 얻으며, 근속 기간이 늘어나고, 성별·인종별 차별이 사라진다는 것은 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고 한다.
프리먼과 로저스(Freeman & Rogers 2006)는 노동자가 기업을 공유함으로써 기술발달에 따른 과실을 자본과 노동이 나누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이들이 지난 수십 년간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 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권리와 기업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었으며, 노동자들의 소유 참여는 이를 위한 핵심적 해결방안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자기업소유가 가장 활발한 나라는 미국인데, 노동자주식소유제도인 ESOP(Employee Stock Ownership Plan)이 충분한 세제 혜택을 소유주와 노동자 모두에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볼 때 6,416개의 기업이 시행하고 있으며, 여기에 참여하는 노동자 수는 1,407만 명에 이르고 있다.(주: https://employeeownership.co.uk/resources/reports/) 영국 정부는 2014년부터 EOT(Employee Ownership Trust), 즉 ‘종업원소유신탁’을 법제화했고, 2022년 6월 현재 EOT를 통한 노동자 소유기업이 1,000여 개로 늘었다.(주: https://www.nceo.org/articles/employee-ownership-by-the-numbers)
노동자의 기업소유와 기업인수는 노조와 단체교섭을 부활시키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경제에 한층 더 혁명적인 민주적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노동당과 미국의 버니 샌더스는 이를 대기업으로 확대시키기 위한 제도를 선거 공약으로 제시했다.
2017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은 기업을 “소유할 권리”(right to own)를 노동자에게 부여하는 공약을 제시했다. 영국의 노동자기업소유신탁(EOT)을 활성화하고 영국 내 협동조합을 집권 동안에 2배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2019년 영국 노동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포용적노동자소유기금’(Inclusive Ownership Fund)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종업원 수 250인 이상, 연 수입 1,000억 이상, 혹은 상장기업에 대해 매년 기업 총 주식의 1%를 노동자 주식소유기금으로 적립하고, 이 주식으로부터 발생하는 배당금을 해당 기업 노동자에게 분배하고, 해당 기업의 1인당 배당소득이 100만 원을 초과할 경우 이 부분을 세금으로 걷어 사회복지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영국 노동당, 2019).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는 기업 자산을 노동자가 공유할 수 있는 ‘민주적 종업원소유기금’(Democratic Employee Ownership Funds)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 공약에 따르면 연간 수익이 최소 1억 달러 이상인 기업, 대차대조표 총액이 최소 1억 달러 이상인 기업, 모든 상장기업은 종업원이 최소한 회사 지분의 20%를 소유할 때까지 매년 적어도 2%의 주식을 신주발행 등의 방식으로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한다(샌더스 2020).
2019년 미국 국민여론조사센터(National Opinion Research Center)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2%의 노동자가 개인투자자가 소유한 기업이나 정부기관보다는 종업원 소유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2019년 5월 미국의 진보적 정책연구단체인 더넥스트시스템프로젝트(The Next System Project)는 영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인터넷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YouGov)와 함께 이러한 방안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귀하께서는 종업원 수 250명 이상의 기업이 매년 기업가치의 2%에 해당하는 주식을 출연하여 노동자에게 배당금을 지급하고, 향후 25년간 최대 50%까지 노동자 기금으로 적립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정책을 지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반대하시겠습니까?”라는 문항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것이다. 응답자의 55%가 이 생각을 지지했고 반대는 20%에 그쳤다.
노동자가 기업을 인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는 부의 세습을 극적으로 전환시킨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퇴직을 하는 소유주가 상속이나 사모펀드 매각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매각하는 사례가 효율적인 방안으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2022 세제개편안>을 통해 지원중소·중견기업의 소유주 일가는 상속·증여세를 대폭 공제받는 특혜를 받게 되어 불평등과 부의 세습이 강화되고 있다. 능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2세, 3세에게 기업의 미래를 맡기면서, 기업을 통한 부의 세습을 막는 장치도 현재로선 없는 실정이다.
3) 노동자 협동조합과 지역경제 활성화
플랫폼 노동자의 불안정성과 경제적 의존성에 대한 대안적 해결책으로 플랫폼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플랫폼 협동조합’이란 아이디어는 플랫폼 경제에 비판적인 연구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플랫폼 협동조합은 사회적 경제적 상호작용을 중개하기 위해 플랫폼의 온라인 인프라 스트럭처를 협동조합 기업의 집단적 소유 및 민주적 거버넌스와 결합한다. 이러한 플랫폼 협동조합은 모든 종류의 플랫폼에 적용할 수 있지만, 우버(Uber) 및 딜리버루(Deliveroo)와 같은 투자자 소유의 ‘플랫폼 기업’에 대한 대안으로 가장 강력하게 주장되어 왔다(Bunders et. al. 2022).
플랫폼 협동조합의 소유주가 되면 노동자는 수수료율과 잉여가치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기 때문에 보다 나은 임금과 고용보장을 위한 조건을 만들 수 있다. 플랫폼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선택한 협동조합의 형태에 따라 자영업자(생산자 협동조합) 또는 종업원(노동자 협동조합)으로 계속 일할 수 있으므로 자영업자 지위와 관련된 법적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일반 플랫폼 경제에서 고용 조건에 관해 발생한 문제는 플랫폼 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손에 달려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은 경제의 지역 간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도 주목받는다. 미국 클리블랜드, 영국 프레스턴의 사례처럼 지자체·공공기관·대학·병원 등 지역의 주요 거점기관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주요 소비품에 대해 공공조달과 같이 경매를 통해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데, 이때 해당 지역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에게 입찰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지역사회 협동조합을 지원하거나 기존 형태 기업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을 “거점기관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라고 한다.
예컨대, 영국 프레스턴시의 의회는 거점기관과 거래하는 이 지역의 기업들이 노동자들에 의해 소유되고 통제되는 협동조합이 되도록 권장하며, 거점기관에 대한 로비활동을 통해 협동조합과의 거래 비율을 높이도록 했다. 프레스턴시에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임금 인상, 일자리 증가와 함께 위축된 지역경제가 차츰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CLES 2017).
6. 마무리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방안을 소개했다. 정책의 선택은 시급한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원이 절실한 경제적 하층에 신속하고 충분하게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불안정한 모든 노동계층에게 적용될 수 있는 신노동법, 최저임금 인상, 최저소득보장제, 일자리보장제, 확대재정 등의 정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종부세·부유세·사회보장세를 포함한 누진적 조세체계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 상황에서는 서민들에 대한 금리 인하, 직접적인 자금 지원, 개인과 기업의 파산에 대한 대책, 횡재세와 독점이윤에 대한 처벌 같은 정책이 신속하게 실시되어야 한다.
나아가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찾아 개혁해야 한다. 여기에는 1차적 분배체계인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참여가 확대될 수 있는 정책들이 해당한다. 산별교섭체계가 정착되도록 노동법을 개정하고, 노동자 주식소유가 확대되도록 세법과 상법을 개정함으로써 노동자가 기업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정책들이다.
플랫폼 경제에서는 디지털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공유자원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정책 역시 필요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네트워크의 확산에 따라 형성된 분산된 생산단위들이 협동조합과 같은 대안적 생산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제도 지원이 필요하다. 지역 공공은행 설립이나 지역 거점기관을 활용할 수 있다.
불평등 정책을 선택하고 추진함에 있어서 가치, 규범적 판단, 철학, 이념이 결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와 정치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견해와도 결합하여야 한다. 다른 정당과 차별화되는 정의당의 시그니처(상징적) 불평등 해소 방안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책 수단에 대한 평가, 불평등 심화의 내용과 경제 구조상의 원인, 불평등 해소의 수준, 그리고 정의당이 그리는 사회의 모습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노동은 어떤 형태의 사회에서도 필요한 인간생존의 조건이며, 부를 창조하는 원천이다. 따라서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이 당당해지려면, 적어도 노동과정이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결정할 권한이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기업은 스스로 이러한 의사결정권, 직장의 민주주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민주주의 이론가 로버트 달(2011)은 ‘경제 민주주의’를 소개하는 책에서 자기결정권은 모든 인권 중 가장 근본적인 권리에 속하며, 이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 즉 포기하거나 팔아버릴 수 없는 권리이므로 경제 영역으로도 완전히 옮겨 가야 하는 권리라고 말한다. 그는 국가 통치에서 민주주의가 정당하다면 기업 통치에서도 민주주의는 정당하다고 말한다.
불평등을 생산하는 기업의 분배 구조를 노동자의 발언권 강화를 통해 개선하는 방법은 이미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이는 규범적 측면에서만 제기되지 않는다. 저성장 극복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불평등의 발생 메커니즘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정책을 사용할 것이며,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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