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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한국형 뉴딜' 한다더니, 또다시 규제완화 타령인가

'기업을 위한 뉴딜'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뉴딜'로 가야
  • 입력 2020.05.05 11:00      조회 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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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미국에서 전대미문의 911테러사건이라는 재난이 발생하자 시민들은 예기치 않은 엄청난 재난에 충격을 받고 경제는 휘청거리게 된다. 미국 정부는 재난을 수습한 후 무너진 일상과 경제를 조속히 회복하고자 정부가 나서서 '경기회복을 위한 뉴딜'을 기획하게 된다.

우선 국방부는 재난발생 두 달 후, 벤처 자본가 컨설턴트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미국이 테러와의 글보벌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최신 기술 솔루션'을 찾아내라고 요청했다. 당시 부시 정부의 생각은 민간기업들이 국토 안보에 도움이 되는 뛰어난 혁신장비를 만들도록 지원하고 거기서 나온 최상의 상품을 구입하면 테러와의 전쟁도 잘 수행할 수 있고 911테러로 무너진 경제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이후 미국 워싱턴 주변 교외 지역들에서는 국토안보와 관련된 신생회사들과 창업지원 회사들이 줄줄이 입주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첨단 감시 카메라 상품,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 대조 및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과 데이터 마이닝, 안면 인식과 같은 생체 측정 신원확인 기술, 용병 산업과 군사 컨설팅 산업 등을 줄줄이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불과 몇 년 사이에 국토안보산업은 할리우드나 음악산업보다 더 큰 규모로 발전"했다. 이들이 생산한 제품과 서비스의 고객은 대부분 정부였고, 거대한 정부재정을 동원해서 국토안보산업을 먹여 살리게 되었다. 그러면 이런 식으로 안보산업을 극적으로 활성화시켜 테러가 줄어들고 미국 경제는 건강해졌나? 전혀 아니었다. 이미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2년 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 더 거대한 안보산업시장을 창출하느라 정부 부채가 엄청나게 불어났지만 세계는 결코 테러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심화되는 불평등 속에서 거품경제를 키워가던 경제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산과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너져버렸다. 그래서 나오미 클라인은 유명한 <쇼크 독트린>이라는 저서에서 911테러 이후 부시의 경기부양책을 일부 안보산업과 같은 '기업들을 위한 뉴딜'이라고 이름 붙였다.

비슷한 일은 2004년 12월, 25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시아의 대형 쓰나미 사태에서도 반복되었다. 쓰나미로 인해 폐허와 즐비한 시체더미였던 스리랑카의 해변에서는 얼마 후 "관광산업이 새롭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하는 사람들로 붐비던 어수선한 곳이 모두 사라진 고적한 해안은 휴가를 즐기기 좋은 에덴 동산이 되었다. 해안은 어디나 마찬가지였다." 재난복구 정책으로 관광 레저산업이 떠올랐고 스리랑카 정부는 이를 위해 공공토지를 매각하고 각종 규제를 풀어주었다.

그런데 쓰나미로 폐허가 된 스리랑카를 재건하겠다면서 외국의 유명한 호텔과 레저 관련 투자자들이 들어와서 만들어 놓은 재건프로젝트로 스리랑카 주민들은 어떤 혜택을 입었을까? 자신들이 살던 땅에 화려한 관광 리조트가 들어서면서 이들은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쫓겨났고, 전 세계의 수많은 구호의 혜택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 생계수단이던 어업을 더이상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요행으로 쓰나미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주민들은 살던 곳에서도 생계수단도 모두 빼앗긴 것이고, 그래서 이 재건계획은 "희생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착취당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재건"이라고 지탄받았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대적인 '규제완화'로 시작하다

5월 들어서면서 코로나19 감염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자 정부가 물리적 거리두기 강도를 낮춰서 '생활방역'체계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서서히 코로나19방역과 함께 중단된 경제를 다시 살려내는 '경제방역'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통령은 극심하게 침체된 고용과 경제를 회복시키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비전을 열기 위해서 '비대면 산업'을 화두로 하는 '한국형 뉴딜'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지난 4월 29일 경제위기 대응을 긴급구호 성격에서 상시적 위기관리와 경제회복 준비체계로 전환하겠다면서, 경제 전시상황에 대응하는 사령탑으로서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회의(경제 중대본)' 첫 회의를 열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 경제 중대본 회의에서 나온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화두는 '규제완화'였다. 회의는 "포스트 코로나 대응을 위한 경제체질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이 규제"라고 지목하면서, 실제로는 코로나 이전부터 관련 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의료신기술, 헬스케어, 데이터, 미래차 등 '10대 산업분야 56개 규제혁파 추진과제'를 정부의 이후 핵심과제로 지정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가 책임지고 기업간 공정성, 환경과 고용영향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규제영역을 아예 민간주도로 하겠다면서, "규제를 받는 대상자가 규제 완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는 평가를 받는 자가 평가기준을 만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황당한 발상이다.

특히 정부는 "지금까지의 규제개선 방식을 완전히 전환하여, 민간주도로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면서, 이런 방식은 '별도의 재정 투입 없이' 민간투자 활성화를 유도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인다.

요약하면 이렇다. 재정건전성 논리에 사로잡힌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를 '공공투자'로 살려내기 보다는, 그 동안 기업들이 요구해왔던 규제완화 등을 대폭 수용해서 사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해서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대규모 공공투자와 경제활성화를 해야 한다는 상황적 절박감을 이용해 그동안 여러 가지 합당한 이유로 통제되어 왔던 기업들의 비즈니스 욕구가 폭발하고 있는데, 이를 정부가 무차별하게 수용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원격의료·원격교육 등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변할 산업인가

그런데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은 코로나19 충격으로 수요와 공급, 금융 등 모든 측면에서 경제상황이 극히 불확실하다. 어떤 민간기업들도 쉽게 추가적인 투자는커녕 하고 있는 사업의 자금흐름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정신이 없다. 이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일시적으로 생긴 '비대면 생활 패턴'을 이용해서, 관련업계들이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통제해왔던 규제들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원격의료'나 '원격교육' 등 각종 비대면 온라인 비즈니스가 갑자기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경제방향으로 둔갑하기 시작한다.

'비대면 산업(untact industry)'이 새롭게 시장 기회로 떠올랐다는 주장은 사실 매우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관점이다. 비대면 사회, 언택트 사회가 우리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뉴노멀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911테러를 핑계로 안보산업을 잔뜩 키운다고 테러가 완화되지 않듯, 감염방지를 위해 일시적으로 불가피하게 취해진 거리두기를 아예 영구화할 생각이 아니라면 비대면 일상은 새로운 삶의 표준이 될 수 없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비대면 산업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원격의료나 원격교육 등 온라인 비지니스가 마치 코로나 재난 이후 사회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인 것처럼 포장되는 데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번 코로나19 재난으로 확실히 확인한 것은, 오랫동안 업계가 요구해온 원격의료나 헬스케어 산업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의 부족이 문제였다.

당연하게도 코로나 이후에는 지역별로 공공의료시설과 공공병상을 늘리고 공공 보건의료인력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공공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사설 학원등 관련업계가 요구해온 원격교육등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슈는 아니고 각종 비대면 비즈니스 역시 규모나 일자리 창출효과 등도 따지지 않고 정부가 마구 장려할 일이 아니다. 더욱이 파격적인 규제완화를 해가면서까지 정부가 직접 나설 일도 아니다.

앞서 911테러이후 미국에서 안보산업의 급팽창이 평화를 가져오지 않았고, 대형 쓰나미 재난이후 관광 레저산업이 스리랑카 주민에게 주거안정이나 고용안정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 정부가 코로나19 재난 이후를 설계한다면서 일부 업계의 규제완화 요구를 들어주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막상 심각한 고용불안정과 소득불안정에 힘겨워하는 국민들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피해자와 시민을 위한 재난복구가 아니라, 재난을 돈벌이 기회를 이용하려는 전형적인 재난자본주의 기법에 정부가 장단을 맞추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업위한 뉴딜'이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뉴딜'이 되어야

코로나19 재난으로 급격히 무너진 일자리와 경제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감염병이나 생태적 재난의 재발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우리의 경제와 산업, 생활을 전환하기 위한 '한국형 뉴딜'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현재 심각하게 타격을 받은 글로벌 경제상황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설계해야 할 뉴딜은 일부 산업지원이나 얼마간의 임시 일자리를 만드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서 상당 기간 대규모 공공투자를 지속시키는 기획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심지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GDP의 2% 수준의 공공투자를 영구히 계속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그러면 '한국형 뉴딜'은 어떤 방향을 가지고 추진되어야 하는가? 첫째로, 한국형 뉴딜은 '규제 완화'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필요한 규제를 제대로 다시 확립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뉴딜은 단순한 경기촉진을 위해 기업지원을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1930년대 루스벨트 뉴딜정책의 시작은 위기를 일으킨 금융의 투기를 확실히 통제할 목적으로 만든 '글래스-스티걸법'제정으로 시작되었다. 위기와 재난이 닥치면 힘없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고통이 전가되기 마련이다. 재난을 틈타 부당노동행위나 부당해고 등이 있는지 더욱 철저히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산업재해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우선적인 임무이지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다.

이천 산업재해 참사가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 산업자본의 인터넷 은행 참여를 열어주는 법개정을 하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위기와 재난의 시대일수록 경제적 약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필요한 보호와 규제를 오히려 강화해야 한다. 루스벨트 뉴딜시대의 가장 중요한 조치가 '와그너 법' 입법을 통해서 노동자의 단결권을 확실히 보장해주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로, 이번 재난상황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된 사회안전망의 광범한 공백, 특히 불안정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포함한 취업자의 절반이 고용불안과 소득상실의 위협 아래에서 아무런 사회안전망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취업자의 절반밖에 포괄하지 못하는 기존 고용보험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하자는 얘기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 논의를 질질 끌지 말고 조속하고도 파격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반복하지만, 1930년대 루스벨트 뉴딜의 핵심이 미국 역사상 최초로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 당시 사회 안전망 가운데 유독 의료보장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것이 이후 두고두고 미국사회의 약점이 되었고, 최근 오바마 케어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셋째로, 1930년대 미국의 뉴딜이 테네시강 개발 등 '회색뉴딜'이었다면, 그리고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디지털 뉴딜'로 경제회복을 시도했다면, 지금은 당연히 '그린뉴딜'이 한국형 뉴딜의 중심이 되어야 마땅하다. 지금 우리가 교훈을 얻어야 할 미래위험은 기후위기, 생태파괴로 인한 위기이며 여기에 대한 대처는 비대면 사회로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화석연료 기반의 우리 산업구조와 도시구조, 우리의 일상을 대변혁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도 여기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

특히 전례 없는 공공투자 기획이 필요하다. 앞서 예시한 강력한 공공의료 시스템, 공공 사회 안전망 시스템 구축은 기본이고, 생태적 안전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 투자를 해야 마땅하다. 느리고 산발적으로만 진행되어 왔던 태양과 풍력 기반 재생에너지 전환 프로젝트를 국가적 전략 프로젝트로 격상시켜서 향후 10년 동안 대대적인 공공투자를 해야 한다.

짧은 시간 안에 녹색교통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의 전기화를 신속하게 추진해야 하며, 전국의 모든 주택과 건물에 대한 에너지 효율화 기획을 규모 있게 추진할 프로젝트를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비대면 경제는 매우 제한적으로 할 수 있고, 이 역시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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