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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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1세기형 복지국가, 계산 불가능한 위험에 대한 인식:
기본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개혁 패키지 전략
- 입력 2020.12.01 14:11 조회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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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asic Income Korean Network, BIKN) 이사 및 운영위원,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복지#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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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_ 창간준비1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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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정의당으로부터 창간준비호 기획 원고를 의뢰받았다. 전해받은 주제는 “21세기 복지는 무엇인가: 소득보장 vs 고용보장”이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말하자면, ‘나는 유령과 싸움을 벌여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전환기에 소득보장과 고용보장은 대척점에 있지 않다. 플랫폼 자본주의로의 전환, 코로나19가 각인시킨 성장중심 자본주의의 생태적 위기는 포드주의에 기반한 20세기형 복지국가의 근간을 뒤흔든다. 균일하고도 풍부한 노동시장을 전제로 한 고용보장과 노동시장에서의 유급노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소득보장이라는 이분법은 이제 그 경계가 흐릿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보장을 하면 소득보장이 필요없고, 소득보장을 하면 고용보장이 필요없을 것이라 전제하고 이 두 가지 중 무엇이 먼저인가, 무엇이 더 시급한가를 다투는 이분법은 지금의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을 전제한 대안이다. 그야말로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 싸워야 한다.
Ⅱ. 무엇이 문제인가
1. 플랫폼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가속화한 노동의 변화와 불평등
지금의 자본주의는 이행기다. 그것을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든, 지식 기반 자본주의ㆍ정동 자본주의ㆍ플랫폼 자본주의ㆍ디지털 자본주의로의 전환이라 부르든 인간의 노동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제조업 중심의 자본주의는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빅데이터에 기반한 플랫폼 자본주의로 이행 중이다. 플랫폼 자본주의로의 전환이란 1970년대의 위기, 1990년대의 위기, 2008년 위기를 겪으며 자본주의가 새로운 자본 축적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조직 형태, 새로운 착취 방식, 새로운 직업,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둘 이상 집단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기반시설로서의 플랫폼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형 자본주의는 산업 부문으로 규정하면 제조업 중심의 자본주의였고, 이는 포드주의에 기반한 상대적으로 균질한 노동,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시간에 작업하는 집단적 생산, 풍부한 일자리를 특징으로 한다. 이는 노동계급의 집합적 결속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었다. 자본 측 입장에서도 제조업 중심의 자본주의에서는 기업 특화된 숙련 노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발적이거나 순순히는 아니었더라도 숙련 노동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 노동자와 사용자가 분담하는 사회보험, 가족까지 고려한 생활임금 수준을 받아들였다.
1970년대 이후 기술의 발달로 인해 탈숙련 기술이 숙련 노동자를 대체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고, 저숙련 노동자의 사용과 고숙련 노동자의 권한을 약화시켰다. 동시에 세계화된 시장이 발전하면서, 기업들을 이윤율 저하에 직면하게 되고, 국제적 경쟁, 생산과잉, 가격 하방 압력이 지속되어 노동의 해고, 아웃소싱 등 이윤율 유지를 위한 임금 및 사회보장 급여를 포함한 임금비용의 축소, 책임 비용의 전가를 위한 고용의 유연화 등을 관철시키게 된다. 이는 계급을 분화시키고, 노동 계급의 힘을 약화시키고, 자본의 힘을 강화시켰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는 새로운 지배적인 변화, 기술변화에 직면한다. 인지 자본주의, 정동 자본주의, 플랫폼 자본주의, 지식 기반 자본주의, 디지털 자본주의라 불리는 변화는 집합적 협력과 지식이 가치의 원천이 되는 일반지성의 활동을 통한 빅데이터의 구축과 알고리즘의 작동으로 설명된다. 전통적인 산업 노동의 가치 창출 방식이 플랫폼을 통한 빅데이터의 구축과 추출에 기반하여 이윤을 창출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로 대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체제적 전환은 그동안 확대되어 온 노동의 불안정과 임금 하방, 복지 축소의 흐름을 가속화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1970년대 이후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노동소득 분배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자본소득 분배율은 상승하였다(그림 1 참조). 자본주의의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당 임금 수준은 현재가치로 환산했을 때 1972년 이래로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그림 2 참조).
<그림 1> 선진국에서의 노동소득 분배율의 변화
출처: 서스킨드(2020)
<그림 2> 생산성 향상과 시간당 임금의 변화
출처: 서스킨드(2020)
임금소득 분배율의 악화와 불평등의 심화는 노동 소득을 주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고할 수 있는 1차적인 대안은 임금소득 분배율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임금을 올려서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관점에서의 한계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가가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임금을 상향할 수 있는 조치는 최저임금 제도 이외에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제도는 임금 노동에서의 최저 생계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임금도 상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최저임금 제도는 그 대상이 임금 노동자에 한정하여 말 그대로 최저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임금소득 분배율을 큰 폭으로 올리기 어렵고, 후술하겠지만 다른 제도들을 동반하여 패키지 전략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둘째, 정책 대상이 될 수 있는 ‘임금 노동자’를 가려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노동시장에서의 계약 관계가 종속성에 기반하는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근로계약이 아닌 방식, 다시 말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자영업자로서의 계약관계 방식이 증가하고 있다. 전체 취업자 중 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갈수록 낮아진다. 자영업자의 노동 소득은 임금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직접적인 정책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셋째, 기술 진보는 일자리를 꾸준히 감소시켜왔다. 임금소득을 늘리기 위해서는 임금을 받는 일자리가 많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하는데, 기술진보는 지속적으로 인간의 노동을 감소시켜왔다. 혹자들은 새로운 기술진보가 역사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일자리가 축소되거나 노동 없는 세상을 말하는 것은 혹세무민인 것처럼 비판한다. 그러나 1970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50년 동안 OECD 회원국의 1인당 노동시간은 10년마다 45시간씩 꾸준히 감소되었다. 노동시간 감소는 기술진보에 따른 생산성 증가와 비례적으로 나타난다. 기술과 일의 역사는 노동자를 대체하는 해로운 힘과 노동자를 보완하는 유익한 힘, 서로 다른 두 힘의 작동으로 나타났는데, 현재의 기술 변화 상황에서는 이 세 가지의 힘 모두에서 기계와 인공지능이 인간 노동의 업무 잠식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노동이 줄어들면 임금을 향상시켜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의 안정성을 도모하는 방식은 공백을 발생시키게 된다.
2. 코로나19가 보여준 성장중심 자본주의의 한계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명징하게 보여준 것은 성장중심 자본주의 시스템이 생태 위기를 발생시키고, 이것이 빠른 속도로 실물 경제와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쳐 사람들의 삶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코로나19는 경제 시스템의 외생 변수로 간주되어 온 감염병이라는 단순한 질병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성장 중심 자본주의가 낳은 생태적 위기로서 이제 경제 시스템에서의 내생 변수가 된다.
우선 1940년대 이후 발생한 신종 전염병은 대략 400종인데 이 가운데 60퍼센트가 동물원성 감염증으로, 우리는 ‘인수공통 감염병의 전성시대’를 살게 되었다. 인수공통 감염병의 경로는 집약적인 농축산업의 발전과 확대 속에서 산림이 파괴되고 생태계가 변화하면서 바이러스가 자연 숙주를 상실하는 결과를 낳고, 인구 증가와 지구화된 이동의 증가, 야생동물 섭취 문화는 바이러스의 종간 전파를 확대한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축산혁명’이 존재한다. 축산혁명은 인구 증가와 도시의 확대, 경제성장에 따른 가축 생산 및 소비에 대한 수요 증대, 영양 섭취 유형의 변화, 축산물 생산을 위한 기술의 변화 등을 배경으로 소수의 농축산기업이 속성 가축의 사육ㆍ가공ㆍ유통 등을 수직적으로 통합해서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토지를 단일한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토질 저하, 온실가스 배출, 물 고갈과 수질 악화, 생물다양성 상실 등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특히 축산혁명의 과정은 집약적인 축산 방식과 더불어 사료를 주로 수입에 의존하게 되면서 가축을 소비자와 더 가까운 장소로 이동시켰고, 그로 인해 인간은 돼지와 가금류 수백만 마리를 단종 생산하는 도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세계 속에 살게 되었다. 이는 바이러스가 진화하는데 완벽한 환경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주변에 취약한 숙주들이 많이 있어 바이러스의 병독성이 진화할 수 있는 세계가 된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하나의 세계-하나의 건강’(One World-One Health) 접근법이다. 이 접근법은 야생동물, 가축, 곡물, 감염병 등이 분리된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전례없이 다양한 상품의 생산, 이에 수반되는 자원 추출의 증가, 경제와 생태 사이의 물질적ㆍ개념적 균열 등이 서식지, 생물다양성, 생태계 기능, 자원 기반, 수로, 토양 영양, 대양의 저장물을 저하시켰으며, 이런 요인이 결합해서 다양한 숙주를 넘는 질병의 출현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축산혁명으로 대표되는 성장중심 경제 시스템은 생태계의 기능을 악화시키고, 생태적 문제로서의 감염병을 주기적으로 발생시킨다. 대규모 감염병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공급 충격, 수요 충격, 신뢰 충격이라는 세 가지 부문에서 발생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감염의 위험은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공장 폐쇄, 서비스 부문 활동의 위축이라는 공급 충격을 가져오고, 출장 및 관광 감소, 교육 서비스 감소, 엔터테인먼트 및 레저 서비스 감소라는 수요 충격을 야기한다. 신뢰 충격은 재화와 서비스 소비의 감소 또는 지연이 발생하고 이것이 투자의 지연 또는 포기로 이어지는 불확실성(uncertainty)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경제 순환 고리의 단절과 노동시장 축소, 소득 상실 및 감소로 이어진다. 감염병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 불확실성의 확대는 경제 시스템 내에서 언제, 어느 정도의 규모로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내생변수가 되었다.
3. 포드주의에 기반한 복지국가 시스템의 위기
20세기형 복지국가 설계의 전제는 완전고용 사회다. 그리고 복지국가를 작동시키는 주요 기제인 사회보험의 기본원리는 ‘위험의 계산 가능성’이다. 풀어서 보자면, 완전고용 사회에서 삶의 불안정의 주요 요인은 노동시장에서의 퇴출이고, 이는 실업, 노령, 질병, 산업재해로 인해 발생한다. 그러므로 삶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에서의 퇴출 요인인 실업 등의 사회적 위험을 통제하고 대비해야 한다. 이는 개인적 수준에서는 예측하고 대비할 수 없지만, 사회적 수준에서는 사회적 통계를 기반으로 ‘계산’할 수 있고, 그러므로 위험을 분산시켜서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완전 고용이 깨지고, 노동시장이 불안정해지고, 플랫폼 자본주의에서 플랫폼 노동은 보호되지 못한다. 생태 위기 앞에서 무한한 성장에 기반한 경제 시스템은 위기에 봉착하고, 우연성과 불확실성이 가중된다. 생태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기존의 신고전파 성장이론이 성장은 무한하며 모든 성장은 경제적이라고 전제하고,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을 등치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경제와 환경 간의 대립이 존재하고, 환경은 무한한 자유재가 아니라 생태ㆍ물리적 한계가 존재하고, 생태계는 불확실성과 비가역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신고전주의 후생경제학은 불확실성을 위험으로 축소시키고, 의사 결정을 시장에서의 성과에 초점을 두고 수행하였지만, 이제 우발적 위험으로 치환되지 않는 순수한 불확실성을 전제하고, 계산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니라 예방 원칙에 근거한 대처가 필요하다. 정책적 측면에서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대안은 ‘예방 원칙’이고, 예방 원칙은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고 계산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예방 원칙이 필요해진 지금의 현실은 예측과 계산 가능성을 전제하는 사회보험 방식, 포드주의에 기반한 20세기형 복지국가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든다.
Ⅲ. 무엇을 할 것인가
1. 우리의 지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부터 답해야 한다. 다른 말로 바꾸면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세상인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너무도 당연시되어 의문조차 품지 않았던 경제성장이 곧 사회발전이라는 인식틀을 이제 재고해야 한다. 최근 사회적 효용이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GDP는 틀렸다는 이론적 문제제기와 담론이 동의를 얻고, 들어간 비용 대비 얻게 된 편익을 계산하는 합리성과 환경 생태계를 무한하다고 가정하고 환경을 개척하고 이용하여 극대화한 자본주의적 성장 모델이 생태적 위기 속에서 그 유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그러니 무엇보다 성장 중심 자본주의 모델의 극복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최대한의 일자리를 창출해서 사람들의 생활을 유지하게 하겠다는 정책이 더이상 타당하지 않다는 인식으로 연결된다. 오히려 이윤 극대화나 경제 성장을 최우선에 놓고 그 전제 하에 뉴딜이나 고용보장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뉴딜인가, 어떤 고용인가를 고려하고, 무제한적 성장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어떤 정책이 생태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를 최우선적인 판단 지표로 삼아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적 성장, 자본주의가 야기한 불평등,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 속에서 새로운 방식의 가치 창출 방식 및 독점의 심화라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어떻게 균열 낼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에릭 올린 라이트가 죽음과 사투하며 작업한 저서 『How to Be an Anticapitalist in the 21st Century』(번역본 제목: 21세기를 살아가는 반자본주의자 안내서)는 우리에게 중요한 관점을 시사한다. 라이트는 반자본주의적 사회운동 역사에서 존재한 5가지 방식의 자본주의 균열 전략들을 평가하고, 이를 포괄하는 전략으로서 ‘자본주의 잠식하기’를 제안한다. 하나의 경제체제가 온전히 자본주의적 요소들만으로 혹은 비자본주의적 요소들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현실 사회주의가 시도하고 실패했던 전략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면, 체제 변혁을 위한 전략적 지형으로 층위가 존재함을 인식하고 체제의 균열을 내는 층위별 방식과 전략을 동시에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사회 개혁 전략을 제시하거나 정책의 우선순위를 판단할 때, 그것이 자본주의적 질서와 가치, 불평등에 균열을 낼 수 있는 방식이 될 것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2. 어떤 정책적 대안들을 설계할 것인가?
1) 기본소득을 통한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 생계 보장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지향을 검토한 후 이 글에서 제안하는 안은 기본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개혁 전략이다. 기본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개혁 전략은 앞에서 제기한 고민들을 담고 있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돌려주는 것을 지향한다. 이러한 지향은 기본소득이 이념이자, 동시에 사회정책임을 말해준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기본소득은 이념이자 정책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어서 다양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하고, 동의를 얻기가 어렵기도 하다.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기본소득의 지향을 실현하는 정책적 원칙은 무조건적이고 보편적 방식의 공유부 배당이다. 모두의 것에 해당하는 공유부는 토지와 석유와 같은 자연적 공유부와 지식 등과 같은 인공적 공유부를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공유부는 각자의 기여 몫을 계산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타당하다.
기본소득의 이러한 분배원칙은 플랫폼 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임금 소득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소득보장의 최저선(social floor)을 높이고,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간의 극대화되고 있는 분배율의 불평등을 줄일 수 있게 한다. 동시에 플랫폼 자본주의에서의 플랫폼 자본이 독점하고 있는 빅데이터 운용으로부터 생기는 수익을 빅데이터를 만들어낸 모든 일반지성에게 되돌려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기본소득의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분배양식은 코로나19가 보여준 성장 중심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태 위기 속에서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게 한다. 계산 가능성을 전제한 20세기형 복지국가가 한계에 부딪힌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은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의 기본적인 분배가 일차 분배로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 사회적 위험을 정하고, 사후적 방식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위험에 처한 게 맞는 지 조사하고, 증명하고, 심사한 후에 보상하는 방식은 불확실성 시대에 대처방식으로는 부족하고, 삶의 위기는 불확실하지만 삶의 최저선은 언제든지 보장된다는 확실성이 있어야만 사람들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삶을 보다 안정적이고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생태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서의 탈성장이나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수행하는 비생태적 활동을 줄일 수 있도록 기본적인 생계를 보장해야만 가능하다.
무엇보다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은 새로운 주체 형성을 요구한다. 자본주의적 이윤 극대화가 가장 합리적 인간이라는 자본주의 정신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전환이다. 새로운 주체는 당위로만 형성될 수는 없는 일이다. 기본적인 생계 보장이 뒷받침되어야 새로운 방식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시도될 것이고, 이러한 고민과 실천이 쌓여야만 새로운 주체 형성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더 나아가 자본주의 잠식하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2) 불안정한 노동에 대한 노동시장 정책과 패키지 전략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누차 강조하듯, 기본소득은 만능의 정책이 아니다. 그저 가장 기본이 되는 정책일 뿐이다. 이 기본 위에 기존의 사회정책들을 보강하여 쌓아 올리고, 새로운 방식의 정책들을 도입해야 한다. 그 중 중요한 한 가지는 불안정한 노동에 대한 노동시장 정책 패키지 전략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노동이 줄어들고, 노동소득 분배율이 줄어든다고 해서, 빠른 시간 안에 노동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적정한 유지를 위한 소득 확보는 주로 노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문제는 노동이 축소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산업예비군의 증가와 기술 대체 가능성의 증가는 힘의 균형점을 자본 측의 우세와 노동 측의 열세로 이동시킨다. 낮아지는 임금, 저임금 노동의 확대, 사회보장의 배제로 압축적으로 설명되는 노동의 삶은 생계 유지를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해야하고 위험한 노동을 거절하지 못하게 만든다. 사업 상의 위험과 삶의 위협 요인이 모두 노동 측에 전가된다. 이 상황에서 임금의 상향, 위험한 노동에 대한 거부, 사회보장의 대상 적격성 확대, 일자리 나누기가 요구된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이러한 전략에 도움을 준다. 직접적인 임금의 상향이 아니더라고 자본 측의 과세를 증가시켜 사회적 부담을 늘리고, 결과적으로 임금의 상향 효과를 가져오고, 기본 생계는 보장된다는 확실성 속에서 위험한 노동에 대한 거부를 가능하게 하고, 이러한 거부가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집단의 협상력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노동 축소 과정에서 일자리 나누기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가 진행되어야 노동이 고용 지대가 되지 않는다.
기본소득을 기반으로 노동하는 삶의 전제 조건들을 상향시키고, 여기에 더해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노동권 확대와 사회보장의 확대를 이뤄내야 한다. 올해 장혜영 의원실의 발표에 따르면,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등 비임금 노동자가 불과 최근 5년 사이에 213만 명 증가했다. 외판이나 방문 판매원과 같은 기존의 비임금 노동자는 줄어들고, 기존의 업종 분류로 규정하기 어려운 기타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비임금 노동자가 160만 명 늘어났다. 이러한 증가는 국세청의 인적 용역 사업소득 원천징수 현황을 통해 분석한 것이라 사업소득 신고를 하지 않는 저소득 비임금 노동자는 누락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실제 비임금 노동자 수에 비해 과소추정된 수치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소득은 대체로 너무 낮다. 2018년 연간 기준으로 물품배달은 940만 원, 퀵서비스는 860만 원, 방문판매 1,400만 원, 학원강사 1,300만 원 수준이었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비임금 노동자는 저임금에 사회보장 배제에 놓여있다.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수사로 대표되는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보장의 확대 전략이 요구된다. 장지연 박사 등이 제안하고 있는 고용안전망 방식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회보험의 대상자를 정하는 틀의 근본적인 전환과 소득보험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Ⅳ. 나가며
삶의 불안정성 확대는 이제 특정 계층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환경 문제가 온전하게 해결되지 않는 한 감염병이나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은 이후에도 반복될 것이다. 기술 진보로 인한 업무 잠식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의 축소와 불안정성의 확대는 자산과 자본을 늘리기 위한 자본주의적 인간관을 확장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전환기에 소득보장과 고용보장은 대척점에 있지 않다. 플랫폼 자본주의로의 전환, 코로나19가 각인시킨 성장중심 자본주의의 생태적 위기는 포드주의에 기반한 20세기형 복지국가의 근간을 뒤흔든다. 균일하고도 풍부한 노동시장을 전제로 한 고용보장과 노동시장에서의 유급노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소득보장이라는 이분법은 이제 그 경계가 흐릿해졌다. 고용보장을 하면 소득보장이 필요없고, 소득보장을 하면 고용보장이 필요없을 것이라 전제하고 이 두 가지 중 무엇이 먼저인가, 무엇이 더 시급한가를 다투는 이분법은 지금의 대안이 아니다.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기반으로 한 사회개혁 전략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시기의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노동하는 모든 삶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쌓고, 생태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의 유급 노동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 그리고 그 일들은 생태적이고 ‘인간다운’ 노동조건이어야 한다.
자본주의 잠식하기는 다각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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