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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자본과 이데올로기 노트> 여섯번째: 브라만 좌파의 분열, 정의당에 대하여

  • 입력 2020.06.02 08:46      조회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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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이제는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모든 식자들과 정치인들이 확실히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않는가?

개인적인 느낌에는 이 질문이 피케티가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쓰게된 화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도 답답했을 것이다. <21세기 자본>을 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록스타급 대우를 받으며 불평등을 설파했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뭔가 평화를 향한 강력한 조치들이 일어나기는 커녕 불평등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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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왜 진보정당들은 불평등을 정면으로 해결하지 않는가? '포용성장'이라는 용어로 합리화시키면서 실제로는 왜 강력한 평등화 정책에 목숨걸고 싸우지 않는가? 피케티는 1945년 이후 유권자의 선거투표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결론을 얻는데, 이게 이 책의 사실상 핵심이라고 생각한다.(이미 2018년에 논문으로 공개되었다.)

결론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선거좌파는 점차 고학력자, 특히 관리자와 전문지식인의 정당이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의 민주당이나 유럽의 사회민주당 이후 좌파 정당들이 2차대전후 1970년대까지는 대체로 저학력층 서민이나 노동자들을 대변했고, 서민과 노동자들도 대체로 이들에게 투표했는데, 1980년대로 들어오면서 최근까지, 이들 좌파 정당들에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주로 고학력 엘리트들로 변해왔다는 것이다. 이른바 좌파정당들의 지지도 분석에서 아주 확고한 '학력효과'가 모든 변수를 통제해도 확실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물론 인도와 브라질 같은 나라들은 예외로 분석하고 있지만...)

그래서 그는 세계정치에서 정당구도가 새롭게 재편된 현상에 대해서 우파 정당들은 대개 소수 부자 엘리트들을 대변하고(상인 우파), 좌파 정당들은 대개 고학력 엘리트들을 대변하여(브라만 좌파), 결국 서민과 노동자 시민들을 아무도 대변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이걸 피케티는 양대 엘리트가 지배하는 다중엘리트 체제라고 부른다.)

이는 마치 사제와 귀족 양대 엘리트로 지배계급이 나뉘고 평민이라는 제 3신분이 따로 떨어졌던 근대 이전의 삼원사회와 비슷한 구도로 되돌아간 모습이라는 것이 피케티 설명이다. "브라만 좌파와 상인 우파는 사실상 통치 정당성의 두 형태를 구현한다. 이 다중 엘리트체계는, 지식인 엘리트와 전사 엘리트의 역할 분할에 근거한 오래된 삼기능사회의 심층적인 논리로의 일종의 회귀를 나타낸다."

(2)
이 결과가 바로 불평등이 해결되지 않는 정치적 이유라는 것이다. 우파는 물론이 좌파까지 하위 계층과 분리되어 버린 결과, "유력한 다중엘리트들이 주로 구성하는 1990~2020년의 선거제도는 항상 사회적 균열들을 무대로 끌어올리지만, 재분배 논의를 전반적으로 희미하게 만든다. "

특히 서민에서 멀어져간 지식 엘리트 브라만 좌파(미국 민주당, 유럽 사민당, 한국 민주당?)들은, 일종의 기존 교육제도의 승자들의 정당의 특징을 띠는데, 이들은 "학문적 노력과 능력을 믿는다. (반면)상인 우파는 사업에서의 노력과 능력을 강조한다. 브라만 좌파는 학력, 지식, 인적자본의 축적을 지향한다. 상인우파는 무엇보다도 화폐 금융자본의 축적에 의거한다."

심지어 브라만 좌파는 "현행 경제체계와 경제 금융 엘리트에게만큼이나 지식인 엘리트들에게도 사실상 매우 큰 이득이 되는 현재의 세계화 양상에 대한 강한 애착심을 공유한다."

이에 따르면 전세계 좌파(또는 개혁정당)들이 한결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실질적으로 수용적이 되고, 대부분의 대안들을 '교육' 또는 '인적자본개발'로 귀결시키며, 그토록 '시장 친화적 특성'을 보이는지 납득이 된다. 이런 까닭에 이들이 불평등에 실질적인 의지를 가지고 해결을 위해 달려들기는 쉽지 않다.

(3)
정말 그렇다면, 그러면 전혀 불평등해결을 할 수 없는, 브라만 좌파-상인우파 다중엘리트 구조를 대중들이 그냥 지켜보면서 불평등을 참아내는가?

피케티는 그렇지 않다고 진단한다. 이 다중엘리트 구조는 최근 붕괴되고 있다고 분석하는데, 그것은 일단 브라만 좌파쪽에서가 아니라 상인 우파쪽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상인우파는 분열하고 있다. 부자 엘리트 정당들은 우익 포퓰리즘으로 반엘리트주의를 내세우고, 외국인 배타주의, 우월적 정체성주의로 분열을 가속화시킨다.

즉, 신자유주의 조류에 휩쓸린 친시장적 좌파와 친시장적 우파들의 경합으로부터 대중이 이탈하자, 친시장적 우파 일부는 백인우월주의와 외국인과 소수자 혐오를 바탕으로 국수주의적 포퓰리즘으로 돌출되고, 친시장적 좌파의 일부는 더 강력한 친분배적 비전을 가지고 돌출된다.

"인민계급이 느끼는 (넓은 의미의) 사민주의 정당에게서 버림받았다는 감정이 반이민자 언술과 토착주의 이데올로기의 비옥한 부식토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버림받았다는 이 감정의 연원인 재분배 포부의 결여가 교정되지 않는한, 이 부식토가 계속 악용되는 것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면, 브라만 좌파는 분열되지 않는가? 피케티는 브라만 좌파 역시 <시장 친화적 중도좌파>와 <재분배를 지향하는 급진좌파>로 마땅히 분화되어야 한다고 믿는것 같다.

그 초기적 형태가 미국 민주당의 샌더스나 영국 노동당의 코빈으로 꼽는것 같다. 그러나 브라만 좌파의 분열은 아직 초기단계이고 상인우파의 엄청나고 파괴적인 분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4)
나는 기본적으로 고학력 엘리트 정당이 되어버린 좌파와, 부자들의 정당이 되어버린 우파구조로 정치권이 한몸의 '엘리트 정당들 경합장'이 되어서 불평등해결을 정치적으로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진단에 공감한다. 좀더 섬세한 분석이 필요하지만, 한국정치도 유사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볼때 한국의 민주당이 계속 진보쪽으로 이동해서 정의당의 설자리가 없어졌다는 일부식자들의 의견에 전혀 공감하지 않고,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

문제는 상인 우파들이 극우나 배타주의적 포퓰리즘으로 왕성하게 분열하는데 비해서(한국도 조만간 김종인이 이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 왜 한국의 브라만 좌파는 미미하게밖에 분열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다. 피케티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다. 한국의 정의당이 던져야 할 질문도 여기일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
피케티는 소득과 자산은 물론, 학력, 인종, 젠더 변수를 모두 넣으면서 선거분석을 하는데, 유독, 연령변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선거분석에는 '세대'이슈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1945년이후 서민과 노동자들이 지지했던 정당들이 1980년대 이후 고학력 엘리트들이 지지하는 정당으로 바뀌고 있었다면, 이 과정에서 세대별 투표차이들이 매우 흥미롭게 전개되었으리라는 것은 짐작 가능하고, 또 실제로 최근 서구나 한국 투표경향에서 연령변수는 매우 결정적인데, 왜 이걸 생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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