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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재난시대에 남아있는 정책 퍼즐,‘고용보장제’
- 입력 2020.12.01 17:11 조회 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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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권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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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_ 창간준비1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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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자.” |
최첨단 4차산업 혁명 시대라고 불리는 그 엄청난 인류의 지적 성취와 경탄할 만한 인공지능의 눈부신 진화의 한 가운데서, 마치 이 모든 것을 비웃듯이 예고 없이 코로나-19라는 신종전염병이 사람들 앞에 들이닥쳤다. 중국 우한이라는 특정지역의 문제인가 싶었던 전염병은, 2~3달 사이에 전 세계적 펜데믹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인의 건강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각 국가들은 그저 서로 접촉을 피하는 길 외에 달리 대처방안을 찾지 못했다. 강도 높은 봉쇄(Lock down)에서부터 다양한 수준의 거리두기가 세계 곳곳에서 강제되었고, 그 결과는 세계 경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릴 것 없이 처참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12년 전인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훨씬 심각한 역성장과 급격한 실업증가, 고용불안 국면으로 세계는 빠르게 빨려들어갔다.
국제노동기구는 2020년 3월과 4월에 코로나19가 미친 고용충격을 특별보고서로 발표하면서, 40시간 풀타임 일자리 기준으로 2억3천만 개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ILO 2020). 손쓸 수 없이 빠르게 확산된 고용 충격과 소득 손실 충격에 신속히 대처하고자 미국과 독일을 포함해서 많은 나라들이 ‘재난수당’을 서둘러 의결하고 집행에 들어갔다. 한국도 전주시를 필두로 지방정부들부터 발빠르게 ‘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속속 수당을 전 주민에게, 또는 일부 선별하여 지급하기 시작했고, 2달 정도를 버티던 중앙정부도 결국은 5월부터 4인가족 기준 최대 100만원의 재난지원금 지급을 시작했다. 국가와 지방정부가 직접 지급하는 현금의 영향력을 실감한 국민들 사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지게 되었고, 정치권에서는 보수적인 ‘국민의힘’까지를 포함하여 너도나도 기본소득 정책 경쟁이 시작되었다.
한편, 코로나19재난은 고용이 안정되고 사회보험 뒷받침이 견고했던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정규직 대부분을 크게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평상시 고용이 불안하고 기본 사회안전망 밖에 있었던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그리고 영세 상인들이 일감과 매출 축소, 소득손실 충격을 많이 받았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고용보험이 2800만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취업자만 포괄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정의당과 정부는 2020년 5월 1일, 취업자의 절반밖에 포괄하지 못하는 고용보험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편해서 자영업자를 포함한 전체 취업자를 고용안전망 안에 넣는 ‘전국민고용보험’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을 동시에 했다. 이후 정부는 단계적 추진으로 한발 물러났지만 정의당은 전면적 도입을 위한 입법발의를 하는데까지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에서는 기본소득이냐 전국민고용보험이냐를 놓고 선택의 문제로 논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코로나재난 상황에서 부각된 사회적 문제들이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으로 방어가 가능하다는 것일까? 최근 논의들을 보면 다양한 사회경제적 난제들이 매개 없이 마치 만능의 열쇠처럼 기본소득으로 환원되는 듯한 느낌도 있다. 당장 현실적으로 기본소득 정책을 검토할 경우, 저소득층 생계보장으로 기본소득을 오용하는 국민의힘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체로 우리가 접하는 기본소득은 소득보장제도의 한 유형으로서 소액으로부터 시작하는 부분기본소득과, 농민이나 청년 등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하는 범주형기본소득 두 종류다. 부분기본소득의 경우 당장 국내총생산 10%(모든 국민에게 매월 30만원 지급)를 지급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대체로는 이 정도 규모를 중기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현재의 재난상황에서 소액의 기본소득이 1회용 단기 응급처치를 넘어서 지속적인 소득 안정화 시스템으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더욱이 코로나 재난이 2020년에 국한되지 않고 관련 전문가들의 전망대로 앞으로 2년 가까이 더 지속될 경우, 재난으로 잃은 소득과 일자리를 떠받치는 안전망으로서 기본소득이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평상적인 경제상황이라면 소액의 기본소득 지급을 경험해나가면서 점차 규모를 키우는 정책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유래없는 실업과 고용불안, 소득불안이 노동자와 시민들의 삶을 크게 위협하는 상황이 아닌가? 이 차원에서 보았을 때 전국민 고용보험까지 포함하여 현재의 기본소득 논의는 뭔가 공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수 국민들이 미세한 ‘소득부족’에 처해있는 것이 아니라, 역성장으로 인한 민간고용의 큰 충격으로 일자리의 갑작스런 감소와 민간 고용시장의 전반적 불안정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소액의 기본소득도 전국민고용보험도 민간 노동시장에서 위축되고 파괴되는 상당 규모의 일자리 불안정을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다.
필자 역시 원칙적으로 기본소득 원리를 지지하지만, 위와 같은 점들을 감안할 때 기본소득 논의와 별개로 고용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공공정책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최후의 고용주(employer of last resort)로서 완전고용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 루스벨트 뉴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오랜 기원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 현대통화 이론(Modern Monetary Theory)진영의 유력한 정책제안으로 고용보장제(Job Guarantee)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안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고용보장제도가 적극적으로 검토된 바가 없는 것 같다. 지금이야말로 기본소득제도, 전국민고용보험제도(또는 취업자 소득보험제도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와 함께 고용보장제도를, 재난시기를 대처하는 주요 정책의제 테이블위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고용보장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포스트케인지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검토해볼 것이다. 원래의 고용보장제는 재난상황과 같은 특수한 상황을 감안해둔 정책은 아니고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작동되어야 할 경기안정화 장치 목적으로도 설계되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재난상황에서 특별히 절실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나아가 코로나19 재난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자면 소득과 고용, 사회안전망의 모든 측면에서 기존 제도의 취약점들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개혁방안을 모색하고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한국 고용시장의 충격과 기본소득의 한계
우선 본격적으로 고용보장제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시장의 충격이 실제 어느정도 였는지를 확인해보자. 현재의 노동시장 여건에서 최대 월 30만원 이하의 소액 소득을 꾸준히 보장하면, 일정하게 안정된 고용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상태인가를 점검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 취업자수의 변화를 보자. 고용충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 2/4분기와 3/4분기를 살펴보면, <그림1>에 나와 있는 것처럼 코로나 19로 인한 취업자 감소의 충격은 명확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심각하다. 상용직 노동자들의 증가폭이 줄어든 것도 일단 눈에 띄지만 전년대비 마이너스로 감소하지는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중적인 피해를 받은 일자리는 확실히 임시직이었다. 2/4분기에는 전년 대비 무려 50만 가까운 순 감소가 일어났고 3/4분기에 다소 회복했지만 여전히 34만 명 가깝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림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일용직 역시 2/4분기에 –15만 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일반적으로 예측했던 대로 사용직과 같이 안정된 일자리보다는, 임시직과 같은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고용감소 충격이 훨씬 심각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며, 그 정도가 일상적인 경기순환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는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고용상황을 실업률 지표로 재확인해 보자. 통상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는 실업자수를 살펴보면, 2/4분기에 약 120만 명이었고, 3/4분기에 100만 명으로 줄어들어서 특별히 이전에 비해 큰 규모는 아니다. 1년 전인 2019년 1/4분기에도 실업자수는 120만을 넘었다. 하지만 (고용보조지표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는) 확장 실업자로 주의를 돌려보면 얘기가 다르다. 고용보조지표가운데 가장 넓은 확장실업 통계는 추가취업가능자, 잠재적 취업가능자, 잠재 구직자를 모두 포괄한다. 그런데, 단시간 노동밖에 하지 못해서 추가취업이 가능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과거에는 50~70만 수준을 맴돌다가 2020년 2/4분기에는 그 두 배에 해당하는 120만을 넘기도 있다. 엄청난 팽창이다. 또한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취업을 희망하는 잠재적 구직자는 3/4분기에 185만 명까지 증가했다. 그 결과 확장 실업자는 2/4분기에 430만명, 실업률 14.4%까지 뛰어오르게 된 것이고 3/4분기에도 최고 수준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완전실업을 포함하여 체감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400만 명을 넘는 상태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면, 이는 현재 논의되는 소액기본소득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은 상식적으로도 분명하며, 설사 당장 전국민고용보험 제도가 도입되어도 장기화 될 고용불안 상황을 보험체계로만 떠받치는 것 역시 매우 힘겹게 될 것이다. 따라서 소득보장이나 사회보험개혁과 별도로 고용불안을 해소하고 일자리 안정화를 달성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이 필요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까지는 응급조치로 코로나 재난기간 동안 ‘한시적 해고금지’나 ‘고용유지지원’을 해오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매우 부족한 것도 명확하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림2>에 볼 수 있는 것처럼, 코로나 충격으로 일시적인 휴직에 들어간 사람들이 지난 20년 역사상 평균적으로 40만명을 밑돌았지만, 2020년 4월 150만명에 육박하는 등 2분기에는 역사상 최초로 100만 명을 넘었고, 3분기에도 80만 명에 가까운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 재난이 길어지게 되면 이 만큼의 숫자가 공식적인 실업자 대열에 합류할 위험성이 얼마든지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노동공급차원에서 보면, 코로나19로 구직활동을 하는 통상적인 실업자는 물론이고, 비경제활동인구로 통계상 집어넣었지만 실질적인 실업자까지를 포함하여 400만명이 넘고, 여기에 일시적 휴업자까지를 포함하면 줄잡아 500만 명 이상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20년 동안 한국 노동시장에서 일찍이 유래가 없는 심각한 노동시장의 붕괴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대부분이 임시직, 계약직, 프리랜서 등 불안정 노동자이어서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이들의 일자리 붕괴를 소액의 소득보전으로 도저히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기본소득 주창자들이 고용보장제도를 비판하는 논리인, “고용보장이 자칫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사실상 강요된 고용(forced hiring)과 강요된 노동(forced labor)을 안기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는, 지금의 심각한 고용 현실 상황에 비교해 매우 한가한 논리가 된다(판파레이스 2018). 실업에 빠진 사람들에게 통상 임금의 절반 이상을 보전해주는 강력한 소득보장이 아니라면, 사실상 코로나19로 인해서 강요된 실업(forced unemployment)으로부터 새로운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부의 정책이 되어야 정상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 실업기간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차후에 일자리를 얻고 싶어도 취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더욱이 노동수요의 차원에서도 지역 등에서 코로나19로 인해서 아이나 노인 돌봄 등 무수한 돌봄인력 수요가 생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적 기업들이 수익성이 없어 여기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해봐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금 코로나19가 한편에서는 노동 공급시장을 붕괴시키면서도, 동시에 돌봄을 중심으로 한 노동 수요를 급증시키는 특수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을 보지 않고 기본소득을 통한 소득보장만을 반복하는 것이 적절한 정책처방인지는 심각히 고민해 봐야 한다.
고용보장제도 – 기업은 고용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가 최후의 고용주가 되어 공공부문에서의 고용을 통해 실업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은 루스벨트 뉴딜에서부터 이미 다양하게 실천되고 확대되어 온 정책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고용보장(job guarantees)인가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인가 하는 논쟁이 1960년대 미국에서 이미 활발한 정책논쟁이 되었던 경험이 있단다. 1960년대말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후보로 나온 허버트 험프리(Hubert Humprey)가 고용보장제도를 들고 나왔을 때, 베트남 참전 반대를 주장했던 조지 맥거번(George McGovern)은 고용보장 대신에 당시에는 덜 대중적인 연소득 1000달러라는 데모그란트(demogrant) 또는 기본소득을 제시했던 것이다. 경선은 허버트 험프리의 승리로 끝났지만 대선에서 승리한 이는 공화당의 닉슨이었기 때문에 논쟁의 실천적 결과는 없었다.
험프리와 맥거번의 정책 논쟁은 1972년 민주당 경선에서도 재연되었다. 험프리는 노동조합(AFL-CIO)이 지원을 받았고 맥거번은 부유한 교외 리버럴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에는 맥거번이 대선 후보로 결정되었지만 역시 공화당 닉슨에게 패배한다. 대신 닉슨 대통령이 계획했던 고용보장계획이 의회를 거치면서 변형되어 근로장려세제(the Earned Income Tax Credit)로 귀결되었고 지금까지 소득지원정책으로 살아있게 된다. 1976년에 험프리 호킨스법(Humphrey –Hawkins Act)으로 고용보장이 다시 제안되었지만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았고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고용보장제도는 오랜 동안 잠겨버리게 된다.(Aigner. Brenes 2018).
고용보장제도는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현대통화이론을 주창하는 일군의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이 세련되게 구성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대안 정책 테이블에 올려놓기 시작하면서 다시 부활하기 시작한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실업이 급증하고, 이후 경기회복과정에서도 고용회복만큼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면서 정부의 고용책임에 대한 문제제기는 조금씩 커져간다. 하지만 2010년대는 워낙 재정건전성 신화와 긴축정책에 대한 압력이 보수로부터 강력하게 제기되었고, 많은 국가들에서 경기를 회복시키는데, 재정적 수단보다는 양적완화와 같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의존하게 되자 고용보장 정책이 현실에서 뿌리를 내리기 어렵게 된다.
고용보장 정책이 다시 탄력을 받게 된 것은 중앙은행의 이례적인 통화정책조차 실물경제 회복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성찰과 함께, 2018년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그린뉴딜 정책이 고용정책과 연계되면서 부터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코로나19라는 고용붕괴 상황이 고용보장 정책을 재부상시킬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사실 2010년대 기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적어도 미국에서는 기본소득보다 고용보장 정책이 더 선호도가 높았다. 기본소득이 최근에 갑자기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지만, 전통적으로는 고용보장 정책이 훨씬 시민들에게 친숙한 정책의제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면 최근에 다시 부상하고 있는 고용보장제도는 어떤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는가? 한마디로 민간 노동시장에서 적절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일하기를 원하는 모든 시민들에게 정부가 책임지고 일자리를 만들어주자는 제안이다. 일을 하겠다는 모든 실업자들에게 사전에 정한 임금에 따라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존 경제학의 통념과 근본적으로 다른 실업과 고용을 바라보는 관점이 놓여있다. 특히 일자리를 잃는 실업이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을 만한 큰 개인적, 사회적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일정한 수준의 실업률’을 용인하는 따위의 정책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업이나 불안정 고용이 낳는 “비용은 충격적일 만큼 크다. 이는 실업과 불안정 고용이 잔인하고, 고질적이며, 죽음으로 모는 사회적으로 병으로 간주해야 함을 의미한다”(Tcherneva 2020).
체르네바는 실업을 없애는 문제를 문맹 퇴치에 비견한다. 일정 수준의 문맹률을 유지하는 정책이 문명국가에서 말이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극히 해로운 실업에 대해서도 적정한 ‘자연 실업률’ 따위가 존재해야 한다는 논리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맹을 제로 수준으로 퇴치하기 위해서 국가가 사립학교들 외에 국 공립학교를 세우고 일정 수준까지 의무교육제도를 두어서 공공재원으로 ‘한 사람의 국민도 남김없이 모두’ 사회 구성원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것처럼, 고용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기존 경제학에서는 마치 물가와 실업이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실업을 크게 낮추면 물가상승 압력이 커진다며 ”실업을 물가 상승의 방어벽“으로 이용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사실 실업과 물가의 인과관계는 물론이고 상관관계 조차도 최근 10년 동안의 세계경제를 보면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한편 민간기업들이 더 많은 고용을 하도록 지원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기업은 수익을 내기 위해서 고용을 수반시키는 것이지 기업의 제1 목적이 고용은 아니므로, 사기업들이 노동시장을 통해서 완전고용에 안정적으로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기업을 통한 고용’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정부가 재정적인 뒷받침 아래 최후의 고용주로서 실업의 완전 해소를 책임지고, 수익보다는 사회적 필요를 감안해서 공공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주 간단히 요약한 고용보장의 배경적 논리이다(체르네바의 책에 대단히 상세하게 배경논리를 풀어내고 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사람돌봄, 지역사회돌봄, 환경돌봄으로 고용보장 필요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국가가 고용을 보장하는 체계를 짤 것인가? 많은 이들은 국가가 임의적으로 창출하는 공공일자리에 대해서 일정하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만들어졌던 공공일자리나 최근 한국형 뉴딜로 만들려고 하는 공공일자리 등에 대해서 ‘경력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꼭 필요한 일도 아닌 일’을 고용을 위해 임의적으로 만들었다는 인상을 갖기 때문이다. 이는 90년 전 루스벨트 뉴딜의 경험이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국가가 임의적 만든 일자리에 ‘강제로 노동’해야 한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앤디 스턴, 리 크래비츠 2016).
그런데 고용보장제에서 주장하는 공공일자리 창출은 위에서 요약한 내용들과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과거처럼 하향식으로 중앙에서 일자리를 기획한 후, 취업 희망자를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적정한 일자리는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한마디로 상향식으로 지역 현장에서 노동의 수요를 발견하고 이를 모아나가는 방식을 취하자는 것이다. 즉, 지역차원에서 공동체들과 시민사회 사이의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이 당장 필요로 되지만, 수익성 보다는 공공성이 높아 사기업들이 떠안으려고 하지 않는 일거리를 공공일자리로 발굴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별로 한국의 경우 이미 100개 이상이 설치된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같은 취업지원 기관들을 활용하여, 일종의 ‘일자리 은행’을 운영함으로써 필요 일자리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한다. 이를 기반으로 지역별로 일자리를 원하는 구직자들이 찾아오면 누구나 일자리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지역에 적절한 일자리가 있을 수 있을까? 체르네바는 지역의 곳곳에서 돌봄 일손이 ‘부족’하다고 단언한다. 지역의 부족한 일손을 그는 ‘돌봄’일자리라는 개념으로 통합하는데 거기에는 사람돌봄, 지역사회(공동체) 돌봄, 그리고 환경돌봄이 포함된다. 그가 예시한 일자리를 확인해보자. 먼저 사람돌봄 일자리는, ”노인 돌봄, 방과후 학교, 환자나 장애인 등에 음식배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아이들, 위험 청소년, 퇴역군인, 출소자, 장애인 등을 위한 특별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각 학교 학생들의 영양조사, 젊은 엄마들을 위한 건강인지 프로그램, 학교와 지역 도서관이 개최하는 어른을 위한 자기계발 강좌, 종일반 아동 돌봄 등을 조직하거나, 교사, 운동 코치, 호스피스 노동자, 도서관 사서 등을 보조하는 일 등도 있다. 일자리보장제는 또한 지속 가능한 농업의 일환으로 도시 농장, 협동조합, 강화 및 훈련, 수습 등을 조직“할 수 있단다.
지역사회 돌봄은 어떤가? ”공터 대청소, 버려진 자원 개간, 소규모 인프라 시설 건설 및 복원, 학교 정원 만들기, 도시 농업, 공동 작업실, 태양광 패널 설치, 공구 도서관, 다양한 강좌와 프로그램, 놀이터 만들기, 역사 유적지 복원, 마을 극장 조직, 카풀 프로그램, 재활용, 물 재사용과 집수 시설 건설, 음식물 쓰레기 프로그램, 이야기로 들려주는 역사 프로젝트“등이 예시된다. 마지막으로 환경돌봄의 경우 ”홍수예방, 생태조사, 멸종 위기 생물 모니터링, 나무 심기, 공원 보존과 재생, 친입성 식물 제거, 지역 어장 구축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환경 프로젝트는 끝이 없다“고 지적한다(Tcherneva 2020).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방과 후 아이 돌봄이나 노인 돌봄을 위시하여 위에서 열거한 많은 일자리는 지방정부들이 이미 다양하게 시행하는 경우도 많다. 고용보장제도는 상시적이고 전문적으로 접근해야 할 지역 돌봄 일자리의 경우 고용보장제 범위가 아니라 정규직 고용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해소되지 않은 상당한 인력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가 예산제약 등으로인해 매우 국지적이거나 일시적으로만 해결하는 돌봄 일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재난으로 인해 지역단위에서 돌봄일손 부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과 학생들의 온라인 수업이 잦아지고 복지관을 포함한 공공 공간이 잇달아 장기 폐쇄되면서 돌봄업무가 가정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뚜럿해 졌지만, 돌봐야 할 가정 구성원은 일자리 불안정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재난시기인 지금이야 말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역 돌봄 일자리를 창출해야 할 필요가 압도적으로 커지고 있다.
고용보장제는 일자리를 요청하는 모든 구직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임금은 차이를 두지 않고 일률적으로 생활임금 수준으로 맞추고 사회보험을 보장하도록 설계한다. 다만 노동시간은 풀타임과 파트타임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고려한다. 생활임금으로 맞춘 고용보장제는 민간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을 지탱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사기업이 생활임금 아래로 고용을 하려하면 구직자들은 차라리 고용보장제로 발길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에서 체르네바는 고용보장제를 실시할 경우 대체로 소요재정을 경제규모(GDP)대비 1~1.5% 범위에서 추정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다시 정교하게 계산을 해봐야겠지만, 위의 기준으로 거칠게 산정을 한다면, 우리나라 기준으로 약 100만 명 내외를 고용할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면 늘 나오는 질문이 소요재원을 감당 할 수 있는가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용보장제를 주장하는 이들은 현대통화이론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통화주권을 가진 정부가 필요한 지출을 하기 위한 예산제약이 있을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유일한 제약은 실물자원을 더 이상 동원할 여력이 없는 경우다. 그런데 지금은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들이 넘쳐나고 다른 편에서는 일손 부족도 심각하므로, 실물경제에서의 쉬는 노동공급과 채워지지 않은 노동수요를 채우기 위해서 오히려 정부 지출이 절실하게 된다 사실 현대통화이론을 빌릴 것도 없이, 완전고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비용으로 경제규모의 1.5%내외를 지출하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통해 2021년에 36만 개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면서 투입하는 예산이 총 21조 3천억 원으로 이미 GDP 1%를 넘는다. 이외에도 고용창출과 유지를 지원하겠다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예산 또한 만만치 않다. 특히 앞서 지적했듯이 실업이 초래하는 개인적, 사회적 비용과 충격의 크기를 감안했을 때 고용보장에 투입되는 공적 지출규모가 절대 과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개혁정책의 마지막 퍼즐, “원하는 누구나 일자리를 갖게 하자”
남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코로나19재난에서의 회복을 녹색회복-그린뉴딜 정책으로 돌파하려는 세계적인 움직임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도 비록 한국판 뉴딜의 하위 의제이기는 하지만 그린뉴딜 정책을 공식적으로 5개년 국가 프로젝트로 선정하고 추진중에 있다. 2019년 2월 오카시오 코로테스 하원의원과 에드워드 마키 상원의원이 주도하여 제출된 미국 그린뉴딜 결의안 등에 따르면, 대체로 그린뉴딜은 강력한 일자리 창출 정책과 결부되어있다(물론 한국의 녹색당을 포함해서 일부는 그린뉴딜정책과 기본소득 정책을 조합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적인 비상조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대규모 공공프로젝트가 추진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제시된 그린뉴딜 정책은 동시에 코로나19 재난의 위기돌파 전략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린뉴딜 정책으로 추진되어야 할 재생에너지 발전, 녹색교통전환, 그리고 주택과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 등이 기존 화석연료 산업에 비해 더 많은 그린칼라(Green Collar)일자리를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그린뉴딜 정책과 고용보장 정책을 적절히 연결해서 추진하는 것은 정책적 상호 촉진 효과는 물론이고, 실행과정을 더욱 명확히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정리를 할 차례다. 코로나19재난 상황에서 심각하게 증폭된 실업과 반실업, 휴직, 그리고 불안정 노동의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이 상황을 타개할 방안으로 소액 기본소득과 전국민고용보험이라는 정책 수단으로 해소되지 않는 정책적 공백이 보인다. 당분간 시장에서 대규모 고용불안이 수습되지 않은 채 방치될 개연성이 높다면, 약간의 수당지급이나 사회보험체계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포괄적인 고용창출과 안정화가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최후의 고용주로 나서서 공적 재원을 동원해서 생활임금 수준으로 “원하는 누구나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제공되는 일자리는 지역기반의 사람돌봄, 지역공동체 돌봄, 그리고 환경돌봄(그린뉴딜)이 될 수 있다.
고용보장제로 기본소득제도나 전국민고용보험제를 대체하자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본소득의 경우, 현재 시점에서는 소액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 개인에게 지급하는 것보다는, 청년, 농민, 아동, 노인 등 주로 비경제활동 인구를 대상으로 한 범주형 기본소득을 더욱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개인적으로 여기에 덧붙여 가정의 돌봄 노동이 급격히 증가되는 상황에서 주부 기본소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전국민고용보험제도는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이기 때문에 당연히 병행되어 전면실시되어야 한다. 현재의 코로나 국면은 이런식으로 기본소득과 고용보험(소득보험),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고용보장제라는 마지막 정책 퍼즐이 결합되면 정책적 시너지가 더 증폭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이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재난시대 통합정책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아직 우리나라에서 고용보장제도는 낯설다. 필자도 고용보장제도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놓여있는 현실이 복잡하면서도 엄혹한 만큼, 소득보장 정책, 사회보험정책과 함께 고용보장정책을 대안 정책 테이블에 올려놓고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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