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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정의로운 경제] 시민 불편 뒤 숨어있는 기업 논리

기후시민은 왜 기업에게 패배하는가?
  • 입력 2021.09.30 11:03      조회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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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문제의식과 실천 사이의 커다란 간격

지난 9월 24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글로벌 기후파업이 보여주는 것처럼,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치영역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 기후선거의 특징이 점점 강하게 부각되는 중이다. 26일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기후위기 대응은 주요 선거쟁점의 하나였으며, 한때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녹색당이 14.8퍼센틀를 득표해 제3당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유럽 최대 석유 생산국인 동시에 세계 3위 천연가스 생산국인 노르웨이는 지난 14일 치러진 총선에서 자국의 화석연료 채굴을 더 해야 하는가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불과 2~3년 만에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9명은 “기후위기 대응을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응답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심각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는 심각성이나 방향이 엇갈린다.

우선 10년 안에 탄소배출을 절반 이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느냐 하는 데부터 갈린다. 산업계나 정치권은 기술적, 재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하게 반발한다. 파격적인 탄소배출 감축에 동의하는 경우에도 재생에너지냐 핵발전이냐를 두고 방법이 크게 분열된다. 비록 재생에너지가 대안이라고 받아들이는 경우에도 얼마나 빨리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다 보니 기후위기에 대처하자는 시민캠페인 목소리는 높지만, 막상 실천행동 수준들은 일회용기 덜쓰기 등 극히 기초적인 사례들만 제시된다. 문제의식과 실천 사이에 엄청난 간격이 존재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기후위기 대처방안을 두고 분열될까? 혹시 기술적 한계일까? 혹자의 얘기처럼 대한민국 다 덮어야 할 정도로 태양광을 많이 설치해야 하고 그래도 간헐성 문제 때문에 안된다는 주장이 맞을까? 아니면 재정부담이 한계일까? 최근 한 언론보도처럼 재생에너지 저장장치 투자만 1천조 원 이상을 해야 하기 때문일까?

얼핏 보면 기술이나 재정보다 더 큰 장벽은 ‘시민들의 불만’인 것 같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빠르게 기존 화석연료에서 벗어나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에 시민들이 흔쾌히 동의를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지역마다 태양광 설치를 두고 민원이 끊이지 않는 것만 봐도 그렇고, 화석연료 비용상승에 따른 전기료 인상에 크게 반발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렇게 판단해버리면, 시민의 공감대가 낮으니 작은 실천부터 해보자는 얘기들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예전처럼 작은 실천을 하나씩 쌓아나가는 식으로는 급속히 악화되는 기후위기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기후위기와 시민실천의 게임에서 시민실천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디서 해법을 찾아야 할까? 문제를 좀 더 들여다 보자.

전기료 인상에 누가 분노하는가?

얼마 전에 한국전력이 이번 4분기부터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미디어 여기저기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경제상황에서 분명 좋은 소식은 아니다. 그러면 내용을 들여다보자. 8년만에 1Kwh당 3원이 올랐는데, 한 달에 100KWh를 사용하면 300원쯤 더 내는 것이다. 4인 가구가 사는 집을 기준으로 하면 매달 평균 1천원 정도 더 낸다고 한다.

이 정도면 서민 생활에 큰 충격이 오는가? 비교를 위해 다른 곳을 좀 들여다 보자. 최근 기름값이 꽤 올랐다. 기름값이 1리터당 50원 올랐다고 가정해보자. 40리터를 넣는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면 매번 2천원이 인상된 셈이다. 한 달에 4번 주유를 한다면 매월 8천원의 추가부담이 생긴다. 아마 자가용을 이용하는 많은 시민들이 최근 몇 달 사이에 자신들도 모르게 이 정도 부담을 안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모두 눈감고 말하지 않는다.

택시를 더 빨리 부르기 위해 추가로 1천원 정도 비용을 내는 카카오 스마트 호출 서비스가 있다. 지난 8월 카카오는 이를 최대 5천원까지 올리겠다고 했다가 거센 여론의 비난을 샀다. 그런데 사실 스마트 호출 1천원도 문제다. 택시비 기본요금을 올리자고 하면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 무수한 격론을 벌이는데, 그동안 카카오는 소문도 없이 ‘스마트콜’이라는 제도를 도입해 사실상 기본요금을 1천원 인상한 효과를 냈던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1년 전력소비 500TWh 가운데에서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은 15퍼센트를 밑돈다. 제조업이 50퍼센트 가깝게 사용한다. 그럼에도 전기료 인상이 오직 서민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미디어에서는 묘사된다.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석탄화력을 대폭 줄이거나 석탄화력에 탄소부담비용을 물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전기료가 인상될 수 있다. 그 부담은 압도적으로 탄소집약적 산업과 기업으로 가게 되어 있는 것이지 서민 가정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기업들은 시민들이 전기료 인상을 반대하도록 조장하면서 자신들은 뒤에 숨어 무임승차하려는 것이 아닐까?

배달산업의 폭발, 함께 폭발한 일회용기 부담은 누가 지나?

다른 사례를 보자. 탄소배출을 줄이자면 자원의 재생과 순환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민들이 일회용 컵이나 용기를 줄이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런데 이런 노력들을 한방에 무력화시키는 이슈가 발생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상황이 강제되자, 많은 시민들이 가정에서 배달음식이나 배달상품 주문을 크게 늘린 것이다.

지난 2020년 음식배달이 전년에 비추어 무려 78퍼센트가 증가했다고 한다. 엄청난 증가이고 이에 비례해서 일회용 배달용기가 폭발했음을 알 수 있다. 일회용기가 다회용기에 비해서 탄소배출이 35배나 더 많다는 보고도 있다. 그런데 일부 단체에서 다회용기 캠페인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폭증한 일회용기를 다회용기로 대처하자는 움직임이 어디서도 제대로 일어나지는 않고 있다.

한쪽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전례 없이 높아지는 가운데, 다른 쪽에서는 비대면 상황을 이유로 일회용기 사용이 폭증하는 국면은 어딘지 매우 자기모순적이다. 역시 시민들이 다회용기 사용의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어서라고 답변하고 끝날 것인가? 이 대목에서 중요한 이슈의 하나는 비용이다. 다회용기를 사용하기 위해서 용기제작과 배포, 회수, 세척에 이르는 비용을 누가 댈 것인가? 영세한 골목 음식점 사장님들은 배달 수수로 지불하기에도 바쁘다. 결국 큰 수익을 올리고 있는 주문 플랫폼 기업들과 공공이 함께 부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들은 모른체 외면하고 있다.

왜 소소한 정도의 태양광발전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나?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석탄화력발전소 대신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거의 세계적인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핵발전이 대안이라면서 재생에너지 대안을 갖가지 이유로 부인하는 흐름이 여전히 매우 크다.

태양광으로 전력생산을 대체하려면 어마어마한 국토면적이 필요하다거나, 패널 폐기물이 문제라거나, 태양광의 간헐성 때문에 근본 한계가 있다거나 등등 수많은 기술적 이유를 댄다. 그러면 우리보다 조금 더 많은 연간 전력소비를 하는 독일은 어떻게 45퍼센트 이상의 에너지를 재생에너지에서 얻을까? 영국, 스페인, 덴마크, 아일랜드, 호주 등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모두 20퍼센트를 넘는다.

우리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약 7퍼센트 전후를 겨우 오간다. 전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대략 20GW 전후다. 우리가 만약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절반으로 줄이자면, 매년 지금까지 설치한 태양광과 풍력 전부만큼을 매년 늘려야 한다. 그런데 매년 20GW는 고사하고 매년 2GW를 추가하기 위한 제대로 된 전략도 없는 상황에서 태양광 설치가 너무 남용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많은 경우 ‘시민과 주민의 이름으로’ 비판되고 있는 것이다. 태양광을 급격히 늘려서 탄소배출을 줄이고 기후위기를 억제하면 가장 많이 이익을 보는 것이 시민들일 텐데 말이다. 물론 이유 중 하나는 많은 태양광 설치가 지역 주민이 아니라 발전사업자와 부지소유자만의 이익을 고려해서 추진되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 핵발전 이해관계자들과 미디어들이 이를 증폭시키는 것은 아닐까?

발상의 전환을 해야 기업 논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전기료 부담도, 일회용 용기의 부담도, 태양광으로의 전환도 겉으로 보면 시민들의 불편과 불만이 있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알고 보면 뒷면에서 강한 기업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하다. 마땅히 전환비용을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데도 그걸 회피하고 시민들에게 떠넘기면서 시민들의 불만의 등 뒤에서 기업이 숨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림1. 독일 녹색당과 사회민주당의 몇가지 기후위기 공약 비교


이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년에 얀 이달고 파리시장이 ‘모든 일상을 가급적 걸어서 15분 거리에서 해결하자’며 15분 도시를 들고 나온 사례가 그것이다. 한국의 도시들이서 주차난에 시달리면서 고작 한다는 혁신이 ‘주차공유’ 아이디어에 맴돌 때, 파리는 아예 자동차가 크게 필요 없는 도시를 만들자며 6만여 개의 공공주차장을 없애겠다고 공약했다. 이때부터는 주차장을 얼마나 알뜰하게 쓸 것인지가 아니라 자동차를 어떻게 없앨 수 있을지로 논쟁의 틀이 바뀐다. 이렇게 발상을 바꾸면 훨씬 미래의 가능성이 보이게 되고, 일거에 기업 논리를 꺾고 시민들의 전폭적 동의를 얻기가 더 쉬울 수도 있다.

독일 총선에서 녹색당은 우리가 가진 전체 설비용량에 해당하는 20GW의 재생에너지를 매년 짓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위해 아예 전 국토의 2퍼센트를 재생에너지 설비에 할당하겠다고 했다. 국토면적의 얼마를 재생에너지에 희생해야 하냐고 논쟁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국토면적을 포함해서 가용한 모든 자원을 재생에너지를 위해 구축해야 기후위기를 피할 수 있다는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인가?

파리의 사례나 독일의 사례는 지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금 전기료 문제나 일회용기 문제, 재생에너지 확대 문제는 시민의 논리가 아니라 기업의 논리에 갇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탈출하려면 아예 발상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는 발상의 전환을 하는 후보에게 관심을 가져보자.

* 이 글은 '레디앙'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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