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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정책과 서평34] 코로나19에서 배우는 기후위기 대처법

  • 입력 2021.10.16 21:15      조회 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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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터지면서 정말 많은 이들이 인류를 위협하는 두가지 팬데믹과 기후위기가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일찌기 기후위기를 '그린스완'으로 표현하면서 그 독특한 위험성을 강조했던 국제결제은행(BIS)는 팬데믹도 위기 도래의 확실성과 시점의 불확실성, 전파속도의 범지구성, 마땅한 대응책의 부재 측면에서 기후위기와 유사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웨덴의 맑스주의 생태학자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의 책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Corona, Climate, Chronic Emergency)>만큼, 정말 풍부하고 체계적으로 코로나19와 기후위기라는 두 위험이 갖는 공통성과 차이를 다각도로 설명해낸 책은 보지 못한것 같다. 이번에 번역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지금까지 제안된 가장 극단적 기후위기 비상행동방안보다 2020년 3월 이후 실제 시행된 코로나19 비상조치가 더 강력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비현실적이라는 반발은 고사하고 잘만 시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반문한다.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운동가의 요구가 너무 과하다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이다.

"기후를 구하기 위해 세계 자본주의가 단 하룻밤 사이에 일시 중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없었다. 탄소배출량이 30일 만에 1/4수준으로 감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없었다. 연간 5~10퍼센트 감축 요구는 이치를 모르는 극단주의라고 매몰차게 거부되었다. 인류가 자가격리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비현실적이라느니, 비실용적이라느니, 이상주의자라느니,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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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2020년 3월 이후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각국 정부가 취한 조치는, 지금 기후위기 대처를 위해 요구하는 조치보다 훨씬 가혹했고, 훨씬 파격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전혀 불가능하지 않았고, 순식간에 주요 국가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시행했다.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엄청나게 파격적인 조치들(봉쇄, 폐쇄는 물론이고 경제가 무려 -5~10%추락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큰 저항없이 수용했다. 

기술부족을 이유로, 국민들이 불편해할 것이라는 핑계로, 경제가 추락하고 물가가 폭등할것이라는 협박으로, 산업계가 매우 힘들어한다는 현실을 들어서 탄소배출 목표치를  숫자 조작에 가까운 행위로 낮춰잡고, 온갖 핑계로 끝없이 '불가능'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번쯤 들어봐야 할 얘기들이다(어떤 대목에서는 나 자신도 반성이 될 정도로 저자는 적나라하게 코로나19와 기후위기 대처를 직설적으로 비교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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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두 번째 섹션에 들어가면서, 팬데믹 대처의 경험을 교훈으로 해서, 기후위기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한다. 우선 저자는 두 가지 전통적인 방식에 대해 회의적으로 질문한다. 

첫째, 사회민주주의의 진화가 기후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왜? 

"사회민주주의가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근현대 혁사상 가장 평온한 사회가 도래했을 때였다. 최고 중의 최고는 아마도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의 스웨덴 사회일텐데, 최근 미국 내 젊은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이 시기 스웨덴이 찬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그러한 평온한 날들이 장기 비상사태 시국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시간은 우리편'이라는 가정 위에서 생명력을 유지한다. 시간이 엄청나게 많아야만 한다. 그런 경우라면 우리는 좋은 사회를 향해서 천천히, 상승계단을 밟아가며 이행할 수 있을 것이다. 적대 계급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그들의 권력을 깨부술 필요도 없다. 그러느니 차리리 물방울처럼 스며들어 바꾸는 방식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비상사태'국면이다. 따라서 비록 지금도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 그나마 기후위기 대처를 잘 하고 있지만, 사회민주주의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풀 수는 없다는 것이 (사회민주주의 모범국가 스웨덴 출신의)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저자는 "점진주의를 위한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못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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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두번째로, 지역의 자발적인 공동체들과 시민사회들의 역동성에 기대는 아나키즘의 진화가 기후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저자는 역시 아니라고 단언한다.

물론 "펜데믹이 발생한 후 초기 몇 주간, 우리는 '상호부조'의 개화를 목격했다. 지역사회는 모임을 꾸려 극도의 곤경에 빠진 이들을 도왔다. 처방전을 대신 받고, 자기격리중인 노인들을 대신해 장을 보고, 마스크를 나눠주고, 푸드뱅크를 만들었다. 화장지, 생수, 속옷 등으로 구성된 구호 키트를 제공했으며, DIY 정신으로 손 소독제를 생산했다."

하지만 이런 정도로는 어림없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정작 코로나19가 급습했을 때, "독일 정부는 제발 다른 식으로 살아가기를 고려해 달라고 자국민들에게 애원하지 않았다. 대신 슈테글리츠의 쇼핑몰을 폐쇄하라고 지시했고, 크로이츠베르크 유원지를 봉쇄했다. 시민들의 건강이나 신체적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가장 양심적이지 않는 종자들이 마음껏 불장난을 벌이도록 내버려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따라서 기본적으로 지역공동체가 아니라 국가로 향한다. "제대로 작동하는 복지기구를 갖추고 국가가 보호해주는 지역사회가, 국가 부재 상황에서 간신히 생존해야만 하는 처지의 지역사회보다 훨씬 더 건강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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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 그러니까 저자의 주장은 기후위기는 '비상사태아래에서의 비상행동'이 필요한 사안이고 이는 국가가 중심이 되어서 '비상조치'방식으로 풀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후위기 대처를 위해 지금 우리는 2030년 탄소배출 50%를 말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70%까지 주장한다. 어떻게 더 맞냐는 논쟁에서 벗어나 다시 진화시켜야 한다. 그럼 올해는? 내년에는 얼마나 줄여야 하는데?  2050년 50%감축만 하려해도 우리는 매년 8퍼센트씩 탄소배출을 감축해야 한다. 자 그러면 이렇게 물어야 한다. 2022년 8%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무얼 할려고 하는가? 

저자는 이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매년 "8퍼센트 감축을 달성하려면 포괄적이면서도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모두가 이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당연히 우리는 자발적 수요중단이나 여행 중단에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이행기 내내, 한 종류의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로 계속해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우리사회는 탄소배출 감축 목표 수치얘기만 하지, 실제 이를 어떻게 오늘, 올해, 내년에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목표 실행을 위해서는 수요과 공급의 모든 측면에서 팬데믹에서 겪었던 수준의 '국가의 통제'를 얘기한다.  

이게 저자가 말하는 '생태 레닌주의'이다. 기후위기 대처를 '비상행동'으로 막아내야 하는데 이는 유일하게 '국가'만이 가능하게 한다. 국가를 전복함으로써가 아니라 민주적 압력으로 국가가 비상행동에 나서도록 만들자는 제안이다. 

왜? 전환의 시기 동안 "야생동물 소비의 불법화, 대규모 항공운항 종식, 행복한 삶의 일부로 여겨지는 육류나 다른 제품들의 단계적 폐지를 이뤄내야 한다. 이 중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하거나 불편을 겪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는 좌파나 기후운동 세력은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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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자가 기후위기 대처를 위해 흔히들 호출하는 '2차대전' 대신에 '전시공산주의'를 끄집어내면서 국가의 비상적 계획과 비상적 동원, 비상적 통제를 강조하는데 대해서 일정하게 공감은 된다. 하지만 '지역공동체'나 '시민사회'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대목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고 본다. 

만약 코로나19로 인한 봉쇄/통제가 지금까지 2년 이내가 아니라 3년, 5년을 넘어가도 국가통제가 버틸 수 있을까? 지금도 더 이상 국가통제가 불가능해져서 '위드 코로나'로 가려는 것 아닌가?  기후위기는 1~2년 게임이 아니다. 그러자면 공동체적 수준에서 대처가 뒷받침 되어야 국가의 이니셔티브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장기능을 어떻게 쓸 것인지도 고려를 해야 한다. 물론 팬데믹아래에서 국가가 한편에서 시민생활을 통제하면서 다른 면에서 '비대면 생활'과 '건강'에 대해서는 지독하게 시장 의존적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 덕택(?)에 테크기업, 은행, 제약회사가 떼돈을 벌도록 방치했고 K-자회복이라는 불평등 심화를 조장했다. 이는 나중에 두고두고 문제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자체를 문닫고 배급체계로 가거나 소유구조를 순식간에 뒤엎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저자의 글에는 여기에 대한 고려도 없다. 

물론 국가의 역할 말고 지역공동체나 시장의 역할에 대한 얘기를 2020년 4월의 저자에게 요청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리가 있을 것이다. 어째든 나는 그가 지목한 사회민주주의 해법이나 무정부주의 해법이 기후위기 해법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일단 동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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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코로나19가 글로벌 팬데믹으로 바뀐지 대략 1달 뒤인 2020년 4월 말에 씌어진 책이다. 어마어마한 지식과 내공을 원래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수준의 집필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름의 지적 넓이와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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