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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그래도 진보정치] ‘노회찬6411’과 진보정치의 한 시대

  • 입력 2021.10.28 13:05      조회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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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가 노회찬의 삶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노회찬6411>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호평이 잇따르면서 26일 기준 관객 수가 3만명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대형 스크린으로 노회찬과 재회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못한 것일까. 그의 삶을 증언하는 대담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출연했음에도 차마 극장에 가지 못하겠다. 몇몇 장면에서 과연 감정의 격랑을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그런 몇 장면이 있다. 영화 제작진과 대담할 때에도 나도 모르게 해묵은 기억이 되살아나며 뜨거운 게 치밀어 오르는 대목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되새기기 힘들었던 것은 2010년 지방선거다. 이때 노회찬은 서울시장 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다. 처음에는 종로에 사무실을 내고 자신 있게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양대 정당 후보에게 크게 밀리는 3위, 3.26% 득표였다.

결과보다 더 아픈 것은 세상인심이었다. 이른바 민주진보진영의 대다수는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승리를 위해 노회찬은 선거에서 ‘빠져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단일화 제안도 없었으니 일방적인 후보 사퇴를 요구한 셈이었다. 오직 백기완 선생만이 노 후보의 완주를 격려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개표가 진행되던 밤, 종로 사무실 풍경이 떠오른다. 한국에서 개표 결과를 기다리는 진보정당 후보 선거사무소 분위기가 대개 그러하지만, 이때는 유달리 을씨년스러웠다. 결과에 실망해서만이 아니었다. 한명숙 후보 낙선을 노회찬 탓으로 돌리며 진보정당을 저주하는 전화가 폭주했기 때문이었다. 그 전화기 소리를 뒤로하며 후보는 말없이 사무실을 떠났다. 흐리고 스산한 새벽이었다.

돌아보면 이때가 결정적 계기 중 하나였다. 요즘 진보정당들은 진보정당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데, 원내정당 정의당이 특히 그렇다. 당 차원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다름을 거듭 강조하지만, 그런 언명 자체가 정의당이 민주당과 한 묶음으로 치부되는 프레임에 단단히 붙잡혀 있음을 드러낸다. 단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이나 선거법 개정 국면에 잘못 대응한 탓이 아니다. 2010년대 내내 언론과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진보정당 자신이 당연시해온 ‘민주대연합’ 노선 탓이다.

이런 분위기가 언제 굳어졌는지 따져보면, 결국 2010년 서울시장 선거와 마주하게 된다. 분당 이후 민주노동당 내 다수가 민주대연합을 당연시한 것과 달리, 진보신당에는 이에 저항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장 선거의 쓰라린 상흔은 진보신당 지도자들 역시 당시의 대세에 합류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의 ‘민주대연합’ 시대가 시작됐다. 민주노동당이 노무현 정부 실패 이후 한국 사회의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2007년 대선과 함께 2010년 이후의 이 선택이 지금도 진보정당운동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다. 진보정치는 2007년, 2010년에 시작된 이 시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대선이 다가온다. 정의당을 비롯해 진보정당 대선 후보들이 속속 결정되고 있지만, 솔직히 나는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 이번 대선은 촛불항쟁 직후와는 달리 양대 정당이 격돌하는, 2010년 서울시장 선거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시험을 과연 이번에는 제대로 견뎌낼 수 있을까?

모든 게 불확실하지만, 한가지만은 말하고 싶다. 진보정치의 지난 한 시대를 닫고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진보정당이 이 시험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것 말이다. 그것은 어떤 단기적 이익이나 영예보다도 자기만의 비전과 원칙을 더 중시하는 진보정치 고유의 면모를 대중에게 다시 확인받는 것이다. 2010년 이상으로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때와는 다른 방향에서 가능성의 출구를 여는 것, 이것만이 “나는 여기에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라”는 그의 마지막 말에 대한 치열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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