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 노동신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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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노동, 배제된 출발, 새로운 위험
- 입력 2021.06.03 16:06 조회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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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전 정의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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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1. 문제의식
“사실상 그동안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투명정당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쳐왔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의 손이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존재했지만 보이지 않는 정당, 투명정당. 그것이 이제까지 대한민국 진보정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여러분과 함께 가져가고자 합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라는 이름의 이 유명한 연설은 진보 정치의 지향과 진보 정치인이 가져야 할 태도를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이 연설은 정치의 영역을 뛰어넘어 이 사회 전체에 던지는 경종이라 생각한다. 손이 닿는 거리(arm’s length)에 있지 않다는 것은 한쪽이 독립된 권리의 주체로 서지 못함을 의미한다. 6411 노동자들은 진보정당만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모든 기본적 권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정의당 여영국 대표가 반기득권 정치를 선언하였다. 여기서 반기득권이 기득권 정당과 비교하여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정의당의 현실을 타파하자는 것이라면 그 의미는 반감된다. 안티(anti)는 2중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고자 하는 정의당만의 노력으로 보일 수 있다. 반기득권은 사회의 모든 불평등한 권리를 해체하고 새로운 권리 체제를 만들자는 노력으로 이어질 때 그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권력의 불평등한 구조를 깨트리는 데에서 더 나아가 배제된 이들의 사회적 권리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한다.
반기득권 정치의 실현은 현재의 노동체제에도 적용될 수 있다. 계급이 아니라 ‘빈곤’이라는 기준으로 우리 사회를 살피면 이 사회의 모순을 훨씬 더 많이 설명할 수 있다. 오직 계급을 통한 분석만 과학적인 분석으로 인정하고 그 외의 기준은 멀리할 이유가 없다. 불평등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더 많은 설명력을 가진 개념이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개념을 활용해야 한다. 심각한 사회적 격차의 문제는 빈곤이라는 개념을 통해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현실의 ‘삶’과 바로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현실의 삶을 보면 더 이상 하나의 계급이라는 말로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알리바이를 부여할 수 없다.
현재의 노동체제는 과연 이 모순을 내부에서 극복할 수 있는 기제를 포함하고 있는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현재의 노동체제를 극복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 현 노동체제의 핵심은 무엇이고, 현 체제가 가진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비판은 쉬우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만만하지 않다.
2. 노동체제와 노동자의 삶
현재의 노동체제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다. 먼저 노동체제를 분석하는 틀에서의 차이다. 둘째는 현재의 노동체제를 87년 체제의 연장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새로운 노동체제의 형성으로 볼 것이냐의 차이다. 현 노동체제의 성격 규정은 앞의 분석 틀의 차이와도 연결되어 있다.
현재의 노동체제를 87년 노동체제의 연장으로 이해하는 입장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노동운동은 전체 노동자들의 지위 향상이라는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고 이익집단화되어 사업장 내 권력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동운동이 누려 왔던 사회적 정당성과 도덕성이 크게 훼손되었으며, 노동시장에서도 과도한 비정규직의 증가와 아웃소싱을 막아내지 못하고 실패하였다고 비판한다. 87년 노동체제의 시대적 기능이나 역사적 사명은 거의 소진되었지만, 새로운 노동체제는 아직 정착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87년 체제의 보수적 수정방안으로 영미형 자유시장경제의 유연한 노동시장과 진보적 수정방안으로 북유럽의 민주적 시장경제가 제시되지만, 어느 것도 선택하기 어렵다고 본다. 영미형 자유시장경제로 가기에는 재벌의 힘이 너무 강하고, 북유럽형으로 가기에는 노동조직의 힘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형 노동시장에 대해 주체들의 전략적 선택에 따른 설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노중기 교수(2020)는 87년 노동체제를 과도기 체제라 보고 97년 이후 형성된 체제를 종속신자유주의 노동체제로 규정하였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87년 노동체제는 이전 체제와 많은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노동정치 환경의 변화로 민주노조와 그 연대체들이 존속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만들 수 있었다. 억압적인 제도와 국가와 자본의 반(反)노동전략이 횡행했지만, 민주노조들은 전투적 조합주의로 ‘민주화 대항헤게모니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배블록의 ‘노동 없는 민주화’ 국가프로젝트와 민주노조의 ‘민주화’ 대항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전략적 충돌이 장기간 지속하는 가운데, 문민정부의 개혁파는 노동유연화와 노동 민주화를 교환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그렇지만 1997년 외환위기는 기존의 노동체제를 급속히 해체하고 종속신자유주의 노동체제를 형성시켰다. 민주노조운동은 수세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민주노조운동은 진보정당 건설과 산별노조 전환 전략 등을 통해 나름의 조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노동체제에 대한 시각에 따라 노조운동의 성과에 대해서도 다른 평가가 이루어진다. 체제 전환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는 같은 평가를 내리지만, 실패냐 절반의 성공이냐로 입장이 나뉜다. 이에 따른 대안도 다르게 제시된다. 87년 노동체제의 역사적 임무 소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노동체제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입장은 대표적으로 상생의 노사관계 구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기업 내부노동시장은 유연성을 높이되, 노동시장의 위험을 사회적으로 관리하자는 입장이다. 단단한 사회안전망을 통해 사회적 임금을 인상시키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함께 숙련 중심의 노동시장을 구축하여 유연성 강화에 따른 위험을 상쇄하자는 주장이다.
한편 노중기 교수는 종속신자유주의 노동체제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노동개혁의 의제는 사라지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확대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본다. 민주노조운동도 사회운동적 성격을 크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본다. 구조조정과 비정규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투쟁사업과 전략조직화 사업, 그리고 사회운동과의 전략적 연대의 강화로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반신자유주의 대항헤게모니 전략이라고 볼 수 있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체제론은 노사관계의 구조에 국한되지 않고 노동정치 주체들의 전략적 대응과 그 전략들의 충돌과 접합이 형성하는 체제를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분석의 틀이 단일하지 않고 그 해석 역시 관점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노동체제론은 노동을 둘러싼 정치 주체들, 또는 이해관계자들의 전략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비록 역사적 경로와 환경이 주체들의 전략을 제한하지만, 역시 체제의 동학은 행위 주체들의 전략을 중심으로 분석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행위 주체가 가지는 권력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은 행위 주체의 환경 또는 배경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흔히 시민권으로 불리는 대표성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동정치의 대상으로만 남게 된다. 노동체제론은 권력을 가진 자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로 구분하여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대항 권력을 분석 대상으로 한다. 권력과 대항 권력이 다투는 정치에서 그 대항 권력이 포괄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가 문제가 된다. 권력의 정치에 삶의 정치가 온전히 녹아들지 않는 상태에서는 소외의 문제가 발생한다.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어렵고 집단적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이른바 6411 투명노동자들은 이 체제에서 어떠한 권력을 가지고 어떻게 능동적 정치를 할 수 있을까의 문제이다. 노동체제론이 불필요하거나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배제된 자들의 정치를 어떻게 형성하고 이해를 대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노사관계체계론과 노동체제론은 기업이나 노동조합과 같은 구조화되고 조직화된 실체를 분석의 중심단위로 한다는 점이다. 조직화되지 않은 목소리를 분석의 중심단위로 설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정치의 동학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체제론과 별개로 노동자의 삶을 중심으로 노동체제를 분석하는 다른 계열의 시각이 필요하다.
3. 분할과 배제의 체제
87년 노동체제를 현 노동체제의 출발점으로 보든, 아니면 과도체제로 보든 87년 노동자대투쟁의 규정력이 지금까지 미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은 억압적 노동체제를 뚫고 민주노조운동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분출한 사건이었다. 민주노조운동의 뿌리는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었지만, 87년 이후에는 노동운동에서 주류의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은 정통성과 세력 모두를 가지게 되었다. 민주화는 사회의 어느 영역도 비껴갈 수 없는 강력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민주화는 완성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정치체제로 귀결되었고, 노동운동에 대한 자본의 반격도 바로 이어졌다. 노동조합은 전투적으로 대응하였고, 전투적 조합주의는 우리나라 민주노조운동의 대명사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노동운동이 후퇴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노동운동은 특수한 힘이 작동하는 섬처럼 존재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운동이 신자유주의라는 말조차 생소해 하던 때에 이미 자본은 구조조정을 포함한 노동유연화 정책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분할 전략을 실시하였다.
기업별 노조에 기반하고 있는 87년 체제가 오래 갈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90년대에 들어와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추진하였다. 이 전략은 아직 성공하지 못하였다. 전체 조합원 중 산별노조 조합원이 과반을 이루어 산별노조 전략은 일정 정도 성공하였지만, 기업별 노동체제를 전면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형식적 결합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치세력화 역시 진보정당의 건설과 국회 진출까지 이루었지만, 정파적 갈등으로 힘이 분산되었다. 이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실패라고 해야 할까?
산별노조 전략과 정치세력화 전략의 핵심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체제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에 비추어 본다면 현재 노동운동은 성공의 길에 반쯤 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둘 경우 실패의 길에 들어서 있다는 평가가 더 적합하다. 노동 내부의 격차가 확대되어 전체적인 통합을 이루어 내기가 지극히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포괄적인 대표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11.7%에 불과한 노동조합 조직률이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지만, 조직률보다 더 심각한 건 교섭의 대표성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서 노동조합 조직률도 꼴찌 수준이지만 단체협약 적용률도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단체협약의 적용은 철저하게 사업장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더라도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교섭체제를 갖추고 있다면 그나마 나을 터인데, 이를 추진하는 전략은 찾아볼 수 없다. 산별교섭 법제화는 관행적으로 등장하는 요구가 되었지만, 실제로 이것을 추진할 의지가 있는지는 확인해 보아야 할 문제다. 산별협약이 조직된 노동자를 넘어 전 산업에 적용된다면, 기존의 노동 분할 전략에서 상대적 혜택을 받아 온 노동자집단은 양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잘못 꿴 단추를 모두 풀고 처음부터 다시 꿰기란 웬만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현 노동체제는 초기부터 이미 극복해야 할 커다란 한계를 안고 시작한 셈이다. 산별협약 체계를 완성하는 일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지만, 오직 이 하나의 과제에만 매달려 다른 대안들을 찾지 않아도 될까? 교섭에서 배제된 노동을 포섭하는 다른 전략은 없을까?
4. 사회연대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기업별 실리주의를 극복하고 사업장을 넘어 사회적·경제적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사회운동과 연대하고 그 운동에 조합원들을 참여시킨다. 사회운동에서 사회연대는 서로 다른 집단이나 계급, 계층이 공동의 목표와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회연대란 서로 다른 처지에 있는 노동자, 서민들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공동의 실천을 벌일 수 있는 사업을 전개하고 이 과정에서 공동의 의식과 경험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노동운동에서 사회연대는 계급 내 연대와 계급 간 연대로 구분된다. 계급 내 연대는 노동자 간의 차이를 뛰어넘어 계급으로서의 통일성과 주체로서의 성장을 추구한다. 계급 간 연대는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복지연대와 지역이나 생활에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생활연대를 말한다. 그간 한국의 노동운동에서 연대운동은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경향을 강하게 나타내었다. 통합 의료보험의 실현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계급 내 연대는 총연맹이 전략적 사업으로 추진하였지만, 상대적으로 큰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사회연대운동은 노동운동 내부에서 ‘노동자 양보론’이라는 공격도 받았다. 특히 연대임금의 실현이나 연대기금의 형성과 같은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조정하기 위한 시도는 이데올로기적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민주노총이 사회연대전략의 주체가 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내부에서의 이견을 통합시켜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대표적인 모델인 스웨덴은 노동계급의 연대에 기초하여 농민과 중간 계급 등과의 연대로 복지제도를 확장한 사례이다. 독일의 사민당은 1989년 채택된 베를린 강령에서 “자유롭고 정의롭고 연대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사회상으로 제시하였다. 연대를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약자들의 무기”라는 도구적인 의미에 그치지 않고, “법적인 의무를 넘어 서로에 대해 기꺼이 책임지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인간 사회의 필수적인 가치로 해석하였다. 2007년 채택된 함부르크 강령은 연대가 변화를 위한 권력을 창출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결속시키는 강한 힘이라고 지적하면서 “연대적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제안하였다.
연대는 노동운동 내에서 노동자들의 단결을 의미하며 나아가 인간 사회가 운영되는 원리적 가치의 수준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운동은 정규직 양보론이라는 논리적 함정에 갇혀 큰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규직 양보론이라는 논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구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배제된 노동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노동은 기존의 정규직-비정규직 논의가 대상으로 하는 범위를 뛰어넘는다.
5. 새로운 위험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닫힌 체계다. 단결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울타리 안에 들어오면 강력한 보호의 기제가 작동하지만, 울타리 바깥은 보호에서 제외된다. 보호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는 울타리를 계속 확장해야만 한다. 울타리 바깥을 넘어서는 연대는 다른 원리와 다른 질서로 작동한다.
그런데 노동자 열 명 중 아홉 명이 노동조합의 울타리 바깥에 있다. 게다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있다. 객공 형태의 봉제노동자들과 가사서비스 노동자들처럼 전통적인 노동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프리랜서로 분류되는 노동자들이다. 플랫폼 경제로 이에 해당하는 노동자 범주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간 노동운동은 비정규직의 사용 사유를 제한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줄곧 노력해 왔다.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전략의 수립이나 다양한 아이디어의 수용에는 소극적이었다. 노동조합과 사회적 권리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을 위해 개발된 아이디어들이 많지 않다. 유럽연합에서 논의된 유연안전성 모델도 노동운동의 핵심 주체들의 전략적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원칙에서 벗어나는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그러한 논의는 투쟁을 통한 돌파가 아니라 사회적 대화와 교섭이라는 틀을 요구하고, 자본의 숨은 의도를 차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회피되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투쟁을 통해 비정규직을 철폐하겠다는 기본 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선언이라는 형식을 통해 요구보다 수단을 먼저 제시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일반인들로서는 요구는 뭔지 모르는 채 총파업만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러한 불친절한 방식은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였다.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철폐를 주요 과제로 내걸고 매년 총파업을 선언하였다. 어떤 해에는 2번 이상 총파업을 선언한 시기도 있었다. 단위사업장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의 총파업을 민주노총이 매년 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총파업이 매년 실패했다는 의미이고, 민주노총의 투쟁 목표에 참여해야 할 단위들이 이를 진정한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총연맹은 문제의 해결자가 아니라 유발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인식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실제로 총연맹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조합의 울타리를 확장한다는 전략 외에는 다른 전략을 읽을 수 없다. 울타리 확장 전략이 지금 당장 실현되지 않고 있다면 다른 대안도 함께 찾아야 한다. 울타리 바깥에 있는 노동자들과는 사회적 연대의 방식을 실현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의 방식을 추진하되 노동계급으로서의 통일성을 지향해 나가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6. 노동공제운동의 실험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는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아니라 현실이다. 자신의 현실을 드러내는 목소리의 크기에도 차이가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조차 가지지 못한 노동자들이 대다수다. 대다수의 노동자는 노동조합 조합원이 아니며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임금노동자 네 명 중 한 명은 근로기준법 적용도 받지 못한다. 고용 형태의 급격한 변화로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조차 가지지 못한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노동운동의 초기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모습은 현재의 노동운동이 전체 노동자들의 삶을 대변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노동자들의 이해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기구로서 노동조합을 능가할 만한 조직은 없다. 그러나 당위와 현실은 차이가 있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가장 훌륭한 조직이지만, 당사자들이 가입할 수 없거나 가입할 의향이 없다면 그 장점은 실현되지 않는다. 또한, 권리가 있다고 해서 모두 그 권리를 실행하지는 않는다. 권리는 가능성일 뿐 권리의 주체가 동기부여 되지 않으면 가능성은 현실성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노조할 권리 이전에 노조할 이유를 찾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노조할 이유를 찾는 작업이 노동공제운동이 시작되고 있는 배경이다. 노동공제운동은 노동과정이 아니라 생활상의 요구에 기초하고 있다. 동시에 그 요구를 스스로의 참여를 통해 실현하는 운동이다. 자주적으로 노동복지를 실현하는 운동이다. 상호성에 근거한 연대를 실현하는 운동이다.
기업복지가 잘 되어 있는 대기업의 노동자들은 노동공제라는 개념이 낯설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도 없다. 대기업의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에서 보장하고 있는 복지 외에도 사내복지기금을 통해 추가적인 복지혜택을 받고 있다. 혜택을 누리는 이들에게 기업복지는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대다수 노동자가 보기에는 엄청난 혜택이다. 대기업 노동자가 회사를 그만두면 임금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그 기업복지가 얼마나 큰 혜택이었는지 금방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만큼 복지체계에서 기업복지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업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그만큼 복지수혜에 큰 구멍이 나 있는 셈이다.
노동공제는 노동복지에 대한 수요를 중심으로 한 연대의 실현이다. 이것이 사회적 운동으로 되기 위해서는 노동공제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자원이 공유되어야 한다. 노동공제를 통해서 불안정 노동자들이 얻게 되는 축적된 자원의 혜택은 사회임금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노동공제는 노동조합의 일부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노동공제를 통해 집단적인 요구를 형성할 수 있고, 정책 마련과 실행의 주체로도 참여할 수 있다.
7. 결론을 대신하여
한 사회의 노동 존중의 수준을 보려면 한눈팔지 않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평생을 묵묵히 한 가지 일만 해 온 노동자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인정받고 지지받는지를 보면 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게 살아온 노동자의 대다수가 노후를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한다. 6411 투명노동자들의 삶을 통해 이 사회의 노동 존중의 수준을 지속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지표가 만들어져야 한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자들의 정치, 배제된 자들을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 사회적 권리에서 배제된 노동이 탄생한 건 노동자의 판단 기준을 사용종속성에 기초하여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노동자이지만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기준 때문에 노동기본권이 주어지지 않은 노동자들은 고용보험, 산재보험을 포함하여 각종 기금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자본은 그 배제된 노동을 관할 범위 밖에 둠으로써 책임을 면해 왔다. 하지만 사회가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공동체 구성원의 삶과 생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동기본권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라는 기업 단위의 범위를 넘어 모든 노동자의 사회적 권리가 되어야 한다.
배제가 발생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사회협약의 당사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90%의 노동자가 단체협약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고, 사회적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협약의 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있다. 오로지 스스로 자구책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전체 노동자를 손이 닿는 거리(arm’s length)에 두는 사회협약이 체결되어야 한다.
근대사회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로 비유되곤 한다. 평등 없는 자유는 허구이고, 자유 없는 평등은 굴레에 불과하다. 하지만 절대적 자유와 절대적 평등으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이 두 가치의 긴장을 통합시켜낼 수 있는 가치가 우애 또는 연대이다. 연대의 가치를 상실한 근대의 기획은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화국은 우애와 연대의 공화국이다. 사회국가라 표현하든, 사회적 공화국이라 표현하든, 아니면 7공화국이라 표현하든 그 핵심은 사회적 연대에 있다. 사회의 부활, 연대의 전면화가 우리가 지향할 공화국의 모습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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