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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의 응시] ‘표풀리즘’ 대 자살골 정치

  • 입력 2021.12.28 12:30      조회 1096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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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중 기본주택 100만호를 포함한 250만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고 투기억제를 위해 국토보유세를 도입하겠다.” “국토보유세에 반대하는 것은 악성언론과 부패정치세력에 놀아나는 바보짓이다.”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중과세를 유예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국민의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공시가격 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앞의 두 이야기는 석 달 전과 한 달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한 이야기이고, 뒤의 두 이야기는 최근 그가 한 이야기다. 한 달 만에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전두환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이 후보는 전두환이 학살은 했지만 정치는 잘했다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전두환 찬양이라고 난도질하고 광주에서는 전두환의 비석을 밟고 난리를 치더니, 대구·경북에서는 전두환이 경제는 잘했다고 칭찬했다.

한마디로, 포퓰리즘을 넘어 표가 되면 무엇이든 하는 ‘표풀리즘’이다. 물론 선거에서 이기는 것, ‘악의 화신’ 국민의힘의 집권을 막는 것이 최고의 선이기 때문에, 표만 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가랑이 사이를 긴 한신처럼 권력을 잡을 때까지는 대중에 굴복해 우경화하지만, 권력을 잡고 나면 본심으로 돌아가 개혁의 칼을 휘두르겠다?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그건 ‘정치’가 아니라 ‘사기’다. 집권과정은 구조적으로 집권 후의 정책을 규정하게 되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과정에서 반미시위가 터져 나오자 “반미면 어떠냐”고 말하다가, 집권 후 미국을 방문해서는 “미국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있었을지 모른다”라는 친미발언을 해 진보세력으로부터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하지만 이 후보처럼 선거과정에서 급우경화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선거민주주의하에서 정치가 표를 많이 받아 이기는 것이라고 하지만, 최소한의 기본 정치철학과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후보를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형수욕설 등이 보여주듯이 그가 저급하고 극단적일 뿐 아니라 예측 불가능하며 표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즉 극좌도 극우도 될 수 있다고 믿도록 행동해 왔기 때문이다. 대장동사건이 중요한 것은 연이은 관계자들의 죽음이 시사하듯이 다른 여러 이유도 있지만 말로는 공익을 외치면서도 직원이 건의한 초과이익환수조항까지도 삭제해 개발업자에게 천문학적 이익을 선물하는 등 그 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 바꾸기는 그의 예측 불가능성과 표퓰리즘에 대한 불안감을 국민들 사이에 확산시키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어떠한가? 이번 선거의 최대 미스터리는 이처럼 준비되지 않았고 업적이라곤 박근혜 정부의 압력에 저항해 국정원 정치개입사건에 대해 수사하다 귀양을 갔고 현 정부 들어서는 정부와 지지자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조국 수사를 밀고나간 것밖에 없는 윤 후보가 계속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정문제 등 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얼마나 깊은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공정과 법치의 상징이 되어버린 윤 후보의 장모가 은행 잔액 위조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부인이 ‘경력 과장’과 ‘허위 경력’ 시비에 걸리면서 공정 이미지는 타격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검사로 살아오며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그의 사고방식과 어법은 거의 매일 사고를 일으키고 있다. 진짜 문제는 선거란 정권심판의 회고투표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투표이기도 한데, 그 점에서 그가 보여주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특히 상층에서는 김종인으로부터 김병준, 김한길까지 중도를 어우르는 반문재인, 반민주당 전선을 구축했지만, 이 같은 상층부연합이 유권자의 지지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중도를 포괄한 광범위한 연합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메시지와 정책은 보수일변도라는 느낌이 들고, 허구한 날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아픈 곳을 쓰다듬어 주는 비전과 정책이 아니라 내부 갈등과 내부총질이라는 자살골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부패사범 등에 대한 사면제한 원칙을 깨면서 정략적으로 추진한 박근혜 사면이라는 절묘한 카드로 국민의힘 내부의 탄핵세력과 반탄핵세력 간의 갈등은 증폭될 것이다.

이번 대선은 누가 더 밉고, 누가 더 위험한가를 경쟁하는 선거가 되고 있다. 세상이 진실보다는 누구 편인가가 더 중요한 탈진실사회로 변했고 SNS를 통한 극단론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다는 차이도 작동했겠지만, 이명박과 박근혜도 최소한 선거 당시에는 이 정도로 국민을 절망시키지는 않았던 것 같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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