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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이슈와 서평1] 누군가에게 안전한 것은 누군가에게 불편한 것

  • 입력 2022.01.23 09:24      조회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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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페미니즘에 대해서 지식도 감각도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일단 전제한다면, 주위에 미투운동을 접하거나 다양한 젠더 이슈에 직면할 때, 그 정당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서 '불편함'을 느끼는 많은 기성세대 남성들을 본다. 그들은 과거식의 진보-보수의 스펙트럼과 무관하다. 

또한 정의당을 지지해왔던 기성세대들 일부에서 가끔씩 듣는 소리도 있다. "과거에 내가 알던 정당이 아니라 낯설게 느껴지고 그래서 불편해진다"  

이런 뉘앙스의 말씀을 하시는 분들의 이유가 꽤 다양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한가지가 짚인다. 정의당이 과도하게 '젠더 이슈'에 치중해서 '노동이슈'가 묻히는것 같다고. 그래서 정의당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한편에서는 '노동중심'의 정당이었던 정의당이 '젠더 중심'의 정당으로 바뀌는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불편한 느낌을 받는것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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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시는 기성세대 남성들이 젠더이슈나 페미니즘에 대해서 '불편'하다는 감각을 갖는 것은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슈를 제기한 이들이 불편하게 제기했다거나, 이슈를 받아들이는 이들의 사고가 문제가 있다거나 한 대목을 짚자는 것이 아니다. 

사실 세상을 살면서 '누구의 불편함을 댓가로 다른 누구의 편안함'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다.  좀 과도한 비유지만,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이 이슈를 제기하지 말아야 편안하다.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민중이 저항하지 말아야 편안하다. 

어쩌면 나름 지위가 되는 많은 기성세대 남성들은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정말 수 많은 여성들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댓가로 '편안함'을 가져다 주는 일상을 살았는지 모른다.  처지와 조건은 달라도 수 많은 여성들이 오랜 동안 차별에서 오는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삶을 살았고, 지위가 있는 남성들은 그런 불편함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잘 인지하지 못하면서 '편안함'을 누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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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여성들이 '불편함'을 더 이상 감수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그 불편함을 털어버리겠다고 움직이면서, 남성들이 갑자기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리베카 솔닛은 그 상황을 이렇게 지적한다. "남성들은 직장에서 말과 행동이 불편해졌다고 불평했는데, 이는 문제 자체보다 남성들의 정신적, 육체적 안정을 우선시하는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편안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편안함은 종종 현실 인식을 거부할 권리를 지키기 위한 암호처럼 쓰인다. 양심에 찔리는 느낌을 받지 않을 권리, 고통을 상기하지 않을 권리, '우리'의 이익이 '그들'의 권리와 필요에 의해서 감소되지 않을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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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알려진 리베카 솔닛(Rebeca Solnit)이 2019년에 펴낸 가벼운 에세이 모음집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Whose Strory is this?)>가 얼마전에 나왔다. 이책은 젠더이야기뿐 아니라 저자의 경력이 알려주는 대로 기후위기 이야기도 함께 어우러진 길지 않은 분량의 기고글들도 채워진다. 



그의 이야기중에 '불편함'에 대해 풀어놓은 대목이 특히 다가온다.  그는 젠더 이슈뿐만 아니다. 많은 기득권들은 정말 많은 이슈들이 드러나는 것을 불편해하며 그래서 덮으려고 한다. 

"힘 있는 자들은 스스로를 망각과 무지라는 막으로 감싼 채 타인의 고통을 회피하고 그 고통과 자신은 관련이 없다고 믿는다. 그들의 눈에는 많이 것이 숨겨지고 빈자와 약자들의 세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조금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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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이제 한 동안 역전된 상황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동안 '편안'했던 이들이 이제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상을 견뎌내고, 그리고 그  오랜동안 '불편함'을 숙명으로 살아왔던 이들이 이제부터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시작해야 해야 하는 상황 말이다. 

아마도 그게 모두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길이 될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때가 된거 같다. 솔닛은 그 때가 왔음을 이렇게 지적한다. 여성들은 미투 이전부터도 끊임없이 말을 해왔지만 , "미투 운동이란 여성이 말을 하기 시작한 시점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이 경청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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