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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장석준 칼럼] '푸틴의 러시아'에서 '러시아 좌파'들이 성장하고 있다

2010년대 반푸틴 투쟁을 통해 부활한 좌파
  • 입력 2022.02.09 16:13      조회 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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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이목이 우크라이나-러시아 국경에 쏠려 있다. 러시아 군대가 국경에 집결 중이라 하고, 미국과 나토는 군사적 대응을 천명한다. 급기야 이곳이 새로운 세계 전쟁의 진원지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미국과 서유럽 언론은 이 상황을 독재자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 민주주의를 지키는 구도로 본다. 이들의 시각에 따르면, 현 상황은 마치 나치 독일과 영국, 프랑스가 전쟁 일보직전에 있던 1930년대 말 유럽 정세의 반복인 것만 같다. 대개 이들의 시각을 추종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인지라, 이는 곧 우리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기도 하다.

맞다. 푸틴은 독재자다. 그러나 그는 스탈린도 아닐뿐더러 히틀러는 더더욱 아니다. 그가 이들보다 더 나은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러시아가 이미 100년 전 유럽 어느 나라와는 너무 다른 사회이기 때문이다. 푸틴 정권은 다시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러시아 시민사회 위에 불안하게 떠 있는 구조물일 따름이다. 이 독재 체제는 적어도 1970년대 언제쯤의 대한민국보다는 내부로부터 변화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경우에도 내부의 민주적 흐름들에 주목해야 한다. 그곳의 인간들을 삭제하고 정권만을 '전쟁' 상대로 주시한다면, 이는 결국 우리 역시 '시민'이라기보다는 '국민'에 머물러 있음을 실토하는 꼴일 뿐이다. 그곳에도 당연히 사람들이 있고, 어쩌면 그들은 우리보다 더 치열하고 진지하게 미래를 향해 분투하고 있다.

<반대파 속의 반대파>가 전하는 러시아의 비스탈린주의 좌파

하지만 그간 한국에서는 러시아 내부의 정치 지형이나 사회운동 상황을 알기 힘들었다. 보통 한국 사회 안에 소통과 교류의 통로가 열려 있지 않은 나라들에 관해서는 영어권 정보 네트워크에 의존하게 마련인데, 러시아의 경우는 영어권을 통한 정보조차 극히 제한되거나 편향되어 있다. 그리하여 한때 한국의 설익은 혁명가들에게 마치 교과서인 양 오인되던 이 사회는 이제는 뭐하고 사는지도 잘 모를 암흑의 땅처럼 되어 버렸다.

최근에 영어로 나온 신간 Dissidents among Dissidents('반대파 속의 반대파', 부제는 '소비에트 이후 러시아의 이데올로기, 정치 그리고 좌파')(Verso, 2022)는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갈증을 풀어줄만한 책이다. 저자는 러시아의 정치 및 영화 평론가이며 대학 강사인 일리야 부드라이츠키스(Ilya Budraitskis)다.

이 책은 러시아 좌파나 사회운동만 소개하는 저작은 아니다. 푸틴 정권 아래 러시아 국내 상황을 분석하고 푸틴의 러시아를 악마화해 신냉전을 부추기는 미국-서유럽 이데올로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책의 2/3 정도를 차지한다. 이런 내용만으로도 <반대파 속의 반대파>는 우리말로 소개될 값어치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일단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좌파의 궤적을 정리한 제3부 "소비에트의 유산과 좌파"에 관심을 집중하겠다.

실은 제3부만으로도 한 편의 칼럼으로는 제대로 요약하기에 벅차다. 비스탈린주의 좌파의 역사가 우리가 흔히 넘겨짚는 것보다 훨씬 더 뿌리 깊기 때문이다. 제3부의 상당 부분은 페레스트로이카 이전 비공산당 좌파의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망각에서 구해내는 데 할애된다.

이 역사는 우리 현대사와 마찬가지로 비통한 감정 없이는 한 쪽도 넘길 수 없는 사연들의 무더기다. 여기에는 공산당 최상층에서 시작된 스탈린 격하운동과 해빙(解氷)을 감히 그 최고위 관료들이 허용한 범위를 훨씬 넘어 시도한 너무 진지했던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동베를린과 바르샤바에서, 부다페스트와 프라하에서 '사회주의'의 참뜻을 다시 묻다가 자국 러시아의 탱크와 대치하게 된 민중에게 오히려 동포애를 느낀 학생과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의 끝은 예외 없이 정신병원 감금, 투옥, 망명이다. 그나마 총살 사례는 별로 없었으니 스탈린 시절보다는 진보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소련 시절 반체제운동이라고 하면 자유주의자 안드레이 사하로프나 국수주의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만 떠올리지만, 이것은 진실의 한 쪽 면에 불과하다. 반체제운동 안에는 '반대파 속의 반대파', 즉 비스탈린주의 좌파가 있었다. 그래도 이런 전통이 있었기에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자 사회당 같은 비공산당 좌파가 곧바로 정치 활동을 개시할 수 있었다. 사회당의 한 축은 1970년대부터 활동한 '청년 사회주의자' 그룹이었고, 한국에도 저작들이 번역된 이 그룹 출신 이론가 보리스 카갈리츠키는 1990년대 초에 모스크바 두마(시의회) 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사회당은 유럽 공산당들과 사회민주당 내 좌파,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들여 소련 공산당과 구별되는 노선을 정립하려 했지만, 이것은 비공산당 좌파의 여러 노선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었다. 당-국가가 아닌 노동자가 직접 생산을 통제하자고 주창하는 아나코-생디칼리스트 총연맹이 등장했고, 스탈린주의의 숙적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하는 그룹들도 대두했다.

60여 년간 사회주의란 곧 스탈린주의였던 사회에서 이런 흐름들이 삽시간에 부활했다니 믿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아나코-생디칼리슴이든, 트로츠키주의든 러시아는 그 원산지이거나 최소한 옛 본거지 중 하나였다. 트로츠키는 물론 러시아 사람이고, 가장 위대한 아나키즘 사상가 표트르 크로포트킨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생산 통제를 책 속 이념을 넘어 국가 정책 후보 중 하나로까지 밀어붙였던 사례 역시 유고슬라비아의 자주관리 실험을 제외하면 1920년대 초 소련공산당 내 노동자반대파뿐이다.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시기, 즉 보리스 옐친 정권 초기만 해도 러시아에는 이렇게 자본주의화와 스탈린주의 회귀라는 양자택일을 거부하는 모색과 흐름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너무나 일찍 닥친 어려운 정치적 시험이 신생 좌파가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1993년 가을에 터진 옐친 정권과 최고 소비에트(당시 의회) 사이의 무력 충돌이 그것이었다.

이때 신생 좌파 정파들은 옐친 정권의 반의회 친위 쿠데타에 맞서 민족주의자, 스탈린주의자들과 연합해야 하는지, 아니면 두 권위주의 세력의 권력 다툼에 양비론적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놓고 입장이 갈렸고,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시가전까지 겪고 끝난 이 정치 위기 뒤에 한참 동안 러시아 제도정치에서는 강경 스탈린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신생 좌파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때부터는 오직 겐나디 주가노프가 만년 수령 역할을 하는 러시아연방공산당만이 유일한 합법 '좌파'정당으로서 옐친-푸틴 정권이 허가한 테두리 안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2010년대 반푸틴 투쟁을 통해 부활한 좌파

다행히 이것은 러시아 좌파의 최신 상황이 아니다. 2000년대에 푸틴 정권이 옐친 시기의 혼란을 국가자본주의와 대항-제국주의의 틀 안에서 정돈하던 와중에도 사회운동은 조금씩이나마 전진했다. 자주적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강화하려는 노력이 계속됐고, 이를 바탕으로 2000년대 초(한국에서 민주노동당이 막 창당한 무렵)에 노동당을 창당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공산당의 유산과는 별 상관없는 좌파 문화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됐다. 구세대의 아나코-생디칼리스트 조직이 해산한 대신에 '자율행동'이라는 새 조직이 건설됐다. 트로츠키주의 정파들도 더 늘어났다. 심지어는 스탈린주의 흐름 안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 지도자 세르게이 우달초프(1977년생)를 중심으로 새로운 노선과 운동 문화를 추구하는 청년조직('적색청년전위')이 갈라져 나왔다.

이들 흐름은 점차 연대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특히 허울뿐인 '좌파' 야당이더라도 어쨌든 제도정치의 유일한 교두보인 러시아연방공산당을 활용할 방안을 타진했다. 2004년에 결성된 '청년좌파전선'이라는 연합조직은 그 첫 번째 시도였다. 이 조직에는 러시아연방공산당의 청년조직, 적색청년전위, 트로츠키주의 정파가 함께 했다. 당시만 해도 푸틴 눈치만 보던 러시아연방공산당 집행부가 당 청년조직을 파문함으로써 부랴부랴 진화 작업에 나서기는 했다. 그러나 일말의 가능성은 확인된 셈이었다.

이런 저류들이 합류해 마침내 2011년 12월 새로운 정치 국면이 열렸다. 이날 푸틴의 정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총선 결과가 공표됐는데, 러시아 시민의 상당수는 더는 이런 소극을 두고 보기만 하려 하지 않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수십만 명의 시민이 모스크바 거리에 운집했다. 푸틴 정권을 최대 정치 위기에 몰아넣은 2011-12년 반독재-반부패 대중투쟁의 시작이었다.

세계 언론은 이번에도 자유주의자 알렉세이 나발니나 민족주의자 알렉산드르 벨로프 같은 이름만 굵은 글자로 강조했다. 물론 이들은 가장 널리 알려진 반푸틴 지도자들이다. 그러나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도 남을 또 다른 이름들이 있다. 좌파전선 지도자로 항상 시위대의 맨 앞에 섰던 우달초프나 자율행동의 간부 알렉세이 가스카로프(1985년생)가 그들이다.

2011-2012년의 대중투쟁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청년 시위의 러시아판이었다. 구체적인 의제야 자유주의 체제와 권위주의 체제만큼의 차이가 있었지만, 20세기 말 이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지구 위에 강요한 저마다의 모순된 체제들에 대한 이의제기라는 점에서는 같은 시간대 안에 있었다. 미국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이나 칠레의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 등이 이 공통 경험을 통해 성장한 인물들이고, 러시아에서 이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우달초프, 가스카로프 등이다.

안타깝게도 당장은 두 세계 사이의 대비가 더 눈에 들어온다. 러시아에서 새 시대의 상징들은 공직 선거 당선은커녕 오히려 감옥살이를 각오해야 한다. 2011-12년 투쟁이 끝나고 나서 우달초프와 가스카로프는 각각 4년 6개월, 3년 6개월 징역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아무리 패배한 투쟁일지라도 투쟁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 기억조차 없는 사회에 비하면, 이 기억만으로도 훨씬 더 많은 변화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지금 러시아가 그렇다.

2019년 모스크바 시의회 선거에서 러시아연방공산당은 31.15%를 득표하며 31.40%를 얻은 집권당을 바싹 뒤쫓았다. 18.65%를 기록한 2014년 선거 결과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급성장이었다. 작년 총선에서도 러시아연방공산당은 5년 전의 13.34에서 18.93%로 득표율을 늘렸다. 러시아연방공산당 집행부가 잘 해서가 아니었다. 2011-12년 투쟁으로 성장한 신진 좌파, 노동조합, 페미니즘, 생태주의 운동가들이 러시아연방공산당을 제도정치에 진출하는 발판으로 활용한 덕분이었다. 늘어난 의석만큼 새롭게 충원된 공직자들은 대개 기존 당 분위기와는 색깔을 달리 하는 급진 좌파 성향이 많다.

푸틴 집권 22년차의 러시아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나토의 미사일이나 탱크가 아니라 러시아 시민들이 대중운동을 통해 안에서부터 바꾸고 있다. 러시아는 적어도 그럴 힘을 그 사회에 품고 있다. 분명, 이제부터는 소련 70년의 답답한 역사가 반복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오히려 우리다. 한국 사회는 지금 그런 변화의 힘을 내장하고 있는가? 적어도 안에서부터 키워가고는 있는가? 21세기에 '민주주의'의 기준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이 물음에 대한 답일 것이다. 그 답을 생각할수록 나는 (푸틴의 러시아가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 걱정된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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