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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그래도 진보정치] 기초의원 선거구부터 바꿔라

  • 입력 2022.03.17 14:11      조회 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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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 4년 전 나는 이 지면에서 김수영 시인의 이 시구를 인용하며 글을 끝맺었다. “두렵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개헌과 선거구 획정의 이율배반). 당시 ‘혁명’이라고까지 불리던 촛불항쟁이 아무래도 “방만 바꾸”고 만 4월 혁명이나 군부독재 잔당의 대선 승리로 일단락된 6월 항쟁의 운명을 반복할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두려울 만했다. 2018년 봄 어느 때에 누가 나에게 차기 대선에서는 2017년에 탄핵 대상이 된 그 정당이 50%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으며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면, 나는 농담이 지나치다고 답했을 것이다. 촛불항쟁의 여파가 강했던 그 무렵에는 분위기가 정말 그랬다. 탄핵을 당한 정당은 사멸해가는 중이며 새롭고 진취적인 정치 지형이 등장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말도 안 된다 여겨졌던 그런 상황이 불과 4년 만에 현실이 됐다. 이쯤 되면 김수영 시인의 탄식은 차라리 엄살로 들릴 지경이다.

4월 혁명과 6월 항쟁의 실패에 커다란 기여를 한 정치 세력의 정신적 후예인 정당이 이번에도 큰 몫을 했다. 한때 ‘20년 집권’을 호언하더니 제6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5년 만의 정권 교체를 성사시켜준 더불어민주당 말이다. 대선 결과가 나온 뒤에 이 당 안팎에서는 다시 한번 ‘성찰’의 외침이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그런 목소리가 없는 것보다야 물론 낫지만, 과연 이번에는 성찰해야 할 그들의 오류와 한계를 제대로 짚고 있는가?

길고 긴 반성의 목록 가운데에서도 나는 4년 전에 두려운 예감을 담은 칼럼에서 다뤘던 더불어민주당의 결정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때도 지금처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과 함께 기초의원 선거구를 2인 선거구 중심으로 획정했다. 선거법은 시군구의원 선거구를 2인 이상, 4인 이하로 규정하고 있으나, 4인 선거구를 다 2인 선거구로 쪼갰던 것이다. 결과는 칼럼에서 예상한 그대로였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두 당이 대한민국의 모든 기초의회를 양분했다.

물론 전에도 지방의회 의석은 두 당이 독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혁명’이라 부른 사건 뒤에도 이 현실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굳어졌다는 점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 무렵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해야 한다”는 조항을 담은 개헌안을 내놓으며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코앞으로 닥친 선거에서는 비례성을 더 가로막는 방향에서 선거구를 획정했다. 3인 이상 선거구를 최소로 줄여 양대 정당 소속이 아닌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을 사실상 차단해버렸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합심하여 내린 이 결정 덕분에 후자가 재도약할 탄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탄핵의 여파가 워낙 커 자유한국당 지역조직의 오랜 당원들조차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당선되는 형편이었지만, 어쨌든 자유한국당은 풀뿌리 수준에서 당이 더 추락하지 않도록 막고 미래를 기약할 기초 체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자유한국당을 살린 것은 다른 누가 아니었다. 이들을 영원한 하위 파트너로 삼아 양당 구도 아래에서 장기 집권한다는 야무진 꿈을 꾼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바로 이 꿈에 먹혀버린 셈이다.

그러니 더불어민주당이 정말 진지하게 반성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이 헛된 꿈과 단절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첫번째로 실천할 과제도 이미 나와 있다. 지방선거를 맞아, 시민사회의 다양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초의원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양당 외의 다른 흐름들에도 지방의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것만이 2017년 이후 계속된 참담한 후퇴에 대한 작은, 아주 작은 반성의 증거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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