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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정치적 양극화 해소에 얼마나 준비됐을까?
- 입력 2022.06.14 14:23 조회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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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우석대학교 교수)
- 경향신문 편집국장과 논설주간, 북한대학원 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내고 우석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리버럴아츠센터(KLAC) 이사장, 한국국방연구원(KIDA) 이사를 맡고 있다. 북한정치, 남한 정치에 모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이대근 기자의 정치 읽기>, <북한군부는 왜 쿠데타를 하지 않나>, <12개의 렌즈로 보는 남북관계>(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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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석열 정부의 이중적 성격 - 유별나면서도 익숙한
우크라이나 전쟁? 세계 공급망 교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 긴축정책? 세계 경기 둔화의 공포를 퍼뜨리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 현상? 각종 경제지표를 2007~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최악으로 바꿔 놓고 있다. 국내 부동산 시장?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 그렇지 않아도 심각했던 상황이 2년 이상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 나빠지고 있다. 세계 최악의 한국 출생률, 최고 수준의 한국 자살률, 급속한 한국 초고령화? 변함없다. 미·중 전략 경쟁? 한국을 양자택일의 딜레마에 빠뜨리고 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거듭 발사하고 있으며 7차 핵 실험 준비를 완료했다. 윤석열 정부가 마주한 현실이다.
윤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전 세계는 팬데믹 위기, 교역 질서의 변화와 공급망의 재편, 기후 변화, 식량과 에너지 위기,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 후퇴 등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또는 몇몇 나라만 참여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에 직면해 있습니다. 다양한 위기가 복합적으로 인류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국내적으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자기 앞에 놓인 엄중한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충분히 강조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사회적 양극화의 원인이자 결과인 정치적 양극화이다. 정치적 양극화는 당파적인 사람들이 두 진영으로 결집해 대립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 상황을 해소하지 않으면, 사회적 양극화도 해결할 수 없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양극화가 먼저냐, 정치적 양극화가 먼저냐 인과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사회적 양극화와 정치적 양극화는 서로 맞물려 분열과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함께 풀어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윤석열 정부의 국정 성공도, 윤석열 시대 삶의 개선도 기대하기 어렵다.
1) 새롭고 유별난 권력
윤석열 정부는 나라 안팎으로 실타래처럼 엉킨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치적 리더십을 행사하고 통합을 이룰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해 답을 찾기 전에 먼저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살펴보면 윤석열 정부가 난제를 잘 풀어갈지 기대해도 좋을 만한 특성과 자질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윤석열 정부는 여러모로 이전의 보수 정부와는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윤 대통령은 대선 이전까지만 해도 당파에 속한 적도, 당파적 갈등에 참여해본 적도 없다. 검찰총장직을 사퇴하고 정치에 입문할 때는 정치 갈등의 축인 기성 거대 양당정치에 편입되는 것을 꺼려했다. 그 때문이겠지만, 그는 한때 제3당 창당을 통한 정치참여로 기울기도 했다. 촉박한 대통령선거 일정상 국민의 힘에 입당했지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특정 당파와의 일체감이 없는 그는 대선 때 국민통합위원회를 설치해 민주당·녹색당 출신을 비롯한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의 인물을 영입했다. 비 보수, 비 국민의힘 인물을 전면에 배치해 특정 당파의 대표자가 아닌 통합적 지도자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그가 집권하면 정계개편할 것이라는 소문이 여의도에 파다했던 것도 그의 현실정치 인식이 반영된 결과였을 것이다.
대선 유세 때 그는 민주당을 상징하는 정치 지도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존경심을 표명한 바도 있다. 호남지역 혹은 중도층 맞춤형 유세 차원의 발언이겠지만 그게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그의 소신 표명이기도 했을 것이다. 기존 국민의힘 계열 보수 정치인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태도이다. 보수진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5·18 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 대통령수석비서관, 장관, 국민의힘 의원 99명과 함께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그는 기념사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은 국민 통합의 주춧돌”이라며 “저는 오월 정신을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기념식에 매년 참석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자신을 보수라고 한 적이 있지만, 낡고 편협한 보수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의힘도 더 이상 과거의 보수정당은 아니다. 극우적 태극기 부대와 결별하고 탄핵의 강을 건넜다. 30대 젊은이를 당 대표로 선출하는, 파격적인 세대교체로 당을 혁신했다. 스스로 과거 청산을 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더 이상 과거의 수구 권력이 아니다.
2) 익숙한 권력
그렇다고 윤석열 정부가 완전히 새로운 보수 정권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기존 보수 정권과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까 생각할 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국면 및 당선자 시기는 물론 새 정부가 출범하고 나서도 과거 보수 정권과 차별화할 만한 국정 비전, 국정 방향을 내놓은 적이 없다. 대통령 취임사 때도 그랬다. 대통령 취임사라면 국정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비전을 담고 그 비전으로 시민 사이에 기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국정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매우 짧은 시기 대선에 출마하고 당선된 그 앞에 난제는 쌓여 가는데 그의 국정 운영 능력과 지도력은 의심받고 있다. 취임사는 그런 의구심을 풀어주고 비전을 통해 시민들에게 국정의 지향점을 이해시키고 동의를 구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그런 기회를 놓쳤다.
취임사는 ‘자유’로 뒤덮였다. 다른 주제 찾기는 소용없는 일이다. 대선 때인 2021년 12월에도 그는 ‘자유’를 설파했다.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 아니라, 자유가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일정 수준의 교육과 기본적인 경제 역량이 있어야만, 자유가 뭔지 알게 되고 왜 자유가 필요한지 알게 된다.” “공동체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사회에서 산출된 생산물이 시장을 통해 분배된다. 저는 상당한 정도의 세금을 걷어, 어려운 사람과 함께 나눠서 교육과 경제 (기반)의 기초를 만들어주는 게 자유의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본다.” 그는 5월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첨단산업은 자유로운 분위기와 창의에 의해서만 가능한데 자유민주주의 시스템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단정적이고 과장된 표현이지만, 윤 대통령은 세상만사를 자유 철학으로 재해석하기를 즐기는 것이 분명하다.
취임사에 차고 넘치는 ‘자유’를 두고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의 세계관의 표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취임사에서 굳이 자유론을 펴기로 했으면 그것이 어떻게 새 정부를 바꿔 놓을지 변화상을 제시하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러지 못했다. 자유가 새 정부의 실천 지침이 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다.
다만 자유가 기업의 자유, 성장주의를 지향한다고 해석할 만한 단서는 있다. “우리나라는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빠른 성장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사회 이동성을 제고함으로써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 성장론이 특별한 점은 양극화, 사회 갈등, 자유와 민주주의 위협을 모두 성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에 있다. 그는 갈등이 오직 자원 부족에 기인한 것이고, 성장을 통해 자원을 늘리면 서로 싸울 일도 없다고 믿는 것 같다. 원하는 것을 누구나 다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갈등의 대부분은 사회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절대적 규모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보유한 자원의 차이, 즉 상대적 크기에서 비롯된다. 저성장 시대에 무한히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무한히 성장한다 해도 갈등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성장을 통한 사회 갈등 해소’ 의견을 피력했다고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이 앞으로 성장 만능주의에 의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유 철학은 윤석열 정부 정책을 전망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지도, 구체적이지도 않다. 자유 철학과 국정 간 단단한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자유론이 아니라, 그것이 구체적인 정책을 통해 구현되는 방식이다. 자유론만으로 그가 자유 지상주의를 추구한다거나, 새 정부가 시장 근본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단하기에는 이르다.
한국은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성장론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성장주의, 전혀 새롭지 않다. 어느 정권이든 누가 더 성장을 잘하느냐 경쟁했고, 20대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20대 대선은 새로운 비전을 두고 경쟁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기존 정권을 연장할 것이냐, 교체할 것이냐 하는 단순 선택지만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교체가 선택된 것뿐이다. 어떤 정권교체인가에 관한 준비와 논의는 거의 없었다. 정권교체론에 집중한 국민의힘은 정권교체에 필요한 대통령 후보와 당 대표 두 사람의 전략적 가치를 고민했지, 새 정부의 비전을 두고 치열한 토론을 한 적도 없고, 그렇게 하라는 시민적 압박도 받은 바 없다.
대선 최대 쟁점이 정권교체 여부였으니 윤 대통령은 집권 그 자체로 이미 자기 사명을 다한 것이다. 새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거나 하는 특별한 기대와 요구도 없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미래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관성적으로 과거 보수 정권의 정책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묻지 마 정권교체’의 결과다. 윤석열 정부, 유별나지만 익숙한 권력이다.
2. 윤석열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 - 시장과 성장 중시
1) 신자유주의적 접근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5월 3일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과 성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국정과제’는 ‘계속되는 저성장으로 양질의 일자리 증가가 제약되고 있다’고 전제했다. 저성장으로 인해 청년세대의 기회가 제한되고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악화되며 지역, 계층, 소득 등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밝혔다. 그 결과, 지속가능한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에 대한 기대가 약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 대안은 경제운용 주도권을 정부 아닌, 기업과 민간 영역이 행사하는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탈문재인 정책’에서 잘 드러난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는 원전 르네상스, 부동산 규제 완화, 탄소중립 기준 완화, 주 52시간 유연화, 중대재해처벌법 완화가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 정책의 전환을 정당화하는 명분은 ‘혁신’이다. ‘국정과제’는 시장 자율 기능을 중심으로 기업 주도의 ‘혁신 성장’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창의력과 시장의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국가의 역할은 시장 환경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것에 국한하겠다는 접근법이다. ‘혁신 성장’을 위해 규제완화, 친기업 감세, 재정 건전성을 기조로 할 것이라는 점도 제시했다. ‘국정과제’가 제시한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는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의 부활과 같다. ‘혁신특구’는 박근혜 정부의 ‘규제프리존’의 다른 이름이다. ‘공공기관 혁신’에 관해서는 ‘공공기관 스스로 인력 효율화, 출자회사 정리 등 추진 시 인센티브 부여하여 자율혁신 유도’라고 명시했다. 즉, 인력구조조정과 효율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김형용, 2022).
‘사회서비스 혁신’으로는 국가와 공공의 책임보다는 이용자 선택권 강화와 사회서비스 제공기관 다변화와 규모화, 민관협업 활성화를 통한 혁신을 강조했다. 사회서비스 전반을 신자유주의적으로 접근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김진석, 2022). 재정정책(건강보험 등 사회보험과 상병수당)은 ‘지출 효율화’(재정긴축)가 핵심이다(김형용, 2022). ‘작은 정부론’에 가깝다.
시장원리는 복지정책에도 적용된다. 윤석열 정부의 복지 방향은 공공부조의 경우 제한적인 국가책임을, 사회보험의 경우 재정건전성 강화 및 개인책임을, 사회서비스의 경우 시장화 정책을 통해 민간참여를 강화하는 쪽이다(김형용, 2022). 또 ‘국정과제’는 ‘필요한 계층에 더욱 두터운 복지를 제공한다’고 명시하면서도 부동산 세제 완화, 국내상장 주식 양도소득세 완화, 국채 증가 억제를 제시했다. 어떻게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지 계획은 제시하지 않았다(정세은, 2022). ‘재정의 트릴레마’라는 것이 있다. 세 부담 수준을 낮추고, 부채비율을 낮추면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이상민, 2022). 윤석열 정부가 이 트릴레마를 어떻게 극복할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실제 복지확대는 억제되고 ‘선별적 복지와 복지의 시장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기업 친화적, 북한 적대적 정부일 것은 자명하므로 경제, 국방 부문 지출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고 결국 제시한 복지공약을 축소 혹은 폐기하거나 기존의 복지사업 중 잘 드러나지 않는 사업, 표 안 되는 계층에 대한 사업을 중복 혹은 낭비 등의 이유를 내세워 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또한, 상병수당 확대, 돌봄 확대, 취약계층의 일자리 전환 지원, 전 국민 고용보험 확대와 같은 복지공약들은 소요재원조차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제대로 실행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정세은, 2022).
‘국정과제’는 세부적인 정책에서 문재인 정부 정책과는 차이가 있으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과는 친화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기업 지원과 감세를, 박근혜 정부가 재정 지출 효율화를 통한 증세 없는 복지확대를 추진한 것처럼 윤석열 정부도 기업지원, 복지확대, 감세와 지출 효율화를 제시하고 있다(정세은, 2022).
2) 그러나 열려 있는 경로
윤석열 정부가 실패한 신자유주의 노선에 집착한다면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켜 시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윤 대통령의 세계관인 자유도 침해될 수 있다. 그러나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복지’ 등 신자유주의적 담론은 문재인 정부 때와 다르지 않다(김진영, 김형용, 2022). 윤석열 정부도 ‘진보 정부’와의 차별화를 부각하기보다 은근히 발전적 계승을 강조하고 있다. ‘국정과제’는 과거 정부에 대한 평가와 원인 진단,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과거 보수 정부의 ‘더 큰 대한민국’과 과거 진보 정부의 ‘더 따뜻한 대한민국’을 동시에 추구하는 투 트랙 전략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과 진보 정부의 가치를 어떤 총론적 프레임에서 접근할 것인지, 어떻게 이 두 개의 지향점을 조화롭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통합적 관점과 접근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김진석, 2022).
윤석열 정부의 성격이 그런 것처럼 국정과제 역시 모호하고 불분명한 점이 너무 많다. 반드시 ‘큰 시장-작은 정부’(김형용)의 이념에 집착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경로가 열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정책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3. 통합 - 삶의 개선을 위한 정치적 조건
1) 사회적 양극화 해소를 위한 통합 정치
한국 사회가 당면한 사회적 양극화와 불평등은 특정 정권이 혼자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윤석열 정부가 자기 정부에 내재한 불확실성, 삶의 불안을 초래할 수 있는 요소를 극복해 성공한 정부로 기억될지, 국정 독주로 정치적 충돌을 야기하고 그로 인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 정부로 남을지는 행정부-국회 관계, 여야관계에 달려있다. 시민을 대표하는 정당과 국회, 이해 당사자 간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과정 없이 사회 경제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좋은 예이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 연합정부를 구성해 협치했으면 많은 변화를 이루어 내고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집권 초기 여소야대 국회에도 불구하고, 야당을 배제한 채 행정명령(시행령)에 의한 통치를 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제도인 입법부를 무시하는 국회 우회 통치, 행정부라는 하나의 바퀴로만 국가를 이끌어가는, 비정상적인 국정을 강행했다.
이런 국정운영 방식은 21대 총선으로 정국이 여대야소로 전환하자 더욱 기승을 부렸다. 한동안 국회 상임위원장 모든 자리를 독점하는, 반의회주의적 행태가 대표적이다. 그 결과는 잘 아는 바와 같이 대결 정치, 삶의 개선 실패, 시민의 지지철회, 정권교체였다. 민주화 이후 흔한 일이다. 윤석열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불평등, 저출생, 고령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 노인빈곤율과 같은 고질적 문제를 행정 권력만으로 해소할 수는 없다. 그런데 ‘국정과제’는 기존 재정여건으로는 불가능한 복지사업들을 제시했다. ‘국정과제’ 달성을 위해서는 증세를 하든지, 재정 지출 구조조정을 하든지, 복지를 축소해야 한다. 이는 행정부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두 시민과 야당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적절한 세부담 수준, 적절한 부채비율, 적절한 재정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황금균형(golden mean)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김진영, 이상민, 2022).
그러나 정치적 양극화에 기반한 한국 정치 구조는 사회적 합의를 위한 대화와 협력의 정치를 어렵게 한다. 이견과 반대를 조율하는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결적 정치 구조는 정책 차이로 발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대결은 합의 쟁점을 두고도 펼쳐진다. 2017년 대선 때 5당 대통령 후보 모두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하자 보수 야당은 일제히 정부를 공격했다. 여야 간 정책적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여론에 편승해 정치 공세를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협치를 했다면 최저임금 정책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탈원전 공약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후보가 공약한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보수 야당은 반대했다. 대결 정치는 자기 논리와 정책도 스스로 배신하게 만든다. 한국 정치의 대립 구조는 정치적 합의를 이루는 것도 가로막지만, 합의를 한다 해도 합의 이행 과정의 작은 절차, 방법상의 문제를 두고도 언제든 대결할 기회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한국 정치의 대립 구조의 견고함은 지난 대선에서도 확인되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실책을 인정하고 조국 문제를 사과했다. 국민의힘은 탄핵의 강을 건너고 극우 세력과 결별하며 혁신을 했다. 그만큼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 거리는 좁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전은 전례 없는 적대와 혐오가 지배했다. 지난 16대, 18대, 19대 대선 때는 인수위 시기와 정부 출범 초기 여야 간 공통공약을 정리하고 공동입법 추진에 합의한 사례가 있다. 물론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대립으로 공동입법이 실현된 적은 없었다. 그런데 20대 대선 때는 공통공약 집계조차 하지 않았다. 외국과의 전쟁보다 내전이 더 끔찍한 것처럼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의 일부였던 검찰총장 출신 후보와 근친 권력 경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코로나 19로 인한 소상공인 보상 방침에 합의를 하고도 절차와 방법의 차이를 두고 마치 아무런 합의도 없는 것처럼 싸운 적도 있다.
이렇게 한국의 정치 구조는 대결의 장에 들어온 모든 정책들을 정쟁이라는 화로의 불쏘시개로 소비한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5월 느닷없이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 의지를 밝혔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차별금지법은) 지방선거의 유불리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인권의 가치와 헌법정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은 민주당이 집권 때 외면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대선 패배 직후 검찰 수사권을 폐지하는 이른바 ‘검수완박’ 무리수를 두며 국민의힘과 정면충돌을 마다하지 않던 민주당이 이 법에 관심을 보인 배경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윤석열 정부와 대결하는데 필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진영 대결의 정치 구조에서 난마처럼 얽힌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전쟁 정치는 재만 남긴다.
지금 윤석열 정부 초기이다. 협치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선 후보 토론에서 윤석열 후보는 차별금지법, 국민연금 개혁 등 주요 쟁점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민감 쟁점을 회피하기 위한 전술적 언급이겠지만, 국정 성공은 협치에 의해서만 보장된다는 사실은 인식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5월 코로나 19 손실 보상 재원을 포함한 추가경정 예산안 관련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연금·노동·교육 개혁은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됩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한덕수 총리 후보도 5월 2일 국회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협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갈등과 양극화, 정치적으로 통합과 협치가 안 되는 것이 우리 사회 전체의 총요소 생산성(노동 생산성뿐 아니라, 노동자의 업무능력, 자본투자 금액, 기술도를 복합적으로 반영한 생산 효율성 수치)을 계속 떨어뜨린다”라면서 “협치나 통합 없이 제로 퍼센트 성장, 고물가 등을 없앨 수 없다”고 밝혔다.
사실 연금·노동·교육 3대 개혁은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 추진이 불가능하다. 그동안 역대 정부가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실패한 것도 사회적 합의 부재,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위한 통합과 협치의 부재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협치를 위한 행동 계획을 세울 것인가? 윤석열 후보의 공약은 사회정책을 통해 지향하는 사회상이나 주민 삶의 변화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진단과 문제 인식도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 문제는 ‘국정과제’에도 그대로 반복되었다(김진석. 2022).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를 더 보완하고 개선하고, 구체화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런 국정 재조정 과정을 협치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전도가 어두울지 밝을지는 정치적 양극화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협치를 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경주하느냐에 달려있다.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하지 않는 한 사회적 양극화 해소도 불가능하다.
2) 통합과 분열의 복합적 신호, 그리고 분열로 기우는 집권 초기
윤 대통령은 당선 일성으로 ‘의회 존중’, ‘협치’를 강조했고, 취임식 이틀 전에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청와대 참모,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6·1 지방선거 종료 후 윤석열 정부가 협치를 위한 구체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긍정적 신호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포용성은 일반론적이며 원칙론에 머물러 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낼 만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국회 시정연설 때의 “초당적 협력”은 자신의 책임이 아닌, 야당을 향한 청구권처럼 언급했다. 그 때문인지 그의 취임사 한 구절이 귀에 거슬린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입장을 타협하기 위해서는 상대 존중, 양보, 관용이 필요하다. 정치·사회적 갈등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누가 선하고 악한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의 갈등은 진실을 추구하는 쪽과 거짓을 추구하는 쪽 사이의 경쟁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과학과 진실’을 갈등의 최종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절대 진리는 존재하며, 모두 그것에 복종하면 갈등이 사라진다고 믿는 것 같다. 그렇다면, ‘과학과 진실’의 복음을 전해줄 자는 누구인가? 대통령인가, 여당인가, 야당인가? 역사는 억압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과학과 진실’을 이용한 기록으로 넘쳐난다. ‘과학과 진실’은 새로운 갈등을 유발한다. 통합 논리와 충돌한다.
사실 윤 대통령은 여러 차례 ‘포용적, 통합적’ 태도와 다른 신호를 발신했다. 그는 20대 대선에서 젠더 갈등을 부추기며 한국 선거 역사는 물론 세계 민주주의 선거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분열 선거를 이끌었다.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체계 개선을 공약하고, 한국 젊은이들이 중국인을 싫어한다고 주장하며 외국인 혐오, 반중 감정을 조장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기 현직 정부와 대통령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언행으로 신구 권력간 갈등을 유발했다.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강행했다. 내각 구성 때 지역, 세대, 성 균형을 배려하지 않았다. 통합내각 아닌 편향내각이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검찰개혁문제로 야당과 불편한 관계인 한동훈을 법무부 장관으로, 대선에서 상대 당 후보 저격수로 활약한 원희룡 전 제주지사를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 야당을 자극했다. 특히 한동훈 장관은 “검찰 두려워할 사람은 오직 범죄자뿐”이라며 야당을 모욕하고 공격하는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대통령 문고리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는 모두 검찰 출신 측근으로 채웠다. 윤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으로 지방선거전에 뛰어들어 민주당과의 대결 규모를 키웠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 후보도 질세라 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 윤석열 정부를 공격하며 대선 연장전을 불사했다.
이렇게 차곡차곡 불신과 분열을 쌓은 윤석열 정부가 통합을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윤석열이라는 정치 신인은 격렬한 대선 과정을 거치고, 집권 초기 때 이른 대결정치에 뛰어들면서 정치 갈등에 단련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윤 대통령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야당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에 휘말려, 통합과 협치의 길이 아닌, 분열과 대결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과연 그도 정치적 양극화의 포로가 될까?
4. 준비 없이 오른 무대
우리는 벌써 최선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를 걱정하고 있다. 그것은 야당 배제의 독선적 통치를 한 문재인 대통령의 실패를 반복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고, 신자유주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며 독주하다 정치·사회적 갈등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경로가 벌써 결정되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윤석열 정부는 이렇게 보면 유연성을 지닌 듯하고, 저렇게 보면 과거를 답습하는 듯한 모호성과 혼란함을 간직하고 있다. ‘묻지 마 정권교체’에 따른 불가피한 준비 부족 때문일까? 그것은 불길한 전조일 수도 있지만, 미결정 상태라는 의미에서는 희망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사랑, 준비도 없이 벌써 무대 위에 올려졌네.” 심수봉의 ‘비나리’ 가사 중 일부이다. 권력을 잡은 세력은 물론 권력을 잃은 민주당도 야당으로서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 윤석열 시대를 맞이했다. 시민들도 막연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이미 공연은 시작됐다. 각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김진석, 2022,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진단과 평가: 사회보장 정책을 중심으로”, 『긴급좌담회,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진단과 평가-사회보장·조세재정 정책』(참여연대⋅보건의료단체연합, 2022.5.9.).
김진영, 2022, “토론 5”, 『긴급좌담회,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진단과 평가-사회보장·조세재정 정책』(참여연대⋅보건의료단체연합, 2022.5.9.).
김형용, 2022, “토론 2”, 『긴급좌담회,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진단과 평가-사회보장·조세재정 정책』(참여연대⋅보건의료단체연합, 2022.5.9.).
이상민, 2022, “토론 5, 시장친화가 아닌 기업친화에 멈춘 재정정책- 정치적 구호가 아닌 경제적 실질에 따른 정책이 필요”, 『긴급좌담회,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진단과 평가-사회보장·조세재정 정책』(참여연대⋅보건의료단체연합, 2022.5.9.).
정세은, 2022,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진단과 평가: 조세재정 정책 중심으로”, 『긴급좌담회,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진단과 평가-사회보장·조세재정 정책』(참여연대⋅보건의료단체연합, 2022.5.9.).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취임사, 2022.05.10. 대한민국 정책브리핑(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정책 DB/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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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2022,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정책 DB/전문자료
https://www.korea.kr/archive/expDocView.do?docId=39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