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다정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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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플레이션의 위험과 진보적 대안
- 입력 2022.09.14 15:12 조회 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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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국 리쓰메이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보다정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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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플레이션의 위험과 진보적 대안-이강국.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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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교, 케임브리지대학교, 서울대학교 등의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연구주제는 불평등과 경제성장, 금융세계화 등이다.
1. 인플레이션이 돌아왔다
현재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물가상승은 1970년대에 매우 높아서 심각한 경제문제였지만 최근에는 전반적인 경제침체를 배경으로 물가에 대한 우려가 거의 사라졌었다. 선진국 경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의 장기정체와 디플레이션이 걱정거리였고, 각국의 중앙은행은 양적완화를 포함하여 매우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지속해 왔다. 한국도 2000년대 들어서는 총수요 둔화와 함께 인플레이션이 낮았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가 급속히 회복되는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심화되어 인플레이션이 급등했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은 2021년 하반기 이후 높아지기 시작하여 2022년 중반에는 수십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 되었다. 2022년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9.1%로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6월 중순 이후 하락한 휘발유 가격을 반영하여 7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이전 달보다 조금 낮아진 8.5%를 기록했다. 한국은 7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6.3%를 기록하여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품목별로는 공업제품이 8.9%, 개인서비스가 6% 상승하여 물가상승을 견인했는데 공업제품은 석유류가 35.1%, 가공식품이 8.2% 올랐고, 개인서비스 중에서는 외식이 8.4% 상승했다.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4.5% 상승했고 올해 전체의 물가상승률도 약 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인플레이션의 급등이 단기적인 현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정상화되면 다시 낮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등 서구 대 중국과 러시아의 국제정치적 갈등 심화와 함께 낮은 인플레를 가져온 세계화 시대가 끝나고 높은 인플레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높은 인플레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어떻든 현재 각국 정부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분명 인플레의 억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 미국과 한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
자료: 통계청,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2.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정부의 대응
그렇다면 이번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인플레이션은 경제의 공급능력에 비해 높은 구매력으로 인해 수요가 과다하거나 수요 수준에 비해 공급이 위축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최근 높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공급측 문제와 관련이 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가격과 식량가격의 급등 그리고 코로나19의 재확산과 중국의 봉쇄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교란의 지속 등이 최근 인플레가 급등한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에너지나 곡물시장의 가격의 급속한 변동을 초래하는 투기적 금융자본의 역할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경우 수요측 요인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팬데믹 이후 미국의 경우 대규모 재정확장으로 급속한 경기회복과 부분적으로 경기과열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인플레의 급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실업률이 더 크게 하락한 국가의 인플레가 더 높지 않다는 현실은 공급측 요인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미국 연준의 연구는 미국에서 2021년 하반기에는 수요측 요인이 더 중요했지만 2022년 들어 급등한 인플레이션에는 공급측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한다(Shapiro, 2022). 이에 따르면 2022년 5월 전년 대비 근원물가상승률 중 약 2.1%p는 공급측 요인과 관계가 있으며 약 1.6%p는 수요측 요인 그리고 0.9%는 그 성격이 모호한 요인이었다.
한국도 전반적으로 공급측 요인이 최근 인플레이션에 더욱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물가 오름세의 확대는 국제유가의 상승과 식량가격과 원재료비 상승 그리고 글로벌 공급차질 등으로 인한 가공식품과 공업제품 가격상승과 관련이 크다(한국은행, 2022). 외식을 중심으로 한 개인서비스 물가상승에도 수요확대와 함께 국제식량가격 상승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한국은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위기 시기 재정확장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과도한 총수요로 인한 경기과열을 말하기는 어렵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이후 2021년 중반까지 코로나19에 대응한 직접적인 재정지출이 선진국 평균 GDP 대비 17.3%였는데 한국은 4.5%에 불과했다. 물론 7월 실업률이 2.9%로 매우 낮았고 전년 대비 취업자 수가 약 83만 명 증가했으며 고용률도 높아졌다. 또한, 대면서비스 소비도 거리두기 해제와 함께 높아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한국에서도 수요측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과 달리 경제의 총산출능력인 잠재 GDP에 비해 현실의 GDP 수준이 낮아 산출갭이 마이너스 상태라서 총수요가 과도한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생활비용 상승으로 사람들의 고통이 커지고 실질소득이 감소하여 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생활필수품 가격의 높은 상승은 생필품 소비 비중이 높은 저소득층에 더욱 큰 악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높은 인플레이션 기대가 고착화되면 장기적으로 인플레가 더욱 높아지고 이를 꺾기 위해 더 강한 긴축정책을 펴서 경기가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가능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먼저 각국의 중앙은행은 인플레에 맞서 기준금리를 급속히 그리고 꾸준히 인상하여 총수요를 둔화시키는 긴축적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의 연준은 3월 이후 지속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인플레이션이 급등하자 6월과 7월 소위 ‘자이언트스텝’이라 불리는 0.75%p 대폭 인상을 실시했다. 한국은행도 2021년 8월 이후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했고 7월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0.5%p 인상했다. 금리인상은 경기를 둔화시키고 노동시장에서 실업을 증가시켜 임금상승을 억제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낮추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할 것이고 기업들은 상품가격을 높게 매기려 할 것이기 때문에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확장적 재정정책은 총수요를 증가시켜 인플레이션 압력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재정적자를 줄이는 재정정책을 편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대기업에 대해 15%의 최저법인세율 도입과 처방의약품 가격인하를 통해 재정수입과 흑자를 증가시켜 인플레 압력을 낮추고자 한다. 한국 정부도 2023년 이후 긴축적인 재정을 추진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이와 함께 생활필수품의 가격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미시적인 정책들도 도입했다. 한국 정부는 에너지가격 억제를 위한 유류세 인하와 생필품 가격안정을 위한 할당관세 등의 조치를 도입했다. 정부는 5월 유류세를 30% 인하하고 7월에는 법정 최대한도인 37% 인하했으며 8월 2일 국회는 50%까지 인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 정부도 유가보조금을 확대했고 미국도 연방 유류세 면제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는 LNG 할당관세를 연장했으며 수입부가세 면제 등으로 수입품 원가상승 압력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도입했다. 이와 함께 저소득층의 연료비, 식로품비, 생필품비 지원과 취약계층의 복지지원을 확대했고, 축산물 가격안정을 위한 할당관세와 농산물 조기 방출 등 8000억 원 규모의 인플레이션 대책을 발표했다.
한편 독일은 6월부터 한 달 동안 9유로에 모든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도입했고, 스페인은 10유로에 4개월 동안 한 도시 내의 기차를 모두 탈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 밖에 영국이나 이탈리아, 헝가리 등 유럽 국가들은 유가 상승을 배경으로 한 정유사들의 과도한 이윤에 대해 횡재세를 매기기도 했다.
3. 금리인상의 문제점 : 경기후퇴와 가계부채
그러나 무엇보다도 금리인상과 같은 긴축적 통화정책은 현재의 인플레를 억제하는 데 한계가 크다. 이는 총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이지만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공급측과 관련이 크기 때문이다. 연준이 기름을 찍어낼 수는 없다는 비판이 있듯이 금리인상은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측 교란이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이 있는 에너지가격이나 식량가격 급등을 직접 해결할 수 없다. 또한, 한국은행도 강조하듯 금리인상이 기대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도 있겠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이 현실의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과 경로를 둘러싸고도 논란이 존재한다(Bonatti, et al., 2022).
물론 금리인상이 줄어든 총공급에 비해 총수요를 상대적으로 줄여 인플레를 억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경기를 둔화시킨다는 문제가 있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이 어려워지고 투자와 소비가 둔화되며 자산가격이 하락하여 경제가 위축된다. 또한, 변동금리로 부채를 지고 있는 차입자들의 이자부담이 커져 총수요와 경기를 더욱 둔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경기가 둔화되면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이 늘어나며 저소득층의 임금상승이 정체하고 노동자의 삶이 악화될 수 있다. 물론 높은 인플레이션도 시민들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경기둔화와 실업의 증가는 더욱 큰 충격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국, 금리인상과 긴축은 수요를 억제하여 코로나19 위기 이후의 경제회복을 가로막고 나아가 성장과 분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가계부채가 매우 높은 현실에서 금리인상이 자영업자 등 취약한 채무자들의 대출을 부실하게 만들어 금융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비율은 코로나19 경제위기 이후에도 빠르게 상승하여 세계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2022년 1분기 한국의 가계부채가 GDP 대비 104.3%로서 세계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고 팬데믹 이후 증가속도도 가장 빠르다. 이는 코로나19 시기 정부 재정의 역할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작았다는 현실과 관련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속한 금리인상은 부채를 진 취약계층에게 충격을 주고 금융안정성을 해칠 수 있어서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몇 년간 가계부채 연체율이 하락하고 3곳 이상에 부채를 지닌 다중채무자이자 저소득층 혹은 저신용인 취약차주의 비중도 줄어들어 현재 가계부채 위험이 크게 높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잠재적으로 취약차주가 될 가능성이 큰 이들이 증가했고, 특히 취약차주 중 자영업자 비중이 상승하는 등 코로나19 이후 증가한 자영업자 가계대출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배경으로 작년 말 현재 금융부채를 보유한 자영업가구 중 적자가구가 전체의 약 17%인 78만 가구로 이들의 금융부채가 약 177조 원에 달하는 현실이다.
2022년 들어서는 부채의 취약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2분기 가계신용이 1869조 4천억 원으로 전 분기에 비해 6조 4천억 원 증가했다. 1분기에는 전 분기에 비해 가계신용이 거의 늘지 않았고 2021년에 비해서는 증가세가 둔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체 채무자 중 다중채무자 비중은 2021년 말 22.1%에서 2022년 3월 말 22.4%, 약 446만 명으로 약간 증가했고, 취약차주 비중도 높아졌다. 특히 저축은행 등 2금융권, 개인사업자 그리고 30대 이하 연령대에서 다중채무자 비중이 높아졌다. 또한,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3월 말 현재 취약차주가 보유한 자영업자대출도 88.8조 원으로 2019년 말에 비해 약 31% 증가했고,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한국은행, 2022).
이러한 상황에서 금리가 빠르게 인상된다면 경기둔화와 함께 자영업자들의 이자부담과 대출연체율이 높아져 비은행금융기관의 건전성이 저하되고 금융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 한국은행도 금리상승이 자영업자들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2022년 0.1%포인트, 2023년 0.7%포인트 높일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2022년 9월 금융지원 종료까지 고려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23년에는 자영업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46%까지 높아지는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최근 정부는 가계와 자영업자,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총 125조 원에 달하는 민생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이 대책은 자영업자를 위한 채무조정과 부실채권 매입을 위한 30조 원 규모의 새출발기금, 비은행권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전환해주는 대환대출 8조 5000억 원, 그리고 리모델링 등 사업자금 지원 41조 원 등을 포함한다. 또한, 변동금리 주택 관련 대출을 고정금리로 바꾸어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안심전환대출 45조 원과 청년특례 채무조정 강화 등의 계획도 제시했다. 이는 자영업자 등 취약한 차주의 상환능력 악화와 대출 부실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금 공급 방식이 간접 지원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정부 예산은 약 4조 7천억 원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공공금융기관이나 은행 자금을 이용해 지원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채무조정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지출을 확대하고 새출발기금의 재무조정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할 것이다.
4. 임금-물가상승 악순환과 자본유출 가능성
인플레에 대응하여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주된 논리는 임금-물가상승 악순환 가능성이다. 이는 인플레를 배경으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그로 인해 기업들이 다시 상품가격을 올려 인플레가 악화되고 다시 임금이 높아지는 악순환을 의미한다. 실제로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에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이론적으로 이러한 주장은 경기와 노동시장이 과열되고 실업률이 낮아지면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는 관계인 필립스 곡선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필립스 곡선 관계는 매우 약해졌다. 최근 연구는 그 주요한 이유로 노동자들의 협상력 약화를 지적한다(Ratner and Sim, 2022). 실제로 노조조직률이 계속 하락했고 과거와 달리 노동자들이 임금협상에 물가상승을 반영하는 경우도 크게 줄어들었다. 따라서 현재 상황은 과거와 같은 임금-물가상승 악순환이 나타날 가능성이 낮은 현실이다(Boissay et al., 2022).
한국에서도 경제부총리가 임금-물가상승 악순환을 우려하며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자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반면 정부는 기업에게는 규제 완화나 감세 등 지원을 약속하여 인플레이션의 계급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연구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물가상승은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만, 임금상승이 전체 소비자물가상승에 미치는 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김정성 외, 2022). 물론 임금상승이 개인서비스 물가에는 더 큰 영향을 미쳤고 인플레이션이 높았던 1990년대는 임금-물가 상호작용이 강하게 나타났다. 이는 공급측 요인으로 인한 최근의 높은 인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면 임금상승이 물가상승을 자극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올해 5월 노동자의 임금총액은 전년 대비 5.1% 상승하여 4월에 이어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더 낮았다. 규모별로 보면, 300인 이상 사업체의 임금상승률은 8.1%이지만 299인 이하는 4.1%로 크게 낮았다. 하지만 기업들은 지난해 경기회복과 함께 수익이 크게 늘었다. 2021년 코스피에 상장된 12월 결산기업 영업이익은 전년도보다 74%가량 늘었고 순이익은 161%나 증가했다. 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결과’ 속보도 2021년 법인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이 크게 높아졌고,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전년도 5.1%에서 6.8%로, 매출액 세전 순이익률은 4.4%에서 7.7%로 높아졌다고 보고한다. 주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임금상승은 이렇게 높아진 수익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인플레가 높아진 2021년 기업 이익이 급증하고 국민소득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몫은 하락했다. 한 연구는 코로나19 이후 회복기의 인플레에는 과거 40년의 역사와 반대로 임금인상보다 기업의 이윤 증가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한다. 1979년에서 2019년까지 인플레에는 노동비용상승이 약 62%, 기업 이윤 증가가 약 11%를 차지했지만, 2020년 2분기에서 2021년 4분기까지 인플레에는 그 비중이 각각 8%, 54%였다(Bivens, 2022). 또한, 최근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은 둔화되고 있으며 매우 높은 인플레로 인해 실질임금상승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인플레가 노동시장 과열 때문이라는 주장이나 임금-물가 악순환 가능성에 관한 주장의 근거는 희박하다. 이는 부분적으로 최근 산업집중도와 독점이 심화한 현실과 관련이 있다. 시장지배력이 큰 기업들은 인플레를 배경으로 더욱 쉽게 상품가격을 올려서 큰 이윤을 얻을 수 있으므로 오히려 이윤-물가상승 악순환을 우려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만 억제하면 취약한 노동자들의 삶을 악화시킬 것이고 사회적 갈등이 격화될 것이다.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배경은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진다면 한국으로부터 자본이 유출되고 환율이 급속히 절하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8월 25일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은 2.5%로서 한국의 기준금리 2.5%와 동일하다. 그러나 연준이 공격적으로 계속 금리를 인상한다면 한미 간의 금리역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여 한국도 미국을 따라 금리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개발연구원은 미국에 동조해 급격히 기준금리를 올리기보다 국내의 여건에 맞게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펴는 경우가 경기둔화가 작고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높아지지만 빠르게 하락할 것이기 때문에 후생의 관점에서 우월하다(정규철, 2022). 특히 저자는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 해도 한국이 따라 올릴 필요는 없고 기준금리 격차를 용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본유출에 관한 우려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2000년대 이후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았던 경우 대규모 유출과 외환시장 불안정이 나타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원화 환율이 빠르게 높아지긴 했으나 유로나 엔화 환율도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한국은행은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경기둔화와 금융불안 등의 악영향에 유의해야 한다. 에너지와 식량가격이 하락하는 등 전 세계의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글로벌 공급망의 회복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자세가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
5. 진보적 대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현재의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진보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앞서 지적했듯이 현재의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데 금리인상과 같은 긴축적 통화정책의 한계와 부작용이 크다면 공급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에너지나 식량가격의 상승 문제는 주로 해외 요인이기 때문에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공급측에 영향을 미치는 몇몇 정책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석유나 전기와 같은 에너지가격 그리고 통신비 등과 같이 생활에 필수적이며 독과점적이고 공공의 역할이 큰 부문에서는 가격통제를 통해 물가상승 압력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유류세를 대폭 인하해도 시중 휘발유 판매가격은 별로 낮아지지 않은 현실에서 정유사의 가격설정에 대한 규제방안을 논의해 볼 만하다. 또한, 정부도 몇몇 계획을 제시했지만, 농축산물 등의 가격안정을 위해 재정지출 확대를 포함하는 더욱 효과적인 방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편 물가상승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돌려 임금상승을 억제하라는 주장은 단호히 비판해야 할 것이다. 미국도 한국도 인플레와 함께 기업의 이윤이 높아졌음을 고려하면 인플레의 책임은 노동자가 아니라 오히려 기업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임금 상승이 정체하여 노동생산성상승률보다 낮다면 경제 전체로 볼 때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하고 소득분배가 악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특히 독점의 심화가 기업들의 가격인상으로 인한 인플레 압력을 높일 수 있으므로 시장집중을 억제하고 독점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부는 플랫폼 대기업의 높은 수수료나 이윤에 대해 규제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최근 산업집중도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바이든 정부는 플랫폼 기업의 시장지배력을 낮추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한편 인플레이션으로 타격이 큰 하청 중소기업의 납품단가에 원자재가격 상승분을 연동하도록 하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물론 원청기업이 중소기업인 경우도 많고 대기업이 수출시장에서 경쟁과 불확실성에 직면한 현실을 고려하면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자재가격이 하락하는 경우도 고려하여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재정확장과 적자는 수요를 확대하여 인플레 압력을 높일 수 있지만,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생활고를 겪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더욱 확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유류세 인하보다는 저소득층에 대한 직접 지원이나 운송업체에 대한 보조금, 혹은 월정액 무제한 대중교통 티켓 정책 등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유류세 인하는 그 효과가 미미하고 석유 사용을 부추겨 기후변화 대응에도 반대될 뿐 아니라 혜택이 석유 소비가 큰 고소득층에게 돌아가는 역진적인 정책이다. 2022년 말까지 유류세 인하로 인한 세금손실이 약 9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현실에서 이 재원을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책에 돌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 재원 마련을 위해 정유사의 과도한 이윤에 횡재세를 매기는 정책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윤이 커진 기업이나 부자에 대한 증세는 재정적자를 줄여 인플레 억제에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볼 때 현 정부의 감세 정책은 인플레이션 대응에도 모순되는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물가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필요한 것은 공공투자 확대에 기초하여 생산성상승을 촉진하고 총공급을 확대하는 노력이다. 이는 주로 수요측에만 주목해 온 진보진영에게도 공급측 경제학이 필요하다는 최근의 주장과 맥이 닿는다(Klein, 2021). 바이든 정부는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이라는 의제 하에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무상교육과 사회안전망을 확대하기 위해 4조 달러 규모의 대규모 공공투자 계획을 제시했지만, 정치적 반대로 입법에 실패했다. 하지만 최근 신재생에너지 투자와 전기차 구입을 위한 세금감면 등의 공공투자를 내용으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통과되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에너지가격을 낮추어 인플레이션도 완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옐런 재무장관은 미국의 정책지향은 진보적인 방식으로 노동공급과 인프라를 개선하여 생산성과 성장을 높이고 동시에 인플레 압력을 낮추는 현대적인 공급측 경제학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진보적인 공급측 경제정책에 관해 고민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에너지와 식량가격의 급등과 급속한 변동이 단지 우크라이나 전쟁만이 아니라 투기적 금융자본의 과도한 선물시장 투자와 관련이 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국제적인 차원에서 투기를 억제하고 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한 감독과 규제를 위한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모든 거래를 장외시장이 아니라 규제되는 거래소 내에서 투명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시장참여자들의 과도한 거래규모를 제한하는 등의 방안이 국제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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