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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 칼럼] 대통령학과 촛불을 다시 생각한다

  • 입력 2022.10.25 10:39      조회 612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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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지금처럼 아마겟돈 위기에 직면한 적이 없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을 사용해 인류가 핵전쟁으로 멸망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에도 북한의 핵무장과 연이은 미사일 실험, 이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강경반응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를 바라보며 문득 떠오른 것이 1960~1970년대 미국에서 부상한 ‘대통령학’이다. 대통령학의 등장은 두 가지 때문이다. 냉전, 그리고 쿠바 미사일 위기로 상징되는 핵경쟁·핵전쟁 시대를 맞아 미국 대통령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나아가 대통령을 평가할 때 올바른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지적 능력과 리더십에 주목하던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미국 대통령이란 자리가 지구를 파멸로 이끌 핵무기 사용 여부를 불안정한 정보에 기초해 짧은 시간 내에 결정해야 하기에,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대통령의 성격과 정서적 안정성, 성장과정 등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대통령학의 선구자인 제임스 바버는 대통령을 활동성을 기준으로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 성격을 기준으로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 ‘적극적·긍정적’ ‘적극적·부정적’ ‘소극적·긍정적’ ‘소극적·부정적’이라는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케네디처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통령이다. 문제는 최악의 대통령이다. 최악의 유형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대통령이 아니다. 부정적이어도 소극적이면, 최소한 큰 사고는 치지 않는다. 문제는 닉슨처럼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인 대통령이다. 사실 대통령, 아니 어느 분야건 가장 위험한 지도자는 부지런하고 용감하고 헌신적이면서 ‘삐뚤어지거나’ ‘무식한’ 지도자, 즉 ‘잘못된 확신’에 차 있는 적극적인 지도자다. 나는 최순실 사건이 터져 나오며 촛불이 시작되기 직전, 박근혜 말기를 바라보며 이 지면에 쓴 ‘대통령의 정치학’(2016년 10월13일)을 통해 바버의 네 유형을 소개하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6년 만에 다시 대통령학이 떠오른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탓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다. 임기를 시작한 지 몇 달에 불과하지만, 보면 볼수록 그가, 바버가 우려한 ‘부정적이면서 적극적인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주목할 것은 대선캠프 대변인을 맡았던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관찰이다. 윤 대통령은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화부터 낸다”고 증언했다. 정치에 입문하기 시작할 때 벌써 이러했으니, 대통령까지 된 지금은 어떠할지 뻔하다. 많은 정보를 접하면 자신감이 붙은 임기 2, 3년차 대통령들이 하는 행태를 정치입문 때부터 보여줬다는 이야기니, 앞으로 어떨지 상상하기가 겁이 난다. 특히 자신과 입장이 다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행보에 대해 ‘내부 총질’이라고 비판하고 바른 소리에 버럭 화부터 내며 박근혜 십상시 이상으로 비위 맞추기에 열심인 ‘윤핵관’들로 둘러싸여 있으니, 직언으로 윤 대통령을 바로잡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진짜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때처럼 촛불을 드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친민주당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윤석열 퇴진 국민선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벌써부터 촛불을 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과연 지금까지 윤 대통령의 행보가 최후 수단인 ‘퇴진촛불’을 들어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잘못된 것인가라는 문제와는 별개로, 일부 친민주당 열렬세력을 제외하곤 국민 다수는 ‘제2의 촛불항쟁’에 대해 회의적이다. 국민들이 영웅적으로 투쟁해 탄핵까지 이끌어낸 역사적인 촛불항쟁이 더불어민주당의 촛불성과 독식과 내로남불 등 실정으로 어떻게 철저하게 배신당했는가를 모두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민들은 ‘촛불 무용론’ ‘촛불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 사실 많은 국민들은 윤 대통령이 잘못하면 할수록, 윤 대통령보다도 추미애 등의 헛발질로 일개 검사를 한순간에 대통령으로 만들어주고 5년 전 탄핵당했던 국민의힘에 정권을 내준 민주당에 더 화가 날 뿐이다. 촛불도 대안이 아니고, 마땅한 해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남은 긴 임기를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어떻게 해서든, 윤 대통령을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인 스타일로 바꿔야 한다. 못 그럴 바엔, 소극적으로라도 만들어 큰 사고라도 못 치게 해야 한다. 누가 무소의 뿔에 브레이크를 달 것인가?


* 이 글은 경향신문에 2022년 10월 25일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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