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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민주주의와 정치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노란 조끼 시위와 네덜란드 농민당이 던지는 물음

  • 입력 2023.03.31 17:33      조회 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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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치러진 네덜란드 지방선거에서 신생 농민시민운동이 1당으로 부상하는 개표 결과가 16일 발표되자, 이 당의 카롤리네 반데르 플라스 대표가 놀라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 15일 실시된 네덜란드 지방선거 결과는 참으로 뜻밖이었다. 창당한 지 3년밖에 안 된 정당이 무려 20% 가까이 득표하며 제1당으로 급부상했다. 당 이름은 ‘농민-시민운동’(농민당). 2019년부터 빈발한 농민시위를 기반으로 결성된 정당이다. 농민시위는 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가축 사육 마릿수를 줄이려 한 정부 결정에 반대하며 일어났다. 농민당의 주된 정책 역시 급격한 기후위기 대책에 맞서 기존 농-축산업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축산업 감축 정책을 시행한 것은 중도우파인 자유민주국민당이지만, 농민당이 진짜 적으로 지목하는 세력은 따로 있다. 2010년대에 빠르게 성장하여 현재 5% 안팎 지지를 받는 ‘동물을 위한 당’(동물당)이 그들이다. 좌파 성향인 동물당 핵심 정책은 동물권 보호와 기후위기 대응이며, 채식을 선호하는 대도시 젊은 여성들이 주된 지지 기반이다. 동물당은 축산업을 포기하자는 캠페인에 앞장섰고, 동물당과 축산업 농가의 충돌은 일종의 문화전쟁으로 비화했다.

기후위기에 맞서 생태 전환을 부르짖는 이들에게 현재 네덜란드 정치 상황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중도우파 정부의 과감한 축산업 감축 계획에서도 알 수 있듯이, 네덜란드는 전 세계에서 그나마 진지하게 기후위기에 맞서는 국가 중 하나다. 그런데 자본가나 부유층이 아니라 자영농들이 이에 반대해 들고일어났다. 기후위기 대응을 지지하는 대도시 중산층과 이에 맞서는 소외지역 서민의 대립 구도가 대두했다.

사실 이런 구도는 이번에 네덜란드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18년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노란 조끼 운동’ 역시 비슷한 구도를 보였다. 탄소배출 절감을 내세우며 정부가 탄소세를 인상하자 주로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서민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시위에 나섰다. 겉만 보면, 이 역시 정부의 기후위기 대책에 서민들이 반발하는 격이었다.

최근 우리말로도 번역된 프랑스 경제학자 뤼카 샹셀의 <지속 불가능한 불평등>은 이러한 구도 이면에 숨은 진실이 무엇인지 밝힌다. 토마 피케티의 막역한 동료이기도 한 샹셀은 경제적 불평등과 환경위기가 긴밀히 얽혀 있으므로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젊은 학자다.

샹셀은 프랑스 정부가 처음에는 아주 낮은 세율의 탄소세를 도입하고는 오랫동안 서민들을 위한 별다른 보상책을 강구하지 않은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고 나서는 하필 유가 상승 국면에 탄소세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탄소세는 올리면서 부유세는 폐지했다. 가뜩이나 불평등에 불만이던 대중이 들고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노란 조끼 운동 사례나 최근 네덜란드 정치 상황은 기후위기 대책에 반드시 전제돼야 할 대원칙을 일깨워준다. 과감한 기후위기 대응은 이 위기에 가장 커다란 책임을 지닌 최상층 집단에 그에 비례하는 부담을 부과하는 것으로 시작돼야 한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물론 현재의 기후급변에 제대로 맞서려면, 대자본이나 부유층만이 아니라 모든 계층이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을 지닌 집단에 부담을 ‘정의롭게’ 분배하지 않는 한, 대중에게 이 무거운 짐을 함께 지자고 설득하기는 불가능하다. 샹셀의 지적처럼 “모든 사회집단이 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비용을 각각 합당한 몫으로 짊어지게 하지 않는다면, 환경정책은 늘 그 근본부터 재고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진지한 기후위기 대응은 반드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단호한 공격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평균 기온이 시시각각 상승하는 상황에서 문화전쟁에나 빠져드는 것은 기후급변을 부채질하는 또 다른 불의일 뿐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먼저 기후위기 주범들에게 그에 상응한 책임을 물리는 것, 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샹셀의 결론처럼, 21세기에 사회국가 건설과 기후위기 대응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과제다.


* 이 글은 2023년 3월 30일자 한겨레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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