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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국제질서

9-2. 미·중 장기 전략경쟁 속의 평화 만들기

  • 입력 2023.09.15 14:25      조회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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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미중 장기 전략경쟁 속의 평화 만들기-김종대.pdf
 

김종대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 제20대 국회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 전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 행정관을 역임하고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 국무총리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으로 일했다. 2007년 외교·안보 전문지 <디펜스21>을 창간하여 발행인 겸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에서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1. 들어가면서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인 2018~2020년을 경계선으로 이익경쟁(interest competition)에서 전략경쟁(strategic competition)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 국제정치학계의 일반적 평가다. 전략경쟁은 미국과 중국이 핵심적인 이익(core interest)을 두고 격렬하게 경쟁하는 국면이지만,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동원하여 상대방에게 강압이나 강제를 실행하고 국제질서의 현상을 변경하는 패권경쟁(hegemony competition)과는 구별된다. 이 경쟁은 단기간 내에 경쟁의 성패가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10년 이상 지속되는 ‘장기 전략경쟁’으로 표현된다.

   전략경쟁 국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주요 전략은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자국의 우위를 추구 ▲동맹과 우호 국가를 통한 유리한 세력권 형성 ▲자국의 표준을 강요하는 기술과 산업의 경쟁 ▲국제법과 국제기구를 무대로 한 규칙의 전쟁을 핵심으로 한다. 전략경쟁 국면에서 미국과 중국은 전 영역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경쟁자인 상대방에게는 손실을 강요하고 양보를 요구하는 제로섬 게임의 양상을 보인다. 반면 패권경쟁 국면에서는 설령 자신이 손실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방에게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양상으로 사태가 악화한다. 

   이런 비유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도출되었다. 1937년 중일 전쟁 직후에 일본 제국주의는 미국을 상대로 도발을 하면 일본이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공격하지 않으면 나중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히로히토 일본 왕을 설득한 논리로 동원되었고, 결국 태평양 전쟁을 도발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약자의 입장에 강자에게 도전하는 상황이 존재한다면 반대로 강자가 먼저 약자를 공격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고대 그리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패권국인 스파르타가 신흥 도전국인 아테네가 언젠가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믿은 나머지 그 도전을 예방하기 위해 아테네의 동맹국인 테베를 공격한 데서 시작된다. 여기서도 주된 논리는 “더 늦기 전에”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늦을 수 있다”라는 인식이 내포된 지금의 미·중 전략경쟁은 안정적이지 못하며, 패권경쟁으로 전이될 불안이 팽배한 상황이다. 이 글에서는 지금의 전략경쟁에서 평화를 파괴하고 분쟁을 조장하는 위험한 요소는 어떻게 분포되어 있으며, 패권경쟁의 가능성에 대응한 평화의 방향을 개략적으로 개관해 보기로 한다. 이 글은 현재 주류가 된 비관주의 전망 이론들의 폐해와 강대국 정치 결정론을 극복해야만 평화가 구축된다는 점을 역설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필자는 국가 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을 해치지 않고 안정적 세력균형을 형성하며 지역 통합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일련의 행동과 규칙을 정하는 구상과 노력, 이를 일컬어 “회복성을 향한 국제질서”라고 명명할 것을 제안한다. “회복된 세계”는 나폴레옹 전쟁 종식 후 만들어진 1815년의 빈 체제를 규정하는 정신이었다. 헨리 키신저는 안정된 세력균형과 국가의 정통성을 존중하는 정신에 바탕을 둔 빈 체제의 성립으로 근대가 출현하였다며 이를 회복된 세계라고 불렀다. 특히 기후위기와 양극화 심화, 금융 및 에너지 불안, 공급망의 위기로 얼룩진 지금의 세계는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와 대통합이라는 회복의 시대를 지향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한다. 제레미 리프킨 역시 <회복력의 시대>에서 각종 파괴와 훼손으로 이어지는 지금은 “문명의 재야생화” 기간이라고 진단하며 문명의 지속이라는 과점에서 회복을 역설한다. 회복의 시대를 기획하는 사회공학과 생태주의는 새로운 진보의 사상적 연료가 되겠으나, 회복의 외적 조건은 평화와 안정의 주변 질서를 구축하는 것임을 밝힌다. 



2. 전략경쟁 시대의 분쟁 불가피론과 비판

    1) 투키디데스의 함정

   한국의 보수·우파에게 가장 심대한 영향을 미친 프레임이다. 고대 그리스의 투키디데스가 저술한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도출한 하나의 은유로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패권국이 신흥 도전국과 경쟁하면서 전쟁으로 도달하는 경로를 제시한다. 그레이엄 앨리슨은 <예정된 전쟁>에서 패권이 교체된 16건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이 중 14건이 전쟁으로 귀결되었다고 밝혔다. 패권의 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일종의 숙명론은 단순한 학문 차원을 넘어 미국과 중국의 경쟁에서 불길한 예언이자, 미·중 충돌을 기정사실로 인식하는 정치적 연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위대한 미국을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 구호나 시진핑 주석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단순히 미·중 관계가 전략경쟁에 국한되지 않고 필연적으로 충돌하는 고강도 패권경쟁으로 치닫는 상호작용의 신호들이다. 여기에는 신흥 도전국은 반드시 패권을 추구한다는 공격적 현실주의가 결합한다. 존 미어샤이머는 <강대국 정치의 비극>에서 국가는 권력을 추구하는 본성을 바탕으로 기존 패권국에 도전하는 신흥 도전국의 등장을 기정사실로 한다. 이 관점에 의하면 중국은 미국과 평화적 공존이 아닌 패권을 추구하려는 적극적인 권력의지가 있고, 이것이 미국과 기존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기 때문에 미국이 선제적으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 

       가. 미국의 인식
   2018년에 미국의 <잠정국가안보전략서>에서 중국을 “경쟁자이면서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수정주의자”로 명기하자, 일본은 같은 해에 방위백서에서 중국을 “주된 위협”이라고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2022년에는 나토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구조적 위협”이라고 명기한 것도 중국을 국제질서의 근원을 뒤흔들어 패권을 추구하는 수정주의자(revisionist)라고 인식함을 보여준다. 중국의 대만 침공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논의는 2021년에 필립 데이비슨 인도-태평양 사령관의 “6년(2027년) 이내 침공설”,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의 “시진핑의 대만 침공 준비 지시” 등 고위 당국자의 발언을 통해 확대되었다. 

      나. 중국의 인식
   중국 역시 2022년에 미국과 그 협조세력들이 대만에 개입할 경우 “무력사용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2023년 3월의 입법원 개원 연설에서는 미국에 대해 “감어투쟁(敢於鬪爭: 감히 맞서 투쟁하다)”과 같은 강경한 어조로 이를 규탄했다. 미국에서는 2023년 상반기에 이 감어투쟁을 실질적인 전쟁 준비 지시인지 여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중국은 전략경쟁 이전 시기를 ‘전략적 기회’로 인식하였으나 전략경쟁이 개막된 시진핑 2기의 제19차 당 대회부터는 ‘불안정과 불확실성 시기’로 규정하였고, 제20차 당 대회에서 각종 안보(security, safety)의 중요성을 91번 거론했다. 2023년 중앙국가안전위원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극한 사고’를 강조하였으며, 현 정세를 “풍고랑급(風高浪急)”에서 “경도해랑(驚濤駭浪)”, 즉 엄청난 파도가 산더미처럼 몰려온다고 바꿔 부르면서 향후 10년이 관건적 시기라고 했다. 중국은 미국과 서구로부터 ‘포위되고 있다는 심성(siege mentality)’을 표출하면서, 이를 돌파하기 위한 신형거국체제를 강화하는 전략경쟁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다. ‘사다리 걷어차기’와 ‘무기화된 상호의존’
   미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면서 중국의 본격적 부상을 차단하기 위해 반도체 분야에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본격화하고, 중국에 의존하는 공급망을 재편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중국은 2022년 미·중 무역 규모가 사상 최대인 7600억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구매력을 무기화한다. 또한, 갈륨과 게르마늄, 니켈 등 주요 자원을 무기화할 의도도 드러내고 있다. 
  
     2) 위험 구역 진입론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패권국에 의한 선제공격 사상을 정당화하는 데 반해 중국은 자체 모순 때문에 발전이 좌절되고, 부상하는 중국이 아니라 추락하는 중국이 기존 질서에 더 위험하다고 보는 인식 틀이 있다. 마이클 베클리와 할 브랜즈가 공동으로 저술한 <중국은 어떻게 실패하는가>에 따르면 중국은 ▲인구재앙 ▲자원고갈 ▲권위주의로 회귀 ▲지정학적 환경 악화로 인해 더 이상의 발전이 좌절되고 추락한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권력층이 인민에게 약속한 “위대한 사회”, “세계 일류국가”를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 이 순간 중국 권력층은 발전을 좌절시킨 외세에 책임을 돌리며 도발한다는 관점이다. 두 저자는 이러한 순간을 ‘위험 구역(danger zone) 진입’이라고 했다. 

   이 역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도출된다. 1920년대 일본은 연평균 6% 성장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형성했다. 이 시기에 일본은 조선을 식민화했지만, 미국에는 불량국가가 아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성장이 멈추고 실업자가 연간 6백만 명이 발생하는 추락의 시간이 되자 일본은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발발했다. 독일 역시 20세기 초까지는 영국의 제조업을 추격하면서 순조롭게 부상하였다. 1910년경에는 독일과 영국의 제조업이 거의 대등한 순간에 이르렀고, 이 무렵부터 영국은 독일의 산업을 봉쇄하며 해군력을 증강하여 본격적으로 독일을 견제했다. 그 결과 독일의 발전이 멈추었고 독일은 현상 변경 국가로 변모하는 데, 이것이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배경이 된다. 지금의 중국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다. 

    3) 분쟁의 인식 틀에 대한 비판

      가. 충돌 불가피론 비판
   패권경쟁은 신냉전이라는 용어로 주로 통용된다. 냉전의 적대적 이데올로기, 블록화된 경제시스템, 배타적 군사동맹 등과 달리 지금은 이데올로기의 한계, 무기화된 상호의존, 중국의 비동맹정책 등 냉전과 다른 요인으로 인해 신냉전이 어렵다는 견해가 있다. 빌라하리 카우시칸은 2023년 ‘포린 어페어즈’ 기고에서 신냉전은 현실적으로 재현되기 어려우며, 단순히 충돌 불가피성을 주술처럼 말하는 신냉전론은 “지적으로 게으른 것”이라고 비판한다.

   미·중 간의 충돌 불가피론자, 또는 전쟁 유효론자들의 문제점은 첫째, 전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면서 전쟁의 양상이나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다. 전쟁이 일어나는 법칙이나 순리를 인정하면서 현대 전쟁의 양상과 피해, 그리고 비용과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사고다. 둘째,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면서도 정작 전쟁을 끝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전쟁은 일어나기 쉬워도 끝내기는 어렵다”는 경구처럼 전쟁의 명분과 이유를 말하면서도 정작 종전의 해법을 제시하는 데는 극히 무능하다. 아직도 종전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셋째, 전쟁 가능성을 통제하는 데도 무능하다. 동맹과 함께 강한 전쟁 억지력을 구축하여 전쟁에 대비한다고 하지만 이것이 전쟁 가능성을 제거하거나 평화를 구축하는 것은 아니다. 

      나. 신중세주의로의 퇴행 
   세 명의 공저자인 티모시 히스, 웨이롱 콩, 알렉시스 데일 황은 최근 미국의 랜드 연구소에 제출한 보고서 “U.S.-China Rivalry in a Neomedieval World”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고찰했다. 이들에 따르면 미·중 경쟁은 세 가지 현상을 동반한다. 첫째, 미·중 경쟁은 국제적 무질서, 국가의 기능 쇠퇴, 불평등 심화, 사회분열과 결합하면서 더욱 고조되는 경향이 있다. 둘째, 미·중 경쟁의 지속은 정치, 사회, 경제, 안보의 전반적인 약화 또는 퇴보 현상을 동반한다. 셋째, 미·중 간 힘의 전이보다 ‘신중세’의 도래라는 더 큰 위험의 확산이 본질이다. 

   레이드 스미스(Reid Smith)는 최근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Why the U.S.-China ‘Cold War’ Framing Is So Dangerous”에서 미·중 경쟁은 세 가지 이유로 매우 퇴행적인 방향으로 전개된다고 했다. 먼저 미국 지도자와 국민들에게 내포된 ‘미국의 승리 확실성’이다. 냉전에서 미국이 이겼다고 항상 모든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특히 대만에서 미국의 일방적 승리는 불가능하다. 게다가 미국은 베트남, 이라크, 아프간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둘째, 보호무역주의를 동반한다. 미국은 대공항 직후 독일에 대해 40%의 관세를 부과했는데, 이것이 독일의 침공을 유혹했다. 미·중이 냉전질서로 회귀하면 20~40% 고율 관세가 불가피해지는 데, 이는 2차 대전 당시와 유사한 수준이다. 셋째, 미·중 경쟁은 국민정신의 취약성을 간과하고 있다. 냉전 시기의 대피, 사이렌, 방공호 경험을 상기해야 한다. 넷째, 미·중 경쟁은 국내 자유에 막대한 비용을 부과한다. 1947년 미국의 ‘충성 명령‘은 국가전복 혐의자 1만 2천 명을 수감하는 계획을 비밀리에 수립했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분쟁 지향적 인식 틀은 “강대국 결정론”이라는 심각한 논리적 결함을 드러낸다. 아무리 미·중 경쟁이 격화된다 하더라도 이를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경쟁 바깥의 국가들이 다수 존재한다. 특히 한국은 식민과 분단, 전쟁을 거치면서 과거 강대국 정치의 희생자였지만, 지금은 그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율성이 성장한 중견국가다. 연세대 문정인 명예교수에 따르면 강대국 결정론이라는 철 지난 주장이 아직도 활보하는 것은 강대국의 관점을 내면화한 사람들이 정치·경제·학문·언론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과거 냉전기 미국과 소련의 경쟁보다 세계적 영향력이 강하다고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미·중을 G-2라고 하기보다는 이제는 주도적인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G-제로의 시대”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3. 전쟁 기획과 평화기획

   미·중 관계에서 위기의 본질은 전략경쟁이 격화되어 패권경쟁으로 전환되느냐 여부, 미국과 중국은 이를 통제하여 파국적인 위기를 예방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중국과의 신냉전을 회피하면서 전략경쟁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추구한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 [표-1]과 같다.

  [표-1] 강대국 경쟁의 공간 분포

                   협력의 정도
        낮음         높음
군사적 긴장 낮음 A : 전략경쟁의 공간 B : 회복탄력성의 공간
높음 C : 패권경쟁의 공간 D : 신자유주의 공간


   위 [표-1]에서 주목할 점은 국제기구와 국제규범 및 규칙이 작동하는 신자유주의 공간보다 지금의 전략경쟁의 공간이 일견 군사적 긴장은 더 낮아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중 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로 고조된 시기는 2010년 경이었다. 이 시기에 미국 정찰기의 하이난섬 불시착, 보스니아 전쟁에서 미국의 중국 대사관 폭격, 콩고, 수단, 예멘, 아프간과 시리아에서 내전이 격화되었고, 내전 사상자만 1천만 명을 넘어섰다. 이라크 안정화 역시 난항을 겪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도 격화되었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중국과 일본은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한반도에서는 대청해전,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다. 그에 비해 신자유주의 공간이 와해되고 전략경쟁 공간이 펼쳐진 2018년부터 중동 정세는 다시 수습 국면으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으며,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는 간헐적인 무력시위 외에 실제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견 전략경쟁 시기에 군사적 긴장이 완화된 것처럼 보여지는 이유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분쟁은 강대국과 약소국의 분쟁이었던 데 반해, 전략경쟁 이후에는 강대국 간에 전쟁이 발생하는 구조적 전환기라는 점 때문이다. 전략경쟁 시기 경쟁과 대결은 주로 법과 규칙을 둘러싼 논쟁으로 비화한다. 칼은 예리하되, 아직은 칼집 속에 있으므로 본격적인 군사적 충돌은 상대적으로 완회된 것처럼 보인다. 강대국 간에는 공멸의 위험, 상호 전략적 소통을 통해 긴장은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나토 강화 및 동진, 오커스(AUKUS) 동맹 출현, 한미일 집단안보 가능성 현실화, 북러 관계 밀착 및 북·중·러 공조 등이 출현하며 일련의 패권경쟁 신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는 지금의 전략경쟁이 매우 불안정한 체제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 신호가 축적될 때 다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이때가 바로 패권경쟁에 진입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군사적 경쟁의 원인이 제거되고, 위기가 관리되면서 국제협력의 정도가 높아지면 회복탄력성의 공간으로 이동한다. 

   신자유주의 공간에서는 세계적인 협력의 정도는 높은 데 반해 지정학의 위기, 기후위기, 양극화 및 불평등 심화, 산업 공동화(일자리 공동화)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올해 4월 25일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브루킹스 연구소 연설에서 “신자유주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모든 성장은 다 좋다”는 신자유주의는 앞에서 언급한 세계적·국내적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연설에서 설리번은 중국과의 경쟁이 분리(de-coupling)가 아니라 위험관리(de-risking)라며 중국과의 경쟁이 필요한 분야에서 “좁고 높은 장벽을” 세우되, 나머지 분야에서는 협력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언급은 전략경쟁 국면을 장기간 유지하겠다는 의도다. 이 연설과 같이 전략경쟁이 해소되더라도 예전의 신자유주의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따라서 패권경쟁이 아니라면 신자유주의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협력의 틀을 근원적으로 재기획할 수밖에 없는데, 필자는 이런 협력의 공간을 ‘회복탄력성의 공간’으로 명명할 것을 제안한다.

    1) 패권경쟁 촉발하는 집단안보

   지금의 미·중 전략경쟁을 패권경쟁으로 악화시키는 요인은 ▲상대방에 대한 대결과 적대를 고취하여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려는 정치 지도자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운 상대방에 대한 포위·압박 ▲상대방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질서 재편 ▲일방적으로 규칙을 강요하고 상대방의 특성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 ▲자원을 무기화하고 기술을 통제함으로써 상대방의 발전을 봉쇄하는 행태들로 구성된다. 이 점에서 올해 8월 18일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는 동북아에서 삼국 간의 안보협력을 최우선시하면서 경제와 과학기술 역시 안보화를 촉진한다. 신자유주의 공간에서 하나의 원칙으로 여겨져 왔던 경제와 안보는 교환될 수 없는 각자의 독자적 영역이라는 인식이 붕괴되고, 경제는 안보의 하위개념으로 전락한다. 더 나아가 삼국은 패권경쟁을 추구한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아무런 권리나 의무가 없는 신사협정 성격의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정신’을 발표했다고 설명한다.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삼국 미사일방어 고도화나 미사일 경계정보 실시간 공유, 대잠수함 공동작전은 동맹 중에서도 높은 수준의 기밀을 공유하는 강력한 동맹체제에서나 가능하다. 예컨대 미사일방어는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는 데 국한되지 않고 유사시 긴급한 방어 작전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공동의 교전수칙과 군사시스템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구현해야만 실효성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정보 공유는 입구에 해당하는 것이고 삼국 간의 시스템 연결과 공동의 교전수칙 및 지휘체계 통일을 도모하는 높은 수준의 군사협력으로 진화하면서 사실상의 동맹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정상회의 직후 미국의 국제전략연구센터(CSIS)는 중국과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따라 향후 동해에서 한미일이 협력하여 드론 부대를 동원한 새로운 미사일 요격체계를 제안하였다. 또한, 미국 우주군과 사이버전 수행부대의 삼국 공동훈련 참여는 삼국 간 지휘통제에 있어 심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이는 중국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인식된다. 마찬가지로 높은 수준의 군사 기밀을 공유하는 대잠수함 작전 역시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진출을 차단하는 실질적 차단선을 설정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정상회의 문건에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은 이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기존의 전략경쟁 틀을 넘어서는 동북아판 집단안보체제의 출현을 의미한다. 이 정상회의 이전에 삼국은 “집단안보 협의체”를 창설한다고 여러 언론에 홍보하였는데, 여기서 집단 안보(collective security)는 그 성립 조건으로 ‘공동의 적’을 상정하게 된다. 정작 캠프 데이비드 정신과 원칙에는 이 개념이 등장하지 않지만, 이는 겉으로 공표하지 않되 조용히 실행하는 정책 조율 과정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이에 조응하여 북한과 러시아 간에 군사협력이 진행되고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방기하게 되면 한국의 안보비용은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한다. 한·미·일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한 북·중·러의 신무기의 개발과 현대화가 촉진될 경우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세력균형이 붕괴하고 극심한 혼란과 공포가 확산될 위험이 크다. 경제와 기술과 같은 민간 분야까지 군사협력에 종속되는 ‘경제안보’ 논리는 미·중 경쟁이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인식으로 치닫게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분쟁 지향의 인식 틀을 강화하여 패권경쟁을 피할 수 없는 미래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2) 회복의 공간을 향한 구상

   패권경쟁은 민주주의 후퇴, 정치의 과도한 간섭으로 인한 신중상주의 출현, 기업의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투자 위축을 동반하는 “신중세주의”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경고다. 이에 반해 회복의 공간은 더 많고 활발한 민주주의로서 동료 시민 정치, 회복력 있는 경제를 위한 반독점·탈중앙의 경제 생태계 형성, 효율보다 회복을 지향하는 창의적인 투자를 동반한다. 지금과 같이 UN, WHO, WTO와 같은 국제기구의 권위가 추락하고 인위적인 공급망이 재편되는 시대에 글로벌, 지역적 의제를 감당할 수 있는 국제 거버넌스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회복의 시대를 선택할 수 있는지 핵심 관건이다. 

   이를 위해 우선 강대국 결정론에서 비롯된 동맹 우선론에서 균형과 자율을 중시하는 중견국가 대한민국의 공공 의제가 정립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기후위기 극복과 불평등 완화, 지역협력을 위한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인 복합의제가 정립되어야 한다. 회복성의 공간은 단순히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 국한되지 않고 더 많은 협력 실험과 그로 인한 성공사례를 만들지 않으면 장기적인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이를 위한 실현 과제를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안보는 동맹보다 다자간 협력안보로 구현된다는 원칙이다. 동맹은 동맹 바깥의 공동의 적에 대한 배타성을 내포하지만, 협력안보는 포용성을 근간으로 안보의 상호의존성을 구현한다. 동북아는 지난 시기에 4자회담, 6자회담과 같은 다자간 안보를 실험하였고, 한중 양자 간에도 전략대화와 핫라인 설치 등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 바 있다. 동북아 역내 국가들은 해양에서 중간수역 설정과 공중에서 방공식별구역 설정에 다자간 협력이 필수적이며, 최근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 사례와 같이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한 국제협력에서 긴급한 협력을 필요로 한다. 

   둘째, 평화구상이 이상주의로 경도되어서는 곤란하다. 북한의 비핵화는 단기간 내에 실현될 수 없고, 그렇다고 한미일 집단안보가 공식 동맹으로 바로 구체화하기도 어렵다. 현 보수정권하에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도 단기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은 각기 국가의 이익과 권력을 지향하는 한 기득권이 통합되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런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지금은 다양한 분쟁 요인에 대한 다층적 위기관리에 집중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더불어 국가가 추구하는 사활적 이익에 대해 그 가치를 평가하고 존중하는 노력을 촉구해야 한다. 당장 중국을 자유주의 국가로 변모시킬 수 없다면 체제의 특성을 인정하고, 더 많은 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포괄적인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셋째, 회복의 시대를 향한 상호존중과 포용의 개념으로 1815년 빈 체제에서 지향한 두 개의 가치인 세력균형과 정통성(Legitimacy)을 핵심 덕목으로 표방해야 한다. 패권경쟁을 촉발하는 요인은 힘의 균형상태를 변경시키거나 상대방의 정치체제와 정치권력이 정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표출하는 데서 시작된다. 미·중 전략경쟁은 단기간 내에 성패가 좌우될 성질의 갈등이 아니며, 당장 미국과 중국은 상대방의 정치권력을 타도하기 어렵다. 빈 체제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영국식 전략관점으로 세력균형, 오스트리아식 전략관점으로 정통성을 존중하는 것으로 근대 세계질서의 지평을 열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 국가 이익을 규정하는 순서는 1. 정치체제 2. 영토의 통합 3. 주권수호로 정립되어 있다. 중국 공산당은 실재하는 권력이며 지난 30년 동안 성공한 체제였다. 또한, 중국은 지난 40년 넘도록 외국을 침략한 적이 없다. 지금 각종 인권과 민주주의 후퇴로 표출되는 다양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존중하고 인내하면서 다양한 비판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미·중 경쟁이 초래할 재앙적 결과를 인식하는 한 지난 우크라이나 전쟁의 원인이 된 나토 확장과 같은 동맹의 외연을 확장하는 동맹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4. 나오면서 - 회복된 세계         

   마지막으로 회복의 세계를 향한 한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끝을 맺고자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혁신의 에너지는 지난 팬데믹 시대에 높은 시민성을 구현하여 재난을 극복하게 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전략경쟁 시대는 동북아에서 한국의 평화 노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한국이 평화와 번영의 공공재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의제화하는 선도국가, 교량국가,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만 파국이 한층 완화된다. 이를 위해 지난 시기에 유지되어 온 전략적 모호성과 균형외교의 덕목은 다시 강조되어야 하며, “존중의 외교”로 정립되어야 한다. 이는 빈 체제에서 오스트리아 메테르니히 재상이 수행했던 역할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평화의 경로를 체계적으로 파괴하며 사실상 전쟁 질서로 회귀하는 거대한 퇴행을 시작하였다. 아마도 그 폐해는 설령 윤 정부가 끝난 이후에도 상당한 회복의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여기서 회복은 신자유주의 공간으로의 회복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공간으로의 진입을 의미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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