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
10/11 합본호 2. 기후위기를 넘어 생태 사회로 전환을 위한 정책과제
- 입력 2024.01.25 13:49 조회 765
-
-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탈핵신문 운영위원장
- #기후위기
-
- 2. 기후위기를 넘어 생태 사회로 전환을 위한 정책과제-김현우.pdf
태그
공유하기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활동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10년간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에너지 체제의 정의로운 전환과 에너지 민주주의를 연구했으며, 에너지 전환, 도시 정치, 대중교통, 거버넌스의 민주화 등에 관심을 두고 글을 썼다. 지금은 <탈핵신문> 이사장으로 신문 발간을 돕고, 기후위기를 알리는 교육과 탈성장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안토니오 그람시』, 『정의로운 전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를 되찾자』, 『GDP의 정치학』, 『녹색 노동조합은 가능하다』, 『적을수록 풍요롭다』(공역), 『심층적응』(공역) 등이 있다.
1. 기후위기 너머의 내러티브
더글러스 러미스는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의 첫 장에서 ‘타이타닉 현실주의’를 질타한다(러미스, 2011). 타이타닉 호가 빙산을 향하고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선원과 승객들은 타익타닉 호를 세상의 전부로 여긴다. 선원이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수록 배는 빙산을 향해 더 빨리 다가갈 것이다. 누군가는 경고음을 울리고 구명정을 내리고 뛰어내려야 한다고 말해야 하지만, 지금 국회의 300명 선원들은 이 배를 지키고 어떻게든 자리를 더 많이 차지해야 기후위기를 논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기후위기와 총선’이라는 주제는 그 자체가 큰 딜레마다. 현실 정치, 특히 제도화된 선거 정치로 제한되어 인식되는 ‘공식 정치가 과연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틀거리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선거 기계가 된 현대 정당의 현실 때문만이 아니다. 북미의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만과 웨인라이트가 『기후 리바이어던』에서 자본주의 경제와 지구행성적 주권 체제 내에서 기후위기의 성공적 해결을 상상하기 어려움을 토로했던 것이나, 인도의 작가 아미타브 고시가 기후위기는 곧 ‘문화의 위기이자 상상력의 위기’라고 말했던 것은 이러한 어려움의 반증이다(웨인라이트·만, 2023; 고시, 2021).
하물며, 한국의 국회와 대통령실은 지난 몇 번의 정권이 바뀌는 동안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다루어 본 적이 없다. 단지 기술적인 탄소 감축이 아니라 화석 자본주의와 생명 파괴적 확대 재생산의 경제 그리고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근육에 해당하는 거대한 성장주의를 우리의 정치는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다. 칸막이로 나눠진 부처와 상임위, 그리고 예산서의 항목 이상을 다루지 못함을 의원과 관료들 스스로가 실은 잘 알고 있다. 더 나쁜 적을 심판하기를 요청하는 얄팍한 선거 캠페인이 실은 가장 유효한 전략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올해 4월의 선거도 그 궤도를 벗어나기는 거의 어려워 보인다.
이런 기성 정치의 상태에 한탄하는 것은 역시나 소득 없이 지치는 일이다. 우리는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를 해결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말이다.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혁명 이후 이제 1.2도가 상승했고 0.3도가 더 오르면 지구 온난화의 티핑포인트를 넘어갈 것이라는 주장에 우리는 익숙하다. 그렇다면 온도 상승을 1.5도로 막아내면 기후위기는 해결되는 것일까? 1.4도에서 막으면 성공이고 1.6도를 넘어 상승하면 실패하는 것일까? 또는, 그러면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면 만사형통인 것일까? 그리고 이미 일어난 그리고 조만간 더욱 격화될 이상 기후의 피해 지역과 존재들의 회복과 치유까지 그 해결에 포함되는 것 아닐까?
우리에겐 더욱 큰 그림이 필요하다. 기후위기는 인류(물론 제1세계 자본주의 국가와 특권 집단이 대표해 온)가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하고 이윤과 경쟁 생존을 위해 내달려 온 확장적 자본주의의 거대한 관성의 한 결과다. 뒤집어 말하면, 기후위기의 해결은 그러한 거대한 관성을 줄이고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확장적 자본주의가 ‘정상’ 또는 ‘상식’으로 만들어 온 수많은 경제 제도, 정치 관행, 문화적 인식의 관성을 바꾸는 일이다. 그 관성을 바꾸는 것은 한 가지 방법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2030년까지 또는 2050년까지 완료되는 일도 아니다. 그리고 관성을 바꾸는 데 대체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많은 피해와 미비점이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미래를 앞당기기 위한 현재를 기획해야 한다.
2024년의 총선이 기후위기 대응의 한 계기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몇 명의 의원 배출이나 기후위기 해결에 도움이 될 몇 개의 공약 제출보다 그런 큰 그림과 기후위기를 넘어서는, 그리고 기후위기 너머의 내러티브를 ‘기후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모양과 현주소를 짚고 지금부터 펼쳐질 미래 속에서 우리의 존재와 정치를 자리매김하는 것 말이다. 그런 한국 기후위기의 시공간적 감각을 스스로 일깨우고 유권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야 한다.(주 : 기후위기 해결의 내러티브에 관해서는 다음의 책들을 참고할 수 있다. 어니스트 칼렌바크 (2009); 에릭 홀트하우스 (2021); 상드린 딕손-드클레브 외 (2023); 트로이 베티스, 드류 펜더그라스 (2023).)
[그림 1]은 지구행성적 한계(planetary boundaries)의 연구자들이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사회 변화의 티핑포인트’를 개념화한 것이다.(주 : 요한 록스트룀, 오웬 가프니 저, 전병옥 역, 『브레이킹 바운더리스』, 사이언스북스, 2022.) 지구 온난화라는 자연적 현상뿐 아니라 이를 해결하는 사회의 변화에도 티핑포인트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티핑포인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관성을 바꾸어 내는, 바위를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규모 기후 시민운동와 그린뉴딜과 같은 정치적 모멘텀, 시장의 변화와 기술의 도움 모두가 필요하다. 어느 것 하나로도 되지 않지만 사회운동과 정치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먼저 시작되면 다른 것들도 이 반대편의 관성을 만드는 날줄과 씨줄로 엮일 수 있을 것이다. 총선과 그 이후의 의미 있는 기후정치를 말한다면, 이런 정치적 모멘텀을 만들고 키우는 선전과 선동이어야 할 것이다.
[그림 1] 사회변화의 티핑포인트
출처: 요한 록스트룀, 오웬 가프니 (2022), 334쪽. (번역 일부 수정함)
2. 계획경제와 좌파 그린뉴딜
기후위기 앞에서 현재의 국가 기구와 정치 제도의 미흡함을 절감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자원과 역량의 배분을 둘러싼 투쟁의 공간으로서 현실 정치는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낡은 기후문맹 정치의 실상을 고발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환의 큰 그림 속에서 중요한 지렛대를 만들고 움직여야 한다. 이는 기후위기와 그 해결을 둘러싼 수많은 의제와 제안을 수미일관한 내러티브로 묶어낼 기획이다. 대통령과 의원 개인 또는 산업부와 기재부의 관료들 또는 기업가와 주주들에게 맡겨둘 수 없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거대한 기획 말이다. 모든 걸 시장이 해결하게 하자는 신자유주의의 선동을 거스를, 우리의 주체적 대항 기획이다. 이는 결국 ‘민주적 계획’이라는 요구를 현실화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이야기를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된 중요한 제도나 계획들이 이미 존재한다.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 탄소중립 이행 기본계획, 국가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가 있다. 국가재정운용계획,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 국토 종합계획, 고용정책 기본계획, 조세지출 기본계획 같은 수많은 계획도 있다. 게다가 한국은 유럽이나 북미 국가들에 비해 여전히 국가 부문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런 계획 그리고 이에 결부되는 예산들은 기후위기 해결과 적응을 위해 서로 연결되고 종합되어야 하지만 따로따로 수립되고 집행된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은 계속 실패하고, 지금 어디쯤 와 있는 상태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를 일관된 국가 계획으로 묶어서 기획하고 논의 결정하고 평가하게 된다면 그게 바로 민주적 국가 기후 계획일 것이다. 그런 계획을 현실에서 찾아본다면 미국과 유럽의 여러 그린뉴딜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미국 민주당의 그린뉴딜이나 유럽연합의 그린 딜이 충분히 온실가스 감축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여전히 시장과 기술 의존적이라는 비판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그린뉴딜과 같은 수준의 국가와 권역 범위 계획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린뉴딜은 실행 과정에서 투쟁을 통해 급진화되고 더 많은 민주주의와 계획의 요소를 포함할 수 있는 틀거리다. 나아가서, 불필요한 산업 확장과 성장 동기를 제어하면서 복지와 안녕을 보장하는 경제 계획으로 발전할 수 있다. 제이슨 히켈 등은 유럽연합에 “성장 없는 그린뉴딜”을 분명하게 제안하면서 그린뉴딜의 급진화와 탈성장 기획과의 연결을 모색한다.(주 : Riccardo Mastinia, Giorgos Kallis, Jason Hickel (2021), “A Green New Deal without growth?”, Ecological Economics 179 (2021). 그린뉴딜의 급진적 재해석과 발전 요청에 관해서는 이 논문 외에 다음을 참조. 맥스 아일 저, 추선영 역, 『민중을 위한 그린뉴딜』, 두번째테제, 2023; 김병권, 『기후를 위한 경제학』, 착한책가게, 2023.)
[표 1] 뉴딜, GND 1.0, GND 2.0, 탈성장 내러티브의 비교
뉴딜 | GND 1.0 | GND 2.0 | 탈성장 | |
목적 | 고용, 총 수요 촉진 | 성장 촉진, 고용, 환경 기준 | 기후변화 완화, 고용, 사회 및 환경 정의 | 성장 추구 탈피, 모든 환경적 압력 경감, 자율성/한계, 사회 및 환경 정의 |
기원 | 노동조합, 플랭클린 D. 루즈벨트, 뉴딜 연합 | 케인즈주의 경제학자, UNEP, 버락 오바마 대통령, G20 | 미국 적록 풀뿌리운동 연합, 뉴 컨센서스, 미국 민주당 좌파, 영국 녹색당, 영국 노동당, DiEM25 | 풀뿌리 환경 활동가, 사회 및 환경 과학 연구자 집단 |
표현 | 프로그램, 공공 근로 프로젝트, 재정 개혁과 규제 | 여론, UNEP의 ‘글로벌 그린뉴딜’ 정책 브리프, 미국 녹색당과 유럽 녹색당의 정책 제안, 신경제재단의 ‘그린뉴딜’ 보고서, G20의 경기순환 조절 녹색 투자 | 여론, 미국 하원 결의안 109호, 노동당 GND 플랫폼, 탈탄소화와 경제 전략 법안 2017-19, 정책 보고서들 | 학술 논문과 서적, 여론 |
결과 | 월스트리트 개혁, 농민과 실업자 구호, 사회 보장, 민주 그린뉴딜 연합으로의 정치권력 이동 | G20의 5,130억 달러의 녹색 촉진 금융 | 미국 선거들에서 후보 선정, 대중적 인식 제고(Google 검색 추세) | 격년제 국제 탈성장 대회, 유럽의회의 포스트-성장 회의(2018년), 학술적 담론들, 환경 NGO와 활동가 그룹들의 급진화 |
주요 국가 | 미국 | 미국, 중국, 한국, EU | 미국, 영국, EU |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
출처: Mastinia, Kallis and Hickel (2021)
탄소세 도입,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화석연료 산업 중단, 재생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를 줄이는 생활 방식 변화,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정의로운 전환은 개별 정책이나 입법으로는 제대로 힘을 가질 수 없다. 그린뉴딜과 같은 큰 기획의 맥락 속에 배치되고 관계를 가져야 정책의 설득력과 효과를 모두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급진화된 그린뉴딜로서 ‘기후위기 대응 사회 전환 국가 10개년 계획’ 같은 제안을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구상을 만들고 경합하지 않은 채 ‘국유화’나 ‘공공성 강화’ 그리고 대중투쟁을 반복해서 언급해서는 기후 정치와 기후 시민을 만들고 키워나가기 어렵다. 역으로, 이런 국가와 사회 개조 구상이 있으니, 우리를 지지해 달라는 호소력을 갖는 기후 정치가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체제 전환’은 국가와 사회 계획과 이를 위한 운동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배출제로와 2050년까지의 경제 전환을 위한 국가 경제사회 장기 전환 계획, 2030년까지의 기후경제계획(국가 재정 계획, 에너지 계획, 복지 계획의 연계와 통합)의 좌파 버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제반 쟁점을 해결하는 동시에 대중운동을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3. 총선 정책과 운동의 의제들
그럼에도, 개별 정책과 공약은 중요하다. 다만 프랑스의 생태경제학자 앙드레 고르츠가 말하듯 더 많은 변화의 마중물이 되는 ‘비개혁주의적 개혁(Non-reformist reform)’으로 이어지고 경제와 물질 순환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기둥이 되는 제도와 조치, 기후 시민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는 정책을 정초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이번 총선이나 국회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의제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국회와 현 제도의 변화 필요성을 알리는 매개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번 총선과 그 이후에 고려할 정책과제 논의에는 20대 대선을 앞두고 지난 2021년 12월 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 선정 발표한 10대 대표 정책이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당시 비상행동은 첫째, 기후정의에 근거하여 책임과 피해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둘째, 시장과 기술 중심의 성장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정책, 셋째, 사회?경제체제의 전반적인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정책, 넷째, 노동자, 농민, 여성 등 기후위기 당사자들이 주체가 된 정의로운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정책, 다섯째, 대다수 시민의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정책이라는 다섯 가지 기준을 가지고 정책 항목을 추출했다. 선정된 10대 정책은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으며 현재에도 이슈가 되는 시급한 요구들로서 ‘당연한 요구’ 5개 외에, 새로이 요구하거나 진지한 논의를 제안하는 ‘새롭고 과감한 정책 요구’ 5개를 경연을 통해 선정했다(기후위기비상행동, 2021).
[표 2] 기후위기비상행동의 20대 대선 10개 대표 정책 제안
1) 당연한 요구
정책명 / 내용 | |
1 | “기후악당 국가의 오명, 기만적인 감축 시나리오는 이제 그만”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재)상향 |
2 | “기후정의 하랬지, 누가 녹색성장 계속 법 만들래?” 탄소성장법 폐기와 기후정의법 제정 |
3 | “에너지전환은 분명한 목표와 정의로운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보급, 탈석탄과 내연기관차 전환 목표 재설정 |
4 | “기후위기 가속화 하는 토건 프로젝트 전면 중단” 삼척 블루파워 등 신규 석탄화력발전소와 가덕도, 새만금, 제주 2공항 등 신공항 중단 |
5 | “기후위기 앞에서 공공성 확보는 필수” 국민 생활의 핵심 부문의 보편적 공공서비스 제공(에너지, 먹거리, 이동, 보건, 주거) |
2) 새롭고 과감한 요구
정책명 / 내용 | |
1 | “일자리가 없다구요? 기후를 살릴 수많은 노동자가 필요합니다 ”국민 기후일자리 프로그램 시행 |
2 | “지구 온도를 낮추고 삶의 질을 높이는 노동시간 단축” 주 4일제와 에너지 휴가제 도입 |
3 | “기후위기 대응의 터전 농촌과 농민을 살리기 위한 확실한 방안” 식량 자급률 상향 법제화와 생태유기농업으로의 과감한 전환 |
4 | “기후를 걱정하고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정부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부조직 개편 |
5 | “기업과 부자에 세금을, 국방비와 토건예산은 기후위기 대응으로” 정의로운 기후 재원 마련 |
당연한 요구 중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의 폐기와 기후정의법 제정은 잊힌 과제가 되어 버렸다. 이는 더 이상 불필요한 의제여서라기보다는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의지 자체를 접어 버렸기 때문에, 지나친 체념 때문에 논의에서 밀려난 것이다. 하지만 유엔 기후체제에서 NDC 이행 점검이 매년 요구될 뿐 아니라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은 법의 지향과 다른 법과의 체계적 관계에서 계속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재론될 수밖에 없는 과제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의 감축목표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가 다루어질 예정이기도 하다.
에너지 전환 목표와 방식은 윤 정부의 ‘원전 생태계 복원’ 방침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재생에너지의 목표와 보급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 개선으로 접점을 만들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확충은 그 부작용과 부담을 솔직하게 공유하고 지역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고용과 지역 활력 효과를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부터 손을 놓고 있던 탓에 결과적으로 월성 1호기 폐쇄와 관련한 논란을 초래한 문제로, 핵발전의 빠른 폐쇄의 근거를 담는 일련의 입법이 요구된다.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토건 프로젝트 전면 중단은 총선에서 두 거대 정당에 정면으로 대답을 요구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의제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삼척 신규 화력과 신공항 문제는 총선뿐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될 대중운동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탄소중립 기본법에 근거하여 기후변화영향 평가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신공항과 같은 중요한 토건 사업에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회 공공성 확보 과제는 최소 및 적정 에너지 이용, 먹거리와 이동에 관한 기본권 보장, 기후위기로 인해 더욱 어려움이 가중될 보건과 주거 기본권 보장을 위한 세부 방안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새로운 요구 중 국민 기후일자리 프로그램과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운동 진영과 함께 모색을 구체화하고 시범 사업 기획을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식량 자급률 법제화와 생태유기농업으로의 전환은 유럽 그린딜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는데, 역시 농민운동과 대화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기후위기 대응에서 적극적이고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돌파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부 조직 개편과 예산 구조 개편은 해묵은 과제다. 기후위기 대응의 주도권을 기재부로부터 빼앗고 산업부에 대한 기후시민의 통제력을 확보하고 에너지와 환경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정부 개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당시 비상행동의 정책 경연에서는 아쉽게 5위 내에 들지는 못했지만, 진지한 논의로 발전해야 할 흥미로운 요구들도 있었다. 이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중 무상교통 의제는 정의당 등의 ‘대중교통 3만원 프리패스’ 제안으로 일부 이어졌고, 수리권 도입은 강은미 의원 등이 ‘수리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으로 발의된 바 있다.
○ 경제정책 목표에서 GDP 대체지표 도입: 시장 가격으로 환산되는 생산물의 총량을 측정하는 GDP는 발전과 복지를 측정하는 유일한 지표로 자리매김되면서 성장주의의 강력한 토대가 되고 있음. GDP 지표 외에 인간총행복지표, 참진보지표 등 대안적 지표의 필요성이 국내외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음. 국민의 행복, 생태, 복지 등 중요한 가치를 담는 대체지표를 도입하고 경제정책 목표의 핵심 기준으로 삼을 것.
○ 온실가스 줄이고 공공보건을 위한 채식을 제도적으로 보장: 채식 위주 식단이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저감 및 국민 보건에 기여하는 주요한 수단임이 수없이 많이 보고되고 있음. 더불어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며 국민의 자발적 채식 실천이 확대되고 있음. 채식 전환과 지원을 위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함. 공공급식에서 채식권을 보장하고 암스테르담 사례와 같이 공공기관의 경우 채식 우선 제공, 육식 추가 제공 등 채식 확대와 공장식 축산업의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것을 요구함.
○ 차 없는 도시, 무상교통 시행: 수송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이 매우 중요함에도 정부의 정책과 계획은 연료 대체(전기, 수소)와 기술적 효율화에 머무르고 있음. 도시에서의 과감한 승용차 교통량 억제와 병행하여 전국과 지역 수준의 촘촘한 대중교통망 확충, 그리고 대중교통으로의 이용전환을 촉진하는 무상교통을 단계적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함.
○ 플라스틱 생산 및 소비 감축의 계획 수립과 이행: 플라스틱은 화석연료인 석유에서 기인하며, 생산과 소비 및 폐기의 각 단계마다 탄소가 배출됨. 폐기물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플라스틱을 생산 단계에서부터 획기적으로 줄이고, 소비 단계에서 플라스틱 사용제한을 확대하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며, 1회용품과 불필요한 포장재 규제를 확대해야 함. 플라스틱 감축을 위한 연차별 국가 계획 수립과 이행을 제안.
○ 기후변화 정책의 성별영향평가 실시, 성평등한 참여 보장: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는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에서도 불평등한 형태로 나타나며, 특히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와 위험은 여성에게 더욱 큰 영향을 미치게 됨. 기후변화 정책 수립과정에서 성별 분리통계 및 성별 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기후변화 관련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성평등한 참여 보장(60/40원칙. 어떤 한 성이 60%를 넘거나 40% 이하가 되지 않도록 함)을 요구함.
○ 과소비성 광고 금지와 ‘수리권’ 도입: 자본주의에 내재한 ‘계획적 진부화’는 제품의 이용 수명을 단축하고 수리를 불가능하게 하며 과소비를 자극하여 자원 소모와 기후위기 악화의 한 원인이 됨. 해외의 사례들처럼 과소비를 조장하는 디지털 광고판과 대중매체의 광고를 제한하고, 제조업자가 제품의 수명과 구매자의 수리할 권리(rights to repair)를 보장하는 입법을 요구.
○ 기후생태평등 헌법으로 개헌: 제6공화국 헌법과 현행 정치제도는 기후위기에 체제적으로 대응하는 데에 너무나 큰 한계를 노정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총체적인 변화가 필요함. 헌법의 정신과 원칙에 기후위기 등 생태계 위기와 사회적 평등과 안전 확보를 담고, 기후위기를 막고 기후재난에 대응하는 데에 적절한 정치체제 도입을 위한 논의를 요구함.
4. 기후 시민의회와 생태개헌으로
글의 서두에서 기후위기 앞에서 제도정치의 구조적인 무능과 결함을 짚었다. 이제 제도정치에 국한되지 않는 기후정치의 확장과 변화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간단히 말해서 기후위기가 기성 제도로 해결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에너지를 가장 많이 편하게 소비하는 대도시와 수도권을 과대 대표하는 현재의 국회 구성으로는 기후위기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지금의 경제 구조와 성장 문화에 기반하고 있는 정치세력과 정당(이것 역시 기후위기의 중요한 원인이자 일부)의 후보들이 기후위기에 진심으로 반응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다. 따라서 당선 가능하거나 유의미한 득표를 얻을 후보 중 보다 나은 기후 후보를 바라고 보다 나은 정책을 받아들이기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 기성 제도의 기후위기 외면 문제 역시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래서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 논의는 전문적 정치인과 관료들의 이너 서클의 정치의 개혁을 넘어서는, 추첨식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영국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와 도시에서 진행 중인 ‘기후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 실험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김현우, 2023).
영국의 기후운동 조직 멸종반란은 기후위기의 진실을 받아들이고 화석연료 종식을 분명히 하라는 요구와 더불어, 영국 전역에 기후 시민의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영국 하원이 주도하여 기후회의를 진행했지만, 그것이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대면하는 데 미흡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비상사태 시민회의‘들’을 설립하여 우리 시대의 가장 긴급한 문제들에 대하여 공정하고 장기적인 해법들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요구다. 이는 기후 시민의회가 기존 대의제도를 보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하게 대체하고 긴장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민주주의의 내용과 방식을 확장할 필요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말하고 구체적인 정책과 현장에 밀착한 투쟁으로 기후위기를 풀어내는 정치인과 정당의 존재는 너무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더 나은 정치인과 정당만으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기후정치로의 전환이 체제 전환의 일부라는 것을 구체적인 매개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총선에서조차 제대로 된 기후정치는, 우리가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정치인의 발언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현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의 실패를 남김없이 고발하고, 체제 변화에 공감하고 함께 움직이는 3.5%(주 : 미국의 역사사회학자 에리카 체노웨스는 100년 동안 세계 전역에서 발생했던 각종 사회운동에 관한 데이터의 분석을 토대로, 인구의 3.5%가 행동하면 비폭력적 방식으로 사회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경험 법칙을 발견했다. 영국의 멸종반란에서는 이 3.5%라는 수치를 참고로 기후행동의 대중화를 논의하고 있다.)를 만드는 과정으로 만드는 노력이 훨씬 중요할 것이다. 현재의 대통령제와 대의정치 구조가 어떻게 기후위기 해결을 불가능하게 하고, 과감하지만 필수적인 해법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가로막는지를 말해야 하고 어떤 다른 기후정치가 필요한지를 말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 크게 보고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하며, 기성 정치를 바꾸려면 원칙론과 비난에서 몇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기후위기에 무능하고 무책임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제 폐지와 정당 책임제(내각제)(주 : 필자는 의원내각제 또는 의회중심제라고 불리는 이 제도에 대해 최근에는 ‘정당 책임제’라고 부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정당이 파견하는 장관들과 정당의 대표인 총리가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명칭이거니와, 지금 한국의 제도는 ‘정당 무책임제’라는 점을 환기하고자 함이다. 이와 관련한 논의는 다음을 참조. 김현우(2021); 김현우(2023).)를 포함하는 기후위기 대응 정치제도의 재구성, 환경과 공존 및 연대의 가치를 분명히 하는 ‘녹색국가’ 지향을 담는 생태개헌 제안으로 우리 스스로 의제의 스케일을 키우고 대중적 토론을 촉발해야 할 때다.
[참고 문헌]
- Mastinia, Riccardo, Giorgos Kallis, Jason Hickel. “A Green New Deal without growth?”, Ecological Economics 179, 2021.
- C. 더글러스 러미스, 김종철 최성현 공역.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녹색평론사, 2011.
- 기후위기비상행동 ?보도자료: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대선을 위한 10대 대표 정책 선정?, 2021. http://climate-strike.kr/4153/
- 김병권. 『기후를 위한 경제학』 착한책가게, 2023.
- 김현우. ?기후위기 시대, 6공화국에서 대처 가능한가??, 『보다 정의』 창간준비 3호. 정의정책연구소, 2021.
- 김현우. ?기후민주주의와 기후정치?, 『녹색평론』 183호, 2023년 가을호. 녹색평론사.
- 맥스 아일, 추선영 역. 『민중을 위한 그린 뉴딜』 두 번째테제, 2023.
- 상드린 딕손-드클레브 외, 추선영 김미정 역. 『모두를 위한 지구』 착한책가게, 2023.
- 아미타브 고시, 김홍옥 역. 『대혼란의 시대』 에코리브르, 2021.
- 어니스트 칼렌바크, 최재경 역. 『에코토피아 비긴스』 도솔, 2009.
- 에릭 홀트하우스, 신봉아 역. 『미래의 지구』 교유서가, 2021.
- 요한 록스트룀, 오웬 가프니, 전병옥 역. 『브레이킹 바운더리스』 사이언스북스, 2022.
- 조엘 웨인라이트, 제프 만, 장용준 역. 『기후 리바이어던: 지구 미래에 관한 정치 이론』 앨피, 2023.
- 트로이 베티스, 드류 펜더그라스, 정소영 역. 『지구의 절반을 넘어서』 이콘,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