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랫폼 노동신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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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플랫폼 노동의 노동법적 포섭 방안
- 입력 2021.03.03 17:39 조회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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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성 성신여자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전 법무법인 KCL 변호사
- #플랫폼 노동#신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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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_창간준비2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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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AI나 빅데이터에 의해서 가능해진 고도의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그때그때의 수요에 따라 초단기적으로 노동력을 활용하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모델이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하여 일감을 얻는 사람(이하 편의상 “플랫폼 노동자”라고 한다)의 취약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플랫폼 노동자’의 등장이 노동법에 던지는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을 전통적인 ‘근로자’의 개념에 포섭할 수 있는가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하나의 스크린 같다. 우리 사회 노동현실은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스크린 위에 하나의 상(像)을 그린다. 다만 기존 노동현실은 수 세기 동안 형성된 노동법의 규율 덕분에 원생적 상태를 다소 극복했다면 온라인 플랫폼에 맺히는 상은 기존의 노동법을 우회하려는 자본의 탐욕과 혁신으로 포장된 비용 전가로 인하여 실로 원생적인 모습을 그린다. 따라서 플랫폼 노동을 어떻게 법적으로 규율할 것인가의 문제는 ‘원생적 상태의 플랫폼 노동을 어떻게 규범화된 상태로 복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2. 플랫폼 노동의 취약성과 위험성
가. 플랫폼 노동의 취약성 – 경계의 모호화
플랫폼 노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경계의 모호화’에 있다. 플랫폼 노동의 근로자성 문제는 직종별로 세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플랫폼 경제에서 종속적 노동자와 독립계약자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모호함이 플랫폼노동자에게는 법적 보호를 상실할 ‘위험’으로 기능하는 반면, 플랫폼 기업에게는 이러한 모호함이 노동법을 회피할 ‘기회’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통제력을 직접 행사하기 보다는 ① 플랫폼 노동자에게 일을 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하게 하고, ② 일을 하기로 한 경우에는 플랫폼이 제공한 매뉴얼에 따라 일을 수행하도록 하고, ③ 일의 수행결과는 고객이 평가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노동력을 조달 및 활용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① 플랫폼 기업이 보내는 신호(호출)에 응답하는 행위는 동의로 평가되고, ② 업무에 대한 지시명령은 사전에 제공된 매뉴얼로 추상화되어 종속성이 희석되며, ③ 업무에 대한 감독과 평가는 ‘별점평가’의 방식으로 고객과 분업한다. 이러한 ‘종속성 희석 매커니즘’을 통하여 종래 임노동의 방식으로 수행되던 업무는 독립노동의 모습을 띠게 된다.
그러나 ① 플랫폼 기업은 호출에 대한 플랫폼 노동자의 승낙률을 평가(예컨대, 일정한 횟수 이상 승낙을 거절하는 경우 호출을 하지 않는 등)함으로써 플랫폼 노동자의 승낙을 사실상 강제한다. 또한 ② 승차공유 플랫폼에서의 여객운송이나 음식배달 플랫폼의 배달과 같은 정형적인 업무는 그 업무의 구체적인 내용이 플랫폼 기업에 의해 사전에 일방적으로 정해지고, 따라서 업무 수행과정에서 플랫폼 노동자에게 허용된 재량은 거의 없다. 이러한 업무의 정형성에 기반한 과업의 구체적 특정은 전통적인 지휘·명령을 대체한다. 나아가, ③ 플랫폼 사업에서 업무에 대한 감독은 디지털 기술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전통적인 사업에서 근로자에 대한 업무지시와 그에 대한 평가(인사고과)가 분리되어 있었다면, 플랫폼 사업에서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실시간 감시’을 매개로 업무에 대한 지휘와 그에 대한 평가가 결합된다(예컨대, 여객운송이나 배달의 경우 플랫폼 노동자의 이동 경로가 실시간으로 통제된다).
한편, 플랫폼 사업은 반드시 하나의 기업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오히려 복수의 기업의 네트워크에 의하여 공동으로 운영되는 모습을 취한다. 그런데 이러한 복수기업의 네트워크(poly corporate network)를 규율하는 법은 ‘독립한 기업 간의 개별적 관계라는 개념’과 ‘복합조직이라는 일원적 개념’ 사이의 긴장으로 특징지어진다. 복수기업의 네트워크의 출현으로 종래 대부분 1:1의 대응 관계에 있던 사업(business)과 기업(organization)의 관계가 다양한 유형으로 분화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사용자의 식별의 국면에서 곤란한 문제를 야기한다. 상황이 이렇게 변했음에도 복수의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의 경우에도 하나의 사용자를 골라야 한다는 인식을 고수할 경우, 사업을 공동으로 영위한 복수의 기업 중 하나 이상은 사용자로서의 법적 책임을 완벽하게 회피할 수 있게 된다.
실례로, 전통적인 택시회사가 승용차를 소유하고, 기사를 고용하여 육상운송사업을 하였다면, ‘타다’는 렌터카 회사인 쏘카가 승용차를 소유하고, 브이씨엔씨가 타다 플랫폼을 운영하고, 파견업체가 기사를 공급했다. 타다 서비스를 사용하는 승객의 입장에서 보면 쏘카와 브이씨엔씨와 파견업체는 유사택시라는 육상운송사업을 ‘공동으로’ 영위하는 복수의 기업들일 뿐이다. 타다의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형사사건의 1심판결에서 타다 서비스를 승객이 쏘카로부터 차량을 ‘임대차’하고 기사를 ‘알선’받은 것으로 억지로 ‘인수분해’해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복수 기업 네트워크가 기존의 법체계에 불러온 법적용상의 난점을 보여준다.
나. 플랫폼 노동의 위험성 – 비용의 전가
전통적인 노동법은 임노동자(賃勞動者)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다양한 법적 책임을 부과한다. 전통적인 사회보장의 두 기둥 중 하나인 사회보험은 기업을 사회보장의 전달체계에 편입시켜 사업주에게 사회보험료를 부담하게 하거나, 사회보험료 징수에 조력하게 한다. 세법은 기업에게 근로자 소득과세에 대한 원천징수의무를 부과해 효율적인 징세에 조력하도록 한다. 이렇게 징수된 조세는 사회보장제도의 또 다른 기둥인 공공부조의 재원으로 활용된다. 결국, 현대 복지국가의 사회보장에 필요한 재정의 상당 부분은 직-간접적으로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기업의 이러한 기능은 기업 배후의 자본가들이 기업의 이름(법인격) 뒤에 숨어 누려 왔던 유한책임이라는 특권의 사용료에 해당한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 기업은 스스로 혁신이라 칭하며,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것으로 은폐해 이러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를 통하여 자신이 마땅히 부담해야 할 비용을 그들이 당연히 누렸어야 할 노동법적 보호를 박탈당한 노동자에게, 오분류를 통해 비용을 떨어낸 기업과 시장에서 경쟁해야만 하는 법률을 온전히 준수하는 다른 기업에게, 사회보험료나 조세로 조달한 재원으로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국가에게 비용을 전가한다. 플랫폼 기업에 의해 ‘혁신’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근로자성 은폐와 비용의 전가는 가깝게는 중산층 소멸과 소득 불평등의 원인이 되고, 멀게는 사회적 연대 해체와 복지국가의 파탄을 불러올 것이다.
3. 플랫폼 노동의 노동법적 규율방안
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 – 오분류의 교정
노동법의 적용대상에 관한 전통적인 사고는 근로자가 엄격한 의미에서 종속적인 상황에 있을 때만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와 민법이나 상법의 적용을 받는 독립사업자의 경계에 있는 독립노동의 증가는 기존의 법적 틀 내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타인을 위해 동일한 노무를 제공하면서도 근로계약에 의하여 노동법 및 사회보장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보호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이러한 포괄적 노동법제 도입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고용상 지위의 조작으로 근로자를 비근로자화려는 플랫폼 기업들의 ‘규범회피행위’를 유효하게 교정하기 위한 적극적 개입이 시급하다. 플랫폼 노동자를 너무 당연하게 ‘자영업자’로 취급하는 인식은 착시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분류로 교정해야 할 사안(유사택시, 배달)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보호방안을 모색하는 논의는 오분류를 교정하는 기제가 아니라 오분류를 면책하는 매커니즘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오분류의 교정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근로자성 판단기준 자체를 완화하는 방안(실체법적 접근)과 근로자성 판단에 관한 입증의 부담을 플랫폼 기업에게로 전환하는 방안(절차법적 접근)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나. 근로자성 판단기준의 완화 – ‘선 긋기’의 수정
우리 사회는 최근 고용관행의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 새로운 현실은 노동법을 그들의 목적과 다시 일치시키기 위한 법원과 입법자의 노력을 요구한다.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통제와 경제적 의존으로 특징지어지는 관계 속에서 일한다. 이는 과거에도 그래왔으며 변하지 않았다. 노동법의 목표는 이러한 취약성을 최소화하거나 그러한 취약성에서 초래되는 원치 않는 결과를 방지함으로써, 이러한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적 종속이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근거 짓는다는 전통적 인식을 도그마 삼아 비전형 노동자를 근로기준법의 적용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는 노동법이 당초 추구했던 목적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기 어렵다. 사실 ‘종속성’이라는 것은 ‘있다’와 ‘없다’라는 일도양단의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타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어느 정도의 종속성 아래서 노무를 제공한다. 종속성의 정도라는 넓은 스펙트럼의 한 지점에 선을 긋고 그 선 위에 부분은 근로자, 아래는 비근로자라고 결정하는 것이 근로자성의 판단이다.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선을 스펙트럼의 어느 부분에 그을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선 긋기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법적 쟁점은 발생한다. 하나는 주로 법원에 의하여 그어진 선(이를 ‘판례법리’라고 하자)을 두고 특정한 범주의 노동자가 그 선을 넘었는지를 판단하는 문제이다. 이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소위 ‘오분류’의 문제이다. 타다 드라이버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근로자성의 문제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선을 새로 긋는 문제이다. 기존에 그어진 선이 사회경제적 환경의 변화로 타당성을 잃은 경우 선의 위치는 마땅히 수정되어야 한다. 2018년 재능교육 판결이 이러한 선 긋기의 수정이다.
인적 종속은 하늘이 내려준 천리(天理)가 아니다. 노동법의 적용대상은 불변의 원칙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수정할 수 있는, 나아가 수정되어야만 하는 기준이다.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한 과학기술은 사용자들이 노동자의 노동과정을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그 노동의 결과를 평가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정하는 방식으로 노동과정을 직접 통제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게 하였다. 이를 통하여 전통적인 인적 종속의 기준으로 보면 근로자로 보기 어려운 노동자가 양산되고 있다. 과거의 기준으로 이들을 노동법의 보호범위에서 배제한다면 노동법은 앞으로 더욱 희소해질 ‘표준적 고용관계’를 획득한 신분자들만 보호하는 특별법으로 격상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신분을 획득하지 못한 다수의 노동자는 다시 규범적 보호가 벗겨진 원생(原生)의 상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판단기준 자체를 보다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판례의 변경을 통해 가능할 것인바, 법원의 적극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한 영역이다.
다. 근로자성에 관한 입증책임의 전환
오분류 문제를 교정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으로 근로자성 판단에 관한 입증책임의 전환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을 ‘근로자’라고 추정하고, 이러한 추정을 깨뜨리고 싶은 당사자에게 반증의 입증책임을 부담토록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전통적인 입증책임의 분배에 관한 일반 원칙인 법률요건분류설(규범설)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생소할 수 있겠으나, 산업혁명 이후 노동계급의 출현 과정 및 근대적 생산방식의 보편화라는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타인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을 기본적으로 근로자로 추정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1) ILO 고용관계 권고(제198호)
ILO는 1997년과 1998년에 ‘계약노동(contract labor)’을 주제로 하도급 형식을 통한 노동자 보호에 관한 문제를 논의하였으며, 2003년 총회에서의 논의 및 결의를 거쳐 2006년 ILO 고용관계 권고(제198호)를 하였다. 고용관계 권고는 권고이므로 가맹국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기준을 설정하고 회원국의 국내정책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며 또한 국제적으로는 ILO의 공식문서로서 고용관계에 관한 향후 논의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 ILO 고용관계 권고 13항은 먼저 “회원국은 국내법과 규정에 의하여 또는 기타의 방식으로 고용관계의 존재에 대한 특정지표를 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그러한 구체적인 지표로 (a) 상대방의 지시와 통제에 따라 업무 수행, 노동자가 기업조직의 일부로 통합, 전적으로 또는 주로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 업무 수행, 해당 노동자에 의해 직접 업무 수행, 업무를 요구하는 당사자가 결정하거나 합의한 특정 노동시간이나 작업장에서 업무 수행, 업무가 특정 지속기간과 연속성을 가짐, 해당노동자의 가용성(availability)이 요구됨, 업무를 요구하는 당사자가 도구·자재·기계 제공과 (b) 노동자에 대한 정기적 보수 지급, 이러한 보수가 해당 노동자의 유일한 소득원이거나 주요 소득원이라는 사실, 음식·숙소·교통 등 현물 지급, 주휴일과 연차휴가 수급자격, 업무를 요구하는 당사자가 업무수행을 위한 출장경비 지급, 해당 노동자에 대한 재정적 리스크 부재를 제시하였다.
나아가 동 권고 11항은 “고용관계의 존재를 결정할 수 있도록 회원국은 이 권고에 언급된 국가정책의 범위 내에서 다음 가능성을 고려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고용관계의 존재에 대한 법률상 추정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a) 고용관계의 존재를 결정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 허용
(b) 하나 이상의 지표가 존재할 경우 고용관계가 존재한다는 법률상 추정 제공
(c) 가장 대표적인 노사단체와의 사전협의를 거쳐 일반 업종이든 특수 업종이든 일정한 특성을 가진 노동자는 근로자 또는 자영업자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결정”(밑줄은 필자)
2) 미국의 ABC 테스트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다이나멕스 사건에서 임금법령의 연혁과 근로자의 사회적 보호라는 입법 목적을 근거로 원고의 주장을 인용했다. 즉 근로자와 독립계약자를 구분하는 판단에서도 ‘일하는 것을 묵인 또는 허용’한 경우 역시 고용한 것으로 보았다. 연방법인 FLSA도 “일하는 것을 묵인 또는 허용”을 포함하여 고용을 커먼 로 보다 넓게 해석하는데, 다만 그 범위를 제한하기 위해 경제적 실질 기준을 사용한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FLSA보다 캘리포니아주 임금명령이 앞서 도입되었다는 연혁적 측면과 캘리포니아주의 근로자들을 연방법보다 더 넓게 보호하겠다는 입법 목적을 고려하면 캘리포니아주 임금명령을 해석할 때 경제적 실질 기준을 굳이 따를 필요가 없다고 보고, 대신 노무제공자가 근로자가 아니라 독립계약자라고 주장하려면 기업은 “(A) 노동자는 업무 수행과 관련하여 계약상이나 실제로 기업의 통제와 지시(control and direction)를 받지 않는다, (B) 노동자는 기업의 통상적인 사업 범위(usual course of business) 외의 업무를 수행한다, (C) 노동자는 관례적으로 기업과 독립적으로 설립된 직종, 직업 또는 사업에 종사한다”라는 세 가지 요건(ABC)을 모두 증명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근로자로 추정하도록 하는 ABC 기준을 채택했다. 이러한 방식은 모든 노무제공자(all workers)에 대해 우선 근로자라고 추정하고, 기업이 이러한 추정을 복멸하기 위하여는 위에서 제시한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입증할 것으로 요구하는 방식이다.
3) 독일 연방노동사회부의 ‘플랫폼 경제에서의 공정한 노동’
2020년 11월 27일 연방노동사회부는 “플랫폼 경제에서의 공정한 노동(Faire Arbeit in der Plattformökonomie)”이라는 발표를 통해 플랫폼노동에 관한 독일정부의 핵심적 정책 방향을 발표하였다.
위 발표는 플랫폼 경제에서 활동하는 1인 자영업자(Solo-Selbstständige)에 대한 노동법 및 사회보장법상의 보호 내용으로 (1) 노동플랫폼으로서의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 강화, (2) 사회적 보호의 강화, (3) 근로자성 판단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입증책임 완화, (4) 공정한 활동조건의 보장, (5) 계약조건에 대한 통제, (6) 투명성 제고를 위한 신고 및 통계의무 도입을 제시하였는데, 이 중 (3)이 입증책임의 완화에 관한 내용이다.
“(3) 근로자성 판단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입증책임 완화
플랫폼활동자들은 실제 상황에 따라 어떤 계약관계에 있는지 여부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됨. 연방노동사회부는 플랫폼활동자의 노동법적 지위 확인을 보다 용이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플랫폼노동자를 위한 입증책임규정을 도입하고자 함. 플랫폼활동자가 근로관계 존재에 대한 정황증거(간접증거)를 제시하면 근로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증책임은 플랫폼사업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것임.”(밑줄은 필자)
4) 정리
미국의 ABC 테스트가 가진 의미는 근로자성 판단에 관한 실질적인 쟁점이 ‘종속성이 얼마나 강한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속성을 판단하는데 필요한 자료의 제출에 대한 책임을 누가 부담하는가’라는 점을 밝힌 것이다.
입증책임의 분배 문제는 어찌 보면 무엇을 원칙으로 보고, 무엇을 예외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일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근로자임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는 근로기준법은 민법의 특별법이므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주장하는 당사자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기 위한 요건, 즉 자신이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점을 입증하라는 인식에 근거한다. 반면 ABC 테스트의 의미는 이러한 가정을 전복한 것이다. 일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근로자로 추정되고, 이러한 추정에 반대하는 당사자가 그 추정을 복멸하기 위한 입증자료를 제출하라는 방식이다.
자본주의의 여명기에는 근로자와 비근로자가 명확하게 분기되지 않았다. 공장에 출근하는 사람 중에는 자신이 사용할 도구를 가져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맨몸으로 온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일반화, 보편화되기 전의 단계에서는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가정’이 타당했을 수 있다. 실제로 초기 자본가들은 '생산'의 과정을 통제할 기술을 알지 못했다. 산업혁명 이전 장인들의 노동은 기본적으로 도급계약이었다. 즉, 작업방법은 장인들에게 내부화되어 있어 의뢰인(자본가)이 일일이 지시명령을 내리는 일은 없었다(정확하게는 지시명령을 내릴 능력이 없었다). 당시 고용계약의 전형적인 분야는 집사나 하녀 등 가정 내 가사노동자였다(주종법의 적용대상).
그러나 산업혁명에 의해 공업 분야의 노동 방식이 크게 바뀌어 종래의 독립성이 높은 장인 노동에서 공장 전체의 작업 중 일부를 할당받아 수행하는 것이 되었다(분업화). 이러한 전환에 의해 노동자는 작업내용을 사용자로부터 지시받고, 그대로 수행하는 만큼 약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간주되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대부분의 생산활동이 기업에 의해, 즉 근대적 생산방식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18세기적 가정’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규범적인 기본값 자체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즉, 일하는 사람의 규범적 기본값을 ‘근로자’라고 추정하고, 이러한 추정을 깨뜨리고 싶은 당사자에게 반증의 입증책임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일상화된 지금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부합할 것이다.
나아가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의 해석론으로도 ‘사용종속관계’를 원고가 주장·입증해야 하는 주요사실이 아니라 피고가 그 부존재를 주장·입증해야 하는 항변사실로 해석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즉, 원고는 ‘①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② 임금을 목적으로, ③ 사업이나 사업장에, ④ 근로를 제공하였다’라는 객관적 사실만 주장·입증하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추정되고, 피고 측에서 ‘사용종속관계의 부존재’라는 항변사실을 적극적으로 입증한 경우에 한하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부정된다는 방식의 해석이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1호의 법문에 오히려 부합한다. 따라서 입증책인의 전환에 반드시 별도의 입법이 요구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 포괄적 노동법제의 도입
종래 노동법이 다양한 기준으로 노동자를 분절(division)하고 일부를 배제(exclusion)해 왔다면, 앞으로의 노동법은 모든 일하는 사람을 하나의 범주로 통합(integration)하고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에 필자는 모든 일하는 사람을 보호대상으로 하는 일반법으로서의 ‘일하는 사람의 보호를 위한 법률’의 입법을 제안한다. 이러한 입법은 기존의 노동법 외에 의존적 계약자(dependent contractors)나 유사근로자(employee-like) 같은 새로운 중간범주(intermediate category)를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통적인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일하는 사람’을 포괄(inclusive)하는 기초가 되는 일반법의 제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반법은 노무제공의 상대방으로부터의 지시나 감독 여부 및 그 정도, 경제적 종속성 여부를 불문하고, 따라서 노무제공자가 제공하는 노무의 성격이 소위 독립노동이나 자유노동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일정한 정도의 지시나 감독, 경제적 종속성을 전제로 하는 비공식 노동자를 포함하나, 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 종사원도 노무제공자에 포함되며, 노무제공에 대한 반대급부의 존부도 문제 삼지 않으므로 소위 무급인턴(unpaid intern)이나 교육생, 자원봉사자도 포함한다.
플랫폼 노동자만을 별도의 적용대상으로 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방안은 보호의 강화라는 취지와 반대로 보호의 약화와 파편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플랫폼 노동자는 당연히 근로자가 아니라고 전제하고, 이들만을 대상으로 별도의 특별법을 입법하는 것은 플랫폼 노동자가 누려야 할 노동법상 보호로부터 이들을 배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범주적 접근방식보다는 포괄적 접근방식이 보다 적합하다. 즉 노무를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계약의 유형과 일하는 방식에 관계없이 노무를 제공하는 조건에 관한 최소한의 보호를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는 조건과 방식에 관하여 보호의 기층이 되는 틀을 규범적으로 제공하고, 그 위에서 노무제공이 이루어지도록 한다면 ‘노동에 대한 보편적인 보장’(universal labour guarantee)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한편, 사용자를 수범자로 하여 사용자에게 의무를 부과하는 전통적인 노동법의 문법으로 법률의 내용을 설계할 경우, 다양한 일하는 사람에 대하여 동법상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를 누구로 볼 것인가라는, 오래되었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다시 봉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사용자의 의무 체계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권리체계로 법률의 내용을 설계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동 법률의 입법에 반대하는 경영계의 입장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하는 사람에게 보장되는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 조항으로부터 직접 도출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권오성, “전가(轉嫁)와 은닉(隱匿)의 기술, 온라인 플랫폼”, 「사회적 대화」 통권 제12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2019.
권오성·김민정, “‘타다’서비스의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무죄 판결의 문제점”, 「노동법포럼」 제30호, 노동법이론실무학회, 2000.
권오성, “플랫폼 노동, 현상과 과제”, 「노동법률」 통권 제349호, ㈜중앙경제, 2020.
권오성, “2020년 53호 플랫폼 노동과 노동법, 포괄적 노동법제가 필요하다”, 「노사공포럼」 제53호, (사)노사공포럼, 2020.
권오성, “플랫폼 경제와 노동법”, 「노동연구」 제41집,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2020.
권오성,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 「노동법포럼」 제32호, 노동법이론실무학회, 2021.
이다혜, “미국 노동법상 디지털 플랫폼 종사자의 근로자성 판단 - 2018년 캘리포니아 대법원 Dynamex 판결을 중심으로 -”, 「노동법학」제72호, 한국노동법학회, 2019.
권오성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법무법인 KCL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현재 성신여대 법과대학에서 노동법, 사회보장법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