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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장석준 칼럼] 보궐선거 이후 한국 정치의 방향은?

'이재명'과 '윤석열'이라는 '암호'와 마주하며
  • 입력 2021.04.14 11:00      조회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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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있었고,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참패로 끝났다. 이제 대통령선거가 1년밖에 안 남았는데, 이번 성적만 놓고 보면 대선 역시 현 여당의 패배를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선 주자 여론조사 결과가 전하는 이야기는 또 다르다. 보궐선거 뒤에도 여전히 선두 주자는 이재명이고, 국민의힘 소속으로 두드러진 인물은 아직 없다.

도대체 민심은 어느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가? 보궐선거 결과가 가리키는 방향인가, 아니면 대선 주자 여론조사 쪽인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시민들의 마음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더 종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다 봐야 한다. 촛불항쟁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한국 정치는 전에 없던 긴장과 모순의 소용돌이 속에서 표류하는 중이다.

방향1 – 제6공화국 정치의 강고한 지속

우선 보궐선거 결과에서 즉각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방향은 제6공화국 정치의 강고한 지속이다. 지난 30여 년간 제6공화국 정치는 두 거대 정당이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구도로 진화해왔다. 양김 씨가 차례로 대통령을 역임한 뒤인 2000년대부터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양대 정당 사이에서 집권의 진자운동이 반복됐다.

촛불항쟁 이후 한때 이 공식이 무너진 듯 보이기도 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이 입은 타격이 너무 커 잇단 선거에서 참패를 거듭했고, 그래서 더는 재기하기 힘들리라는 예상마저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의 경향에 지나치게 장기적인 의미를 부여한 성급한 진단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잇단 선거 결과는 단지 진자운동의 추가 반대 방향으로 다시 움직이기 전에 으레 보이는 모습일 뿐이었다.

이번 선거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그들의 야심 찬 돌파구였던 북핵 협상에서 교착 상태에 빠지고 검찰과의 소모전, 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 각종 부패 추문으로 실망을 안겨주자 민심이 돌아섰다. 그런데 돌아선 민심이 여당 심판을 위해 선택한 대상은 국민의힘 후보들이었다. 양대 정당 사이에서 선택과 심판을 반복하는 제6공화국 정치의 완벽한 재연이었다.

불과 1년 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그 위성정당에 쏠렸던 것만큼이나 국민의힘에 쏠린 이번 투표 결과를 보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제6공화국 정치를 벗어나지 못할 운명인 것만 같다. 대개의 정치인들, 정치평론가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오직 이 좁은 상상력 안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려 할 뿐이다. 20대 유권자들이 이번에 국민의힘 후보들에게 몰표를 던졌다 하여 '보수화' 운운하는 것 역시 이런 행태의 하나다. 양대 정당 중 좀 더 보수적인 쪽에 표를 던졌으니 보수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선거 참패 뒤에 늘 그렇듯이 한 쪽에서는 '기존 노선 사수'를, 다른 한 쪽에서는 '반성과 혁신'을 외치며 내부 투쟁에 돌입한 여당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반성' 쪽을 강조하는 세력조차 앞으로도 기본 구도는 양대 정당 간 접전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자기 편 전열을 가다듬자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게임이 앞으로도 지속될지 알 수 없는 일이라면, 어떻겠는가? 익숙했던 이 게임 자체가 아래로부터 허물어지고 있다면? 보궐선거 결과에도 불구하고, 민심의 큰 흐름이 실은 이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요동치고 있다면?

방향2 – '이재명'과 '윤석열'이라는 상징 이면의 열망

보궐선거 이후에도 '이재명'과 '윤석열'이라는 두 이름이 주도하는 대선 주자 여론조사 결과가 암시하는 방향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이 두 이름은 양대 정당 구도의 한 쪽 진영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다. 그래서 두 사람이 차기 대권 경쟁을 주도하는 양상과 양대 정당 중심 정치 사이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자와 후자 사이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어긋남이 있다.

우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양대 정당 중 한 쪽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지만, 당의 주류는 아니다. 단지 주류가 아닐 뿐만 아니라 주류로부터 배척받는 정치인이다. 지금 180여 명에 달하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 가운데 이런 정치인은 거의 없다. 거의 없는 중에서 한 사람인 그가 대선 주자 여론조사 1, 2위를 달린다. 적어도 여당에서는 확고부동한 1위다. 당 내의 불리한 세력 구도를 상쇄시키는 이 힘은 분명 현재의 더불어민주당 안보다는 그 바깥에서 모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힘의 실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비슷하다. 그는 아예 당적이 없다. 현 정권과 여당의 대척점에 서 있으니 대충 국민의힘과 같은 진영으로 묶이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무런 실제적 연관관계가 없다. 설령 나중에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선택을 하더라도 크게 바뀌는 것은 없다. 그런 선택을 하더라도 그는 더불어민주당 안의 이재명 이상으로 국민의힘 안에서 비주류다. 그런 그가 비민주당 대선 주자 중에서는 계속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한다.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힘 역시 우리의 주의를 요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재명 지사나 윤석열 전 총장 자신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재명'과 '윤석열'이라는 두 상징에 응축된 대중의 욕구와 열망이다. 이 욕구와 열망은 어디를 향하는가? 이재명 지사도, 윤석열 전 총장도 '여의도 정치'를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 나름의 대중정치를 펼쳐왔고 기존 양대 정당과 관련이 없지도 않지만 기성 정치의 본류에서는 비껴나 있다. 그런 그들이 대중의 지지를 업고 권력의 중심에 진입하려 한다. 이것은 분명 현상유지보다는 변화 쪽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하지만 변화를 지향하면서도 뭔가 애매한 데가 있다. 이재명 지사는 어쨌든 여당 소속이고, 윤석열 전 총장은 현 정권과 대립하며 정치적 지지를 형성했다. 전자도 더불어민주당 바깥에서 사회운동과 더불어 성장한 인물은 아니고, 후자도 젊은 세대 사이에서 새롭게 등장한 우파 정치가는 아니다. 둘 다 기존 제6공화국 정치에 한 발을 걸치면서도 그 중심과 불화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현재 기성 정치에 대한 상당수 대중의 정서가 꼭 그러함을 말해준다. 많은 이들이 제6공화국 정치의 단절이나 전복까지는 미처 상상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하고 싶어 한다. 바꿔 말하면, 제6공화국 정치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이를 흔들 수단은 양대 정당의 자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범위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심정의 반영이 곧 '이재명'이고, '윤석열'이다.

또 다른 방향? - 판을 갈기

논리로만 따지면, 또 다른 방향도 생각할 수 있다. 제6공화국 정치의 바깥에서 성장해 전혀 새로운 질서의 수립을 지향하는 흐름이 있을 수 있다. 오래 전에 고 노회찬 의원은 이를 “판을 갈자”는 간단한 언어로 설득력 있게 표현했었다. 나는 이런 흐름이 선명한 좌파 성향을 띠길 바라지만, 현실에서는 좌파로도 나타날 수 있고 극우파나 기상천외한 혼종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선택지도 가능하다고 본다면, '이재명' 혹은 '윤석열' 현상은 기존 양당 중심 정치와 판 바꾸기 사이의 '과도적'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제3의 방향을 '이재명'이나 '윤석열' 만큼 강력히 응축한 상징이 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이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이런 과도적 대안들과 교호하는 가운데에 더욱더 많은 시민들이 제6공화국 정치의 낡은 틀이나 관성과 거리를 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위험 또한 있다. 아니, 어쩌면 위험이 더 크다. 과도적 대안은 어디까지나 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나서 지양돼야 한다. 더 근본적인 대안이 좀처럼 실체로 등장하지 않는 탓에 과도적 대안이 결코 과도적이지 않은 역할을 맡게 된다면, 거기에는 또 그만큼의 부작용이 따르게 된다.

변화 쪽에 가까운 줄 알았던 선택지가 현상유지의 다른 이름임을 확인했을 때의 거센 반동을 예상해볼 수 있겠고, 혹은 제6공화국 정치의 기본 구조(가령 대통령제)를 유지한 채 기성 양당 구도만 뒤흔들었을 때에 더 권위적이고 당혹스러운 권력과 마주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새로운 질서를 세울 준비 없이 낡은 질서가 쇠퇴하거나 흔들리는 국면에 늘 있는 위험들이다.

이런 위험의 가능성은 결국 제6공화국 질서와 정면 대결하며 이를 극복하려는, 그것도 민주주의를 제약하거나 왜곡하는 방향이 아니라 확대하는 방향에서 극복하려는 운동의 성장과 반비례한다. 과연 이런 운동이 때맞춰 강력하게 등장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이재명'과 '윤석열'이라는 암호와 마주하며, 이것의 조짐에 설레지만 또한 이것의 부재를 탄식한다.

* 이 글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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