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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의 응시] 윤석열 정치철학의 빛과 그림자

  • 입력 2021.07.06 11:00      조회 1090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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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출마선언에 나타난 문재인 정부 비판은 과장되긴 했지만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학자로 관심이 가는 것은 그의 정치철학, 특히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다. 길지만 그의 말을 들어보자.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입니다. … 자유민주주의는 승자를 위한 것이고 그 이외의 사람은 도외시하는 것이라는 오해가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모두 평등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지배할 수 없고 모든 개인의 자유가 보장돼야 합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나의 자유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유와 존엄한 삶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입니다. 존엄한 삶에 필요한 경제적 기초와 교육의 기회가 없다면 자유는 공허한 것입니다. 승자 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우선 다행이다. 그는 자유와 자유민주주의가 경제적 기초와 교육 기회 등 사회적 조건의 최소한의 평등과 경제민주주의 없이는 공허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류의 공정론, 즉 형식적인 기회의 공정이라는 보수주의와 결을 달리하는 ‘진보적’ 시각이다. 진짜 다행인 것은 따로 있다. 그가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많은 정치인들과 많은 검사들과 달리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단순히 반공주의로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자유를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문일답에서 “자유를 굉장히 중시한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그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사상·표현·결사·집회·언론의 자유 같은 자유권이다. 1980년대 세계적인 민주화 흐름 속에서 세계 최고의 정치학자들이 모여 한국 등 신생민주정부들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를 한 뒤 내린 결론 역시 그것이었다. 이 연구는 자유민주주의는 이 같은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이며 특정한 이념이나 정당을 금지하는 체제는 선거 등이 아무리 민주적이어도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올바른 정치철학에도 불구하고 윤 전 총장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현실인식이다. 그는 “승자 독식은 절대로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이 부분은 정치학자로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우리의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합니다. … 이 정권은 도대체 어떤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입니까?”라며, 현 정부를 사실상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선 ‘좌파정권’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은 놀랍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충분히 사상의 자유 등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면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를 빼내다니, 사상의 자유 등이 현 정부 들어 박근혜 때보다 줄었단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온 것,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름 아래 자유를 빼앗아 온 것이 현 정부가 아니라 국민의힘의 뿌리인 독재정권과 그 후예들 아닌가? 문재인 정권이 빼내려 한다고 비판하는 것이 설마 투기의 자유, 재벌의 자유는 아니리라고 믿는다. 세계 정치학의 기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도 좌파는커녕 자유민주주의에도 못 미치는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에 의해 특정한 사상과 정당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렇기 때문에 정치철학 면에선 국민의힘과 제가 생각을 같이하고 있다”는 윤 전 총장의 답변이다. 과연 국민의힘이 현 정부와 더불어민주당보다 자유를 중시하는 정당이란 말인가? 한국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물론 국민의힘은 지난해 출범한 정당으로 출범부터 야당이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자유억압의 역사는 없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뿌리를 두고 있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는 소위 ‘보수정권’들의 역사를 보면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윤 전 총장이 자유도 중요하지만 안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과 국민의힘의 정치철학이 같다거나 정권교체라는 목적이 같다고 말했다면 이해가 간다. 그것이 아니라 자유를 중시하고 민주주의는 자유를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과 국민의힘의 정치철학이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한국정치사와 정치현실에 대해 무지한 ‘정치색맹’이 아닌가 우려된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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