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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의 응시] 진보노인? 청년보수?

  • 입력 2021.06.08 11:00      조회 980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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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것들은….” ‘청년들의 반란’인 이준석돌풍을 보고 있자, 문득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비판과 세대갈등의 가장 오래된 문건인 3700년 전 수메르 점토판이 생각났다. 세대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세대갈등이 전면화된 것은 2002년 대선이다. 2030 ‘청년세대’는 노무현을, 5060 ‘노인세대’는 이회창을 지지했다. 주목할 것은 이들 간의 차이다. 출구조사를 보면, 2030과 5060은 별 차이가 없지만 유독 북한과 미국에 대한 인식에서 차이가 있었다. 냉전세대와 달리 젊은 세대는 탈냉전적이었다. 이를 보고 개인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탈냉전세대가 다수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냉전적 보수세력은 점점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현실은 나의 예상을 배반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청년실업, 집값 폭등으로 ‘젊은층의 이탈’이 일어났고 2007년 대선에서 2030세대가 이명박을 많이 찍어 세대갈등은 사라져버렸다. 세대갈등이 다시 살아난 것은 천안함사태로 평화 문제가 부상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 죽음을 택하면서이다. 이후 세대는 지역주의 다음으로 중요한 우리의 정치균열로 자리 잡았다. 2030=‘진보’(정확히 이야기해 ‘리버럴’) 지지, 5060=‘냉전적 보수’ 지지라는 공식이 생겨났다. 세대갈등이 특히 결정적 변수로 작동한 것은 2012년 대선이다. 세대갈등이 박근혜 승리의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 것이다. 이는 정치학자들과 여론조사기관이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탈냉전세대의 증가보다 고령화가 더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2008년 대선에 비해 5060세대의 인구가 급증했고, TV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발언에 분노한 5060세대가 투표장으로 쏟아져 나와 놀라운 투표율로 박근혜의 승리를 견인했다.

이 같은 세대균열, 즉 2030=‘리버럴’, 5060=‘냉전적 보수’라는 공식에 변화가 일고 있다. 2020년 총선과 두 달 전의 재·보궐 선거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2020년 총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5060에 균열이 생겨났다. 출구조사 결과 50대는 과거와 달리, 그리고 냉전적 보수세력을 17%나 더 찍은 60대와 달리, 냉전적 보수세력보다 자유주의개혁세력인 더불어민주당을 7%나 더 찍었다. 물론 이는 냉전적 보수세력이 막말파동 등 민심을 잃은 것과 관련이 깊다. 그러나 변화를 단순히 상황적 요인 때문으로 봐선 안 된다. 주목할 것은 세대는 단순히 나이가 아니라 ‘나이+역사적 경험’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1960년대 반전세대에 비해 1980년대의 ‘여피세대’가 더 보수적이었듯이 반드시 청년세대=진보, 노인세대=보수는 아니다. 2020년 총선결과는 1960년대 생으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86세대’가 50대에 들어서고 있는 것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 즉 ‘진보 50대’, 예비‘진보노인’이 생겨나고 있다는 징후가 보인다.

이에 못지않게 주목할 것은 20대 남성들의 보수화이다(20대 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세대 이외에 젠더 문제도 개입되어 있는 바, 이 문제는 지면관계상 다음에 이야기하겠다.) 2020년 총선에서 30대 남성이 냉전적 보수정당보다 더불어민주당을 25%나 더 찍고, 18~20대 여성이 37.5%나 더 찍은 반면, 18~20대 남성은 미래한국당을 40.5%나 찍어 그 격차가 7% 정도에 불과했다. 놀라운 것은 이번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다. 방송3사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 선거에서 2030조차도 국민의힘을 더불어민주당보다 20%나 더 찍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20대 남성이다. 이들은 22.2%만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고, 무려 72.5%가 국민의힘을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60대 이상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70.2%)보다도 높은 것으로, 전 연령·성별대에서 60대 이상 여성(73.3%)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충격적인 ‘이준석돌풍’은 돌출적 사건이 아니라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조국 사태’ 등 연이은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과 ‘공정파괴’,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즘 우호적’이라는 인식이 ‘청년남성보수’를 급속히 확산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물론 정치란 살아있는 생물이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지율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징후들을 볼 때, 묻지 않을 수 없다. ‘진보노인’과 ‘청년보수’의 시대가 오고 있는가?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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