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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의 응시] 해직교사와 비리정치인

  • 입력 2021.05.11 11:00      조회 959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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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국가에서 국가 구성원의 모든 사회적 활동은 ‘정치’와 관련된다. …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및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보장이라는 위 조항(공무원과 초·중·고교 교원의 정치활동 금지 조항-인용자)의 입법목적을 고려하더라도, ‘정치적 중립성’ 자체가 다원적인 해석이 가능한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일치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 교원으로부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가 보장되는 이상, 교원이 기본권 주체로서 정치적 자유권을 행사한다고 하여 교육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다거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된다고 볼 수 없다. … 위 조항이 교원에 대하여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하는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및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명백하거나 구체적이지 못한 반면, 그로 인하여 교원이 받게 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 및 결사의 자유에 대한 제약과 민주적 의사 형성과정의 개방성과 이를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공익에 발생하는 피해는 매우 크므로, 위 조항은 법익의 균형성도 갖추지 못하였다.”

이 글은 1년 전 헌법재판소가 공무원과 초·중·고 교원들은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는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판결문의 일부이다(이 판결은 공무원과 초·중·고 교원들이 정당의 발기인이나 당원이 될 수 없도록 한 정당법은 합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반쪽짜리’ 판결이 되고 말았다). 사실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활동은 오래전부터 선진국이면 다 보장해온 것으로, 국제노동기구(ILO)가 이를 금지하는 우리의 법은 ILO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하는 등 ILO와 유엔이 폐지를 압박해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008년 교육감선거에서 ‘진보후보’인 주경복 교수를 지지하는 등 ‘정치행위’로 유죄판결을 받고 10년간 해직생활을 한 5명의 교사들을 제대로 된 절차도 거치지 않고 ‘특혜복직’시켜줬다는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고 떠오른 것이 바로 이 판결이다. 보수언론들은 이를 진보진영 ‘불공정’의 또 다른 사례이자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독단이라며 난리를 펴고 있다. 조 교육감은 이번 채용은 사학민주화와 민주화운동 등으로 해직된 교사들에 대한 ‘과거사 청산과 화합’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채용절차도 교육감의 재량권 내에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복직과정은 구체적인 사실과 법리가 관련된 문제로 논쟁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이 어떻게 해서 해직됐느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들은 유엔과 ILO가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고 판결한 초·중·고 교원의 정치활동 금지조항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고 해직당한 사람들이다. 즉 이들은 위헌적인 법령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고 해직당한 것이고, 조 교육감은 이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에 불과하다. 감사원 보고를 읽고 떠오른 또 다른 장면은 시민단체들이 주도한 2000년 낙선운동이다. 낙선운동은 쿠데타 등 헌법파괴 행위자와 비리전과자를 대상으로 했는데, 나는 내부회의에서 자문위원장으로 비리전과자를 주요 기준으로 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비리전과자가 낙선대상이 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비리전과자들이 대통령의 사면을 받아 뻔뻔하게 다시 공직에 돌아오는 사태를 근본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구체적으로, 비리전과자의 경우 대통령이 사면할 수 없도록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이번에 조 교육감이 복직시켜 문제가 된 교사 5명이 위헌적인 반민주적 법에 의해 전과자가 되고 해직을 당해 거리를 헤매고 있을 동안, 나아가 노동운동가 등 많은 민주투사들이 악법으로 전과자가 되고 해고를 당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동안, 비리전과가 있는 정치인들은 대통령의 사면을 받아 국회와 공직으로 돌아와 권력을 누려온 것이 슬프지만 우리의 현실이다. 하다못해 초·중·고생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 중에도 비리로 유죄판결을 받고도 대통령의 사면을 받아 여러 공직을 거쳐 교육감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다.

위헌적 법으로 전과자가 되어 해직생활을 해야 했던 교사들과 비리로 유죄판결을 받고도 대통령의 사면을 받아 다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일부 교육감과 정치인들의 대비가, 조 교육감의 해직교사 복직에 대해서는 난리를 치면서도 비리정치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보수언론이 나를 슬프게 한다.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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