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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정치

[손호철의 응시] 노동자는 ‘먼지’에 불과한가

  • 입력 2021.01.19 11:00      조회 978
    • 손호철 정의정책연구소 이사장,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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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먼지고, 자본이 먼저다.’ “사람이 먼저”라는 국정철학을 내세워온 문재인 정부가 오랜 진통 끝에 누더기 중대재해처벌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있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다. 맞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자본이 먼저고 사람은 먼지에 불과하다. 물론 한계는 있지만 이 정도라도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든 것은 다행이며 성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통과된 법은 정의당안은 말할 것도 없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안보다도 후퇴한 것으로 너무 문제가 많다. 예를 들어, 일 년에 400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한 것은, 이 법 제정을 위해 단식투쟁을 한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씨의 말처럼, “이들은 계속 죽이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죽했으면 오래전부터 이 법안 제정을 주장해온 정의당이 투표에서 기권을 했겠는가?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교수 등 전문가들은 이 법이 “기업이 긴장하지 않을 법으로, 없다고 봐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문제는 왜 “사람이 먼저”라고 주장하며 노동존중사회를 건설하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이 같은 누더기법을 통과시켰냐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 먼저’, 노동존중사회라는 것이 단지 ‘포장용’이었기 때문이지만, 이 문제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경제적 이유이다. 제대로 된 법을 만들면 많은 기업, 특히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는다는 우려다. 그 때문에 중소벤처기업부가 법안수정을 강력히 요구했다고 한다. 집권세력이 이 같은 우려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역대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이야기한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 좋은 이야기다. 사회주의를 하지 않는 바에는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기업이 투자를 해야 하고, 그러려면 기업 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게 내버려두는 ‘살인 기업’들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면, 그건 안 된다. 정부와 기업이 애용하는 표현대로, 기업 하기 좋은 것도 ‘글로벌 스탠더드’가 돼야 한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산재율을 ‘자랑’하는, 최고로 ‘살인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의미해서는 안 된다. 산재율, 산재에 의한 노동자사망률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낮추어야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도 법을 적용하되, 정부가 필요한 지원을 하면 된다. 그러고도 노동자들을 죽이지 않고는 이윤을 낼 수 없고 유지가 어려운 기업이라면, 그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알면서도 기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를 방치하는 누더기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와 정부가 영세기업은 노동자들을 죽여도 좋다고 허가하고 살인방조죄를 저지르는 것과 다름없다.

또 다른 문제는 정치적 이유이다. 언론에 따르면, 자영업자들 사이에 문재인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는 등 코로나19 사태로 장기간 영업을 못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 사이에 정부에 불만이 누적된 상황에서 제대로 된 법을 만들 경우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나라에 자영업자와 중소상공인이 많지만, 노동자가 훨씬 많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현재 노동자수는 2055만9000명으로 전체인구의 40%에 달하고 경제 인구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를 고려할 때, 정상적이라면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지 않아 떨어져나갈 노동자들의 표가 그런 법안을 만들 경우 떨어져나갈 중소상공인들의 표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따라서 여당이 지지율과 표를 걱정했다면 제대로 된 법을 만들었어야 한다.

한데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더기법을 만든다고 노동자 표가 많이 떨어져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정규직, 비정규직, 사무직, 제조업 등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산재가 ‘내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많다. 정치적으로도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서가 아니라 지역주의에 따라 투표하는 등 정치적인 힘을 보여주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제대로 된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겠는가? 이 점에서 이번 누더기법은 ‘노동자들의 자업자득’이다.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노동자들이 아직 충분히 죽지 않았고, OECD 최고라는 우리의 산재율이 노동자들이 충분히 참을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노동자들이 단결해 누더기법안을 만든 정치세력을 심판하는 등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정치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한, ‘살인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계속될 것이다. 노동자들이 그렇지 않은데, 누가 노동자들을 두려워하랴?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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