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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광역(도시)권, 지역불균형 심화의 대안인가?
- 입력 2022.03.15 15:56 조회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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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두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지방자치#균형발전#보다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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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두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대구대학교 명예교수이며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자본주의 도시의 공간환경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으며, 최근 저서로 <초국적 이주와 환대의 지리학>, <인문지리학의 새로운 지평>, <인류세와 코로나 팬데믹> 등이 있고 역서로 <자본의 한계>, <신자유주의>,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등이 있다.
1. 적폐로서 지역불균형
지난 1월 11일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개별 시·도 단위의 행정구역을 넘어서 초광역(도시)권(mega city region)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정책들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 개정안의 목적은 광역적으로 나타나는 정치·경제적 수요에 대해 지역들이 자율적으로 연계, 협력하여 초광역 협력사업을 추진함으로써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는 데 있다고 한다. 초광역 협력의 대표적 사례로, 최근 부산, 울산, 경남의 ‘부·울·경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가는 현 정부나 다음 정부 하에서 이에 따른 정책이 어느 정도 실행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그뿐 아니라 초광역권 개발이 실질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이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공정과 평등, 정의를 국정 운영의 기치로 내세운 현 정부는 사회(공간)적 불평등과 부정의를 유발하는 적폐 청산을 핵심 과제로 삼고 추진해 왔다고 자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형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을 강조했다. 하지만 취임 초기 지방분권 논의는 지역균형발전과 관련성을 갖질 못한 채 지방자치의 외형적 확대에 한정되었고, 이마저도 남북관계 이슈에 묻혀버렸다. 그 후 지역불균형에 관한 논의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거의 완전히 사라졌는데, 임기 말기에 이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다소 의아하다.
적폐란 오랜 기간 쌓여온 잘못된 행동이나 제도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병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불평등과 더불어 국토공간에서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지역불균형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적폐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적폐 청산과 관련된 정부 정책이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따져봐야겠지만, 이로 인해 실제 사회공간적 불평등의 해소와 관련된 민생 이슈들 대부분은 오히려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을 추동하기 위한 이른바 한국판 뉴딜정책을 입안하면서도 기술혁신과 자동화로 초래되는 사회공간적 불평등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했다.
이러한 점에서 우선, 우리나라 지역불균형이 어느 정도 심각한가를 살펴보고, 이러한 지역불균형이 발생하는 배경을 이론적 및 역사적으로 논의한 후, 초광역(도시)권의 개념이 지역균형발전과 관련하여 가지는 의의와 한계를 살펴보고, 초광역권 발전의 의의를 실현하기 위한 협력적 거버넌스가 어떻게 개념화되고 구성되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고자 한다.
2. 지역불균형의 주요 양상들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 자본주의 경제의 본격적 발전이 추진된 이후, 국토 공간의 불균형은 다양한 정책들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심화되어 왔고, 이제 마치 당연한 것처럼 거의 고착된 상태이다. 매우 간단한 지표이긴 하지만, 2020년 서울의 1인당 지역총생산(지역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격 합계)은 대구에 비해 약 2배 정도가 되고, 부산, 광주, 대전 등 다른 지방 대도시들보다도 월등히 높다(표 1). 이에 따라 서울의 1인당 지역총소득(지역에서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얻는 소득의 합계)과 1인당 개인소득(가계에서 얻는 소득)도 높게 나타난다.
물론 지방 대도시들 가운데 울산이나 최근 지역 혁신산업 등에 기반을 두고 성장하고 있는 충남·북 지역 등도 1인당 지역총생산이 상대적으로 다소 높게 나타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성장지역의 생산성 증대가 지역총소득이나 개인소득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총소득과 지역총생산 간 차이로 계산된 소득의 지역 간 유출입 규모를 보면, 울산과 더불어 지방의 도 단위 지역에서 생산된 가치가 서울과 경기의 수도권 그리고 지방의 다른 대도시들로 엄청나게 유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그림 1). 왜 이러한 지역 불균형과 이를 더욱 심화시키는 지역 간 소득의 유출입이 발생하는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도시와 비대도시 지역 간에 나타나는 지역불균형은 그 자체로서 심각한 문제이며, 또한 이로 인해 여러 사회공간적 문제들을 유발하거나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수도권에 집중된 코로나 확진자 문제와 서울과 수도권에서 급등하고 있는 집값 폭등문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살펴보면, 2022년 2월 21일 현재 전국 누진 확진자 수는 215.7만 명인데, 지역별로 서울 56.1만 명, 경기 65.5만 명, 인천 15.0만 명 등으로 수도권의 비중이 63.3%를 넘었다(오미크론으로 제5차 대유행이 발생하기 직전에는 수도권 비중이 70%를 넘었다). 이 지역들은 인구가 많기 때문에 확진자 수도 많다고 하겠지만, 인구 단위당 발생률도 다른 비수도권의 광역시나 도보다 훨씬 높아서, 광역지자체들 가운데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그림 2). 수도권의 인구과밀이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를 어렵게 하고, 전염병의 전파 기회를 확대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 재발할 수 있는 대규모 전염병 방지 대책에는 수도권의 인구 분산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역불균형으로 인해 유발되는 또 다른 심각한 현상은 주기적으로 겪고 있는 주택 및 토지가격의 폭등문제이다. 특히 지난 몇 년 동안 서울 나아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주택(특히 아파트)가격 폭등은 코로나 대유행과 이에 따른 경제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상상을 초월한 재정 지출과 유동성 증가로 가속화되었다. 2021년 말 서울의 ㎡당 주택가격은 천만 원을 넘어섰고, 이는 가장 낮은 전남 지역의 단위당 주택가격(약 125만 원)과 비교하면 무려 8.9배나 높다. 경기도와 인천시를 포함한 수도권의 주택가격도 다른 지방 대도시와 지역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수도권 주택가격의 폭등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이슈가 됨에 따라 이에 대해 거의 모든 대책들이 거론되었다.
하지만,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인구 과밀 집중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지역균형 정책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았다. 현재 수도권의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은 사회·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합의된 것처럼 보인다. 수도권의 주택 (가)수요의 폭발적 증가와 코로나 대책으로 엄청난 유동성의 증대에 대처하기 위해 공급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공급 확대로 주택시장을 다소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이로 인한 역효과는 간과된다. 즉 그동안 수도권 과밀대응 정책에서 되풀이되었던 것처럼, 수도권의 주택과 토지 문제의 해결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의 인구와 산업의 유입을 재촉진하여 과잉 집중과 집적의 문제를 악화시켜 왔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대상이 되질 않는다.
서울이나 수도권의 인구 과밀과 산업 과잉 집중은 이러한 문제들 외에도 교통혼잡, 에너지 및 여타 자원의 과잉 소비, 오염물질의 과잉 배출 등으로 기후변화를 포함하여 환경위기를 초래하는 주요 근원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수도권 지역의 상대적 인구감소와 경제침체로 인한 지역 붕괴 또는 ‘소멸’의 사회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다. 이처럼 수도권의 과잉 집중과 집적은 단지 지역불균형과 이에 따른 사회공간적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유발할뿐 아니라 국가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특정 지역으로의 인구와 산업의 과잉 집중은 해당 지역에 집적의 불이익을 초래할 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국토 공간 전체가 수도권과 같이 거대한 단일 중심지에 종속되고 경제적 부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 독점되는 것은 사회공간적 분업체제를 통한 합리적 경쟁과 상호 협력으로 국토공간이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저해할 수 있다.
3. 자본주의와 지역불균등발전
모든 정책이 그러한 것처럼, 지역불균형에 대한 대안적 정책은 지역불균형을 드러내는 외형적 양상들의 제거뿐 아니라 이를 유발하는 근본 원인의 파악과 해소를 전제로 한다. 지역불균형은 흔히 개별 단위 지역 간의 차이, 즉 지역격차를 드러내는 주요 지표들(예로 1인당 생산성이나 소득 등)로 파악되고, 이에 따라 판단된 낙후지역들을 시정하려는 정책들이 강구된다. 물론 지역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불균형 문제는 단지 격차를 드러내는 특정 낙후지역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다른 지역과의 관계에서 유발된다. 달리 말해 지역불균형은 지역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 간 관계의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할지라도, 지역불균형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예로 신고전 지역경제학에서는 지역불균형이 생산요소들(노동과 자본 등)의 지역 간 이동으로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지역불균형은 지속적으로 누적, 확대되고 있다. 또한, 지역불균형은 뮈르달(K.G.Myrdal)과 프리드먼(J.Freidmann) 등이 제시한 순환누적적 인과모형이나 파급효과/역류효과의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지역불균형을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배경을 간과할 뿐 아니라 오늘날 국내·외 공간경제의 재편을 주도하는 글로벌 생산체계(또는 노동의 분업이나 가치사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지역불균형의 보다 근원적, 구조적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작동 메커니즘, 즉 자본축적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Hudson, 2015; 2020; Peck, 2016 등 참고). 예로, 데이비드 하비(D.Harvey)는 지역불균등이 자본주의적 발전에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양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문제를 자본의 순환과 공간적 조정(spatial fix)의 개념으로 설명한다(하비, 1995; Harvey, 2006). 특정 지역이 가지는 이점을 전제로 투자한 자본은 상대적으로 사회공간적 평균 이상의 이윤율로 초과이윤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따라 다른 자본들도 경쟁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면, 그 지역은 집적의 이익을 넘어서 집적의 불이익을 유발할 것이고 이윤율은 하락할 것이다. 이러한 과잉투자(또는 과잉축적)에 의해 경제가 침체하게 되면, 기존에 투입된 자본은 산업구조를 조정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산업적 또는 공간적 조정으로 산업간, 지역 간 불균형은 지속적으로 발생, 확대되게 된다. 특히 그에 의하면 이러한 과잉축적의 위기는 공간적 조정과정에서 건조환경으로 자본의 유입을 촉진하여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킬 뿐 아니라 지역 자본의 가치 감소를 초래하여 지역불균등을 심화시키게 된다. 게다가 이러한 건조환경으로 자본의 투입과 이를 통해 자본의 순환은 지구적 차원의 거대도시의 발달을 촉진한다.
불균등발전에 관한 하비의 이론과 비슷한 맥락에서, 닐 스미스(N.Smith)는 불균등발전에 관한 ‘시소 이론’, 즉 자본에 의한 지역적 차별화와 균등화의 변증법을 제시한다(스미스, 2018).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적 공간의 생산은 [자본의 지리적 순환 과정에 내재된] 차별화와 균등화를 향한 모순적 경향에 의해 결정된다. 실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핵심에서 도출되는 이 모순은 불균등발전의 외형적 패턴[즉 지역불균형]으로 경관에 각인된다.” 자본에 의한 공간 생산에서 차별화 경향은 개별 지역이 가지는 자연적 조건의 차이뿐 아니라 노동과정의 사회적 분화, 즉 노동분업의 발달에 의해 추동된다. 균등화는 자본주의적 임금노동과 상품시장의 확장, 이를 뒷받침하는 이동성의 증대 등에 의해 규정된다. 자본축적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차별화와 균등화의 모순적 과정은 자본축적의 주기적 리듬(자본의 공간적 확장과 회귀)을 만들어내면서, 궁극적으로 자본에 의한 통제력을 특정 지역으로 집적, 집중시킨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지역불균등발전은 도시적, 국가적,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된다. 도시적 차원에서 닐 스미스가 이러한 불균등발전 이론을 적용하여 제시한 도시 젠트리피케이션 이론은 아주 잘 알려져 있다.
데이비드 하비와 닐 스미스의 불균등발전 이론이 매우 추상적 수준에서 제시된 것이라면, 도린 매시(D.Massey)의 불균등발전 이론은 노동의 공간적 분업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이다(Massey, 1984). 매시는 자본의 여러 분파들(예로 전기·전자, 금융, 식품산업 등)이 추구하는 재구조화 전략의 다양성과 지역 조건들의 상이성 간 상호 조응을 전제로 노동의 분업이 재편되며, 그 결과로 상이한 지역들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활동들 간 새로운 (지배/종속) 관계들, 즉 불균형의 새로운 차원이 구축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점에서 영국의 산업구조 재편과 지역불균등발전을 설명하면서, 당시 잉글랜드 북부 및 서부 지역의 산업 쇠퇴(공장 폐쇄와 이전 및 대규모 일자리 감소 등)와 더불어 런던 동남부지역에서 발달하는 새로운 금융 및 생산자 서비스산업의 발달을 분석했다. 특히 그에 의하면, 지역은 단지 자본의 결정에 따라 형성, 변화하는 수동적 대상이나 산물이 아니라 자본의 흐름을 조건 지우는 지역의 자연적 및 사회적 속성(지역의 다양한 행위자들)을 가진다는 점이 강조된다.
지역불균등발전에 관한 이러한 이론들은 대체로 1980년대에 정형화되었지만, 그 이후 지리학이나 여타 도시 및 지역 관련 연구 분야들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에 관한 논의의 중요한 준거가 되고 있다(Hudson, 2020). 그러나 이 이론들이 가지는 여러 한계들 가운데 우선 지적되어야 할 점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내에서도 지역불균형의 주요 양상과 이를 추동하는 메커니즘의 주요 요소들이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관한 분석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지역불균등발전을 추동하는 자본축적의 양식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이에 따라 각 역사적 국면에 따라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역불균등발전은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 담지적 발전 과정에 내재되어 역사적으로 특정한 외적 경관을 드러내는 메커니즘으로 이해된다. 특정 축적체제에 의한 위기가 해소되고 다른 축적체제로 전환하게 되면, 이에 따라 지역불균등발전의 전선 또는 축도 경로의존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불균등발전 이론과 역사적 변화과정에 관한 설명을 배경으로, 우리나라의 지역불균등발전과정을 간략히 서술해 볼 수 있다(표 2).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권위적(군사독재) 국가에 의해 본격적인 자본주의 경제발전 과정을 추동하게 되었다. 국내 값싼 노동력과 자원(토지, 수자원 등)을 해외에서 도입된 자본과 결합시켜 생산한 경공업 제품들을 해외로 수출하는 국가주도적, 수출지향적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전통적 농업국가를 벗어나 경공업과 수입대체산업에 기반을 둔 산업화 과정은 엘리트 관료들의 합리적 경제개발계획과 이에 따른 정책의 입안 및 시행 등에 의해 견인되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당시 국가는 이른바 권위적 발전국가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산업화에 조응하여, 농촌인구가 대규모로 대도시들로 이주하여 노동자의 풀을 형성하는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이들은 도시의 근대 산업, 주로 섬유, 의복과 신발 등 경공업부문에 고용되어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거나(이른바 유형적 테일러주의), 또는 도시 비공식부문에 종사하는 도시빈민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농촌지역은 도시로 집중하는 인구의 유지와 재생산에 필요한 저렴한 식량을 생산, 제공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근대적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도시지역과 전통적 빈곤이 잔존한 농촌지역 간 불균형이 구축되었다.
1970년대 초 이른바 ‘유신’ 정부는 중화학공업화를 선언하면서, 산업구조의 전환을 도모했다. 당시 중화학공업화는 1970년대 서구 선진국들에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한계로 인해 유휴화된 표준화된 생산설비와 기술의 이전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의 충격과 국내 인프라의 부족 및 소비시장의 미형성 등에도 불구하고, 석유화학 및 철강공업 등 원자재공업과 조선, 자동차공업 등 조립가공산업이 육성되었다. 이를 통해 한국은 이른바 ‘신흥공업국’으로 부상하게 되었지만, 서구 경제에 의존하는 종속적 포드주의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중화학공업화를 위해 동남임해지역에 대규모 국가공업단지들이 조성되었고, 1980년대에는 신군부 권위주의 국가에 의해 산업구조조정과 중소규모의 지방공단 등의 확충이 이루어졌다. 1980년대 후반부 국제적 3저 호황에 따라 흑자경제로 전환하게 되었고, 민주화운동을 통한 실질임금의 상승 등으로 국내 시장의 확충이 이루어지면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조응하는 포드주의적 축적체제가 구축되었다. 이 과정에서 포드주의 축적체제의 특징인 구상기능과 실행기능의 사회공간적 분화가 이루어졌다. 즉, 구상기능의 기업 본사와 연구소는 수도권에 집중하는 한편, 실행기능의 분공장과 하청공장들은 지방 공업도시들에 입지하면서, 국토공간은 수도권과 동남임해지역과 그 외 지역 간, 이른바 경부축을 중심으로 한 지역불균형이 구축되었다.
1990년대 이러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성숙 및 국가의 탈권위주의화(민주화)와 더불어 서구 국가들에서 확산된 신자유주의화는 기존의 발전국가체제를 내재하면서도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혼합적 국가 성격을 가지도록 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과도한 국제부채와 국내외 설비투자 확충은 이른바 IMF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고, 그 결과 국가의 탈규제정책과 세계경제시장에의 통합을 전제로 한 신자유주의화가 노골적으로 강제되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상품 및 금융, 부동산시장의 해외 개방이 확대되었지만, 정보통신부문 등 혁신기술에 대한 투자 확충은 정보경제화(지식기반경제화)로의 산업구조 개편을 촉진하면서 포스트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은 혁신(특히 정보통신)기술에 기반을 두는 첨단산업으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분공장들을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다(초)국적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지만,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기존의 산업들은 쇠퇴하면서 생산성 및 고용의 상대적 감소를 유발하게 되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과정에서 국내 경제는 대기업 중심의 유연적 축적체제에 의해 주도되지만, 정보통신산업 및 생산자 서비스 등의 지식기반경제와 기존의 중소기업 및 중화학 대기업이 부침하는 생산요소산업이 혼재되어 있었다. 이에 조응하여 국내 공간경제도 서울과 수도권에는 본사 및 생산자서비스업뿐 아니라 생산요소 제조업들도 재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세계적으로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지구화 과정은 2008년 미국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점차 붕괴되는 조짐을 보였고, 2010년대 중반 이후 가시화된 미·중 간 무역갈등 등으로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을 확대하면서 국가주의로의 복귀 조짐을 보이게 되었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과 이로 인한 국내 및 세계 경제침체, 그리고 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상상을 초월한 국가재정 지출 등은 국내외 경제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만연한 상황에서도, 국가가 다시 국내 및 세계 경제의 전면에 재등장한다. 특히 디지털(특히 자율) 기술 부문의 혁신을 추동하면서, (부차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명분으로 저탄소경제 및 개인의 창의성을 강조하는 창조경제, 그리고 이들을 포괄하는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현 정부의 한국판 뉴딜)을 추동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따라 번성하게 되는 산업들은 기본적으로 기술혁신과 더불어 초공간적 연계성과 이동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물리적 입지에 규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강조되지만, 초국적 기업들의 허브는 여전히 특정 지역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반면 일부 대기업들은 일상생활의 소비와 여가생활의 영역까지 침투하기도 하지만, 국가가 이를 막기 위한 생활경제의 육성, 특히 사회적 기업 육성 등 이른바 공유경제에 최소한의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국지적 생활경제의 입지는 산재할 것이다. 이에 따라 초국적 디지털 기업들의 허브와 일상적 생활경제 지역 간 다규모적 불균형이 심화할 것으로 추정된다.
4. 지역불균등발전의 대안으로서 초광역(도시)권?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국가들 그리고 세계적 공간 자체도 시기별로 상이한 양상을 보인다고 할지라도, 지역불균등의 메커니즘에 의해 끊임없이 재편되어 왔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역불균등발전은 경제체제 자체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해소 또는 완화될 수 없는가? 자본과 임노동 간 모순과 이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이 자본주의 경제에 내재한 가장 기본적 모순과 갈등이라는 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이를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또는,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노동운동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는 임노동제도의 철폐보다는 정당한 임금 보장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비록 지역불균등발전이나 공간적 불평등이 자본주의 경제 메커니즘과 이의 구체적 요인들(예로, 노동의 사회공간적 분업)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완전히 해소되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이를 어느 정도 완화하기 위한 어떤 대안적 공간구조를 모색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러한 점에서 지역불균형에 대한 대안적 공간 편성 또는 유형으로서 초광역(도시)권 개념 및 정책을 살펴볼 수 있다. 달리 말해, 초광역도시권 계획은 자본주의에서 전개되는 지역불균등발전을 구조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대안이라기보다 이를 외형적으로 완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거론될 수 있다(박경현 외, 2020).
최근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거론되고 있는 ‘초광역(도시)권’이라는 용어는 “지역 주도의 연계, 협력을 통해 단일 행정구역을 넘어 초광역적 정책, 행정 수요에 대응하여 지역의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초광역협력’의 개념에 근거한다고 정부는 밝히고 있다(관계부처 합동, 2021). 이러한 초광역협력의 지원 기반을 구축하기 위하여, 정부는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국토기본법>을 개정하여 초광역권 발전계획과 협력사업 추진 근거 등을 신설하여, 앞으로 지역주도로 수립한 초광역권 발전계획을 지방정부와 중앙부처가 상호연계하여 재정적 및 제도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초광역권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특별지방자치단체 설치 등). 정부는 이러한 초광역협력이 수도권 과밀화와 이로 인한 도시문제와 지역위기를 해결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지역경제, 생활권 육성을 통해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러한 초광역 협력에 기반을 둔 초광역도시권 계획은 현 정부의 임기 말에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시행 여부도 불확실하지만, 입안된 계획 내용도 개념적으로 상당히 모호하고 구체적 시행방안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앞으로 여러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우려된다. 만약 현 정부의 광역권개발계획에 내재한 규범적 개념이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정책적 추진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 계획은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제시되었던 5+2 광역권 계획의 변형에 불과하거나 심지어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 수정계획의 핵심이었던 광역경제권 계획과도 별 차이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마련되었던 ‘수정계획’에 의하면 수도권의 집중 억제와 국토균형발전을 위하여 지방 대도시 중심으로 다핵구조의 광역통합개발방식의 도입이 강조되었다. 그 이후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외형적으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렇게 다르지 않은 초광역적 공간정책들이 제시되었지만, 거의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지역불균형은 더욱 심화되어 왔다.
이처럼 현 정부의 초광역권계획은 되풀이되는 과거 정책에 대한 성찰도 없이 졸속하게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세계적 차원에서 초광역권(계획)의 개념적, 정책적 등장 배경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실 초광역(도시)권이라는 용어는 매우 모호하게 규정되는 개념으로, 이와 상응하거나 관련된 영어 단어들만 하더라도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세계도시(global city 또는 world city), 메가시티(mega city), 도시지역(city-region), 세계도시지역(global city-region), 메가시티지역(mega city region), 슈퍼리전(super region), 메가리전(mega region), 네트워크도시(network city) 다중심도시지역(polycentric urban region), 그리고 행성적 도시화(planetary urbanization) 등 매우 다양하다(Harrison and Hoyler, 2015). 이들 가운데 ‘메갈로폴리스’는 1961년 고트망(Gottmann)이 미국의 북동부 보스턴에서 워싱턴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외곽 확장과 고속도로(Interstate 95)로 연결된 거대도시회랑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며, 또한 그 이전 도시연구들로 소급될 수 있지만, 실제 이 용어들은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체제의 변화에 조응하는 세계 공간구조나 도시체계의 변화와 관련하여 제시된 것이다.
특히 지적되어야 할 점은 이러한 용어들 대부분이 균형발전을 위한 대안적 개념이나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과정에 동반된 국가적 및 세계적 차원의 불균등발전의 공간적 산물 또는 이러한 지구화 과정을 더욱 촉진하는 배경과 관련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용어들은 공통적으로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해당 도시들이나 주변 지역들의 공간구조의 재편을 지칭하거나, 또는 이 과정에 편입하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도시공간 정책과 관련된다. 이러한 점에서 초광역(도시)권의 발달 또는 개발 정책은 자본의 ‘공간적 조정’ 및 이를 촉진하는 국가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세계도시지역의 개념을 주창한 스콧(A.Scott)은 이를 “초국가적 관계를 강화하고 확장시키면서 복잡한 방법으로 연계되고 조밀하게 극화되어 있는 자본, 노동, 사회생활의 집괴를 구성한다”고 규정했다(Scott, 2001, 814). 그는 거의 20년 후 세계도시지역의 개념을 재고찰하면서, “오늘날 자본주의 체계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어떻게 특정 수의 선호된 입지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포스트-메트로폴리스적 도시-지역들의 세계적 망을 형성하게 되었는가”를 탐구하고자 하였다(Scott, 2019,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초광역(도시)권 개념이 지역불균형을 해소 또는 최소한 완화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간주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존의 초광역권에 대응할 수 있는 또 다른 초광역권을 개발하는 것이다. 즉 한 국가에서 특정 일극적 초광역도시(지역)가 자본주의적 지구화 과정에 편승하여 자본과 노동, 혁신기술과 정보, 금융과 여타 부(특히 부동산)의 집중과 집적을 촉진함으로써 세계적 차원의 도시(지역)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로 인해 다른 도시들과 지역들이 경제적 침체와 사회적 쇠퇴로 소멸 위기가 가속화되는 지역불균형을 심화시킬 경우, 이에 따른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다른 대도시를 중심으로 초광역권 개발 전략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발 전략에 따라 기존 광역도시권에 포섭되지 않은 대도시들과 지역들이 초광역(도시)권을 (특히 연계된 대도시들) 구축할 수 있다면, 이렇게 구축된 새로운 초광역권은 해당 지역의 경제적 효율성과 경쟁력을 강화할 뿐 아니라 이에 따른 국토공간의 재편으로 지역불균형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초광역권 개발 전략의 사례로, 영국의 잉글랜드 북부지역 파워하우스 이니셔티브 전략(Northern Powerhous Initiatives)을 들 수 있다. 영국에서 런던광역도시권은 지구화 과정에서 세계적 도시지역으로 발전한 반면,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잉글랜드 북부지역의 오래된 산업도시들은 침체의 늪에 빠짐에 따라, 이 지역의 주요 도시들(맨체스터, 리즈, 리버풀 등)이 연합자치체를 구성하여 새롭게 성장하는 초광역도시권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초광역협력 계획을 우선적으로 반기는 지역이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지자체로 구성된) 초광역권이라는 점이 이해된다. 이러한 초광역권 전략은 기존 초광역권(런던권, 수도권)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초광역권을 구축함으로써 세계경제체제 하에서 국가의 공간적 효율성 증대뿐 아니라 일극적 국가공간체계의 불균형의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기존의 초광역권에 더하여 또 다른 초광역권의 개발은 여기서도 배제된 다른 도시나 지역들의 쇠퇴를 가속화하면서 새로운 국면의 지역불균등발전을 초래할 것이다.
초광역(도시)권 전략이 지역불균형 심화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초광역(도시)권의 여러 유형(또는 모형)들 가운데 하나로 권역 내 여러 도시 간 수평적 연계성을 강조하는 유형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초광역(도시)권을 구성하는 도시 간 관계와 내부 공간구조는 여러 유형으로 구성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초광역권의 발전 사례로 우리나라 수도권처럼 지배적 중심성을 가진, 단일의 거대도시와 그 외 다수의 중소도시들 및 지역들로 구성된 일극적 공간구조를 가진 유형이 많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란드스타트(the Randstad) 지역 또는 독일의 메트로폴 루르(Metropole Ruhr) 지역처럼 비슷한 규모의 도시들이 교통통신 등의 물리적 인프라뿐 아니라 역내 공간적 분업을 통해 연계되어 있는 공간유형을 찾아볼 수도 있다. 이러한 후자의 초광역권 공간구조는 네트워크 도시(광역권) 또는 다중심적 도시지역 등으로 불린다(최병두, 2015).
이 유형의 초광역권은 일정한 공간적 범위 내에서 상대적 자립성을 가지는 도시들이 물리적 인접성과 더불어 기능적 연계성(네트워크)을 구축함으로써 집적의 이익과 더불어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통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 한편 도시들 간 수평적 상호협력을 강화하여 권역 내 지역균형발전을 촉진하는 것으로 추정(또는 평가)되고 있다(최병두, 2015). 이 점에서 네트워크형 또는 다중심적(다핵적) 초광역도시권은 단핵도시를 중심으로 한 광역도시권뿐만 아니라 여러 도시들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선형으로 연계된 도시회랑(또는 연담도시)과는 구분된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구조를 갖춘 초광역도시권이라고 할지라도, 불균등발전의 극복전략으로서 규범성이 그 자체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권규상, 2018). 물론 어떤 유형의 공간적 편성은 사회경제적 과정의 산물일 뿐 아니라 이를 촉진/억제하는 조건이 되지만(사회공간적 변증법), 특정한 공간형태가 사회경제적 기능 자체를 보장하거나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공간의 물신성 또는 공간결정론의 오류).
셋째, 초광역(도시)권 개발 전략이 경제적 측면에서 광역적 생산공간의 재편과 더불어 사회문화적, 환경적 측면에서 생활공간의 재구성을 전제로 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광역권의 구축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측면에서 효율성을 우선으로 하며 이의 부차적 효과로 공간적 형평성을 기대할 수 있지만, 경제적 측면의 효율성과 형평성은 권역 간 및 권역 내 도시와 지역들 간의 기능적 연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초광역권 개발, 특히 네트워크형 초광역(도시)권의 구축은 개별 도시나 지역이 가지는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고 분업적 네트워크 효과에 따른 생산성의 증대와 경제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내외 대기업의 본사나 초국적 자본의 유치가 보다 용이해 질 것이고, 집적과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클러스터이론에서 주장되는 것처럼 기술혁신이 촉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을 가진 기능적 연계라고 할지라도, 이에 따른 혜택은 여전히 대기업이나 초국적 자본에게 돌아갈 수 있으며, 자본과 노동 간 갈등이나 지역주민들 간의 사회적 불평등은 더 심화될 수 있다.
이처럼 초광역권 개발의 주도권이나 혜택이 거대 자본(특히 역외 자본)에 의해 독점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권역 내 네트워크의 결절을 이루는 다중심도시들이 내적으로 분화되고 착근된 생활(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초광역권의 구축과 발전을 위해 역외 대기업과 초국적 자본의 유치가 불가피하다고 할지라도, 지역기업과 지역주민을 위한 생활경제가 이들에 의해 침해되거나 위축되기보다 오히려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즉 초광역권 개발 계획에는 권역 내 각 도시와 지역들에 뿌리를 둔 지역공동체 경제의 활성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대기업의 독과점 경제에서 벗어나 지역 중소기업을 우선하는 공정경제, 초광역적 경제발전을 통한 수익을 공동체가 향유할 수 있는 공유경제, 경제적 효율성의 극대화보다 지역주민의 생활 복지를 우선하는 사회적경제, 지역 내 자원(에너지) 이용의 자립성과 생태계 보전을 보장하는 순환경제 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초광역권 개발 전략은 이러한 생활경제권 발전 정책과 연계되어 추진될 때만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5. 지방분권과 협력적 거버넌스
초광역(도시)권 개발 전략은 경제침체와 지역불균형의 해소를 위한 가능성을 어느 정도 내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서 경제적 효율성을 보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을 보장하는 규범성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국토공간이 수도권이라는 초광역권 경제에 의해 지배되는 상황에서 이에 버금갈 수 있는 부·울·경 광역권과 같은 새로운 초광역(도시)권 개발 전략은 수도권의 과밀 집적에 따른 불경제를 해소하고 국토공간의 효율적 이용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경제발전을 추동하기 위한 합리성과 공간적 불균등의 완화라는 규범성을 보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설령 새로운 초광역권이 네트워크도시 광역권의 유형을 갖춘다고 할지라도, 권역 내 도시와 지역들 간 수평적 연계성과 네트워크 효과에 따라 침체된 경제의 새로운 추동력 확보와 공간적 균형발전이 저절로 뒤따르는 것이 분명 아니다. 네트워크도시 광역권이 일극적 초광역도시권에 비해 경제적 효율성이나 사회문화적 어메니티(amenity) 수준이 떨어진다는 여러 실증적 연구들이 있다(권규상, 2018). 그뿐 아니라 초광역권이 경제적 측면에서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권역 내 각 도시나 지역들에 특화되고 기능적으로 연계된 역외 대기업/지역 중소기업, 초국적 자본/지역 노동이 상생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기란 쉽지 않다.
초광역권 개발 전략이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경제침체와 지역불균형을 극복 또는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정부가 어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정책에 내재한 규범성을 진정하게 실현하고자 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현 정부는 초광역권 개발의 전제로서 지방(정부)이 주도하는 초광역협력의 모색과 이를 지원하는 중앙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현 정부는 초광역권 개발을 위한 지방정부들 간 협력 지원전략을 제안하고 이를 법제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역주도 초광역협력 활성화를 위한 범정부 통합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국토교통, 산업, 인재양성 등 분야별 초광역협력 촉진 정책을 도입하고, 지역 간 협력 단계별 차등 지원으로 신속한 성공모델 창출 및 확산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초광역협력 지원 방안과 관련하여 우선 지적될 수 있는 문제로, 지방분권에 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지난 2020년 12월 지방자치법이 32년 만에 전부 개정됨으로써 자치분권을 확대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주장하면서, 지자체 간 협력과 분쟁조정을 위한 협의체 구성(지방자치법 제8장)이나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설치(제12장) 등에 관해서도 규정하고자 했다(행정안전부, 2020). 하지만 이 개정안은 실제 초광역협력에 관한 그 이후의 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다른 한편 초광역협력을 위한 범부처 정책회의(2021년 10월) 및 법제화(2020년 1월)에서는 지역 주도 협력체계를 강조하지만(관계부처 합동, 2021), 이를 위한 중앙정부의 지원에서 나아가 실질적으로 지자체의 권한과 재정을 강화할 수 있는 중앙-지방 관계의 근본적 재편 방안 등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그 예로 초광역협력을 위한 ‘특별지방자치단체’의 원활한 설치 및 안정적 운영을 위한 기구 구성과 재정 확보를 위해 중앙정부가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논의하지만, 특별지자체의 활동에 필요한 권한과 재정이 장기적으로 권역 내에서 어떻게 확보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없다.
초광역협력은 지방분권을 촉진하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관계의 재구성과 더불어 초광역권을 구성하는 지방정부들 간 협력관계의 구축 그리고 시민사회의 참여를 보장하는 지방정부와 지역주민들 간 관계의 활성화 등을 위한 다차원적 협력 거버넌스 체제의 구축을 전제로 한다. 초광역협력을 위한 현 정부의 논의와 법제화는 이러한 ‘초광역권 단위 지역 협업체계 및 범부처 거버너스 구축’ 등을 주요 과제로 포함하고 있지만, 협력적 거버넌스의 의미와 실질적인 수행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거버넌스의 개념은 지방정부뿐 아니라 민간부문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의사결정과 상호 협력을 통해 이를 달성하고자 하는 새로운 협치방식으로 관심을 끌고 있지만, 실제 정책적으로 시행된 거버넌스의 조직과 시행과정은 외적으로 주어진 어떤 목적을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 협력을 강조하는 통치전략이거나, 또는 거시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지구화 과정에서 정치권력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통치방식으로 왜곡되는 경향을 보였다.
협력적 거버넌스는 개념적으로 공공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중앙 및 지방)나 공적 기관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와 협력으로 구축된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해 의사결정 및 이의 실행을 추진하는 과정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점에서 협력적 거버넌스는 네트워크도시 광역권의 개념처럼 규범성을 가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거버넌스는 이러한 규범성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그 내부에는 경쟁, 대립, 위계적 질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작동한다. 즉 거버넌스의 구축과 시행과정은 항상 참여와 배제, 협력과 대립, 수평적 합의와 위계적 강제, 공공적 가치와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동시에 내포하며, 이로 인해 그 규범성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협력적 거버넌스 개념은 규범성을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내재하는 이데올로기적 담론이며, 이의 정책적 시행은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전략의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협력적 거버넌스 담론과 정책은 한편으로 자본과 국가의 권력에 의한 강제와 위계, 다른 한편으로 시민사회의 동의와 협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협력적 거버넌스란 결국 국가+시민사회에서 형성되는 헤게모니 거버넌스의 성격을 가진다(최병두, 2018).
이러한 헤게모니 개념에 바탕을 둔 협력적 거버넌스는 거버넌스 내에 협력과 대립이 공존한다는 점, 나아가 국가(특히 중앙정부)의 정책 독점권을 약화시키면서 정치적 권력의 행사에서 사회공간적으로 다양한 세부영역들(사회적, 지역적 여러 집단들)과 다규모적 층위들(개별 도시 및 지역적 층위에서, 초광역적 층위, 국가적 층위 나아가 세계적 층위에 이르기까지)들에서 작동하는 힘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협력적 거버넌스가 다중심적, 다규모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협력적 거버넌스를 다중심적, 다규모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이유는 초광역권 내에서 경제발전을 위한 기능적 연계와 시민 생활을 위한 사회공간적 관계는 서로 다른 규모에서 이루어지며, 특히 오스트롬(Ostrom, 2009)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광역대도시권에서 공공재화와 서비스의 공급과 배분에서 다중심적 거버넌스가 단일 중심체계보다 더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중심적 거버너스라고 할지라도 지방정부들 간 힘의 불균형을 무시 또는 은폐한다면, 초광역적 협력을 위한 분권화와 자치는 오히려 신자유주의 때문에 빚어진 사회적 공간적 불평등을 한층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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