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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린뉴딜의 길은 녹색성장인가, 탈성장인가?
- 입력 2021.09.01 10:32 조회 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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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권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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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어떤 수준의 기후위기 대처가 필요한가?
그렇지 않아도 위급했던 기후위기가 예상보다 10년 정도 앞당겨지고 있다는 심각한 경고가 나와서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가장 책임 있는 국제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3년 이후 8년 만에 최신 과학연구 결과를 종합해 기후위기를 종합적으로 재평가하는 여섯 번째 보고서(첫 번째 부분)를 지난 8월 9일 발표했다. 보고서는 지구 온난화가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활동, 특히 화석연료 남용으로 인한 대량의 탄소배출 때문’이라는 것을 거듭 확인했다. 나아가 유엔이 목표로 하는 지구 온난화 한계선(지구평균기온 추가상승 1.5도 이내)에 도달하는 시점이, 지금까지 예상했던 것보다 무려 10년 정도 앞당겨져서 늦어도 2040년 이전이 될 수 있다는 실로 엄중한 경고까지 나왔다. 현재 지구 평균온도는 이미 산업혁명대비 1.09도까지 올라간 상태다.
최근 200만 년 동안 전례가 없다는 현재의 기후위기가 만약 1.5도 한계선을 넘어가 버리면, 과거 50년에 한 번 일어났던 극한고온이 무려 8.6배나 많이 일어날 수 있고, 2도마저 넘어가면 무려 14배가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 보고서의 진단이다. 또한, 지금 이대로라면 지구평균 온도는 세기말까지 최대 5.7도까지 상승할 수 있고, 해수면은 최대 1m 이상 올라갈 수 있다는 경고다. 영국 국영방송 BBC의 지적대로 기후위기가 더는 머뭇거릴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의 최악의 재난단계, ‘코드 레드’에 왔다는 엄중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2018년 스웨덴 청소년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기후파업으로 기후위기는 글로벌 비상상황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미국 청년하원의원 오카시오 코르테스가 제안한 그린뉴딜 결의안을 계기로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가장 포괄적 해법이자 패키지 정책으로 ‘그린뉴딜’이 부상했다. 그린뉴딜은 지구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억제하여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것을 글로벌 최소 공동 목표로 설정한다(물론 한국은 2021년 8월 현재까지 이 목표조차 아직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방법으로서 그린뉴딜은 주요 산업과 도시, 시민생활 등의 영역에서 탄소배출을 크게 줄이는 각종 정책적 수단과 방법들이 포괄된 정책 묶음을 가지고 있다. 이 과정은 또한 개인이나 기업의 일상적인 활동만으로 도달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공공이 책임지고 준전시상태의 비상 자원동원을 통해 10년 안에 빠른 전환을 추진하도록 기획되었다.
문제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이런 급격한 전환이 어떤 수준과 규모의 전환을 요구하는지에 있다. 일부에서는 고도로 발전하는 혁신적 기술들로 탄소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상당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되면 온실가스를 줄일 새로운 혁신기술을 도입하는 것 외에 다른 변화는 굳이 불필요하다. 하지만 최소한 국가가 대규모 공공투자를 통해 에너지 전환 등에 개입해야 한다는 녹색성장이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나아가 그 이상으로 기존의 경제성장방식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경제운용과 도시설계, 우리 삶의 방식의 대수술을 요구하는 문제제기도 있다. 다양한 버전의 ‘탈성장(de-growth)’ 주장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현재 그린뉴딜은 이들 다양한 스펙트럼들에 넓게 공유되고 있다. 그만큼 그린뉴딜이라는 같은 정책 이름을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정책 내용을 지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기후위기 자체보다는 기후위기 대처방법에 초점을 둔다. 특히 현재 단계에서의 기후위기 대처가 개인적 시민실천이나 ESG나 RE100 같은 기업의 자율적 실천 수준을 넘어서, 일정하게 공적 개입이 필요하고 사회경제적 수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할 것이다(Mann 2021). 그중에서도 경제 시스템의 변화에 초점을 두려고 한다. 과연 과연 기술, 경제적 투자와 혁신만으로 가능할지, 아니면 탈성장이 주장하는 바와 같은 기존경제관 자체를 흔드는 변화가 요구되는지 확인해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제대로 기후위기 해법이 되기 위한 그린뉴딜 정책에 어떤 내용이 핵심적으로 담겨야 하는지도 알아보고자 한다.
2. 시장(Market)이 기후위기를 해결해 줄 수 있는가?
기후위기 대처방안에 대해 우선 살펴보아야 할 대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메커니즘의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기존 시스템을 크게 변경시키지 않고도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서 온난화를 방지할 수 있는지를 점검해보는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나 정책가들이 실제로 이런 방안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주장은 자본주의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놀라운 기술혁신 추세가 과도한 지구의 자원남용과 탄소배출 증가를 막을 수 있다는 일종의 ‘기술적 낙관주의’일 것이다. 예를 들어 불평등 연구로 저명한 블랑코 밀라노비치(Blanco Milanobic)다. 그는 경제를 위해 투입하는 원자재와 에너지원이 지구적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지식과 기술혁신에 대한 낙관주의적 전망을 견지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뤄볼 대, 지구의 능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폭이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구에 관한 지식은 현재의 기술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즉, 우리가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지구가 무엇을 함유하는지, 그리고 지구가 가진 자원이 우리의 욕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한 지식은 정말 얇다. 우리의 기술이 더욱 우수할수록, 우리가 발견하는 모든 물질의 매장량은 더 많아질 것이며, 자원 활용 역시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Milanovic 2020).
유사한 주장을 펴는 경제학자는 에릭 브린율프슨(Erik Brynjolfsson)과 함께 <제2의 기계시대>를 공저하여 잘 알려진 앤드류 맥아피(Andrew McAfee)다. 그 역시 블랑코비치와 마찬가지 논지를 편다.
“지구는 유한하므로, 금과 석유 같은 자원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지구는 매우 크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한 오랫동안, 원하는 만큼 이런 자원들을 다 공급할 만큼 충분히 크다. 얼마 안 되는 보급품을 싣고서 우리를 태운 채 우주를 날아가는 ‘우주선 지구’라는 이미지는 압도적이긴 하지만,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지구는 우리 인간의 여행에 필요한 자원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우리가 줄이고 교환하고 최적화하고 증발시키면서 탈물질화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으므로 더욱 그렇다”(McAfee 2020).
특히 맥아피는 기술발전으로 지구로부터 더 많은 것을 취함으로써 번영할 수 있었던 산업시대와 달리, 디지털혁명 덕분에 “마침내 덜 취하면서 번영하는 법을 깨닫는 제2의 기계시대”가 왔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낙관주의의 네 기수라고 하는 기술발전, 자본주의, 반응하는 정부, 대중의 인식이 적절히 결합하면, 특별히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지 않아도 인류의 경제발전이 지구한계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오히려 그는 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해법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미국을 비롯한 부유한 국가들은 이미 지구착취의 정점 이후 단계에 들어섰다. 그 나라들의 성장이 꾸준하게 유지되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성장 때문에 그런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에서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것이야말로 환경을 더 잘 돌보기 위한 핵심요소다”(McAfee 2020).
이들 주장에 대한 적절한 비판은 현재 점점 심각해져 가는 기후위기 그 자체가 될 정도로, 일부 통계수치를 들이대면서 자신들을 정당화하려고 함에도 그들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얼핏 납득할 수 없는 이와 같은 기술 낙관주의는 생각보다 꽤 주류학계에 널리 퍼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들도 혁신적인 기업들의 자율적인 기술진보만으로 기후위기나 지구의 생태적 한계들이 극복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 역시 기후위기 대처 등을 위해 일정하게 정부의 공적 개입이 필요하다고는 인정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탄소가격제(탄소세나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등을 통해 기존의 시장 가격 메커니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외에 기존 시스템에 대한 수술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탄소가격제를 기후위기 해법으로 주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제학자는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다. 그는 여러 가지 국가의 복잡한 규제제도 보다 탄소에 적정한 가격을 매김으로써 시장 가격 메커니즘이 ‘소비자에 대한 영향’, ‘생산자에 대한 영향’, ‘혁신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탄소가격이 소비자에게 어떤 상품과 서비스가 탄소함량이 높은지에 대한 신호를 주면서 어떤 상품과 서비스를 적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준다”고 주장한다. 또한, 탄소가격제도는 생산자들에게는 “어떤 투입물이 탄소를 많이 사용하는지, 어떤 투입물이 탄소를 적게 쓰거나 전혀 쓰지 않는지에 대한 신호”를 줄 것인데, 특히 전력산업에서 탄소배출량이 많은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유인이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혁신과 관련해서는 “탄소가격이 발명가와 혁신가들에게 저탄소 제품과 공정을 개발하고 도입할 시장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현행 기술을 대체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한다(Nordhouse 2016). 이렇게 자본주의 시장 메커니즘에 탄소가격제가 더해지면,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탄소집약적인 생산과 소비를 회피할 것이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기술혁신에 박차를 가해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시나리오가 펼쳐진다. 일종의 시장낙관주의라고 할 수 있다.
기술낙관주의와 마찬가지로 시장낙관주의 역시, 이미 한국을 포함한 70개국 이상이 탄소가격제를 실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탄소배출을 제대로 감축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 문제점을 증명해주고 있다. 현재 전체 화석연료로 인한 탄소배출의 약 20%에 대해서만 탄소가격이 매겨지고 있고, 여전히 70%는 가격이 매겨지지 않은 채 소비된다. 더 나아가 가격이 매겨지고 있는 배출량의 3/4은 탄소배출 톤당 10달러 미만이다. 석유 1리터당 3유로센트 미만이므로 석유 1리터당 약 40원 정도의 탄소가격이 부과된다는 얘기다.
이 정도는 일반적인 시장의 유가변동 속에 파묻혀버리고 말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즉 평상적인 유가변동으로도 리터당 40원보다 훨씬 변동폭이 크기 때문이다(Boyce 2020). 왜 이렇게 탄소가격제가 제한된 범위에서 극히 낮은 수준으로만 적용되고 있을까? 가장 큰 요인은 기존 화석연료 기득권 집단의 반발 때문이지만,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충분한 가격을 충분히 넓게 적용할 경우 기존 사회경제 시스템의 상당한 전환이 초래되는데 그것을 감수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위와 같은 현실 때문에 일부에서는 탄소가격제 무용론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탄소가격제에 대한 적절한 접근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술혁신만으로 기후위기를 대처한다는 발상이 잘못되었다고 기술혁신 자체가 무용하지 않은 것과 같이, 탄소가격제로 기후위기 대처가 안된다고, 무용하다고 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시장경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시장의 가격기제를 활용해서 탄소배출을 억제하려는 방식은 기후위기대처 방안의 하나로서 계속 활용되어야 한다.
탄소가격제의 유효성 논쟁과 관련해서 기후과학자 마이클 만(Michael Mann)은, “탄소세는 기후행동을 위한 도구상자 안에 있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며, 포괄적인 기후위기 대책들과 결합되어서 실행되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논점을 정리하고 있다. 우선 탄소가격제의 역진성 우려에 대해서 그는 배당제도(A fee-and-dividend method)로 해결 가능하다면서 캐나다의 사례를 들고 있다. 당연하게도 탄소세를 단순 과세하는 데 그치면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 같은 반발을 초래하는, 정의롭지 못한 전환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덧붙인다.
둘째, 탄소가격제의 효과성 여부에 대해서는 그는 얼마나 가격을 부과하는가에 따라 다르다면서 호주 등 효과가 있었던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소비자의 행동에 유의미한 효과가 미칠 수준까지 충분한 규모의 탄소세가 부과되지 않으면 면피용이 될 수 있다는 뜻도 함축하고 있으며, 기대한 탄소배출감축 효과가 드러날 때까지 탄소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전제하기도 한다.
셋째로, 당연하게도 그 역시 탄소세라는 시장기제 하나만으로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시장기제의 이용을 배제하고서 탄소배출을 빠르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3. 공공투자 주도의 녹색성장이 기후위기를 해결해 줄까?
우리가 만약 2000년부터 글로벌 수준에서 탄소배출 감축을 제대로 착수했다면, 1.5도 억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년 2.3%씩 감축해서 30년 안에 절반만 감축하면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2010년부터 그렇게 했더라면 매년 3.3%씩 감축해서 20년 안에 절반만 감축하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을 허비해버린 결과, 지금 우리는 매년 7% 이상씩 감축해서 10년마다 절반씩 줄여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만약 앞으로 8년의 시간을 허비하면, 1.5도로 억제하기 위해 남은 탄소예산은 아예 고갈되어 버릴 것”이라고 전 영란은행 총재이자 유엔 기후행동 및 재정 특사인 마크 카니(Mark Carney)는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 기후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규모와 속도’를 훨씬 대규모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감한 공공투자와 산업정책을 중심으로 기후위기에 대처하자는 ‘녹색성장 방식의 그린뉴딜’이 최근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로버트 폴린(Robert Pollin)이 대표적인 주창자이며 조나단 해리스(Jonathan Harris) 등도 유사한 주장을 펴고 있다(Harris 2013). 특히 폴린은 탈성장론자등과 논쟁을 하면서, 독자적 방식으로 미국과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실제로 어떻게 구체적으로 탄소배출 감축을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시나리오를 예시한다.
특히 2015년에 출간한 저서
둘째로는 기후위기를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의 80%는 화석연료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전력생산과 산업, 생활에서의 화석연료 의존을 대폭 감축시키는데 방점을 두었다. 즉, 재생에너지 생산(태양, 바람, 지열로 국한)과 에너지 효율(건물, 자동차, 대중교통, 산업생산공정) 두 영역에 집중하고 그밖에 축산업과 농업이라든지, 숲 조성 등은 일단 고려에서 제외했다는 것이다. 복잡한 생활패턴 변화나 삶의 방식변화 등을 대체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셋째로, 그는 20년 동안 평균 GDP의 대략 1.5~2.0% 정도의 투자(공공투자와 민간투자 혼합)로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효율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한다는 가정을 하고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처음 3년 동안에는 계획수립과 파일럿 등을 감안하여 유예기간으로 잡고 실제로는 17년간 투자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은 현행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전제했다. 그렇게 공공투자를 17년 동안 추진할 때, 그의 추정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추정한 전망치의 절반 수준으로 탄소배출이 줄어들 뿐 아니라, 2010년 대비 절반에 가까운 감소를 할 것으로 전망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그린 일자리가 다수 창출되는데 미국 150만 명을 포함하여 한국에서도 약 17만 5천 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계산했다(Polli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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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A 추정 2035년 1인당 CO2배출(톤) |
폴린 방식의 공공투자 결과 1인당 CO2배출(톤) |
차이(%) |
세계 |
5.0 |
2.3 |
-54% |
브라질 |
3.3 |
1.5 |
-55% |
중국 |
5.6 |
2.6 |
-54% |
인도 |
3.1 |
2.1 |
-32% |
인도네시아 |
7.9 |
3.6 |
-54% |
독일 |
8.9 |
4.9 |
-45% |
남아공 |
16.4 |
11.4 |
-30% |
한국 |
13.3 |
6.7 |
-50% |
스페인 |
6.9 |
2.6 |
-62% |
미국 |
14.4 |
5.8 |
-60% |
그러면 폴린이 매년 GDP의 1.5%(2020년 기준으로 한국은 약 30조원 가량)를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투자하기 위한 재원조달을 어떻게 고려하고 있을까? 최근 별도의 논문에서 그는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에너지 생산에 대해 각각 1:5의 비율로 투자한다고 가정하고 공공투자와 민간투자는 1:3으로 구성된다고 가정했다. 이때 공공투자의 1/4은 탄소세의 일부(탄소세의 1/4에 해당, 탄소세의 나머지 3/4은 배당으로 환급한다고 가정), 다른 1/4은 기후위기 방어를 국가안전문제로 간주하여 국방비의 일부를 전용한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나머지 1/2 공공투자재원은 장기 무이자 녹색채권 발행으로 조달하고 이를 중앙은행이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민간투자에 대해서는 세금공제, 보조금 지급, 지급보증 등의 정책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면 조달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Pollin 2019).
폴린의 주장은 실제로 국가가 재원을 준비하여 에너지 전환과 효율화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화석연료 의존으로부터 단계적으로 벗어나는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예시했다는 큰 강점이 있다. 방법이 모호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매우 직접적으로 가시적인 것이다. 심지어 기존의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할 뿐 아니라 확대되는 일자리 개수까지 보여주고 있다. 시민들과 공감하고 설득시키기 위한 중요한 단서이며, 명확한 정책 메시지를 주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녹색성장론에는 고려해봐야 할 대목도 꽤 있다. 우선, 폴린의 가정 중에서 논쟁이 될 만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이른바 반등 효과(rebound effect)이다. 에너지 효율화로 동일 에너지 사용에 대해 가격이 하락하면, 사람들은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어 결국 탄소배출이 줄지 않을 것이라는 문제다. 이는 이미 19세기 후반기 제본스가 당시 석탄 가격의 하락에 따라 석탄사용량이 늘어나는 추이를 보면서 간파했다고 해서 ‘제본스 역설’이라고도 불리는 현상이다. 이에 대해서 폴린은, 19세기 제본스 시대에는 상당한 반등효과가 있었지만 1980~1990년대 연구에 따르면 적어도 선진국에서 반등효과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선진국에서 가전제품이나 전구 사용의 반등효과는 매우 약했고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고 평가한다. 그는 에너지 수요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면 에너지 효율화는 에너지 소비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위의 계산식에서 에너지 절약 총량의 10~30% 정도가 반등효과로 늘어난다고 가정하는 데 그쳤다. 안이한 낙관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폴린의 기대대로라면, 어쨌든 탄소배출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되어서 적어도 앞으로 10년 안에 유엔이 권고한 탄소배출 절반 감축의 목표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특별히 경제성장을 자제해야 할 이유도 없다. 식생활습관 등 다른 생활패턴을 크게 바꿀 것도 없이 재생에너지 생산을 대폭 늘리고 에너지 효율화를 크게 개선하면 된다. 이를 위한 공공투자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다른 복지예산을 과도하게 허물 필요도 없다. 일부 국방비가 전용될 것이며, 이자 부담이 없는 국가부채가 얼마간 늘어나는 정도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폴린과 같이 녹색성장 경로를 따르는 탈-탄소 경제전환을 공유하면서도 조너던 해리스는 경제성장의 문제를 좀 더 섬세한 방식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해리스는 경제성장을 구성하는 요소를 민간소비와 민간투자, 정부소비와 순수출로 분해해 볼 때, 종합적인 산출이 성장경로를 따라가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만약에 정부가 에너지 집약적인 소비와 투자 등에 불리하게 규제와 조세제도를 도입하면, 자원과 에너지를 많이 쓰는 항목들(에너지 집약형 소비 + 에너지 집약형 자본투자 + 에너지 집약형 정부소비 + 에너지 집약형 정부투자)은 줄어들고 이는 경제성장에는 마이너스 요인이 될 것이다. 정반대로 노동 집약형 소비 + 에너지 보존형 자본투자 + 인적자본투자 + 에너지 보존형 정부투자 + 인적자본 정부투자 등에서 공공투자와 민간투자가 늘어나게 유도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경제성장에 플러스가 될 것이다. 이를 그는 ‘그린 확장재정정책’이라고 명명했다(Harris 2013).
물론 에너지 집약형 소비와 투자가 줄고, 노동집약적이고 에너지 보존형 소비와 투자가 늘어난 결과 산술적으로 순 경제성장을 할지 아니면 축소가 될지는 미리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민간소비와 투자, 정부소비의 각 부분에서 바뀌게 되고, 특히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에너지 다소비형’ 패턴에서 ‘노동집약형’ 패턴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탈-탄소경제를 전망하는 데서 또 다른 시사를 줄 수 있다. 그리고 단순히 총산출의 관성적인 증가를 가정할 것이 아니라, 감소 요인과 증가 요인이 모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총산출의 최종결과에 대해 결론을 열어두는 것도 의미 있게 새겨볼 수는 있을 것이다.
4. 탈성장론이 던지는 메시지와 실천방안
폴린과 같은 녹색성장 방식 기후위기 대처와 논리적으로 매우 날카롭게 대비되는 관점이 ‘탈성장’ 방식의 ‘그린뉴딜’이다. ‘탈성장’이라는 개념은 간단히 정의하기가 어렵다. 여기서는 일단 요한 록스트림 등이 제기한 ‘지구의 한계 안에서’ 인간의 경제활동과 성장이 근본적으로 제약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수용하는 모든 접근법으로 ‘탈성장’을 넓게 잡아보자(Rockstrom, Johan·Klum, Mattias 2015). 이렇게 보면 ‘탈성장’ 관점의 울타리에는 팀 잭슨(Tim Jackson)의 생태경제학, 앤 페티포(Ann Pettifor)의 그린뉴딜,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arth)의 도넛 경제, 허먼 데일리(Herman Daly)의 정상상태 경제, 자코모 달리사(Giocomo D’alisa)와 요로고스 칼리스(Giorgos Kallis), 그리고 제이슨 히켈(Jason Hickel) 등의 적극적인 탈성장 주장들이 일단 모두 포괄될 것이다.
그러면 이들이 공통적으로 폴린과 같은 ‘녹색성장’ 방식에 대해 도대체 어떤 점을 불편하게 생각하는지 살펴보자. 이 대목은 칼리스의 간명한 주장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칼리스는 “우리가 나쁜 성장을 줄여나가면서 좋은 성장만 선택적으로 발전시키는 그런 방법은” 없으며, “자본주의적 성장추구와 기후완화가 서로 충돌”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Kallis 2019). 즉 녹색성장은 “탈탄소화와 성장을 불필요하게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칼리스는 폴린 등이 단지 별도의 재정투자와 재생에너지 산업 확대, 에너지 효율화 증대만으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매우 안이한 발상이라고 반박한다. “나오미 클라인은 기후위기가 모든 것을 바꾼다고 했다. 그러나 폴린은 GDP 2% 말고는 아무것도 바꿀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에너지 소스만 바뀌면 우리는 이전에 하던 대로 다 하면 된다는 식의 그린뉴딜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무료대중교통, 새로운 식습관, 밀도 있는 삶의 양식, 직장 근처의 감당 가능한 주거, 소비지와 가까운 식품재배, 노동시간과 통근시간 줄이기, 에너지를 적게 쓰는 삶에서 만족 찾기 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것은 경제에 좋든 나쁘든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Kallis 2019).
그렇다면 탈성장 방식의 그린뉴딜은 어떻게 탄소배출을 극적으로 감소시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방법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왜 탈성장론이 ‘전통적인 성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지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앞서 전제한 것처럼, ‘탈성장’론자들이 내부의 다양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지구의 한계’ 안에서의 성장, 또는 경제활동을 지지하고 있다. 지구의 한계 안에서의 성장이라는 개념을 선구적으로 짚은 학자는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지수적 경제성장을 기대한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거나 경제학자들뿐”이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케네스 볼딩(Kenneth Boulding)이다. 그는 2차대전 이전의 경제를 ‘카우보이 경제(cowboy economy)’라고 부르면서, 한 지역이 오염되고 자원이 고갈되면 다른 개척지를 찾아 떠나면 되는 식민주의 시대를 대응시켰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성장의 자연적 생태적 한계는 고려할 필요가 없게 된다(Boulding 1966).
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인류에게 지구에서 더이상 발견되지 않고 개척되지 않은 곳은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우주인 경제(spaceman economy)’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주인 경제에서 지구는 하나의 우주선이 되었으며 추출이나 오염을 위한 어떤 것도 버릴 수 있는 무제한의 저수지는 없다”는 것이다. 우주인 경제 비유는, 볼딩이 경제를 인식하는 관점에서 - 나중에 니콜라스 게오르케스쿠-뢰겐이 정교하게 적용했던(Roegen 2017) -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물리적인 법칙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주선 지구는 일종의 닫힌계(closed system)를 비유한 것이다. 볼딩은 우리에게는 안전한 지구 운용 공간 내에서의 인류번영, 지구 한계 내에서의 성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함을 선구적으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Boulding 1966).
볼딩이 비유한 ‘카우보이 경제 – 우주인 경제’는 최근에 요한 록스트림이 ‘작은 지구(small planet) - 큰 세계(big world)’라는 비유로 발전한다. 즉 과거에는 지구의 규모에 비해서 인간세상이나 경제가 매우 작았기 때문에 웬만한 인간의 환경파괴에 대해서 지구의 자기 복원력이 잘 작동될 수 있었다. 하지만 1950년대 거대한 가속 이후 지구의 크기는 여전히 과거와 동일하지만, 인간의 경제사회활동 규모가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면서 이제 인간사회가 지구 전체에 꽉 들어차게 되었고, 인간의 활동 하나하나가 곧바로 지구에 충격을 주는 상황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제 지구 온난화와 같은 충격은 지구가 스스로 복원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표현의 뉘앙스는 다르지만 볼딩의 비유와 거의 완전히 일치한다. 록스트림의 이런 문제인식으로부터 ‘지구의 한계(Planetary Boundary)’라는 개념이 도출되었으며 이는 앤 페티포나 도넛경제학을 제안하는 케이트 레이워스, 그리고 정상상태의 경제를 제안해온 허먼 데일리를 포함해 대부분의 ‘탈성장’ 주장이 받아들이는 대전제가 되었다.
특히 허먼 데일리는 지구의 한계에서의 생산과 소비의 팽창에 대해 더욱 분명한 경계선을 정의했다. 그는 생산과 소비가 팽창함에 따라 경제적 생산의 한계효용은 점차로 감소하지만, 자연자원 소모로 인한 한계 비효용은 점차로 늘어나 결국 세 가지 임계점에 도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첫째는 자연의 한계가 없더라도 인간이 느끼는 물질적 소비의 자연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를 ‘충족한계(futility limit)’라고 표현했다. 두 번째는 기후위기의 파괴적 영향과 같이 생태적 비효용이 계속 증가하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생태적 재앙으로 귀결될 수 있는 ‘생태적 재앙의 한계(ecological catastrophe limit)’가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의 두 한계 이전 어느 시점에서 경제적 생산으로 얻을 수 있는 효용보다, 자연파괴로부터 비롯되는 손실(비효용)이 큰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데 데일리는 이것을 ‘경제적 한계(economic limit)’라고 정의했다(Daly 2015).
[그림] 허먼 데일리의 성장 한계곡선((Daly 2015)
허먼 데일리가 주장한 경제적 한계선에 도달하게 되면 그다음부터 그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그가 주장하는 정상상태의 경제(Steady State Economy)이다(Daly 2017). 또한, 그 지점이 지구의 하위 시스템으로써 지구가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경제가 성장할 ‘최적 규모’가 될 것이다. 볼딩의 우주인 경제, 록스트림의 작은지구와 큰 세상, 그리고 데일리의 정상상태의 경제는 성장중심에서 탈피한 미래사회의 전망을 거의 비슷한 양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탈-탄소경제에 대한 탈성장적 전망의 첫 번째 공통점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야 할 중요한 요소가 있다. 거시경제적으로 ‘성장의 일정한 한계’를 긋고 이것이 작동 가능하도록 하려면, 단지 국가정책으로서 성장주의(growthism)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이 대목에서 제이슨 히켈(Jason Hickel)은 매우 비판적이다. 국가가 국민경제의 목표에서 성장률(GDP)을 내려놓기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개별기업들 차원에서도 이른바 단기적 ‘수익추구’ 집착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히켈에 따르면 현대경제가 끊임없는 복리적 팽창으로 지구한계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국가가 경제성장을 중심목표로 삼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는 자본주의적 개별 기업들이 복리적인 이윤추구를 끊임없이 추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Hickel 2020). 그러나 굳이 자본주의에 내재한 끊임없는 이윤추구와 확장 본성까지 파고들지 않고도 좀 느슨한 범위에서도 논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사례로서 다보스 포럼을 만든 독일의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은 최근에,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이 기존의 단기수익추구 경향을 벗어나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공식적으로 기업의 단기수익추구 경향과 국가의 GDP 중심주의 경향을 모두 비판하면서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2차대전 후에 독일 등에서 유행했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모델이 업그레이드된 ‘21세기 버전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기업들이 변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Schwab 2020).
이처럼 탈-탄소 경제를 ‘탈성장’에서 보는 관점은 ‘산업적 차원의 에너지 전환’과 이를 위한 공공투자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 끊임없는 양적성장으로 지탱되는 국민경제와 끊임없는 확장적 이윤추구로만 존재할 수 있는 기업모델이 탈-탄소경제에서는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평가한다는 점에서 훨씬 근원적이다. 탈성장의 관점은 한발 더 나아가 경제와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무엇이 전환되어야 하는지 탐색한다. 그들은 슈마허나 일리치 등 20세기 중반기에 소박한 생태적 삶을 추구했던 이들의 사상관점까지 천착하는데, 그렇다고 과거 회고적이고 축소지향적 삶으로의 역행을 주장한다고 오해할 필요는 없다(D’Alisa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만 보면, 탈성장론이 기후위기에 대처하고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내놓은 방법은 경제성장을 회피하면서 개인생활의 축소와 억제만을 고집하는 것처럼 비칠 소지가 분명히 있다. 이 점에서 최근 인류학자이자 경제학자로서 유럽의 그린뉴딜 자문을 맡기도 하는 등, 지금은 '탈성장'이론의 최전선에서 '녹색성장'과 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제이슨 히켈은 탈성장관점에서 몇 가지 구체적 실천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히켈은 ‘무한축적을 본성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매우 근본주의적이기는 하지만, 개별 정책 수준에서는 꽤 현실적인 대안도 많다. 특히 ‘녹색성장’ 관점과 달리 ‘탈성장’ 쪽이 그렇듯 그는 불필요한 소비축소 방안에 대해서 상당히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간다. 예를 들어서 상품 내구연한을 인위적으로 단축하여 소비를 조장하는 기업행태를 규제하자,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기는 과도한 광고를 제한하자고 제안한다. 이미 파리시 등에서 실천되고 있는 ‘음식 쓰레기의 완전 재활용’을 제안하기도 하고 자원 다소비 산업의 강력한 축소를 제안한다. 그는 특히 ‘소유에서 이용으로’ 소비방식을 근원적으로 전환하자거나 심지어 공공재와 공유자원을 확대함으로써 전체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한다(Hickel 2020). 이들 제안은 녹색성장 쪽에서 ‘반등효과’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적절한 소비통제에 상당히 둔감한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이런 식으로 불필요한 소비축소 등을 정부가 제도로 강제할 경우 우려되는 경제 위축, 일자리나 소득감소 등의 문제들에 대해서 그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을까? 그는 더 많은 성장을 통해 불평등을 감출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과 불평등 축소를 통해서 이를 돌파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아울러 현대화폐이론가(MMT)의 주장까지 받아들여서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에너지 전환투자는 물론 ‘일자리 보장제(Job Guarantee)’를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Hickel 2019). 심지어 그는 금융분야에까지 정책제안 영역을 확대하면서 ‘부채 탕감’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상업은행의 신용창출 금지’까지 건드린다. 사실 각각의 주제들이 매우 논쟁적이고 검증해야 할 대목이 많다. 그러나 인류학자로서 그의 핵심적인 대안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Everything is connected)’는 그의 화두에서 잘 나타나 있다. 사람들 사이에 사람과 자연 사이에 서로 의존하면서 사는 미래가 그의 근원적 비전이다(Hickel 2020).
5. 결론: 성장이냐 아니냐를 넘어 구체적 실천방안 모색을
기후위기 대처를 위한 상징적 정책 묶음이 되어버린 그린뉴딜 정책은 공공투자의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10년이라는 매우 단시간에 획기적인 에너지 전환, 산업전환, 도시전환을 통해 급격한 탄소배출을 이루자는 제안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녹색성장이 기획하는 대규모 공공투자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많은 경우 탄소가격제를 포함한다. 더 나아가 탈성장이 주장하는 구체적인 정책제안 중 많은 내용을 포괄한다. 원리적으로 과거식의 성장주의와 지구한계의 불가피한 충돌을 인정하고 차제에 성장주의에서 명시적으로 벗어날 것인지를 논쟁하는 것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에도 오직 성장중심의 국민경제운용과 단기수익추구형 기업모델의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정도는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기 위한 공적 규제가 필요하며, 이들 경제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 더 많은 성장이 아니라 과감한 재분배와 노동시간 축소, 일자리 나누기가 필요하다는 탈성장론의 주장 역시 많은 부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그만큼 기후위기는 위급하다.
기후위기를 연구하는 경제학자 디미트리 젱겔리스(Dimitri Zenghelis)는 "자본주의는 탄소 위에서 세워졌다.(Capitalism was founded on carbon)"면서 탄소가 자본주의 경제 근본기초에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공해물질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한다. “생산과정의 한 요소를 바꿔서 납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지만, 탄소를 감축하려면 더 넓고 깊이 자리 잡은 글로벌 인프라스트럭쳐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한다는 것이다(Jacobs et. al. 2017). 우리 경제와 문명에서 화석연료를 제거하는 것이 공공투자를 조금 늘려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의 거대한 현대문명은 실제로 화석연료라는 고밀도 에너지의 토대 위에서 세워진 것이라고 집약할 수 있게 된다. 인간들은 석유 덕분에 ‘신들의 힘’을 소유했던 것이고 그 결과 20세기에 인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고도성장을 달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현대인의 생활, 도시, 산업, 경제와 사회가 압도적으로 화석연료에 의존해서 살고 있는 상황에서 화석연료를 버리고, 탈-탄소사회로의 전환을 이루는 것이 단지 한 두 가지의 신산업 창출이나 국가재정 배분 변경만으로 달성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은 아무래도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경제성장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현재의 심각한 불평등 자체가 탄소배출의 급격한 감축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녹색성장식 그린뉴딜이든 탈성장식 그린뉴딜이든 그 추진과정에서 산업과 도시, 일상의 모든 방면에서 화석연료 의존에서 빠르게 벗어나야 하고 이 과정은 엄청난 비용과 충격을 동반한다. 문제는 기후위기에 책임이 많은 고소득 국가와 고소득층은 충격을 감당할 자원을 보유한 반면, 기후위기 책임이 적은 저소득국가와 저소득층은 충격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문제다.
이 문제는 ‘더 배출한 사람이 더 책임져야 정의롭다’는 원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탈-탄소전환과정이 역으로 불평등을 줄이는 계기로’ 삼아야만 다수 시민이 참여하는 전환이 가능하다는 문제, 즉 전환의 주체에 대한 중대한 이슈이기도 하다(Chancel 2020). 어쩌면 산업혁명 그 이상의 산업전환과 경제전환, 도시전환일 수도 있는 탈-탄소화 과정이 시민들의 적극적 동의와 참여 없이 진행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장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역시 이론적 논쟁과 별개로 최종적으로는 기후위기를 대처하는 시민들의 선택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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