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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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집자의 글
- 입력 2020.12.01 11:00 조회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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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준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 #복지#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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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_ 창간준비1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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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정의> 창간준비1호는 전체가 하나의 특집으로 채워져 있다. 6편의 글을 통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추구해야 할 복지국가의 기본 얼개를 타진한다. 정의정책연구소에서 내는 정기간행물의 준비1호로 이런 주제를 잡은 가장 커다란 이유는 물론 코로나19 대유행이 낳은 새로운 상황에 있다. 대유행이 시작되자 각 국 정부는 이제껏 답답하게 껴있고 있던 균형재정론을 훌훌 벗어버린 채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쳤다. 특히 전 국민에게 재난수당을 지급하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신자유주의 시기는 물론이고 2008년 금융 위기 직후에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장면이 현실로 펼쳐진 것이다. 심지어는 경제 관료와 전문가라는 이들이 마치 조선 시대의 ‘소중화주의자’들 마냥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균형재정론을 고수하는 한국에서마저 결국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이 한 차례 지급됐다. 그리고 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싼 사전 논란과 이후의 평가 논쟁 속에서 시민기본소득 같은, 그간 유토피아적 발상 취급을 받던 구상들이 현실 정책으로 당당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급변했기에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 세력도 복지국가 철학, 담론, 정책 전반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정의당 안에서도 이미 기본소득에 우호적인 의견들이 있는가 하면, 기본소득보다는 기본자산제도가 한국 사회에 더 시급히 필요하다는 흐름도 있다. 그리고 일단 정의당의 당면 정책으로는 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도를 추진하는 중이다. 이런 때일수록 진보정당이라면 결론을 열어놓고 다양한 대안을 편견 없이 검토, 토론해야 한다. 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도를 이미 당론으로 채택해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어떠한 중장기 대안과 연결시켜 21세기 복지국가의 ‘잠정적 유토피아’(E. 비그포르스)를 구체화해나갈지 더욱 고민해야 한다. <보다 정의> 창간준비1호를 채운 6편의 글들은 바로 이러한 토론을 시작하기 위한 발제문이자 기본 참고 자료라 할 수 있다.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 국민에게 지급된(더 정확히는 전 가구에 지급된) 재난지원금의 실제 효과다. 고광용 정의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의 글 "상반기 재난지원금의 효과 분석"은 재난지원금이 공적 이전에 따른 소득 보전 및 소득 분배 개선 효과를 낳았으며, 위축된 소비 심리를 자극했고, 영세 자영업자가 다수 포진된 업종에서 소비 증진 효과를 일으켰다고 분석한다. 이런 결과는 기본소득제 같은 보편적인 현금 지급 방식이 상당히 다양한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일회적인 재난 수당의 단기적 효과가 기본소득 제안에 대한 평가와 직결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기본소득을 전과는 다른 눈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서정희 군산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의 글 "21세기형 복지국가, 계산 불가능한 위험에 대한 인식"은 과학기술 혁신에 따른 고용 구조 변화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을 통해 전조를 보여준 생태계 위기를 감안한다면, 21세기에 사회적 위험에 대처하는 복지제도의 골간은 기본소득일 수밖에 없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런 큰 방향 아래에서 단기적으로는, 기본소득 방안이 전제하는 보편적 소득 보장 방식을 현실에 적용한 처방, 가령 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 등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의 글 "전국민고용보험, 소득기반 혁신복지체제의 첫 관문"은 현 정세에서 기본소득을 대안 논의의 중심에 놓는 데 대해 훨씬 논쟁적인 태도를 취한다. 큰 방향에서는 이 글도 기본소득론의 의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기본소득론의 문제제기를 수용해 소득과 필요 모두에 기반한 21세기 혁신복지체체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완전’ 기본소득을 실현시키지 못할 바에는 기본소득 논의에만 맴돌 게 아니라 상당 기간 동안 잠정적 대안 역할을 할 구체적인 정책의 실현에 역량을 집중하자고 제안한다. 현재 정의당이 추진하는 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도가 그것이다. 명등용 정의당 정책연구위원의 글 "정의당 ‘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 도입 방안 소개"는 바로 이 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누구든 이 글만 보면, 정부-여당이 논의하는 전국민고용보험제와, 소득보장 원칙을 충실히 구현한 정의당의 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가 어떻게 다른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정의당의 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만 관철된다면, 한국 사회는 21세기 복지국가의 기틀을 놓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만으로 정의당의 21세기 복지국가 상이 다 채워진다고 할 수 있을까? 실은 여전히 비어 있는 부분이 있다.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의 글 "재난 시대에 남아 있는 정책 퍼즐, ‘고용보장제’"가 이 점을 짚는다. 이 글은 기초적인 소득 보장 체계가 마련된다 하더라도 여전히 고용 보장 체계 역시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 점에서 포스트-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이 기본소득 방안과 경쟁하는 대안으로 제시한 고용보장제가 주목된다. 20세기 복지국가는 일자리 창출은 여전히 주로 민간기업의 몫이며 공공부문은 단지 이를 보완하는 역할만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지만, 고용보장제는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정부가 사람 돌봄, 지역공동체 돌봄, 환경 돌봄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이 방안을 전국민고용소득보험제나 부분 기득소득제 등과 결합시켜 21세기 복지국가의 기본 얼개를 구축하자는 것인데, 다만 문제는 고용보장제가 수반하는 모종의 관료주의 혐의다.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는 결국 관료가 순전히 편의에 따라 기획하고 집행하는 과거 ‘공공근로’식 일자리가 되지 않겠냐는 의심 말이다.
이에 대해 일정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소장의 글 "참여소득, 기보소득으로의 단계인가, 사회적 경제의 실현인가"이다. 이 글은 기본소득제, 고용보장제와 함께 미래 복지국가의 중심 제도로 논의되는 또 다른 구상, 참여소득제를 소개한다. 그간 참여소득제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여러 ‘조건’을 달아 기본소득의 급진성을 희석시키는 제안쯤으로 소개되곤 했다. 그러나 이 글은 참여소득제가 오히려 사회적으로 필요한 활동을 급여 수급 조건으로 삼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활동’이 무엇인지를 사회 자체가 토론, 합의해 결정하게 함으로써 21세기 복지국가의 기반이 되어야 할 사회적 경제의 원칙을 훨씬 강력히 구현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본소득제가 흔히 자유지상주의에 바탕을 두는 데 반해 참여소득제는 ‘사회’를 실체화하고 그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사회적 경제 건설에 더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고용보장제와 참여소득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짚어보면서, 둘의 어떤 종합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돌봄 활동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시민사회가 토론하고 합의한 기준에 따라 여러 자발적 활동에 대해서도 이런 일자리에 준하는 현금 수당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고용보장+참여소득 제도는 상당 기간 동안 전국민고용소득보험과 같은 제도, 부분 기본소득제(혹은 현금 지급 방식의 복지제도 확대) 등과 결합하며 21세기 복지국가의 기본 골격 중 하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들이 하나의 ‘완전’ 기본소득 체계로 수렴되는 미래상에 대해 토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이번 창간준비1호 전권 특집을 채운 글들은 모두 지난 시대 복지국가의 한계를 냉정히 평가하면서 각기 다른 입장에서 미래 복지국가 체계의 원칙과 기본 형태를 제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각 글이 내놓는 제안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정의정책연구소도 어느 한 입장으로 결론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며, 정의당 역시 개방적인 입장에서 토론을 계속하는 상태다.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어쩌면 각 글이 제시하는 방안의 중요한 내용들을 창조적으로 종합한 처방일지 모른다. 이런 구체적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도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일단 동시대의 진지한 논의들을 학습하고, 이를 기반으로 토론을 이어가는 것이다. <보다 정의> 창간준비1호가 이런 토론의 기본 자료로서 당원들과, 관심 있는 시민들 사이에서 적극 활용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