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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성이 멈추면 일상이 멈춘다!
- 우리가 돌봄의 변화를 혁명이라 불러야 할 이유 -
- 입력 2022.12.15 10:50 조회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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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가영 정의당 대변인실 당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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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성이 멈추면 일상이 멈춘다-김가영.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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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정의당 대변인실 당직자
- 회사를 오래 다니다 여성위원회 차장을 시작으로 정의당 당직자가 된 지 3년이 되었다. 2022년 지방선거에 서울시 마포구의회의원으로 출마하며, <돌봄의 경력인정조례제정 본부장>을 맡았다. 종을 뛰어넘는 모든 존재의 평등을 꿈꾸는 페미니스트.
1. 들어가며
“내가 하루 종일 겨우 뚫어놓은 것을, 당신이 순식간에 막았다.”
- 돌봄, 그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끝없는 그림자 노동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레이첼(제니퍼 애니스톤 분)이 쓰레기를 버리는데 하필 피자 박스가 쓰레기통 입구에 막혀서 잘 들어가지 않았다. 레이첼은 막무가내로 피자 박스를 구겨 넣는데, 뒤에서 청소노동자인 중년 남성이 팔짱을 낀 채 짜증 난 눈빛으로 한참을 쳐다본다. 뒤돌아선 레이첼이 남성과 마주치고, 천진난만한 표정의 레이첼에게 청소노동자가 화를 낸다. “내가 하루 종일 겨우 뚫어놓은 것(쓰레기통)을 당신이 순식간에 막았다.” 레이첼은 여느 때처럼 울면서 친구들에게 달려간다.
시트콤이 아니어도 평소에 자주 볼 법한 익살스러운 장면이다. 다만 우리가 웃으며 볼 수 있는 건 어쩌면 쓰레기통을 막아놓은 이가 여성이고, 청소노동자가 남성인 모습이 조금 낯설어서 일지도 모른다. 만약 두 인물의 성별이 반대여서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리는 남성과 종일 그것을 치운 인물이 중년 여성이었다면, 가정에서 자주 보는 무신경한 아버지와 늘 고단한 어머니의 모습처럼 비쳤을 이도 많았을 것이다. 시트콤이 아니라 성별분업과 성역할의 불평등을 다룬 일상 다큐가 되었으리라.
앞의 장면에서 청소노동자의 화난 외침을 보면서, 가사노동이라는 돌봄의 핵심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온종일 쉴 새 없이 이어지고, 휴가도 없는 노동의 결과는 남들의 눈에는 도무지 티도 나지 않는다. 그러다 돌봄노동을 제공하던 이가 사라지는 순간, 일상의 흐름은 ‘막혀버리고’ 모든 것은 올 스톱된다. 부부의 출퇴근 시간에 변화가 생기면 아이의 유치원 등·하원을 맡아줄 이를 울부짖으며 찾아야 한다. 아픈 노부모 모시는 일을 돕던 ‘이모님’이 본인도 아파 휴가를 쓴다고 하는 순간, 온 가족에 비상이 걸린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오며 돌봄이라는 필수노동의 중요성이 사회 전반적으로 대두되고, 돌봄이 뒷받침한 일상의 평온함이 실상 얼마나 위태로웠는가를 되새기는 시간을 보냈다.(주 : 오삼일, 이종하, 2021, “코로나19와 여성고용: 팬데믹 vs 일반적인 경기침체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은행 이슈노트 2021-8호.) 돌봄이 사회적 의제가 되고 많은 정치인들이 돌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지만, 일상 속에서 변화를 체감하기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만 든다. 아직도 우리는 돌봄 노동자를 값싼 인력으로 치부하고, 공동체 내에서 가장 취약한 지위의 이들에게 돌봄을 떠맡긴다. 그리고는 돌봄의 공백이 생겼을 때, 멈추어버린 일상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때, 돌봄 혁명이 이뤄져야 할 시기이다.
돌봄의 정의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 뜻이 정립되어 가고 있으며, 의미 역시 혼재되어 사용된다고 판단한다. 영역 역시 보육, 활동보조에서부터 동물을 포함해 사회공동체에 대한 돌봄까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의미 전달의 혼돈을 피하고자 돌봄노동을 무급, 유급과 공식, 비공식으로 임의 분류하였다. 또한, 돌봄노동의 성역할이 주어지는 것은 생물학적 여성에게만 있지 않기 때문에 이하 글에서의 여성은 젠더권력의 하위자를 통칭하고 있다.
2. 돌봄 기근의 세상,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
- 일상 속 돌봄을 둘러싼 젠더 불평등
돌봄의 필요성은 모두가 말하지만, 자신의 일상에 파고 들어와 있는 돌봄 부족에 대해서는 잘 거론하지 않는다. 사실 이야기하기 어렵다. 일상의 돌봄 고민을 털어놓아도 주변에서 도와주기가 쉽지 않음을 화자도 청자도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돌봄을 해결하지 않고 안전할 수 있는 가구는 없고, 돌봄과 거리를 둔 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공동체 역시 존재할 수 없다.
1) 직장맘 가정의 육아를 두고 두 가지 젠더 불평등이 발생한다
직장맘 가정에는 보육을 도와줄 곳을 겨우 찾아도 유급 (비공식) 돌봄 노동자의 처우에 난감한 고민이 들기 시작한다. “도와주시는 건 고마운데, 생각보다 월급을 많이 드려야 하더라.”라는 것이 대다수 속마음일 것이다. 이성애자 가정을 기준으로 할 때, 대개 남편이 아내보다 고소득자이기 때문에 집에서는 이런 제안이 오고 간다. “이렇게 (많이) 드릴 바에는, 당신(아내)이 아이들을 보는 게 아이들 크는 데도 좋지 않을까?” 직장 커리어를 지키려 버티던 여성들은 아동의 성장 과정에서 ‘엄마의 결핍’을 느끼고 결국 무너진다.(주 : 고영우, 윤미례, 이동선, “성역할 인식과 성별분업 및 여성의 경제활동 사이의 관계분석”, 한국노동연구원)
경력단절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의 하나이다. 엄마의 월 근로소득이 250만 원 남짓일 때, 돌봄 노동자인 여성에게 200만 원의 임금을 지불하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인 남편의 월 근로소득 대비 돌봄으로 지출한 비중이 얼마나 되는가는 잘 고려되지 않는다.(주 : OECD 젠더 데이터 포털, ‘주요국의 성별 일평균 가사노동시간’ OECD 국가지표체계) 남편과 아내의 월 소득 수준이 비슷하거나 심지어 남편이 더 적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주 : 김미선, 이재열, “가사노동은 여전히 아내의 몫인가? - 생계부양유형의 변화와 유형별 부부의 가사노동시간 분담변화”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0년 발행) 돌봄을 여성의 몫으로 여기는 성별분업의 편견이 만드는 첫 번째 젠더 불평등이다. “뭐, 얼마나 번다고.”라는 말은 보육, 노인 돌봄 등의 노동을 택하지 않는 여성이 평생에 한 번씩은 듣게 되는 말일 것이다.
당연히 이 결과는 유급 돌봄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가 개선될 수 없는 악순환을 만든다. 이것이 두 번째 젠더 불평등이다. 대다수가 여성이고 비정규직인 유급 돌봄 노동자의 임금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여성의 낮은 임금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다.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불평등은 직종을 막론하고 돌봄 노동자가 겪는 성차별과 연결된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도 쉴 수 없는 유급 돌봄 노동자가 장기간 일하기는 어렵다. 직장맘 역시 직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경력단절여성의 증가는 유급 돌봄 노동의 수요를 줄이고, 반면 경력단절여성의 보이지 않는 무급 돌봄 노동을 그 사회는 가늠하지 못한다.(주 : 한겨레, “20대 180만원, 50대 3150만원…남녀 소득격차 키운 ‘경력단절’” 2021년 8월 3일 자 보도)
2) 집‘밖’에도 돌봄은 존재하지만, 평등은 머나멀다
돌봄을 집‘안’일로만 여기는 성역할에 기반한 시선은 사회적 공간에서도 누군가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함으로써 우리의 일터가 유지됨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 대다수 회사에서 중요 행사를 앞두고 다과를 챙기는 일은 소위 ‘여비서’의 몫이다. 허드렛일로 치부되는 사무실 돌봄노동은 회의 같은 공적인 경로로 배분되지도 않는데, 여성이 막상 하고 나면 아무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주 : 오마이뉴스, “여성노동자 74.0% 직장서 성차별 경험... 반말·성희롱·임금차별 등” 2020년 3월 2일 자 보도)
진보 진영이라고 다르지 않다. 6411버스의 여성노동자를 호명하다가도, 우리는 사무실에 커피 원두를 채워두는 이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한다. 1999년 민중대회에서 여성 활동가들이 일명 ‘불평등의 컵 깨기’를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20년이 흘렀지만, 진보정당 내에도 회의가 끝나고 자신이 쓴 컵을 설거지하는 이는 많지 않다. 할 말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회의실에 남아 혼자 컵을 치우는 이들은 그 조직에서 가장 발언권이 없는, 권력 구조의 최하위에 있는 존재들이다.
변화의 시도를 막아서는 첫 마디는 보통 “(상사인)내가 ‘이런 일’ 할 레벨은 아니잖아.” 같은 것들이다. ‘모양새 나는’ 중요한 일과 레벨 안 되는 하찮은 일을 가르는 지점에는 젠더 차별에 기반한 권력과 위계가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진보운동의 한 축이었던 제2물결 페미니스트들의 문제의식도 여기서 시작했다.(주 : 앨리스 에콜스, 『나쁜 여자 전성시대』 2017년 이매진) “새 사회를 건설하는 투쟁에도 우리는 남자들의 발언문을 타이핑하고, 정책 대신 커피를 만들고, 운동 밖에서나 안에서나 똑같은 일을 한다.”(주 : 로빈 모건, 『자매애는 강하다』의 서문 일부, 1970년 발표)
집안과 밖,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 대의를 위한 중요한 일과 아무나 해도 되는 ‘이런 일’을 나누는 사유의 한계가 돌봄을 안녕하지 못하게 한다. 집‘안’에서 하는 일이라 노동이 아니고, ‘큰일’ 할 사람은 따로 있으며, 레벨이 안 되니 임금이 아닌 생활비 보탤 ‘용돈’을 받는다. ‘남성은 안 해도 될 노동이고, 여성에게는 모성애라는 천성이 하는 일’ 돌봄의 변화는 젠더 불평등의 해제가 된다.
3. “누가 이 일의 하찮음을 말하는가.”
- 우리가 돌봄의 변화를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
1) 요양병원 ‘아저씨’ 병원장은 ‘아줌마’ 요양보호사보다 중요한 사람인가?
배우 오나라 씨가 출연한 국민건강보험의 요양보호사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줌마라는 말에 랩으로 화내며 국가자격증을 보유한 전문 인력임을 강조한다. 광고는 돌봄노동의 핵심을 짚고 있다. 다들 무시하지만, 실제는 아무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을 하는 ‘프로’라는 점이다.
우리는 아이를 돌보고 간병을 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안 해봐도 할 수 있는 일이라 함부로 생각한다. 막상 본인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적성에 안 맞다고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취약한 지위의 누군가에게 떠넘긴다. 오나라의 광고에도 ‘솔직히 학위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라고 속으로 평가절하했을 이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전문성은 누가 판단하는가. 무엇이 중요하고 타인의 능력이 어떠한가를 구분 짓는 이는 누구인가. 그 권력을 쥔 자는 민주적 과정을 통해 자격을 부여받았는가. 이 관념들이 형성되는 과정에 그 사회공동체 모든 이의 시선이 동등하게 반영되었는가. 이 민주주의에 배제된 이들의 들리지 못한 목소리는 없는가.
돌봄에 관한 교과서라 불리는 <돌봄 민주주의>의 저자 조안 C. 트론토의 주장이 이것이다. 모든 인간은 돌봄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지만, 돌봄을 사적인 영역으로만 남겨둠으로써 불평등이 야기된다. 돌봄의 책임을 과제로 인식하지 못한 사회는 모두를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다. 저자는 돌봄이 정치 의제가 되어야 하며, 시민이 서로를 돌보는 민주적 책임을 공적인 테이블에서 논의하자고 역설한다.(주 : Joan C. Tronto, 2014, 『돌봄 민주주의 (원제 : Caring Democracy)』, 아포리아.)
누군가의 희생, 헌신이었던 돌봄에 공적 차원의 ‘노동’이 부여되는 일은 권력을 가진 이가 자기중심적으로 구축해온 세계를 부술 것이다. 절반의 구성원들이 배제되었던 세계를 민주적으로 재편하는 역사가 된다. 단순히 사회적 약자가 해오던 일의 가치를 양지로 끌어올리는 수준을 넘어서서 자타와 공동체의 공존, ‘일’과 능력에 대한 가치관을 새롭게 재정립하게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돌봄의 변화를 혁명이라고 불러야 할 이유이다.
2) ‘미안한 부탁’에서 ‘나의 자부심’이 되기까지
- 돌봄, 왜 경력이 되어야 하나
다큐 <어른이 되면>에는 탈시설을 준비하는 장혜정 씨의 언니 장혜영 씨가 동생의 활동보조인을 구하며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돌봄이 사적 자원으로 이뤄질 때 주변에 늘 ‘미안한 부탁’을 해야 하고, 공공의 서비스를 통해도 누군가에게 ‘다른 누군가의 삶을 돕는 이의 삶을 요청해도 될까’하는 인간 실존적 고민이다. 돌봄에 대한 세계관을 재편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가 당사자의 이야기에 녹아있다.
결국, 돌봄노동에 ‘나의 주체성’이 맞닿아야만 이 ‘미안한 부탁’을 넘어설 수 있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이 타인의 삶이 빛나도록 옆에서 조연이 되어야 하는 일이 더이상 아니게끔 만드는 작업이다. 아직도 돌봄이라는 단어를 듣고 우리가 엄마의 희생부터 떠올리고, ‘(여성에게) 자아실현의 삶은 없었다’라며 눈물지어서는 달라질 수 없다.
돌봄에 주체성을 부여하는 방안에 다양한 상상이 있을 것이나, 돌봄의 시간을 경력으로 인정하는 공적 시스템 도입에 주목하고자 한다. 정의당 마포구위원회에서도 ‘마포 돌봄의 경력인정 조례 제정’을 추진한 바 있으나,(주 : 한겨레, “육아도 간병도 경력, 돌봄은 왜 자격증이 없나요?” 2022년 3월 19일 보도) 전국 최초로 돌봄 노동의 경력인정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서울 성동구로, 정원오 구청장은 2021년 9월 ‘경력보유여성 등의 존중 및 권익 증진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주 : 여성신문, “육아·가사노동 ‘경력’ 인정…성동구, 전국 최초 ‘경력보유여성’ 조례”, 2021년 11월 11일 보도) ′22년 10월 기준으로 성동구에는 11명의 여성이 경력보유인정서를 발급받았고, 이 중 4명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또 <내 이력서 새로 쓰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30여 명의 여성이 돌봄의 시간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주 : 뉴스1, “‘이력서 새로 쓰기’…성동구, 경력인정서 받는 첫 프로그램”, 2022년 4월 11일 보도)
육아, 가사, 장애인활동보조, 간병 등 누군가를 돌본 시간을 가진 지역 주민은 성별, 연령에 무관하게 지자체가 경력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성동구 사례가 전국적으로 회자된 이유는 돌봄을 ‘노동으로서의’ 경력 ‘보유’로 인정함으로써, 직장에서의 일과 가정 내 일의 경계를 허물은 패러다임의 전환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조례가 갖는 한계에도 중앙정부도 엄두를 못 내는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 결과는 전향적이었다. 정의당 마포구위원회에서도 조례 제정을 지역에서 추진하는 과정에서 젠더평등에 대한 날 선 차별적 외부 시선부터 평등으로 가는 방식을 두고도 같은 진영 내 시각 차이까지 여러 쟁점에 부딪혔다. 실제로 받았던 피드백 몇 가지를 유형별로 짚어본다.
첫 번째로 “엄마가 경력이면, 남자가 군대 다녀온 호봉은 어떻게 할 것이냐”하는 전형적인 역차별론이다. 출산과 육아를 여성의 몫으로 보고, 남성의 군복무에 대한 보상과 대치시키는 것이다. 일터 내에 존재하는 구조적 젠더 차별로 인한 성별임금격차 역시 공정 경쟁의 산물로 인지한다.
두 번째 피드백은 경력과 능력은 이성적 노력의 결과물이나, 돌봄은 모성애라는 유전적 현상으로 능력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사실이 아닌 유사과학이다. 육아를 하는 부모는 이성애자 커플이나 동성애자 커플 모두 뇌 회로의 같은 영역이 유사한 수준으로 활성화된다는 과학적 결과도 이미 발표된 바 있다.(주 : Ruth Feldmana, “Father`s brain is sensitive to childcare experiences”, PNAS, Published online before print May 27, 2014 (KISTI 미리안 [글로벌동향브리핑] 2014-06-14)) 즉 돌봄은 유전적 성역할 관념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부성애와 모성애는 육아 행위의 산물로 봐야 한다.
세 번째 쟁점은 “여자들 어린이집에 애 맡겨놓고 놀던데….” 하는 여성 혐오적인 시선이다. 사회로부터 개인이 권리를 인정받을 때 그 자격 여부를 객관적 물증 확보로 해야 한다는 시각인데, 사적 공간에서는 노동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편견과도 맞닿아있다. 노동에 대한 감시 체계를 강화할 요량이 아니라면, 지자체와 주민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적 관점이 필요하다.
다음은 돌봄 사안에 관심을 갖는 여성주의 활동가들 사이에서 논쟁의 지점이 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돌봄의 완전한 책임을 사회에 요구했는데, 여성의 시간을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것이 오히려 돌봄을 사적 영역에 가둬버리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의식이다. 경력인정보다는 돌봄노동에 대한 수당 지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책적 측면에서 동의할 수 있는 바이나 사회적 환기를 위한 캠페인이 선행될 때 돌봄노동에 대한 소득보전 형태로의 정책 입안으로 진전이 가능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돌봄의 경력인정 조례 제정’을 환영한 여성들이 보였던 반응이다. 대다수 일자리를 민간이 제공하는 한국에서 공공에 한하는 조례가 아닌 상위법을 다루는 국회에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또 ‘경력단절을 막을 유일한 해결책은 경력을 끊이지 않게 하는 것(출산, 육아를 안 해야만 경력유지가 가능하다는 반어법)’이라는 비관적 관점도 있었으나, 돌봄으로 인한 경력 공백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대를 이루었다.
4. 돌봄의 세계 재편, 시선의 방향을 돌리자
-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 향상이 먼저
국가가 돌봄 문제를 해결하고자 많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여성의 출산, 육아휴직의 지원을 더 확대하는 것이다. 돌봄이 여성의 재생산권과 맞닿아있기에 당연한 부분이겠으나, 이러한 방식의 접근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이는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감지되는 현상이다. ‘직업보호 출산휴가’ 같은 더 관대한 가족 정책이 필연적으로 여성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장기 모성 패널티’(주 : 여성이 엄마가 됨으로써 노동시장에서 겪게 되는 차별)의 결과는 여성을 저숙련, 불안정 노동시장으로 이동시키고, 성별임금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주 : Marianne Betrand, "Gender Inequality" in Combating Inequality: Rethinking Goverment's Role, 2021.2.2)
돌봄 노동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식 역시 제한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주민 생활 반경 내 공공이 보장하는 영유아 돌봄센터, 관이 지원하는 민간 데이케어센터 등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대다수 지자체 돌봄 정책의 관건이다. 필수적인 제도 지원이지만 예산 확보가 핵심인 돌봄 수요는 항상 절대적인 공급 부족으로 허덕일 수밖에 없다.(주 : 민중의소리, “노인 돌봄 강화하겠다던 윤석열, 관련 예산은 역대 최저” 2022년 11월 22일 보도) 이 관점에서는 유급 돌봄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기도 어렵고, 돌봄에 대한 구조적인 질적 확장 역시 요원해진다.(주 : 비마이너, “[팩트체크] 발달장애인 참사 막고자 노력했다는 정부, 무엇을 숨겼나” 2022년 9월 29일 보도)
돌봄에 대한 책임을 민간에 계속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돌봄에 양적, 질적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공공의 책임과 민간의 지원을 비롯해 시민이 공동체와 돌봄을 분배하는 등 다각적인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최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롯해 돌봄 혁명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몇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사회적 차원에서 돌봄의 가치 상승을 꾀할 캠페인의 실행이다. 부모 양측에 육아에 대한 공동 책임을 독려하거나, 유급 돌봄 노동자를 존중해달라는 메시지는 자주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진부함을 차치하더라도 ‘돌봄이 누군가의 헌신이 아닌 당당한 자아실현의 노동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경우는 없었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돌봄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먼저 이끌어야 이후 정책의 진보적인 변화도 도모할 수 있다.
다양한 메시지가 가능할 것이나 필자는 “엄마라는 당신의 시간, 소중한 경력입니다.”라는 현수막을 지역에 걸었다. 물론 돌봄의 주체가 엄마만 있지 않고, 오히려 성별분업에 대한 선입견을 강화하거나 능력주의에 입각한 백래시를 받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젠더 불평등의 문제점과 돌봄의 주체성 강화에 대해 가장 직관적으로 들릴 수 있는 메시지로 판단했다.
두 번째는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에서 시행되는 ‘아빠 할당’ 제도 도입이다.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에 유급 육아휴직의 사용을 강제하는 방법이다. ‘아빠 할당’은 육아 돌봄의 책임에 있어 젠더 비대칭성의 핵심을 건드리는 유망한 정책이다. 특히 ‘아빠 할당’은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을 주위 남성 가족구성원이나 남성 직장동료가 목격하면, 본인들도 기꺼이 육아휴직을 사용한다는 ‘동료 효과’ 측면에서도 탁월하다.(주 : Marianne Betrand, "Gender Inequality" in Combating Inequality: Rethinking Goverment's Role, 2021.2.2) 성역할 인식 개선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설계된 효과적인 정책이다.(주 : 조선일보, "스웨덴, 아빠 육아휴직 할당제 도입 후 출산율 1.7→2.0명" 2022년 5월 16일 보도)
그리고 인식의 측면에서 마지막으로 고려해볼 것은 ‘노동시장의 탐욕성’을 재고하는 것이다. 가차 없는 밀도로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on-call)하며 장시간 일할 것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높은 보수를 지급하는 ‘탐욕스러운 일자리’가 결국 성별분업에 기초해 젠더 불평등을 양산한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최초 여성 종신 교수인 클라우디아 골딘이 제시하는 해법은 이 ‘탐욕스러운 일자리’에 높은 임금을 주지 않고, 유연한 일자리가 더 생산적으로 되게 만들어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주 : Claudia Goldin, Career and Family, 2021.10.25)
인식의 변화를 유도하는 캠페인 외에 시민이 공동체 내에서 돌봄의 분배를 나누는 참신한 아이디어는 상호의존을 기반으로 돌봄을 나누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법이다. 공동체 내에서 내가 타인에게 돌봄을 한 시간만큼, 노년이 되거나 내가 돌봄을 필요로 할 때 공동체로부터 그 시간만큼의 돌봄을 제공받는 방법이다. 1인 가구인 비혼 페미니스트들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해법으로 다수의 상호의존 공동체가 생겨나고 있다.(주 : 일다, “노년에도 ‘나답게’…비혼여성 공동체의 화두는 상호돌봄” 2020년 10월 14일 보도) 혼인을 기반으로 하는 현재의 가족 제도가 뒷받침하지 못하는 성소수자나 비혼주의자의 돌봄 공백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다.
마지막으로 돌봄 제도 자체를 지원할 수 있는 의료, 복지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돌봄은 필연적으로 의료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성인 발달장애인 자녀를 가장 많은 시간 돌보는 것은 중년 부모이며, 치매 환자인 배우자를 돌보는 인지기능 정상의 배우자는 알츠하이머가 발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주 : KBS, “생로병사의 비밀”, 2022년 11월 16일 방송분) 즉 가정 내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돌봄 노동자에 심리적, 환경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 환경에는 루게릭이나 파킨슨 환자 등을 돌봄으로써 사실상 거주 환경이 생활 반경의 전부가 되는 경우를 대비해 왕진 재택의료 등의 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할 필요성도 포함된다.(주 : 메디컬타임즈, "중증환자 재택의료 필요성 공감…의료인 인센티브 필요" 2022년 11월 4일 보도)
5. 나가며
- 존엄을 인정받는 할머니로 늙어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까지
육아를 하지 않는 젊은 비혼 여성이 왜 돌봄을 고민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누구도 돌봄 없이 생존할 수 없다. 태어나자마자 돌봄을 받아야 하고 돌봄으로 삶을 유지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 돌봄을 필요로 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엄한 대우를 받는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다. 질적으로 안정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돌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고, 그러기 위해 돌봄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 해결책의 한 방편으로 돌봄의 경력을 인정해 돌봄이 어떤 여성의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이 아니라 자아를 찾는 엄연한 노동임을 선포할 것이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들은 여성의 그림자 노동이 배제되지 않고 산출 가능해질 때, 세계 GDP 최상위 국가는 인도가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축첩제가 아직 존재하는 인도에서 결혼, 출산으로 돌봄노동을 하는 여성의 수가 압도적이라는 뜻이다. 보이지 않는 ‘無의 노동’ 돌봄을 가시화하고 재평가하는 일은 인간 역사 속에 항상 존재했던 젠더 불평등을 해소할 하나의 열쇠가 될 것이다.
타인이 요구하기 전에 필요를 감지하고 그를 충족시켜주는 소통의 돌봄노동이 일과 중요도를 권력자의 시선으로 구분해온 세계를 재편할 것이다. ‘너는 되고 나는 안 되는 것’을 가르던 차별로부터 자타의 평등을 만들고, 절반의 목소리가 배제되었던 반쪽짜리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돌봄 혁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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