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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윤석열 정부와 야당의 돌봄 정책
: 돌봄의제의 이상(ideal)과 규범적 철학의 부재
- 입력 2022.12.15 14:05 조회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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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정기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 용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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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윤석열 정부와 야당의 돌봄 정책-임정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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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기 용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노인, 장애인, 아동 등의 돌봄이 주요 관심사이다. 주요저서로 “청소년의 사회자본과 행복감의 발달궤적에 관한 연구(2020)”, “돌봄뉴딜을 향하여-돌봄욕구, 서비스, 인력체계 분석-(2020)”, “노인 돌봄가족은 무엇을 경험하고 필요로 하는가?(2020)”, “보육교사들이 생각하는 조직행복에 대한 탐색적 연구(2022)” 등이 있다.
1. 들어가며
세계적인 저출산 고령화 현상과 가족구조의 변화는 가족의 주요기능이었던 돌봄을 사회화하도록 추동하였다. 산업화 시대 노동자가 처할 사회적 위기는 여러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냈지만, 탈산업화 시대로의 이행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위험에는 충분하지 못했다. 이러한 신사회적 위험으로 대표되는 것이 돌봄이다. 이에 나라마다 시기적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아동,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돌봄을 주요 의제로 삼고 이에 대한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돌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 모두 만족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돌봄욕구에 비해 공식적 돌봄의 양과 질은 부족하며,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소외되고 학대받고 있다. 돌봄노동자는 전 세계적으로 낮은 처우를 받는 계층에 속해 있고, 돌봄이용자의 소비자주의는 돌봄관계를 왜곡시켜 정서적으로 힘들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정책공약은 복지급여를 확대시키고 있으나 체감도는 낮다. 얼기설기 짜깁기한 돌봄 정책은 매번 새롭게 통합과 폐기를 반복하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돌봄 정책에 대해 적지 않은 노력과 자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이용자와 노동자 모두가 불만족하고 가족의 부담은 증가하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돌봄의 위기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돌봄 의제에 대한 이념적 관점의 부재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돌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돌봄에 대한 가치가 달라진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저임금의 일자리인 돌봄노동은 돌봄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지 않고서는 개선되기 어렵다. 돌봄이 여성성과 등치되면서 유급노동이 되더라도 숙련성이나 전문성이 낮게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일자리로 질 높은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노동자 개인의 고통으로 전가되기 쉽다. 따라서 돌봄 정책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돌봄에 대한 기본 관점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간의 남성생계중심자 모델에 입각한 사회보장제도가 돌봄과 같은 신사회적 위험에 대처하기 역부족인 것은 단순히 사회보장제도를 하나 더 확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돌봄에 대한 이념적 이상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돌봄은 윤석열 정부의 두툼한 복지가 의미하는 “불쌍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시혜성 복지”나 “필요한 사람이 사고 돈 벌 사람이 만드는 산업”이 아니다.
돌봄의제에는 시민권으로서의 권리를 넘어서는 성평등한 젠더 질서, 돌봄에 대한 책임,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관점의 규범이 존재한다. 돌봄윤리는 유급노동 중심의 담론에서 탈피하여 사적 돌봄노동보다 노동시장이 더 가치 있다고 보는 위계적 이분법을 비판한다(Cameron, 2000). 또한, 돌봄을 주고받는 권리는 여성 노동권이 도구화되지 않도록 성평등 자체를 목표로 추구하는 인권적 접근이 필요하다(백경흔, 2021). 돌봄 문제가 남성성을 헤게모니로 하는 위계적인 성별분업을 통해 해결되는 구조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더 주변화되고, 취약한 여성에게 돌봄책임이 전가되고, 성별이 세대/계층/민족(인종)과 교차하면서 또 다른 불평등과 부정의가 지속될 수 있음(Tronto, 2013(2014))을 파악해야 한다. 탈가족화와 탈성별화의 의미뿐만 아니라 엄마 일, 가정 일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규범이 필요하다. 국가의 정책에는 이러한 규범적 방향성이 보여야 하며, 이에 따라 돌봄의 관계와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돌봄 의제에 대한 다양한 참여자의 요구와 의견이 포함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돌봄의 민주주의가 보장될 때, 국가 관료주의를 막고 모든 시민이 돌봄의 역량 있는 주체로서 공공성 증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제가 마련될 수 있다. 그런데 돌봄윤리(Gilligan, 1982; Noddings, 1984), 돌봄정의(Kittay, 1999; Tronto, 1993), 돌봄국가(Engster, 2015; 김희강, 2016), 돌봄민주주의(Tronto, 2013(2014); 김희강, 2020) 등 돌봄을 둘러싼 다양한 이상(ideal)과 논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선 아직 정치적 주요 의제로 드러내고 있지 못하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들어 돌봄의 제도화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의 선별적 수용시설 위주의 돌봄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비롯하여 장애인활동지원제도, 다함께돌봄, 초등돌봄, 지역사회통합돌봄 등 보편적 제도로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각종 현금급여와 사회서비스 바우처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 돌봄체계는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어 오히려 이용자와 노동자 모두 돌봄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각 정당의 돌봄 정책의 내용과 한계를 평가하고 향후 돌봄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2. 각 정당의 돌봄의제 및 정책분석
1) 정책에 나타난 돌봄 이상(ideal) : 시혜대상 vs 돌봄권리 vs 돌봄민주주의
각 정당의 돌봄 정책을 분석하기 전에 돌봄 의제에 대한 준거틀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라는 비전 아래 ‘어려운 이웃과 사회적 약자를 더욱 따뜻하게 보듬어서 한 사람의 국민도 홀로 뒤처지지 않도록 약자와 동행하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2022:15). 이를 위해 “필요한 사람에게 두텁게 지원”하는 맞춤형 복지를 약속한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떤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지원한다는 것은 돌봄을 모든 사회구성원이 가질 수 있는 욕구이자 권리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돌봄은 복지정책의 하나로 분류되고 취약계층에게 주어지는 시혜적 정책으로 보는 관점이 내포되어 있다. 돌봄 이상(care ideal)에 대한 새로운 사회와 관련한 관점은 차치하고라도, 현대 복지국가에서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권리 역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돌봄은 이미 시민권의 하나인 사회권이자, 새로운 권리인 돌봄권으로 모든 시민은 돌봄을 받을 수 있고 줄 수 있는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Tronto, 2020).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에 기초한 근대복지국가의 관점에 머물러 있으며 기초보장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 여전히 시혜적 복지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돌봄욕구를 사회서비스의 고도화라는 명명하에 민간 위주의 사회서비스를 확장하여 돌봄 책임의 사회화를 최소화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국정운영비전에서 복지를 “생산적 맞춤복지”로 “복지지출은 인적 투자로서 사회적 생산성을 높이고, 기회의 사다리를 놓는 맞춤형 방식이 되어야 하며”, “일을 통한 복지가 최고의 복지”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 일자리를 통해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복지재원을 확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갈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에서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일을 하는 여성과 노인, 장애인만이 시민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당은 그간 현금수당을 비판하였으면서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수당을 상향 조정하는 것 이외의 적극적 정책은 없다. 이는 복지에서 도와줄 수 있는 대상은 노동능력이 없는 가치(도움을 받을 자격) 있는 빈민(The Deserving Poor)이어야 하며, 노동능력이 있는 계층은 모두 도와줄 가치 없는 빈민(The Undeserving Poor)이며 일을 통해 소득활동을 하며 자생해야 함을 보여주는 엘리자베스 구빈법의 연장선이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두터워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편적 복지를 함께 확장해 나가지 않으면 복지가 권리가 아니라 낙인이 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복지권력관계에 있어서도 수혜자와 제공자(국가) 간의 민주적 관계가 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 하에서 돌봄은 남성생계부양자나 일하는 여성을 제약하는 것으로 가족이 해야 하는 일을 도와주는 주변화된(marginalization) 돌봄으로 남아 있다.
<표 1> 윤석열 정부의 돌봄 관련 정책의제
국정목표 | 3.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 --------------------------------------------------------- |
[약속09] | 필요한 국민께 더 두텁게 지원하겠습니다. --------------------------------------------------------- |
정책과제 | 42.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 개혁 43. 국민 맞춤형 기초보장 강화 44. 사회서비스 혁신을 통한 복지?돌봄서비스 고도화 45. 100세 시대 일자리?건강?돌봄체계 강화 46. 안전하고 질 높은 양육환경 조성 47. 장애인 맞춤형 통합지원을 통한 차별없는 사회 실현 48.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 구현 |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2022).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p.15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돌봄 의제는 보다 적극적이다. 어르신, 환자, 장애인, 아동, 영·유아 5대 돌봄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력하게 표방한다.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복지국가”의 틀에 “돌봄”을 추가하여 “포용적 돌봄복지국가”위원회를 만들었다. 복지국가에 있어 돌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보편적 돌봄을 공고히 하였다. 돌보는 사람의 권리뿐만 아니라 돌봄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약속하였다. 이는 돌봄의 사회권과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돌봄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부모가 자녀를 함께 돌보는 사회를 위하여 부모 모두 “자동육아휴직제도”를 도입하고, ‘육아휴직 부모 쿼터제’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육아휴직 부모 쿼터제를 “아빠의 육아휴직 권리보장을 위한 것(더불어민주당, 2022)”으로 보면서, 아동양육의 성평등적 지향성을 보여준다고는 하기에는 한계를 가진다.
<표 2> 이재명 대선후보 당시 돌봄 관련 정책의제
비전 | 3. 민생안정 ------------------------------------------------------------------- |
정책목표 | 어르신, 환자, 장애인, 아동, 영·유아 5대 돌봄에 대한 국가책임 완성과 국민안심 국가 실현 ------------------------------------------------------------------- |
정책과제 | 1. 어르신 돌봄 국가 책임 강화로 고령화 대응 2. 환자 돌봄의 국가 책임 강화로 가족부담 경감 3. 장애인 돌봄의 국가 책임 강화로 자립 지원 4. 아동, 영·유아 돌봄의 국가 책임 강화로 저출생 대응 5. 촘촘한 소득보장체계(상병수당 도입 등) 6. 1인 가구·한부모 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삶 존중 7.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과 안전 보장 |
더불어민주당(2022). 제20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p.222~223)과 제20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목록(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마당)에서 필자가 구성.
정의당의 돌봄 의제는 정부, 여당에 비해 더욱 적극적인 편이다. 이정미(현 대표)는 20세기 복지국가의 한계를 극복할 것이라며 ‘돌봄 대통령’을 슬로건으로 들고 나왔다. “시혜적인 현물·현금 복지, 구체적인 삶의 얼굴이 지워진 숫자와 통계에 의존한 복지국가는 지금의 외로움, 불평등을 해결할 수 없다”라며 “정책 나열을 통한 양적 확대가 아닌 시민의 삶을 보살피는 질적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고 표방하였다. 이정미는 “가정, 이웃, 공동체, 지역사회, 국가를 포함한 모든 삶의 공간에서 돌봄과 관계가 우선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며, “돌봄, 보건의료, 교육, 아동가족 업무를 총괄하는 돌봄사회부총리를 신설하고, 촘촘하고 안정적인 지역사회통합돌봄을 실현해내겠다”, “중앙과 지방, 정부와 시민이 함께하는 돌봄국가를 만들겠다”라고 구체화하였다. 아울러 돌봄 노동자의 인력기준 강화와 돌봄일자리, 돌봄욕구와 돌봄노동을 연결하는 공공 플랫폼을 제안하였다.
심상정 대선 후보의 돌봄 정책은 더불어민주당과 유사하지만, 좋은 돌봄(good care)을 위하여 공공돌봄과 돌봄 종사자 월급제 등 노동권에 대한 보장이 구체화되어 있다. ‘돌봄자 수당’ 역시 5060 공약의 후속으로 나왔지만, 비공식 돌봄을 표면으로 드러나게 한 최초의 공약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자체의 돌봄책임을 분권화하는 과정에서 국가적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돌봄민주주의에 대한 상을 반영하고 있다. 육아휴직제도를 돌봄 정책에 포함하지 않고 여성의 평등정책으로 넣고, ‘전국민 육아휴직제도’와 ‘육아휴직 아빠 할당제’를 통해 돌봄이 일하는 여성을 위한 정책수단이 되지 않고 보편적 성평등을 지향하는 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에서 ‘포용적 돌봄 복지국가’하에 돌봄의 국가적 책임을 주요 의제로 삼았던 것에 비해 정의당은 대선과정에서 ‘돌봄혁명’을 선진적으로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정책에서는 다소 분절적이고 주변화되어 있다. 돌봄사회를 위한 지향점을 분명히 밝히지만, 정책 수준에서는 주류화되어 있지 못한 한계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여자의 몸은 더이상 출생을 위한 정책적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한겨레, 2022), 돌봄이 일자리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관계 중심의 사회상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부족한 편이다.
<표 3> 정의당의 돌봄 관련 정책의제
비전 | 국민건강권 및 전국민 돌봄보장 |
정책목표 | --------------------------------------------------------------------- ○ 공공의료 확대와 병원비 연간 100만원 상한제로 국민 건강권 보장 ○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국민 돌봄 보장 |
정책과제 | --------------------------------------------------------------------- ○ 공공의료 확대 및 지역별 필수중증의료 보장 ○ 병원비 연간 100만원 상한제, 한국형 전국민주치의제 도입 등 건강 선진국 실현 - 모든 병동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제공 - 전국민 상병수당 도입으로 질병 및 손상으로 인한 소득손실 보장 ○ 100세 시대에 맞는 건강한 노후, 존엄한 노후 ○ 전국민 공공 돌봄으로 좋은 돌봄 실현 ○ 걸어서 가는 국공립 어린이집 실현, 민간 어린이집 공공성 향상 ○ 아동기본권 보장, 아동학대 공공책임 종합대책 마련 ○ 돌봄자 수당 ○ 전국민 육아휴직 및 육아휴직할당제 ○ 지자체 복지재량기금 설치로 복지분권 실현 |
정의당(2022). 제20대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집(p.165)과 제20대 대통령선거 정의당 정책목록(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마당)에서 필자가 구성.
2) 정책의 탈가족화, 탈성별화 수준
다음은 각 정당의 돌봄 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정책은 규범적 성격을 띤다. 따라서 각 정당에서 구체적으로 내세운 정책이 어떤 규범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돌봄이 사회적 주요 의제로 대두된 데에는 탈가족화와 탈성별화에 대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돌봄 정책은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대체하는 성평등한 젠더 질서를 새롭게 모색하는 복지국가 재편과정에서 중요한 정책영역이다. 돌봄 결핍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맥락에서 복지국가 재편의 중심은 노동시장을 둘러싼 빈곤, 계층 불평등에서 돌봄책임 재분배를 통한 성평등한 젠더 질서 조정으로 옮겨갔다(마경희, 2005; Sainsbury, 1996; Taylor-Gooby, 2005; 백경흔, 2020, 재인용).
돌봄은 생애 전반에 걸쳐 일어나지만, 아동과 노인, 장애인 등에 집중된다. 돌봄 정책은 일자리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아동과 노인, 장애인의 권리 측면에서 당사자에 대한 주체적 관점에서 비롯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돌봄은 이러한 시민권적 주체로서의 정책보다는 일자리를 보완해주는 역할로 작동한다. 돌봄은 예비산업군을 위한 가정의 일로 가정 내 돌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둔다. 부모급여의 신설은 퍼붓기식 현금지원을 지양한다는 정부의 철학과도 맞지 않으며 주 돌봄의 책임이 여전히 여성일 가능성과 사적 돌봄의 강화라는 측면에서 탈가족화, 탈성별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탈가족화와 탈성별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일자리로의 재취업 역시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은 기존 연구에서도 언급되고 있다(홍승아, 2011).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공약으로 제시한 부모 모두 1.5년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국정과제에 포함되지 않아 젠더평등 효과에 부정적이다. 또한, 돌봄을 ‘부모교육’ 지원을 통한 양육기술로 한정한다는 것은 돌봄을 둘러싼 사회구조적 맥락을 무시하는 것이다.
돌봄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각 당사자의 권리적 측면을 강조한다면 아동을 공적 환경에서 자유롭게 돌봄을 선택할 수 있는 시민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백경흔, 2015). 따라서 돌봄 정책이 저출산 극복의 도구가 되거나 아동이 있는 ‘가족’을 지원하는 정책이 되어서는 한계를 가진다. 아동의 돌봄에 대한 권리는 모성통념의 양육환경에서 벗어나 제3자 공적개입의 인프라를 확실하게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부분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돌봄 정책의 탈가족화, 탈성별화는 매우 요원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아이돌보미 민간기관을 양성화시키고,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고도화 등 사회서비스 민간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돌봄의 공공화보다는 사적 돌봄의 유연성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장애인의 경우에는 개인예산제를 통해 개인의 선택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공공인프라의 다양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욕구에 따라 총액을 제한하고 돌봄을 상품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개인예산제를 누구에게 어떻게 줄 것인가의 문제가 남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수급대상자를 욕구(need) 기준으로 평가할 경우, 필요(demand)한 장애인이 배제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우리는 장기요양보험제도 등 다양한 제도가 가지는 엄격한 평가로 인하여 외로이 죽어가는 사각지대를 많이 보고 있다.
노인의 경우에는 일자리 확대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공공형 일자리를 축소하고 시장형 일자리를 확대하는 것으로 발표한 바 있다(경향신문, 2022.08.31.일 자). 이는 윤석열 정부가 천명한 필요한 사람에게 두텁게 지원하겠다는 철학과도 배치되는 점이다. 또한, 노인 일자리의 평가에서 시장형 일자리의 한계와 공공형 일자리의 효과가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결과와도 맞지 않는다.
의료와 돌봄의 연계에 있어서도 주치의 제도가 아닌 계약의사제를 주장한다. 전체적으로 윤석열 정부의 돌봄 정책의 구체적 내용은 시장의 노동력 공급의 수단이며 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는 도구, 시장가치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정책을 지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지향점은 결과적으로 복지예산을 줄이는 형태로 시작하고 있다(한겨레21, 2020.11.18.일 자).
2023년 복지 분야 관련 예산을 보면, 공공인프라 확충 예산은 대폭 삭감되었다(참여연대, 2022). 초등돌봄예산의 경우 교육부 소관인 초등돌봄교실 시설확충 예산이 100% 삭감되었다. 노인돌봄의 경우 공공노인요양시설 예산이 전년 대비 20%나 삭감되었다. 여기에 정부는 지역아동센터 지원사업과 다함께 돌봄센터 지원사업, 노인요양시설 확충,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사업 등 전국적으로 차별 없이 시행되어야 하는 복지서비스를 일반회계에서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로 이전했다. 일반회계에서 특별회계로 넘어간 것은 사업의 안정적 운영을 위협한다. 이렇듯 정책지향은 정책 결과로 나타난다.
<표 4>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중 돌봄 관련 세부 국정과제
안전하고 질 높은 양육환경 조성 (복지부) | - 부모급여 신설 - 보육서비스 질 제고 - 촘촘한 아동돌봄체계 마련 - 산모·아동 건강관리 체계화 - 아동·청소년 보호책임 강화 |
장애인 맞춤형 통합지원을 통한 차별없는 사회 실현 (복지부) | -------------------------------------------- - 개인예산제 도입 -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모델 확대 -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고도화 - 직업재활·일자리 지원·장애인연금을 통한 소득 및 사회참여 지원 - 장애인 건강주치의 활성화, 방문재활서비스 추진, 장애인구강진료센터 확충 등 장애인 건강권 보장 강화 - 시설거주 장애인 등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한 주택 및 주거서비스 지원, 장애인 편의시설 확대 및 BF 인증제 운영 강화 추진 - 편리한 택시 이용을 위한 원스톱통합예약서비스, 비도시 지역의 장애인 콜택시 법정대수상향 및 비휠체어 장애인 바우처 택시 확대 |
100세 시대 일자리?건강?돌봄체계 강화 (복지부) | ------------------------------------------ - 노인일자리 확대 및 내실화 - 지역사회 계속 거주를 위한 예방적·통합적 돌봄, 맞춤형 사례관리 강화 - 4차산업혁명 기반 - 의료와 돌봄을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재택의료센터 등 확대추진 - 계약의사제 내실화 등을 통해 의료·요양 복합 제공 지원 및 가정에서도 충분한 서비스를 받도록 통합재가 등 재가서비스 강화 - 장기요양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공립요양시설 확충, 시설 환경개선 병행 - 급성기병원 중심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와 함께 요양병원 특성에맞는 간병서비스 모델 마련 및 모니터링·평가 등을 통한 쏠림 방지 |
다음,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정책적 실현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기에 정책공약을 통해 살펴본 결과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자세한 내용은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공약집 참조). 돌봄의 가치와 의제를 국가책임으로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복지정책이 대동소이하게 수렴되고 있으나, 각 정책의 지향점은 온도 차이가 있다. 정부·여당이나 야당 모두 복지의 확대나 국가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으나 어떤 관점에서 이러한 정책을 채택하는지에 따라 구체적 내용이 달라진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돌봄에 대한 국가책임을 명시하고 있으나, <표 2>에서 보듯이 ‘어르신 돌봄 국가 책임 강화로 고령화 대응’, ‘환자 돌봄의 국가 책임 강화로 가족부담 경감’, ‘장애인 돌봄의 국가 책임 강화로 자립 지원’, ‘아동, 영·유아 돌봄의 국가 책임 강화로 저출생 대응’ 등 모든 돌봄이 저출산 고령화에 대응하는 도구이거나, 일자리나 자립의 가치에 부응하는 주변화된 돌봄을 보여준다. 공적 노동시장의 생산활동만큼이나 사적 돌봄의 가치도 중요하다. 돌봄 행위 자체의 가치와 상호의존하는 따뜻한 돌봄사회의 가치를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지향점은 돌봄의 국가적 책임을 통해 탈가족화를 달성하는 데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여전히 여성의 돌봄을 비주류화하면서 탈성별화에 긍정적이기 어렵다.
정의당의 돌봄 정책 역시 더불어민주당과 매우 유사하다. 정책공약집에는 돌봄을 전면적으로 의제화하고 있지 못하다. ‘주 4일제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복지가 중요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의미 있는 것은 돌봄에 있어 돌봄당사자의 돌봄권과 돌봄제공자의 노동권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아휴직은 돌봄이나 아동을 양육하기 위한 정책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육아휴직과 부모할당제는 여성평등으로, 아동과 청소년 돌봄은 기본권으로, 장애인 돌봄은 장애인 평등과 존엄으로 배치하고 있다. 노인은 정책공약집에는 돌봄 영역에 속해 있지만, 정책목록에는 건강한 노년, 존엄한 노후로 노인의 존엄성을 위한 정책이 나열되어 있다. 이렇듯 돌봄을 돌봄당사자의 권리로 배치한다는 것은 정의당의 돌봄 정책이 각 당사자의 권리로 규범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동이나 노인을 부양하는 ‘가족’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아동과 노인 ‘당사자’의 정책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정의당은 다른 정당과 차별되게 돌봄자 수당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돌봄자 수당은 부모급여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고 돌봄자의 선택권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대부분의 여성이 여전히 사적돌봄에 남아 있어 성평등의 정책으로 한계를 가진다는 비판을 받는다(양난주, 2017; 홍승아, 2011). 그러나, 모든 돌봄이 공식화, 제도화될 필요는 없다. 집에서 돌봄을 필요로 하는 노인의 60%가 여전히 비공식 돌봄에 의존하고 있다(OECD, 2022). 공식 돌봄이 강화되더라도 비공식 돌봄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돌봄이 가지는 고유한 가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돌봄의 가치로 볼 때 사적돌봄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시장의 생산활동만큼이나 돌봄노동은 중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비공식 돌봄제공자들이 돌봄노동의 지원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들에게 돌봄은 하나의 가치 있는 노동이기에 공적제도로 대체하지도 않으며, 노동시장을 선택하지도 않는다. 석재은(2018)은 우리나라의 보이지 않는 비공식 돌봄노동의 비중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돌봄노동의 1.5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면서, 돌봄책임의 사회화와 돌봄책임의 민주적 배분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공식 돌봄노동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공식 무급 돌봄노동을 가시화시켜야 하고, 비공식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정당한 자원배분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민주적으로 배분하는 돌봄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공식 돌봄노동을 사회적으로 가시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돌봄수당은 비공식 돌봄이라는 비가시적 영역을 정치 의제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당사자들이 가장 요구하는 정책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양육수당 역시 보육료 지원과 함께 공적 돌봄체계의 확대를 가져왔다. 새로운 돌봄국가는 자립보다는 돌봄과 상호의존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누군가를 돌보며 살아가는 노동을 충분히 인정해 주고 정당하게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돌봄자 수당의 긍정적 의미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봄이 여성의 일, 가정의 일로 평가절하되어 있다는 점이 기대하는 정책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한계를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돌봄수당이 젠더 차별과 계층별, 계층 내 차별을 가져오지 않기 위해서는 비공식영역의 돌봄에 대한 지원을 불인정하기보다는 성평등이 전제될 수 있는 돌봄체계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3. 나가며
돌봄은 사회필요에 따라 최소한의 사회적 비용으로 기능적으로 처리되는 것이 아니다. Kittay(1999)는 사회질서가 돌봄을 어떻게 조직화하느냐 하는 것은 사회정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누가 돌봄 책임을 질 것인지, 누가 돌봄을 직접 제공할 것인지, 누가 돌봄관계와 돌봄관계에 있는 당사자들을 지원할 것인지의 문제들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다. 이는 사회적 책임이자 정치적 의지의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답하느냐 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완전한 시민권이 확대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결정한다. 의존노동(dependency work)이 성별화되고 사유화된 배경에는 남성이 이러한 책임을 거의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 의존노동의 평등한 (성별, 계급별) 분배는 남성의 공적 삶을 출발점으로 삼는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정의 논의와 공공정책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Kittay, 1999; 석재은, 2018, 재인용).
그간 정의당은 일하는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함께 싸워 왔다. 이제는 “일”의 의미를 더욱 확대하고 “의존”의 정당성을 함께 모색하는 돌봄사회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본다. 공적 사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모든 이들의 가치를 가시화하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치가 정책에 녹아 흐를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할 것이다.
각 정당의 돌봄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탈가족화와 탈성별화를 넘어서는 돌봄규범에 대한 광범위한 인정이 필요하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써 돌봄노동, 경제성장을 위한 산업화 수단으로 사회서비스 산업 활성화 전략 같은 정책이 아니라 돌봄규범에 기초한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이며 이를 위한 정치적 실천이 필요하다(마경희, 2010). 또한, 모두가 소외되지 않는 돌봄민주주의를 위해서 성평등이 전제되는 돌봄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성평등한 정책들이 돌봄 정책에 내재하여야 할 것이다. 가정 내와 밖에서, 돌봄노동의 공적, 사적 영역에서 모두 성평등한 정책을 만들어내고 이를 추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육아휴직을 통한 “부모”로서의 성평등을 넘어서 “노동”으로서의 성평등이 인지될 때 경직되고 관료적인 제도로 인해 탈락하는 모든 욕구를 보살필 수 있는 따뜻한 돌봄국가가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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