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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4. 대안 지표와 진보정치의 모색
정의당형 대안 지표를 향해
- 입력 2023.03.16 17:06 조회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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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다정의 7호 1-4-장석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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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4. 대안 지표와 진보정치의 모색: 정의당형 대안 지표를 향해
- 오랫동안 진보정당 정책 ·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다. 신자유주의 위기 이후 대안체제의 방향과 얼개를 중심으로 연구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의 가을』,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사회주의』, 『신자유주의의 탄생』, 『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공저) 등이 있다.
1. 현재 한국 정치의 난맥상 – 목표의 상실
현재 한국 정치는 기능 장애 상태다. 무릇 정치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발견하고 논쟁하며 해결책을 찾아나가기 위한 제도이고 실천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제6공화국 정치는 이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는 사회와 동떨어져 그들만의 갈등과 대결에 열을 올린다. 아니, 정치 영역의 갈등에 사회의 나머지 부분들이 모조리 동원됨으로써 다른 쟁점들이 가려지고 관심에서 비켜난다. 정치를 통해 사회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 때문에 사회 문제들이 해결될 시기나 실마리를 놓친다. 더 나아가 정치가 사회에 쓸데없는 문제를 야기한다. 정치가 기능 장애를 넘어 역기능을 한다.
물론 커다란 책임은 현재 한국 정치를 독점하는 양대 정당에 있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이 두 당이 사회와 동떨어진 제도정치의 요새 안에서 권력 게임만을 벌이는 탓이다. 한데 두 세력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악무한적 권력 투쟁을 이리도 뻔뻔스럽게 지속하는가? 이 물음에는 여러 답이 있을 텐데, 그중에는 두 당이 본래부터 그런 세력이었다는 냉소적 답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두 당의 뿌리가 되는 정당들이 꼭 지금 두 당의 모습과 똑같지만은 않았다. 국민의힘 전신 세력들은 비록 독재는 했을망정 뭔가 뚜렷한 목표에 따라 국가를 치열하게 끌고 간 적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전신 세력들 역시 여러 명백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군부독재 잔재를 일소하려고 노력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두 당 모두 과거와 비교하면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애쓰는 모습이 없다. 한 마디로, 둘 다 ‘목표’가 없다. 목표를 상실했다. 국민의힘 전신 세력들에게 그런 목표란 그들이 ‘산업화’라 불렀던 자본주의의 압축 성장이었다. 지금도 국민의힘은 ‘성장’을 외치지만, 압축 성장이라는 목표는 대한민국이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든 뒤로는 역사적 시효가 만료됐다. 다른 한편, 더불어민주당 전신 세력들에게 이에 비견할만한 목표란 ‘민주화’였다. 한데 이 역시 제6공화국 민주주의가 정착되면서, 더구나 2016~17년 촛불항쟁을 통해 안전 시험까지 거치면서 더는 긴박한 지금의 목표가 아니게 됐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의 열성 지지자들 가운데에는 여전히 이 틀로만 세상을 보려고 고집하는 이들이 있지만 말이다.
특히 2010년대 중후반부터는 이런 목표 상실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한때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복지국가’나 ‘경제 민주화’까지 외쳤던 국민의힘 전신 세력들은 막상 박근혜 정부를 출범시켰다가 탄핵 대상이 되고 난 뒤에는 이런 수준의 대안적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신 세력들의 경우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 ‘민주화’ 담론을 다시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켰다가 이른바 ‘촛불 개혁’의 실패만 노정한 다음에는 역시 목표 상실의 미로에 빠져 있다. 두 세력 다 이렇게 자신들의 정치 활동을 통해 실현해야 할 목표를 잃어버리고 난 뒤에는 이에 비례해 노골적인 권력 투쟁만 더욱 치열하게 벌인다. 이것이 2023년 현재 한국 정치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의 난맥상을 극복할 여러 방안 중 일단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떠맡아야 할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진보정당운동은 처음 출발할 때부터 이런 목표를 제시하려고 노력해왔다. ‘사회민주주의’나 ‘민주적 사회주의’ 같은 이념을 이야기한 것도 그런 시도였고, 일찍부터 ‘복지국가’ 등의 비전을 주창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주류 정치 세력들이 더욱더 실질적 목표와 괴리된 정치 행위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진지하게 새 목표를 제시하려는 시도는 기대했던 만큼 개입 효과를 내지 못했다. 주류 정치 담론 무대와 진보정당의 새로운 주장 사이에 간극이 워낙 크다 보니 이런 간극이 오히려 진보정당이 ‘비현실적’이라는 공격의 근거가 됐다. 정치에 다시 목표의식을 불어넣으려는 노력이, 적반하장격으로, 정치를 ‘모르는’ 아마추어 짓이라 치부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떤 접근법이 필요할까? 물론 목표를 상실한 주류 정치의 중심 무대에 끼어보려고 애쓴다고 출구가 나오지는 않는다. 어쩌면 지난 몇 년 동안 정의당은 편의적으로 이런 일상 정치 활동에 매몰되다 위기에 몰린 것일지 모른다. 일단 이것은 답이 아니다. 진보정치의 본령은 역시 이 시대, 이 사회에 필요한 목표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책임지는 데 있다. 당장의 반향이 어떠하든 흔들리지 않고 새 목표를 주창해야 한다.
다만, 새 목표를 내세우더라도 현재 정치를 독점하는 주류 세력들이 쉽게 거부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형태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기득권 양대 정당조차 정치 전반의 긴요한 목표임을 부인하기 힘들도록 담론화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과거의 거대 목표였던 산업화나 민주화에는 그런 면이 있었다. 현 양대 정당의 전신 세력들은 산업화와 민주화, 둘 중 하나를 더 강조하기는 했지만, 반대편 세력이라고 하여 상대가 주장하는 목표를 그저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국민의힘 전신 세력이라고 하여 민주화를 원천 부정할 수는 없었고, 더불어민주당 전신 세력이라도 산업화를 거짓 목표로만 치부할 수는 없었다. 산업화, 민주화, 모두 당대에 일정한 보편성을 지닌 정치적 목표였던 것이다. 그래서 격렬한 대립 속에서도 정치가 작동할 수 있었고, 지금과 달리 실질적인 기능을 할 수 있었다.
진보정당은 자신의 주장을 독자적인 이념이나 비전, 정책 등의 수준에서 표현하기도 해야 하지만, 이렇게 일정한 보편성을 지닌 목표로도 제시해야 한다. 현재 한국 정치처럼 거의 모든 정치적 주체들이 목표 없는 권력 투쟁의 블랙홀에 빠지고 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진보정당이 그간 주창해온 비전을 이런 식의 목표로 가공하여 주류 정치 세력들을 압박하려면, 어떤 새로운 시도가 필요할까?
2. 발전한 대안 지표, 부재한 대안 지표의 정치
그런데 최근 한국 정치에서 주류 세력에게 어떤 공통의 목표가 전혀 없었냐면, 꼭 그렇지는 않다. 산업화나 민주화만큼 명시적이지는 않더라도 양대 정당 정치인들이 시민들에게 책임져야 할 목표로 들고는 하는 뭔가가 있기는 했다. 그것은 국내총생산(GDP) 성장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이미 일본을 따라잡을 정도로(구매력 평가 지수[PPP]로 환산하면 일본을 앞선다) 늘어났는데도 정치인들은 자기네가 책임져야 할 마지막 대의로 늘 GDP 성장을 든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저 유명한 ‘747’ 공약을 내걸었던 국민의힘 계열만 그런 게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치인들도 ‘검찰 개혁’ 말고 달리 할 말이 없을 때는 GDP 성장을 꺼내 든다.
즉, 목표를 상실한 한국 정치에서 그나마 주류 세력이 공유하는 ‘마지막’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GDP 성장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GDP 성장은 더는 바람직한 목표도 아니고 이제는 과거처럼 GDP 성장이 지속될 수도 없다.
우선, 기후위기 시대에 더 많은 양적 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은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더욱 커다란 재난으로 키우겠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이제는 어떻게든 탄소 배출을 줄여가는 것이 절대적 목표가 되어야 하며,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이는 탄소 배출 감축이라는 목표와 조화를 이루는 한계 안에서 철저히 조절되어야 한다. ‘탈성장’ 논의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GDP 성장을 사회의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삼는 관성은 하루빨리 끝내야 할 때다.
게다가 현재 한국 경제에서 GDP 고속 성장이 재연될 수도 없다. 한국처럼 고도화된 자본주의 경제에서 미시적 조정 수준을 넘어서는 GDP 수치의 급속한 증가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경제학에서는 법칙에 가깝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 불가능한 일을 해내겠다고 둘러대며 사실은 어떠한 실질적 책임도 지지 않는 정치를 지속하는 셈이다.
한국 정치의 마지막 공통 목표인 GDP 성장은 이렇듯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한 가지 있다. GDP라는 지표가 유일한 목표로 떠받들어지다 시효를 상실하고 있다면, 이것 말고 다른 대안적 지표를 한국 정치의 새로운 목표로 삼을 가능성은 없겠냐는 것이다. 누가 결정한 것도 아닌데 GDP가 자연스럽게 거의 모든 정치 세력이 따르는 목표 구실을 해왔다면, GDP와 달리 양적 성장에 치중하지 않고 시민들의 좋은 삶(wellbeing), 평등과 공정, 기후 위기 대응과 지속가능성 등을 제대로 반영하는 대안 지표를 정치의 새로운 보편적 목표로 부각하는 것은 더없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즉, GDP를 대체할 대안 지표가 정치를 재건하기 위한 공통의 담론 지반 혹은 정치의 공통 언어를 재구축할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 곳곳에서 GDP를 대체하는 대안 지표를 설계하여 신자유주의 위기 이후에 정치를 재건할 지향점이나 기준으로 삼으려는 시도들이 전개됐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로는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아마르티야 센(Amartya Sen) 등이 전개한 연구가 있다(스티글리츠, 2011). 2010년대에 들어서는 UN이나 OECD, 세계은행 등이 나서서 전 세계가 사용할 수 있는 대안 지표를 생산했고,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독자적인 대안 지표를 개발했다(전병찬, 2023a; 2023b). 더 나아가 뉴질랜드 같은 나라에서는 GDP가 아닌 대안 지표와 연동하여 예산안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실험이 전개되고 있다(김대환, 2023a; 2023b).
다른 나라들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후반에 여러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앞장서서 대안 지표를 개발했다. 통계청은 2014년부터 12개 영역과 81개 지표로 이뤄진 ‘국민 삶의 질 지표’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표하고 있다. 통계청이 구축한 ‘국가지표체계’ 사이트에 들어가면, ‘국민 삶의 질 지표’를 구성하는 다양한 지표들을 편리하게 열람할 수 있다(통계청, 2023). 또한, 국책연구소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7년도에 7개 영역과 36개 지표로 이뤄진 ‘행복지수’를 개발했다(김미곤 외, 2017). 지방자치단체 가운데에는 충청남도가 이미 2013년에 ‘충남형 행복지표’를 내놓았으며(고승희 외, 2012; 2013), 서울특별시는 2014년에 ‘서울형 행복지표’ 체계 연구를 시작하고 2017년에 8개 영역과 41개 지표로 이뤄진 최종안을 발표했다(변미리 외, 2017). 시민사회에서도 (사)국민총행복전환포럼이 2021년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성장이 아니라 행복이다”라는 모토 아래 GDP를 대체할 대안 지표를 정리하여 제안한 바 있다(박진도 외, 2021).
한국에서도 이렇게 지금 당장 국정 운영 좌표로 삼아도 될 정도로 대안 지표 체계가 발전해 있다. 하지만 이런 지표들이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상태다. 또한, 대안 지표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수립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지도 못하고 있다. 양대 정당의 주류 정치인들이 전 세계적 흐름을 반영해 대안 지표 연구까지는 지원했지만, 이를 새로운 정치 문법의 토대로 삼으려는 의지까지는 없는 탓이다. 그래서 애써 개발된 대안 지표들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희귀 자료 신세가 되어 있다.
말하자면, 대안 지표는 생각보다 풍부하게 발전해 있지만, 이런 대안 지표를 활용하는 정치는 정작 부재하다.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들도 GDP를 대체하는 경제사회지표가 필요하다는 원론에는 동의해왔지만, 이런 지표가 신자유주의 위기 이후 정치의 재건에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까지 관심이 미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안 지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활용이 필요하다. 정의당은 목표를 상실한 한국 정치에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통해 한국 정치의 구도와 관행, 그 뿌리 깊은 구조를 바꿔나가는 과정에서 대안 지표를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활용할 수 있다. 기존의 대안 지표들을 정의당의 시각과 관심에 따라 재구성한 지표 체계를 제시하고 이러한 구체적인 지표를 개선해나가는 경쟁을 펼치자고 다른 정치 세력들을 압박할 수 있다. 그간 마치 추상적이기만 한 것으로 (잘못) 치부됐던 당의 이념, 비전, 정책을 대안 지표와 연동하여 담론화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에 쏟아지던 애먼 공격이나 비난에 맞설 수도 있다. 또한, 비록 집권 세력은 아니지만, 시민사회의 여러 주체와 함께 대안 지표들의 점검을 통해 예산안을 수립하는 과정을 기획하고 추진함으로써 시민사회 내에 독자적 진보정치 블록을 새롭게 구축해나갈 수도 있다. 대안 지표의 정치는 분명히 현재 한국사회에서 진보정치 재출발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다.
3. 정의당형 대안 지표의 기본 얼개와 내용을 제안한다
대안 지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된 상황에서 정의당은 그럼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대안 국정지표를 설계하고 응용할 것인가? 정의당은 기존 성과들을 최대한 수용하고 종합하면서 여기에 진보정치만의 관심과 지향을 녹여내는 작업을 벌여야 할 것이다. 정의정책연구소의 연구과제로 수행된 김대환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작업(김대환, 2023a)은 정의당형 대안 국정지표의 얼개와 내용을 논의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 아래 내용은 이 연구보고서의 제안을 요약한 것이다.
일단 이 연구는 ‘돌봄’, ‘녹색’, ‘노동’, ‘평화’라는 네 가지 커다란 범주를 제안하다. 대안 지표 체계들은 대개 여러 지표를 몇 개의 커다란 영역으로 묶어 사회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간편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가령 뉴질랜드 노동당 정부의 웰빙 예산에서 대안 지표 역할을 하는 ‘삶의 질 프레임워크’는 건강, 주거, 직업과 돌봄 및 자원봉사 등을 포함하는 12개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김대환, 2023b). 위에 소개했듯이, 한국의 대표적인 대안 지표 체계인 통계청의 ‘국민 삶의 질 지표’ 역시 12개 영역으로 묶여 있다(통계청, 2023).
정의당에 제안된 체계는 우선 돌봄 등의 네 가지 대범주다. 여기에서 ‘돌봄’이란 흔히 복지 정책의 하위 분야로 이야기되는 협의의 돌봄 정책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구위기, 감염병위기, 기후위기 등이 겹치는 상황에서 21세기 사회국가가 지향해야 할 모델로 ‘돌봄사회’가 이야기되고 있다(더 케어 컬렉티브, 2021; 김희강, 2022). ‘돌봄’은 바로 이런 관심의 반영이며, 따라서 과거에 복지국가와 관련됐던 다양한 쟁점들이 여기에 포괄된다. ‘녹색’에서는 당연히 최근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기후변화와 그 대응 정도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에는 좁은 의미의 노동 정책 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소득과 자산, 여가와 놀이 등도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평화’는 당연히 전통적인 평화 안보 쟁점을 포함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또 다른 쟁점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안전문제나 개인의 주관적 만족도 등이다.
4대 지향과 그 하위 범주인 12개 영역 그리고 이에 속한 세부 지표들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돌봄
① 가족 · 공동체 영역의 지표
돌봄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가족·공동체 영역에서 사용할 지표는 총 8가지로 구성된다. 1) 독거노인 비율, 2) 사회적 고립도, 3) 사회단체 참여율, 4) 가족관계 만족도, 5) 지역사회 소속감, 6) 취학 자녀 돌봄 유형, 7) 미취학 자녀 돌봄 현황, 8) 부양비가 그것이다. 이 중 사회적 고립도와 부양비는 핵심적으로 확인하여야 할 지표다.
[그림 1] 가족·공동체 영역의 지표
② 건강 영역의 지표
건강 영역의 지표는 1) 기대수명, 2) 자살률, 3) 스트레스 인지율, 4) 주관적 건강 상태, 5) 신체활동 실천율, 6) 인구 천 명당 의사 수, 7) 비만율이다. 이 중에서 기대수명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를 핵심 지표로 삼아 삶의 질을 향상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림 2] 건강 영역의 지표
③ 주거 영역의 지표
주거 영역 지표는 1)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비율, 2) 자가 점유 가구 비율, 3) 1인당 주거 면적, 4) 소득 대비 주택임대료 비율, 5) 주거환경 만족도, 6) 통근 시간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핵심 지표는 소득 대비 주택임대료 비율과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비율이다.
[그림 3] 주거 영역의 지표
④ 교육 영역의 지표
교육 영역의 지표는 1) 학교생활 만족도, 2) 고등교육 이수율, 3) 유아 교육 취원율, 4) 학교 교육의 효과, 5) 교육비 부담도, 6) 평생학습 참여율이다. 이 가운데에서 핵심 지표는 학교생활 만족도와 교육비 부담도이다.
[그림 4] 교육 영역의 지표
2) 녹색
⑤ 환경 영역의 지표
환경 영역 지표는 1) 온실가스 배출량, 2)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3) 석탄 화력발전 비율, 4) 방사성폐기물 발생량, 5) 자연재해 피해액, 6) 생태경관보존지역 면적, 7) 미세먼지 농도, 8) 먹는 물 수질 기준 초과율, 9) 화학물질 배출량, 10) 환경산업 비율(GDP 대비), 11) 체감환경 만족도로 구성한다. 이 중 핵심 지표는 기후변화 대응 정도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과 핵발전 문제와 직결된 방사성폐기물 발생량이다.
[그림 5] 환경 영역의 지표
3) 노동
⑥ 소득·소비·자산의 지표
소득·소비·자산 영역은 1) 가구순자산, 2) 가구중위소득, 3) 1인당 국민총소득, 4) 가계부채비율(가구처분가능소득 대비), 5) 상대적 빈곤율, 6) 소득 만족도, 7) 소비생활 만족도로 구성한다. 다만 통계청은 핵심 지표로 1인당 국민총소득을 제시하지만, 여기에서는 GDP 중심 지표에서 탈피한다는 대전제 아래 핵심 지표로 가구중위소득과 상대적 빈곤율을 중시한다.
[그림 6] 소득·소비·자산의 지표
⑦ 고용과 임금 영역 지표
1) 실업률, 2) 월평균 실질임금, 3) 고용률, 4) 노동시간, 5) 일자리 만족도, 6) 저임금근로자 비율을 고용과 임금 영역의 지표로 삼는다. 통계청은 고용률과 실업률을 핵심 지표로 삼는데, 여기에서는 노동시간과 월평균 실질임금을 핵심 지표로 추가한다.
[그림 7] 고용과 임금 영역 지표
⑧ 여가와 놀이 영역의 지표
여가와 놀이 영역은 1) 1인당 여행 일수, 2) 여가생활 만족도, 3) 문화 여가 지출률, 4) 여가시간, 5) 문화예술 및 스포츠 관람 횟수, 6) 여가시간 충분도, 7) 시간활용, 8) 규칙적 생활체육 참여율로 구성한다. 이 영역의 핵심 지표는 여가시간과 여가생활 만족도이다.
[그림 8] 여가와 놀이 영역의 지표
4) 평화
⑨ 안전 영역의 지표
안전 영역은 1) 아동안전사고 사망률, 2) 아동학대피해 경험률, 3) 도로교통사고 사망률, 4) 화재 사망자 수, 5) 산재 사망률, 6) 안전에 대한 인식, 7) 야간보행 안전도, 8) 범죄 피해율, 9) 가해에 의한 사망률, 10) 대북지원 현황, 11) 대남침투 및 국지도발 현황, 12) 이산가족상봉 현황으로 구성한다. 핵심 지표는 산재 사망률, 야간보행 안전도이다.
[그림 9] 안전 영역의 지표
⑩ 시민참여와 거버넌스 영역 지표
시민참여와 거버넌스 영역은 1) 부패인식지수, 2) 선거투표율, 3) 대인 신뢰도, 4) 자원봉사 참여율, 5) 정치적 역량감, 6) 기관 신뢰도, 7) 시민의식, 8) 기부 참여율, 9) 비 선거 정치활동 참여율로 구성된다. 이 중 핵심 지표는 부패인식지수와 시민의식이다.
[그림 10] 시민참여와 거버넌스 영역 지표
⑪ 주관적 웰빙 영역 지표
주관적 웰빙 영역은 통계청의 ‘국민 삶의 질’ 지표 체계처럼 총 3개의 지표로 구성된다. 뉴질랜드의 삶의 질 프레임워크에서도 삶의 전반적인 만족도와 목적의식을 주관적 웰빙의 지표로 삼았다. 이에 따라, 주관적 웰빙 영역은 1) 삶의 만족도, 2) 긍정 정서, 3) 부정 정서로 구성한다. 이 중 핵심 지표는 삶의 만족도이며, 개인이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정책이나 예산 등이 제대로 집행되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그림 11] 주관적 웰빙 영역의 지표
⑫ 다양성 영역 지표
다양성 영역은 평화 가치에서 핵심적인 의의를 지닌다. 안전도 중요하지만, 한국사회가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사회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존중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다양성 영역은 1) 차별 경험률, 2) 이민자 경제활동 참가율, 3) 다문화 학생 비율, 4) 소수자에 대한 거리감, 5) 1년간 가구 소득(북한이탈주민), 6) 여성 관리자와 전문가 비율로 구성한다. 다양성 영역의 핵심 지표는 차별 경험률과 소수자에 대한 거리감이다.
[그림 12] 다양성 영역의 지표
지금까지 소개한 정의당의 대안 지표 구성 방안에 관해서는 이후 추가 연구와 토론이 더 필요하다. 특히 여러 지표 가운데에서 현재 심각한 위기 양상을 보이는 지표들을 선별하여 ‘위기 지표’라는 형태로 담론화·쟁점화하는 작업이 추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이후 작업을 위해서도 우선 위에 소개한 대안 지표 안(案)에 관한 관심과 열띤 논의가 있어야겠다.
4. 대안 지표의 정치를 제안한다
정의당은 대안 지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사실 잘 정리된 대안 지표 체계를 발표하는 것만으로는 일회성 이벤트를 벗어나기 힘들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당에는 대안 지표 자체만이 아니라 대안 지표를 통한 정치적 실천이 중요하다.
더구나 대안 지표는 몇몇 정책 전문가가 정리하면 그것으로 완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안 지표는 시민사회 내 여러 주체의 참여와 토론, 합의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해가야 한다. 어쩌면 이렇게 고정된 체계가 아니라는 점이야말로 GDP와 새로운 지표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당이 제시하는 대안 지표는 그야말로 ‘발제’일 따름이다. 다른 정치 세력과 시민사회의 여러 주체에게 던지는 제안이며, 이를 통해 대안 지표의 더 폭넓은 토론 과정을 열고 이것이 다시 정치적 상상력과 새로운 실천을 촉진하게 만들려는 시도다.
이 글에서는 일단 대안 지표의 정치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세 가지 정도의 후속 과제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는 정의당의 정책을 담론화하면서 대안 지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대안 지표들의 구체적 수치를 바탕으로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한다면, 정책이 더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가령 향후 정의당 선거 공약집이나 정책 홈페이지를 항상 대안 지표와 연동시켜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안 지표들의 개선 여부를 바탕으로 정의당 활동을 평가하고 이후 활동 과제를 계획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당의 공식 문서 편집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당의 대중 담론에 대안 지표를 항상 필수 요소로 포함함으로써 진보정당의 정치 언어가 생활인의 감각이나 일상과 융합될 가능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둘째는 각 지역조직이 지역별 대안 지표 체계를 발전시키고 활용하자는 것이다. 전국적 지표 체계가 모든 지역에서 공통으로 사용될 수는 있겠지만, 각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미진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정의당 지역조직들은 전국적인 대안 지표에 지역 사정을 반영시켜 지역 판 지표 체계를 개발할 수 있고, 또한 그래야 한다. 해당 지역에서 특히 위기적 양상을 나타내는 지표가 있다면, 이는 그 자체로 지역 정치의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정의당의 각 지역조직은 지금부터 지역 정치의 중요한 무기로서 해당 지역의 대안 지표들을 정리하고 실사 작업을 벌이며 그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를 쟁점화해야 한다.
셋째, 정의당은 시민사회의 여러 주체와 함께 대안 지표를 발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대안 예산안을 수립해야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정의당의 대안 지표 체계는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라 다른 정치 세력들과 시민사회에 던지는 ‘발제’다. 정의당은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들과 함께 지금 한국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대안 지표들을 계속 토론하고 재정리해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대안 지표들이 말해주는 한국사회의 절박한 과제들을 중심으로 진보정당과 사회운동 세력들이 공동으로 대안 예산안을 작성해야 한다. 뉴질랜드 사례에서 보듯이(김대환, 2023a; 2023b), 대안 지표는 예산의 정치와 결합할 때 실질적인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이렇게 예산안을 짜는 과정 자체가 진보적 시민사회 블록을 (재)구성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필요하면 ‘2024년 대안 예산 수립 회의’와 같은 범사회운동 기구를 조직하여 이러한 과정을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은 중앙정치만이 아니라 지역정치 차원에서도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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