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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포괄적 돌봄이 가능한 지역의 발명
- 입력 2022.12.15 13:08 조회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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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돌봄 연구자, 활동가, 관계자들이 함께 쓰고 2023년 2월 출판사 ‘모시는 사람들’에서 출판예정인 ‘정동적 사건으로서의 돌봄’(가제목)에 수록될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이무열 지리산정치학교 운영위원장
- 전환스튜디오 ‘와월당’ 대표이자 문명전환 하는 ‘지리산정치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세상 모든 일은 관계 속에서 생겨나며, 생명이 지닌 힘으로 세상이 호혜적인 관계로 연결되기를 바라면서 일하고 있다. 사단법인 밝은마을_생명사상연구소, 생태적지혜연구소와 함께 개인의 욕망, 트렌드, 사회적 경제, 생태철학, 생명운동 등을 연구하며 전환을 만들어가고 있다.
1. 들어가며
고령화와 청년 1인 가구, 고립과 불평등,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귀에 익숙한 정책으로 신문이나 뉴스에서 자주 통계 지표로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관련 정책담당자들을 비롯해 연구자들에게 이들 단어 하나하나는 사회가 안정적인 궤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적신호이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행정과 관련 기관들이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이 문제들은 단순하지 않아서 개별 정책만으로는 쉽게 풀리지 않고 풀릴 수도 없다. 그래서 고령화에 적응하는 노인수당과 노인돌봄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건강보험료 재정을 걱정하고 혼자 사는 미혼(비혼) 청년 1인 가구를 위해 신혼부부 주택공급 등의 결혼장려정책을 내놓고 1%도 채 안 되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성장과 복지라는 레토릭으로 눈에 보이는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고립과 불평등은 신자유시장을 버티게 하는 성에 차지 않는 욕망하는 부의 그림자로 체재 내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이중구속 상황에 갇혀있다. 게다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은 기후재난 상황에서 실물경기의 위기,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인간의 노동을 소외시키는 기술의 등장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조차 어렵다.
정책에서 벗어나서 근본적인 생명활동으로 보면 고령화와 청년 1인 가구, 고립과 불평등,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모두 생명활동을 위태롭게 하는 취약한 사회적 고리들이다. 정부와 함께 민간에서 이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에 보이는 사회 작동보다 보이지 않는 사회 작동이 더 구체적으로 생활과 연결되어있다. 이렇게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연결되어서 살아가는 중이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돌봐야 할 노인이 있는 경우 노인을 돌봐야 하는 가족들을 넘어서 노인 돌봄이 다시 사회적으로 어떤 상황을 만들어내는지, 요사이 주요한 돌봄 의제가 된 영 케어러(Young Carer)의 사례만 봐도 그 일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거동이 불편하고 인지장애가 있는 노인이 있는 가정에서 정부의 지원정책은 도움이 될지언정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요양사가 방문하거나 데이케어센터에 계신 동안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과 생활은 오롯이 가족들의 몫이 된다. 이 부담은 요사이 기혼보다는 미혼 자녀들의 몫으로 돌아가는데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거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일 경우 이들은 학업이나 취업, 직장생활 등의 경제활동이나 교우관계, 진로활동 등의 사회활동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제한적 상황이 결혼과 취업이라는 다른 취약한 사회적 문제들로 연결된다. 물론 결혼과 취업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말이다.
2. 근대산업사회 돌봄과 지역 돌봄생활의 차이
돌봄의 문제가 복잡한 만큼 해법도 복잡해야 한다. 정부도 시장도 가정도 누구 하나 돌봄의 문제를 전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지역에서 이웃 돌봄은 정부-시장-가정으로 이어진 돌봄 체계에서 보이지 않고 잊혀진 것처럼 보이지만 끊어지지 않고 지역에서 호혜적 관계 돌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의 온 생활을 돌보지 않으면 돌봄의 문제는 풍선효과처럼 다른 돌봄 제공자(정부, 시장, 가정)에게 더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호혜적 돌봄이 아닌 유한한 돌봄에서 정부에 더 많이 의존하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더 많이 의존하는 계속되는 일방적 의존은 스스로의 존엄함을 잃을 뿐 아니라 파국적 결말까지 예상할 수 있다.
문제가 복잡할 때는 근본으로 돌아가서 주어진 문제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기존에 돌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문제의 보기를 다시 구성할 수밖에 없다. 돌봄의 재구성은 돌봄 체계 안으로 지역의 호혜적 이웃 돌봄을 다시 찾아오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지역에서의 돌봄생활은 부지불식간에 규범적으로 알고 있는 돌봄의 정의를 해체하고 근본에서부터 돌봄을 재구성하는 파상적인 방식이다. 포괄적 돌봄을 주장하는 연구자그룹 더 케이 컬레티브의 <돌봄 선언_상호의존의 정치학>(2021년 니케북스)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러할 때 파상적 돌봄의 의미나 정의를 가능하게 할 실현 지는 호혜적 돌봄에 필요한 정동(affective)의 강렬도가 높은 지역이다. 지역의 호혜적 돌봄은 한편으로 근대산업사회를 위해 기능하는 돌봄을 해체하고 개인의 생활 전체를 포괄하는 제대로 작동하는 돌봄을 회복하는 일이다. 이 둘 사이는 돌봄 배경과 역할부터 차이가 난다.
근대산업사회에서의 돌봄은 정부관리 하에 생산과 성장의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관리되는 이외의 돌봄은 경쟁과 자립이라는 신자유시장주의 질서에 따라 시장에서 선택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 재 지역화한 돌봄은 근본적인 생명활동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 돌봄이다. 개인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돌봄을 제공받을 수 있으며 호혜적 관계에 기반한 지역의 돌봄은 증여되고 순환된다. (지역의 돌봄이 정부와 시장의 돌봄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3. 호혜적 돌봄의 장이 되는 지역
지역은 단순히 공간적 범위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금까지 오는 관계 안에서 구성된 장소감(Sense of Place)과 장소애(Topophilia)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활동 범위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문화로서의 지역의 중요성을 “나를 둘러싸고 있는 구체적인 공간이며, 시간이자, 나를 구성해온 것이자, 내가 만들어갈 무엇”이라고 한다. 이렇게 나의 생활과 지역은 연결되어 작동하고 있고, 내게 나오는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겹쳐지는 현재의 운동성으로 지역은 구성된다.
구성원들의 관계 안에서 생성된 장소감과 장소애는 지역을 공유하는 것과는 다른 관습, 예술, 도덕, 지식 등 관계 안에서 습득된 공유감이다. 공유감은 ‘이것은 무엇이다’와 같이 정의되어 의미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행위자들의 배치에 따라 계속해서 지역을 지역답게 생성한다. 공유감으로 생성되고 다시 공유감으로 수렴되는 지역의 구성요소들을 다양성, 관용, 생태환경, 일, 교육, 자산, 예술문화 7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 구성요소들은 지역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 공유감은 돌봄의 호혜적 관계를 만드는 강렬한 에너지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돌봄 없이 살 수 있을까? 돌봄 없이 사회가 지속될 수 있을까? 자기 스스로를 돌보고 서로 돌보는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하는 ‘무늬뿐인 돌봄(Care Washing)’이 제공하는 최소한의 복지와 시장에서 최대 이윤을 위해 판매되는 보험, 건강보조식품, 상조서비스 등 셀프케어(Self Care) 상품을 내려놓고 잠시만 생각해보자. 그러면 누구도 서로 돌봄 없이는 식의주(食衣住)와 같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생활을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또 공기, 물, 나무 등 자연의 돌봄 없이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인간을 포함해 생명을 가진 모두는 상호의존적으로 엮여있고 협동적으로 생존하는 중이다. 돌봄은 생명이 필요한 모두를 서로 보살피는 활동이다.
4. 위기 상황에 다시 주목받는 돌봄
시장상품으로 왜곡되고 사회적으로 규범 지어진 지금의 돌봄은 중앙 집중적인 관리와 효율, 상품시장 확대를 위한 분리와 경쟁을 특징으로 작동하는 근대사회와 신자유시장을 위해 활동한다. 국가와 기업은 어린아이부터 성인까지 시민들에게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혼자 살아가기를 강요하고 있다. 도움받기를 청하는 의존적인 태도는 수치스러운 일이 되고 돌봄은 능력 없는 나약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시혜적인 복지활동으로 대상과 범위가 제한되었다. 한편으로는 돌봄이 아기돌봄, 노인돌봄, 건강돌봄 등 개인들이 값비싸게 구매해야 할 셀프케어 상품으로 등장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봄에서 배제 시켜 나간다.
승자독식의 신자유시장의 확장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정도로 불평등을 구조화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국가적인 위기 해결책으로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William Beveridge)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라 사회보장제도인 복지를 채택한 것처럼 21세기 사회적인 위기상황에서 돌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시혜적으로 제공되는 정책과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으로는 불평등의 해소도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약속할 수 있는 돌봄의 회복도 기대할 수 없다. 상호의존해서 살아가는 지속가능한 사회 시스템으로 돌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혜적인 복지 및 시장에서 교환되는 돌봄과 자발적이고 호혜적인 돌봄을 구분하고 돌봄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바로잡는 일과 함께 회복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5. 돌봄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회복 방향
돌봄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돌봄이 여성적인 일이며 나약한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것이라는 관습적인 인식과 태도이다. 오래된 가부장제 관습에서 돌봄은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의 집안일이 되어 여성의 성역할로 강요되었다. 여성의 역할이 된 돌봄은 사회활동에서 중요하지 않은 부차적인 일이면서 공동체도 정부도 관여하지 말아야 할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치부된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지금까지도 아이를 키우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의 지금까지 여성이 도맡아 온 생명살림 가치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여성들은 중요한 살림을 외면할 수도 혼자서 감당할 수도 없는 이중으로 구속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의 일이자 사적인 활동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 돌봄을 이제는 성역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돌봄의 사회적인 가치를 회복하고 성평등한 상호역할로 작동되는 제대론 된 돌봄의 시작이다.
두 번째 오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정상과 비정상, 우성과 열성으로 분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배경으로 한다. 능력 있고 건강한 인간은 돌봄이 필요 없으며, 돌봄은 취약계층이나 건강상의 도움이 필요하고 독립 능력이 없는 나약한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관습적인 인식과 태도이다. 돌봄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일이면서 사회적으로도 곱지 않은 시선과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 됨을 뜻한다. 이렇게 돌봄은 사회에서 외면당한다. 이 생각이 아직까지 돌봄을 노인이나 아이와 같은 특정 세대, 그리고 소득과 부의 편차에 따른 계층을 분리하여 시혜적 돌봄을 받는 대상과 비대상을 나누는 선별적 복지의 배경이 된다.
돌봄 받는 것을 나약하게 보고 독립적인 생활을 강조하는 것은 생명활동의 순환성, 다양성, 관계성, 영성을 알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전체화, 획일화, 개체화된 사고에 묶여 상호취약성과 상호연결성으로 살아가는 생명활동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럴 때 돌봄은 소득이 있고 없고에 따라 돌봄이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최소한의 시혜적 활동에 국한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서로가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누군가와 연결되지 않은 독립은 허구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경제력에 의한 국가 간의 백신 불평등이 새로운 변종을 탄생시키며, 소득 불평등이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제위기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더라도 모두가 모두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상호연결성의 불가분 관계를 경험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오해는 생활 전체적으로 연결되고 순환되는 돌봄이 파편화되어 신체적으로 직접 돌보는 활동에만 제한된다는 관습적인 인식과 태도이다. 신체를 건강하게 돌보기 위해서도 신체와 연결된 생활 전체를 둘러보아야 한다. 사회경제활동, 기후재난 등에서 비롯된 엄청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받는 청년 세대에게 주거 지원, 생활비 지원 등 신체적 돌봄만으로 건강한 생활을 해나가기를 바랄 수는 없다. 상호의존적이고 협동적인 생활의 범위는 소소한 활동에서부터 먹거리와 교육까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까지 제한할 수 없고 복잡하게 연결되어있다.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반려견을 이웃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하거나, 힘들 때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있다거나, 필요한 책을 동네 선배에게 빌리거나, 농촌에서 수확한 작물을 도시민이 이용하는 것처럼 생활 하나하나는 그물망과 같이 연결되어 작동된다.
파편화된 돌봄은 시장에서 쇼핑하듯이 살 수 있는 기업들이 만든 돌봄 상품일 뿐이다. 돌봄은 생활 전체를 포괄한다.
네 번째 오해는 돌봄은 자기돌봄에서 상대돌봄으로 이어지는 돌봄을 외부적인 상대돌봄으로만 제한하는 관습적 인식과 태도이다.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는 건강하게 상대를 돌볼 수 없다. 자기 스스로를 돌본다는 것은 자기의 자질과 능력을 계발하고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이다. 때에 따라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 적절한 휴식과 운동으로 몸을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내부적 자기돌봄으로 상대를 기쁘게 돌볼 수 있게 한다. 자기돌봄 없이 사회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상대를 돌보는 일은 자신을 소진하고 어느 순간 스스로를 돌봄생활에서 이탈하게 만든다. 일방적인 희생은 결코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않다. 외부로 연결되어 상대를 돌보는 일이 횡적이라면 자기돌봄은 종적인 돌봄이다. 이 둘의 관계는 격자무늬처럼 짜여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횡적인 상대돌봄 없이 종적인 자기돌봄이 깊어질 수 없다. 종적인 자기돌봄 없이 횡적인 상대돌봄이 계속될 수 없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감사하면서 자기를 돌보고 있다.
6. 돌봄의 특징과 지역에서 돌봄이 작동하는 힘
이제부터라도 돌봄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돌봄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와 불평등, 고령화, 1인 가구의 증가, 일자리 부족, 지역소멸 등의 사회문제를 정부와 시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순환성, 중복성, 양면성(교차성), 탄력성, 증여성을 특징으로 하는 돌봄 없이는 신자유시장이 가져온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1) 순환성 :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활동이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 노인을 돌보는 것은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돌봄을 받는 것과 같다.
(2) 중복성 : 돌봄은 파편적이지 않다. 아이를 돌보는 일부터 일자리 제공까지 다양하게 중층적으로 중복되어있고 전체를 포괄한다.
(3) 양면성(교차성) : 누구도 돌봄을 받을 수만 없고 돌볼 수만도 없다. 내가 옆집 아이를 돌보는 것은 이웃이 우리 집 아이를 돌보는 것이고, 자연의 도움으로 농부가 농사지어 곡식을 기르는 일은 먹거리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고 사람들이 쌀을 사고 배추를 사는 일은 농사를 짓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다.
(4) 탄력성 : 가까운 가족을 넘어 또 눈에 보이는 돌봄을 넘어 돌봄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연결하며 사건처럼 횡단한다. 갑작스럽게 재난지역을 돌보는 일이나 야근하는 이웃을 위해 이웃집 반려견을 돌보는 일은 계획에 없던 돌봄이다.
(5) 증여성 : 등가교환이 아니라 호혜적으로 선물 되는 돌봄으로 누구도 돌봄에서 소외당하지 않을 수 있다.
돌봄의 다섯 가지 특징을 가로질러 돌봄이 작동되도록 하는 힘은 호혜적 관계다. 정부와 시장의 무늬만 돌봄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서로 의존하는 돌봄은 관계로 구분할 수 있다. 관계는 공감과 공명과 같은 정서적인 친밀감이 형성될 때 증폭되기 때문에 공감과 공명의 장(場)이 되는 지역은 돌봄의 강렬도를 높이는 중요한 인프라가 된다.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 친구를 돌봐주듯이 관계에서 돌봄이 만들어지고 역으로 돌봄으로 관계가 만들어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DNA 구조와 같은 상호돌봄과정이 지역에서 일어난다. 돌봄 연구자와 활동가가 지향하는 보편적 돌봄은 지역 안에서의 돌봄을 중심으로 정부의 복지와 시장의 셀프케어상품으로 보완되고 풍부해질 수 있다.
7. 지역 안에서의 관계돌봄과 포괄적 돌봄
지역은 관계돌봄(무늬뿐인 돌봄과 구분할 수 있는)의 장(場)이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공감과 공명을 높여 서로의 밀도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문화인류학에서는 공동의 장소감(Sense of Place)과 장소애(Topophilia)를 배경으로 서로 연대하고 공경하는 생활 범위를 50가구 정도로 보고, 지역학자 샤프트 (Shaftoe. H)는 휴먼 스케일의 크기를 인구 5,000명 이하 지름 1㎞ 이하의 크기가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그렇다고 제한된 지역으로 돌봄이 한정되지는 않는다. 나무뿌리의 프랙탈(Fractal) 구조처럼 돌봄은 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전체가 하나로 수렴된다. 지역에서 생성된 돌봄이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국경을 넘어 생활이 어려운 남반구 국가까지 지구 전체로 반복적으로 확장되고 수렴되는 창조적 반복이다. 여기서 수렴은 일방적이지 않고 교차적인 돌봄의 성격을 뜻한다. 아프리카 사막화 방지를 위해 하는 일은 멀리 떨어진 우리에게 좀 더 나은 지구환경을 제공하고 그들의 지혜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공동의 자원과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지역 안에서 관계돌봄의 마음이 생기고 행위의 네트워크가 생성된다. 지역의 자원으로 내발적 발전을 실천하는 협동조합은 주민들을 채용하면서 주민들을 돌보고 주민들은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협동조합과 지역을 돌보는 행위를 한다. 중고마켓은 제품 구매 없이도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제공하여 욕구를 충족시키며 소유하지 않고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이는 멀리 있는 친척보다 이웃들이 돌봐줄 수 있다. 지역 단위의 타임뱅크는 각자가 가진 재능과 여분의 시간을 나누며 서로를 돌볼 수 있다. 이렇게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돌봄 활동들이 중고마켓, 타임뱅크, 공동육아, 자원봉사 등 각자의 이름과 필요를 가지고 활동 중이다.
춘천시의 ‘선한 이웃 프로젝트’는 관계돌봄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프로젝트는 행정복지 전달체계 개편에도 계속해서 복지 사각지대가 증가하고 저출산, 고령화, 삶의 만족도 하락 등이 심각해지는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 지역 기반의 관계돌봄을 이웃끼리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는 행정의 시도였다. 프로젝트는 생활권역에 함께 사는 주민주도 마을돌봄 활성화를 목표로 단계별로 3가지 추진전략(마을돌봄 인프라 구축, 마을돌봄 공공서비스 강화, 생활권역 마을돌봄 실행)이 세워져 있다. 단계별이라고 하지만 이 계획은 마을돌봄 인프라와 민과 관의 역할과 협력이 조화된 집합적 계획으로 이 사업을 연결하고 활동하는 주체는 주민들이다. 특히 ‘춘천형 마을복지 플랫폼’은 관내 25개 읍면동과 8개 거점 사회복지관을 연결하고 보건, 복지, 자치, 사회적경제, 문화 등 다양한 기관·단체 등과 협력하여 같은 마을에 사는 선한 이웃들의 힘을 모으고 도와가며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활동이다.
마포 사회적경제네트워크도 신체 또는 취약계층 돌봄 사업에서 지역을 생활돌봄이 가능한 돌봄공동체로 전환하는 포괄적 돌봄을 계획하고 있다. 3단계로 계획된 돌봄공동체 계획은 단체 역량과 지역 상황에 따라 먼저 신체 및 취약계층을 돌보는 마포 돌봄사회적협동조합의 커뮤니티케어를 시작으로 지역 사회적경제 제품 및 서비스로 생활 전체를 포괄하는 가치교환과 증여가 결합된 생활돌봄, 자율적으로 자기돌봄과 서로돌봄이 연결되는 돌봄 플랫폼까지를 구상하고 있다.
앞에서 계속 이야기했듯이 돌봄은 제한적(부분적) 돌봄과 포괄적 돌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근대사회는 돌봄을 취약계층과 신체적 돌봄이 필요한 대상으로 제한하여 중앙에서 관리하거나,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값비싼 돌봄(셀프케어) 상품으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돌봄 당사자와 돌봄 제공자 관계가 일방적이고, 돌봄 대상과 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의 돌봄은 제한적(부분적) 돌봄을 포함해서 생활전체를 포괄하는 서로 돌봄으로 주민은 돌봄 당사자와 돌봄 제공자 이중의 역할을 한다. 또 복지 및 셀프케어와 함께 호혜적 돌봄으로 구성된다. 역설적으로 돌봄의 범위는 포괄적인 돌봄을 위해 전국단위가 아니라 지역단위가 될 수밖에 없다. 지역은 이렇게 다양성에 기초해 개별적인 돌봄을 제공하면서도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연결되어 전일적인 삶이 가능한 포괄적 돌봄을 특징으로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속수무책으로 대응하는 미국과 영국 등의 서방국가를 보면서 시장화되고 중앙 집중적으로 관리되는 복지프로그램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알 수 있었다. 더 큰 기후재난과 사회재난이 벌어지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돌봄의 전환의 시급하다. 경제학자들은 사회적 돌봄을 개인들의 관계 안에서 생성되는 관계재라고 부른다. 결국, 지역 안에서 순환성, 중복성, 양면성(교차성), 탄력성, 증여성으로 더 작고 더 넓은 돌봄의 실천을 촘촘한 그물망처럼 연결해 이웃이 있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을 발명해야 한다.
[참고문헌]
더 케어 컬렉티브(The Care Collective), 2021, 『돌봄선언_상호의존의 정치학』, 니케북스
신승철, 2022, 『정동의 재발견』, 모시는사람들
존 레스타키스 John Restakis, 2022, 『시민권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착한책가게
김지하, 2002, 『김지하전집 1_철학사상』, 실천문학사